[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은퇴하는 담임목사의 퇴직금을 마련해 오는 조건으로 후임 담임목사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부분 규모가 작고 재정 상황이 열악해 담임목사 은퇴 시 퇴직금을 마련해 주지 못하는 교회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 몇 년 전에는 1억에서 1억 5000만 원을 가지고 갈 테니 후임 목사로 청빙해 달라고 교단 신문 사이트에 공고까지 낸 목사도 있었다.

한국교회 대부분이 작고 가난하다 보니, 이는 수십 년 고생하고 은퇴하는 목사의 노후를 위한 현실적인 방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시각으로 보면 담임목사 자리를 돈으로 사는 '성직 매매' 행위라 해도 할 말이 없다.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회·이철 감독회장)는 교단법 '교리와장정'에서 이러한 행위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교리와장정 제7편 재판법에 따르면 "교회를 매매하여 사리사욕을 취하거나 교회 담임 임면 시 금품을 수수한 때"는 정직·면직 또는 출교하게 돼 있다. 감리회 장정개정위원회(장개위)에서 활동했던 한 목사는 <뉴스앤조이>에 "후임 목사가 전임 목사 은퇴비 명목으로 돈을 가져오는 것도 이 조항에 저촉된다. 만약 이를 용인하면 은퇴하는 목사는 더 많은 돈을 제시하는 목사에게 교회를 넘기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후임 목사가 전임 목사의 퇴직금을 가지고 오는 관행. 현실적인 돌파구일까 성직 매매일까. 
후임 목사가 전임 목사의 퇴직금을 가지고 오는 관행. 현실적인 돌파구일까 성직 매매일까. 

ㄱ 담임목사의 불법 교회 통합과 대출로 문제가 된 경기도 남양주시 ㅌ교회. 일부 교인의 문제 제기로 교회 통합도 무산되고, ㄱ 목사가 예배당을 담보로 대출받은 금액도 원상태로 돌려놓았다. 하지만 ㄱ 목사는 건강상 이유로 은퇴 뜻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지방회 감리사 곽민 목사가 ㅌ교회 뒷수습을 맡았다. 곽 목사는 5월 16일 교인들과 간담회를 열고 ㄱ 목사 후임에 대해 논의했다.

곽 목사는 이 자리에서 후임으로 오는 목사 측으로부터 일정 금액을 받아 ㄱ 목사에게 퇴직금 조로 주는 방안을 이야기했다. 그다음 주부터 광림교회(김정석 목사) 부목사 2인이 후보자로 한 주씩 ㅌ교회 설교를 맡았다. 광림교회는 ㄱ 목사 퇴직금 명목으로 일정 금액을 ㅌ교회에 지원하기로 했다.

불법 교회 통합과 대출 때부터 반대 의사를 표명해 온 교인 A는, 간담회 직후부터 이는 성직 매매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곽민 목사와 중앙연회 최종호 감독, 광림교회 김정석 목사에게 진정서를 보내, 이런 행위를 멈춰 달라고 했다.

A는 "우리 감리교단 장정에는 성직 매매를 금하고 있다. 퇴직금에 대한 예우도 개교회에서 성도들이 의논하고 정하는 것이다", "불법 통합·대출과 관련한 일련의 상황에 대해 투명하게 해명하고 정상적으로 마무리 후 후임자 청빙을 위한 구역 인사위원회를 진행하는 것이 순서다", "더는 마음이 상해 교회를 떠나는 성도가 없고,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처리한 후 후임자를 청빙해 교회가 올바로 세워지길 바란다"고 했다.

하지만 후임 청빙 과정은 그대로 진행됐다. 6월 초, 교인들 투표로 광림교회 부목사 중 한 명이 ㅌ교회 담임목사로 선정됐다.

곽민 목사는 후임 선정 과정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는 7월 12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모든 절차는 법적 테두리 안에서 했다"며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한 분이 있는데 지금 그분 말고는 아무도 문제를 삼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임 ㄱ 목사에게 퇴직금을 줬느냐는 질문에는 "아직 지급한 건 없다. 현재 ㄱ 목사가 고발을 당한 상황이기 때문에, 모든 법적 문제가 정리된 후에 논의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성직 매매라는 반발에 대해서도 해명했다. 곽 목사는 "한국교회 대부분이 어렵고 최근에는 코로나19로 더욱 힘든 상황이다. 교회들이 은퇴하는 목사를 책임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ㅌ교회도 미자립 교회다. 원래 통·폐합하면서 은퇴비를 마련하려고 한 것인데 그것도 결국 무산됐다. 교인들도 ㄱ 목사 은퇴비를 책임지지 못하니 나에게 도와 달라고 하더라. 내가 광림교회 출신이라 광림교회에 부탁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성직 매매라고 몰아갈 수도 있겠지만, 이건 규모가 크거나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는 교회들이 작은 교회들을 도와주는 차원이다. 선한 마음으로 본다면, 교회도 살리고 목회자도 살리는 길이다. 40년 가까이 목회한 목사를 그냥 내치듯이 내보내는 게 맞나. 후임 목사가 감사의 표시로 교회가 감당할 수 없는 부분을 책임지는 것은 선교적인 모습으로 볼 수도 있다. 교리와장정에 그런 조항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현실적으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교인 A는 이번 일을 겪으며 교단과 목회자들의 민낯을 보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나도 이번 일 때문에 교리와장정을 구입해 보게 됐다. 목사들이 가르쳐 주지도 않았고, 그들도 잘 모르는 것 같다. 내가 교리와장정을 근거로 교회 통합과 대출, 후임 선정 과정이 잘못됐다고 지적하니, 어떤 목사는 외려 나에게 교리와장정 좀 그만 보라고 하더라. 지키지도 않을 법이라면 왜 존재하는 것인가"라고 비판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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