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개신교 재단 사립대학 중에는 신학과·기독교교육과·교회음악과로 구성된 '신학대학'과 신학 계열 학과, 일반 학과로 구성된 '종합대학'이 있다. 문체부 자료를 기준으로 이단 계열 학교와 폐교된 학교를 제외한 총 79곳의 학칙을 살펴본 결과, 개신교 재단이 운영하는 사립대 중 채플을 의무로 규정한 학교는 68곳(86%)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채플 자율화하거나 폐지한 학교는 11곳에 불과했다.

종교 지도자를 양성하는 신학대학이 아닌, 다양한 학문을 배우고 취업 관문이 되는 '종합대학'은 종교 자격 제한 없이 신입생을 모집한다. 또, 일반대학으로 분류돼 정부로부터 장학금·연구비 등 각종 지원을 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신학대학도 아닌 개신교 재단 운영 종합대학 대부분은 '인성 교육', '선교' 등을 이유로 채플을 강제해 오고 있다. 학생들은 종교와 무관하게 정해진 학기 동안 '채플'을 비롯한 종교 과목을 필수로 이수해야 한다.

'채플 강제 이수 규정'을 두고 비기독교인 학생과 시민단체는 줄곧 문제를 제기해 왔다. 이와 관련해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최영애 위원장)는 4월 12일 "경건회(채플) 수업을 진행함에 있어 동 수업을 대체할 수 있는 과목을 개설하는 등 학생 개인의 종교의자유 등을 침해하지 않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권고하기도 했다.

이슈다.
기독교 재단 사립대학의 '채플 의무' 규정은 해묵은 이슈로 매번 논란이 돼 왔다.

하지만 교계는 인권위 권고가 '종립 사학 정체성 흔들기'이자 '종교의자유 침해'라며 반발했다. 최근 한국교회총연합(공동대표회장 소강석·이철·장종현)과 한국교회연합(송태섭 대표회장) 등은 "학생의 학교 선택권이 보장돼 있는 상황이고, 기독교적 건학 이념을 가진 사립대학은 헌법이 보장하는 종교의자유에 따라 종교교육을 할 수 있다"며 인권위에 권고를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사학법인미션네트워크 상임이사 박상진 교수(장신대)는 6월 3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어떤 지식을 많이 가르치는 것보다 기독교적 가치관을 갖게 하기 위해 이뤄지는 게 기독교 교육이다. 신앙 교육을 안 하려면 개신교 사립학교를 설립할 필요가 없다"며 채플 의무화에 찬성하기도 했다.

'입학은 곧 채플 동의?'
현실성 없는 주장이자 차별 행위
"타자 존중·배려가 기독교 정체성"

채플 강요 논란은 주로 개신교 사립대학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이를 개선하거나 바꾼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번에 교계가 내놓은 입장과 같이,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는 일방적인 태도가 개신교를 더욱 고립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 한국의 대학 입시 구조를 들여다보면, 학생의 학교 '선택권'은 제한적이다. 2020년 대학알리미 공시에 따르면, 전체 사립대학 중 개신교 재단이 운영하는 사립대학은 39%에 이른다. 건국대학교 법학대학원 한상희 교수는 6월 3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우리나라 대학 교육제도를 보면 사실상 학생이 선택할 수 있는 (대학의) 폭은 상당히 좁다. 학생의 선택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학이 국가의 인가를 받고 지원을 받는 시설이라는 것이다. 사립학교가 종교교육을 강제하는 것은 국가가 (종교를) 강제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말했다. 또 "비종교인 학생에게 대체 과목을 제공하지 않고 (채플 미이수를 이유로) 졸업을 막는 것은 '교육 기회에 대한 차별' 행위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교계의 주장대로라면 종교의자유는 학교 기관뿐만 아니라 학생 개개인에게도 해당돼야 한다. 제3시대그리스도연구소 김진호 연구기획위원장은 6월 8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기독교 재단 학교가 종교교육은 할 수 있지만, 강제로 의무화하는 건 학생의 종교 선택 자유에 위배된다. 채플을 이수하지 않았다고 졸업을 못하게 하는 건 인권에도 반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개신교 재단 사립대학에 입학한 학생이라면 평균 4학기에서 많게는 8학기 동안 '채플'을 수강해야 졸업할 수 있다. 사진은 위에서부터 연세대, 이화여대, 백석대 채플 관련 학칙. 각 대학 홈페이지 갈무리
개신교 재단 사립대학에 입학한 학생이라면 평균 4학기에서 많게는 8학기 동안 '채플'을 수강해야 졸업할 수 있다. 사진은 위에서부터 연세대, 이화여대, 백석대 채플 관련 학칙. 각 대학 홈페이지 갈무리

