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학창 시절 한 번쯤 겪었을 이야기. 누군가 돈이나 소지품을 분실하면 선생님은 모두 자리에 앉게 한 후 눈을 감으라고 했다. "가져간 사람 조용히 손 들어." 나는 눈을 감고 속으로 '왜 남의 물건에 손대서 분위기를 이렇게 만들까', '과연 범인은 잡히려나', '그 녀석은 이제 어떻게 되려나' 하며 두근두근했다. 그 방법이 효과적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지금 돌이켜 보면 선생님들도 참 고민이 많았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일들이 나에게는 추억이지만, 지금도 아이들과 부대끼는 교사들에게는 현실적인 고민거리다. 한국회복적정의협회(이재영 이사장)가 6월 26일 진행한 '회복적 교육(Restorative Justice in Education)' 온라인 컨퍼런스에서도 비슷한 질문이 나왔다. 교실에서 분실 사고가 일어났을 때, 어떻게 회복적 정의 관점으로 접근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세미나에는 120여 명이 참여했고, 그중에는 현직 교사가 많았다.

캐시 에반스 교수는 교육 영역에 회복적 정의를 적용해 온 선구자다. 줌 화면 갈무리
캐시 에반스 교수는 교육 영역에 회복적 정의를 적용해 온 선구자다. 줌 화면 갈무리

이날 강사로 선 이스턴메노나이트대학(EMU) 교육학부 교수이자 <회복적 교육>(대장간) 공동 저자 캐시 에반스(Kathy Evans)는 회복적 교육의 원칙들을 강조했다. 회복적 정의 관점에서, 누군가 공동체에 피해를 준다는 것은 그가 공동체에 소속돼 있지 않다고 느낀다는 것을 방증한다. 에반스 교수는 회복적 교육의 6가지 원칙 중 네 번째를 언급했다. "지지받는 환경에 있을 때, 우리는 서로에게 책임 있는 존재가 되어 간다(Within supportive environments, we become accountable to one another)."

에반스 교수는 "우리가 관계 가운데 있다면,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는 줄어들게 돼 있다. 내가 하는 행동 때문에 피해가 발생했다면 회복하고 싶어 할 것이다. 아이들이 피해를 주는 행동을 하는 이유는 대부분 공동체에 소속돼 있다고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모든 학생이 학교에 소속감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섯 번째 원칙(Support for making things right moves us toward healing)을 언급하며 "아이들이 그 일을 바로잡을 수 있게 지원하면 모두가 치유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벌을 주는 것은 어찌 보면 쉬운 선택이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그 아이는 결국 공동체에서 더 멀어지는 경험을 할 것이다. 에반스 교수는 "그가 공동체에 진정으로 책임질 수 있는 행동을 지원한다면, 그는 자기가 유발한 피해를 회복할 수 있게 되고, 그 일과 관련한 모든 사람이 치유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는 그 아이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 줘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벌주는 것보다 어렵고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에반스 교수는 회복적 교육의 핵심 가치와 신념, 원칙들을 강조했다. 이날 컨퍼런스 통역은 <회복적 교육> 번역자 안은경 교사가 맡았다. 줌 화면 갈무리
에반스 교수는 회복적 교육의 핵심 가치와 신념, 원칙들을 강조했다. 이날 컨퍼런스 통역은 <회복적 교육> 번역자 안은경 교사가 맡았다. 줌 화면 갈무리

에반스 교수는 한국에서 회복적 교육을 시도하려 애쓰는 교사들에게 연대와 지지, 감사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오늘날 회복적 교육이 조금씩 퍼져 나가는 현상을 긍정적으로 진단하면서도, 한편으로 이러한 새로운 교육 운동이 현실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현상을 우려했다. 시작은 했지만 열매를 맺지 못하는 상태는 아닌지 질문하며, 회복적 교육의 성패는 교사들이 회복적 가치에 얼마나 헌신돼 있는지에 달려 있다고 했다. '단단한 기초'를 세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에반스 교수와 도로시 반더링(Dorothy Vaandering)이 쓴 <회복적 교육>에는 회복적 교육의 '핵심 신념과 가치(Underlying Beliefs and Values)' 표가 나온다. 회복적 교육의 구성 요소는 △정의롭고 공평한 배움의 공간 창조하기 △건강한 관계로 성장하기 △피해를 회복하고 갈등을 전환하기다. "이 세 가지 요소는 '사람은 가치 있고 관계적이다'라는 핵심 신념에서 나온다. 핵심 신념은 회복적 교육의 씨앗이다. 이 신념을 지탱하는 뿌리는 존중과 존엄성, 상호 책임이라는 가치이다."(26쪽) 에반스 교수는 "회복적 교육이 이 세 가지 가치를 드러내지 못한다면 세상을 변혁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회복적 교육의 핵심 가치와 신념을 담은 표. 줌 화면 갈무리
회복적 교육의 핵심 가치와 신념을 담은 표. 줌 화면 갈무리

그는 교사들이 이 가치와 신념을 내면화해야 한다고 했다. 단지 훈육 체계에 적용하는 것을 넘어, 교사 자신의 삶과 가르침, 학교 공동체 전체에 적용돼야 한다고 했다. 그는 학교 구성원들이 여전히 징벌적 사고방식을 취하고 있다면, 서클(Circle)이나 어떤 회복적 방법을 도입해도 근본적으로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며, 교사와 학생 및 그 가족들이 회복적 교육의 핵심 신념과 가치로 삶의 방향성을 재설정해야 한다고 했다.

에반스 교수는 회복적 교육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이유를 세 가지로 들었다. 첫 번째는 코로나19 팬데믹 환경이다. 회복적 정의는 '모든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깊은 열망이 있다'는 믿음을 전제한다. 그는 "어른들에 비해 아이들은 얼마나 많은 사회적·정서적 욕구를 표현하는가. 아이들을 학습자 이전에 본인 욕구에 귀 기울여야 하는 존재로 봐야 한다"며 "온라인에서도 아이들이 지지받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건강한 관계를 맺게 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두 번째는 갈등과 폭력이 만연한 세상이기 때문이다. 에반스 교수는 "회복적 정의는 갈등과 폭력 한복판을 통과할 수 있는 가치와 원리, 실천 방법을 제시한다. 우리가 갈등과 폭력을 제대로 다룰 때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치유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이 갈등을 드러내고 회복하는 기술을 배워야, 다른 사람의 아픔을 공감하고 나와 관점이 다른 사람 이야기도 주의 깊게 들을 수 있는 성인으로 자랄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 이유는 불의와 불공정이 점점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에반스 교수는 모든 갈등이 다루기 어렵지만, 특히 '정체성' 때문에 일어나는 갈등을 다루기가 더욱 까다롭다고 했다. 인종차별, 성차별, 장애인 차별, 성적 지향 차별, 트랜스젠더 혐오 등. 이와 같은 갈등이 학교에서 일어나는 경우, 더 큰 피해로 이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긴급하게 다뤄야 한다고 했다.

그는 "정의와 공평을 추구하지 않는 회복적 교육은 완전하지 않다"며 "회복적 교육을 통해 가장 취약하고 소외된 집단을 옹호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들을 옹호하는 것은 단지 미안해서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번영하는 것이 회복적 정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간절한 소망이기 때문이다. 회복적 정의는, 모든 존재는 연결돼 있으며 긍정적인 변화를 이뤄 내기 위한 자원을 이미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에반스 교수는 "휠체어를 타는 아이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하는 문제를 발견하는 창의력을 가지고 있다. 성적 지향 때문에 소외받는 아이는, 우리가 서로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더 잘 가르쳐 줄 수 있다. 우리는 서로에게 선물을 가져오는 존재라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고 말했다.

회복적 정의의 7가지 핵심 요소. 줌 화면 갈무리
회복적 정의의 7가지 핵심 요소. 줌 화면 갈무리

질의응답 시간에는 현직 교사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한 참가자는 함께하는 교사·행정가·리더들과 회복적 교육에 대한 가치관을 공유할 수 없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또 다른 참가자도 공동체 구성원 대부분이 응보적 관점에서 교육하고 있다면, 회복적 정의 사고방식을 가진 개인이 시도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물었다.

에반스 교수는 "자기 돌봄 차원에서, 리더들이 회복적 교육에 대해 모르더라도 누군가는 나를 공감해 줘야 한다. 나와 같은 가치를 공유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꼭 학교가 아니더라도 회복적 정의와 관련한 단체에서 연결된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회복적 정의에 저항하는 사람들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여기에 너무 몰입해서 볼 수 없는 지점을 그들은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우리는 모든 존재가 서로에게 줄 선물이 있다는 걸 믿는 사람들이다"라고 말했다.

"혼자 하지 않는다: 학교에서 본인이 회복적 교육을 가장 잘 아는 상태라면 하루라도 빨리 회복적 교육 실천 모임을 꾸린다. 나와 함께 회복적 교육 꿈을 꾸고 실천할 수 있는 교사, 학부모, 양육자, 학생, 행정 직원, 지역사회 실천가는 누구인지 생각한다. 학교를 잘 아는 내부 관계자와 다른 시각에서 상황을 바라볼 수 있는 외부 관계자가 모임 안에 들어올 수 있도록 고려한다." (138쪽)

코로나19 상황에서 어떻게 관계를 깊게 맺을 수 있을지 질문하는 사람도 있었다. 에반스 교수는 '온라인 서클'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역시 처음에는 '회복적 정의를 어떻게 온라인으로 하느냐'며 부정적으로 반응했다. 하지만 지금은 온라인으로도 힘 있는 서클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름다운 관계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 중 하나는 서로가 서로에게 관심을 주는 것이다. 상대방의 눈을 보고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이다. 물론 오프라인으로 하면 더 좋을 것 같다. 이 거리 두기가 영원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기술 덕분에 온라인으로라도 함께할 수 있어 감사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정의正義라는 게 때로는 명확하지 않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정의를 어떻게 정의定義하는지 묻는 참가자도 있었다. 에반스 교수는 "1차적 정의와 2차적 정의로 나눌 수 있다. 1차적 정의는 사람들의 욕구가 채워지는 것이다. 시각장애 학생에게는 점자가 정의다. 휠체어를 탄 학생에게는 다닐 수 있는 길이 많은 게 정의다. 양육자에게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공정하게 대우받는 것이 정의다. 인종과 민족이 무엇인지 상관없이 존엄하게 대우받는 게 정의다. 이런 1차적 정의에 피해가 발생했을 때 바로잡는 것이 2차적 정의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회복적 교육 - 책임, 치유, 희망을 일구는 교육 철학> / 캐시 에반스·도로시 반더링 지음 / 안은경 옮김 / 대장간 펴냄 / 158쪽 / 9000원
<회복적 교육 - 책임, 치유, 희망을 일구는 교육 철학> / 캐시 에반스·도로시 반더링 지음 / 안은경 옮김 / 대장간 펴냄 / 158쪽 / 9000원

에반스 교수는 다시 한번 회복적 교육에 헌신하는 한국 교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는 회복적 교육이 중요한 시기에 와 있다며, 회복적 정의의 가치와 원리로 우리 삶의 방향성을 재설정하자고 말했다.

"회복적 교육은 통합적이고 전체론적인 교육 방식이다. 회복적 교육을 바탕으로 하는 교육적 변화는 정학율 감소, 학생 행동 개선, 학업 성취도 향상과 같은 특정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물론 이와 같은 변화는 회복적 교육을 실천한 결과일 수 있다. 우리는 이보다 더 나아가 회복적 교육을 통해 학교 문화가 변혁되기를 바란다. 학생, 교직원, 학부모, 양육자 모두가 배움 공동체에 소속감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 교사와 학생이 적극적이고 활발하게 배움에 참여하며 인종, 젠더, 성적 지향, 문화적 배경, 종교, 모국어, 장애 여부, 경제적 배경에 상관없이 모두가 존중을 받고 배움과 성장에 필요한 지원을 받기를 바란다. 학교 문화 변혁은 공동체 구성원 모두를 존귀하게 여기고 상호 연결된 존재로 인정할 때 가능하다.

 

우리는 북미 지역 학교의 회복적 교육 실천 성공 사례와 실패 사례를 수없이 봐 왔다. 학교와 함께 연구하고 실천하고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대화했다. 회복적 교육 실천을 통해 학교가 달라져도 회복적 실천을 하는 교사 한 사람이 떠나면 회복적 교육 실천이 수포로 돌아가는 경우를 봤다. 또 학교 전체적으로 회복적 교육을 실시해도 지속적인 교사 교육을 진행하지 않아 실천을 중단하는 교사를 봤다. 결론적으로 교사가 회복적 교육을 지속 가능하게 실천하려면 철학적 토대와 함께 핵심 신념과 가치가 넓고 깊게 뿌리내릴 수 있도록 지원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책에서 비유로 사용한 식물이 나무처럼 성장한 모습을 상상해 본다. 견고한 뿌리가 있었기에 나무는 무럭무럭 자라 대지에 은총을 주고 땅에 그림자를 드리울 만큼 크게 자랐다." (135~1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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