갈수록 탈종교화·다양화하는 시대인 만큼 채플을 강제하기보다 새로운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도 계속되고 있다. 종교자유연대 백찬홍 대표는 "신학대학도 아닌 종합대학에서 채플을 강제하는 것은 강압적인 폭력에 가깝다고 본다. 개신교 재단 학교의 근본주의적 모습들이 오히려 학교와 개신교의 위상을 훼손하지 않을까 싶다. 시대가 바뀌었다. 대학 운영을 투명하게 하고, 교육의 질을 높이는 식으로 가야 원래 설립 목적인 선교와 전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양대학교 이천진 교목실장도 "채플을 필수로 하게 되면 비기독교인들에게 '종교 강요'가 될 수 있다. 채플은 진행하되, 원하는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참여하도록 하는 게 맞다고 본다. 미국에서도 하버드대학을 비롯해 채플을 의무로 두는 학교는 거의 없다. 한국 대학에서 채플을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굉장히 놀라워한다. 타 종교인이 졸업 때문에 강제로 수업에 들어와야 하는 일은 옳지 않기 때문이다. 기독교성은 타자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이다. 종교가 다르다고 이 학교를 다닐 수 없다고 하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라고 말했다.

채플 '자율화' 시행 중인 경성대학교
"신앙 강요해서 생기지 않아"
이웃 종교 재단 원광대학교도
"타 종교인에게 종교 강요할 수 없어"

극소수지만 채플과 같은 종교교육을 진행하되, 참여는 '자율'로 맡기는 대학도 있다. 개신교 재단이 운영하는 경성대학교는 대다수인 비기독교인 학생을 고려해 채플을 '교양 선택' 과목으로 운영한다. 경성대 송필오 교목실장은 "(채플을) 듣고자 하는 학생이 차고 넘친다. 매 학기 15개 수업이 열려 참여하는 학생이 1500명씩이나 된다. 자율로 두지만 이수하기 쉬워 학생 참여도 높고, 대부분의 재학생이 졸업 전까지 한 번씩은 거쳐 간다"고 설명했다.

송 교목실장은 비기독교인이 대다수인 일반대학에서는 채플을 자율화하는 게 옳다고 말했다. 그는 "채플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신앙은 강요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지 않나. 물론 채플을 듣기 싫은 사람이 억지로 듣다가 생각이 바뀔 수도 있다. 하지만 학생들이 스스로 선택하게 하면, 우리도 성경 진리를 이야기할 수 있는 자유가 생긴다. 듣고 싶어 하는 학생들에게 이야기하니까 더 설득력 있게 다가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자유롭게 선택하는 채플 과목의 만족도도 높다고 했다. "채플 내용에 거부감을 토로하거나 종교를 강요당했다고 말하는 학생은 극히 드물다. 오히려 신앙을 고민해 보게 됐다는 긍정적인 반응이 정말 많다. 믿음이 불확실했는데 좀 더 확신을 갖게 됐다는 학생도 있고, 원래 기독교에 반감이 있었는데 호감을 가지게 됐다는 학생들도 생겼다"고 말했다.

드물지만 채플을 자율화한 기독교 사립대학도 있다.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드물지만 채플을 자율화한 기독교 사립대학도 있다.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이웃 종교 원불교 측이 운영하는 원광대학교도 학생들에게 법회를 강요하지 않고 있다. 원광대 박덕연 주임교무는 "원광대는 원불교 정신으로 세워진 대학이지만 다른 종립대학처럼 교당 법회(예배)를 의무화하고 있지 않다. 원불교는 타 종교인에게 종교를 강요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재학생을 대상으로 교당 법회가 진행되고 있지만 자율로 참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취지가 아무리 좋아도 강제로 이뤄지는 종교교육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종교가 없거나 다른 종교를 믿는 학생에게 개신교를 향한 '반감'마저 갖게 할 수 있다. "애당초 채플이 없는 다른 학교에 가지 그랬냐"고 배척하기 이전에 '역지사지' 관점에서 바라보는 건 어떨까. 만약 개신교인이 전공, 지리적 위치, 성적 등 여러 이유로 다른 종교 재단이 운영하는 사립대학에 진학했다고 가정해 보자. 일정한 기간 강제로 종교 행사에 참여해야 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 이를 '폭력'으로 느끼지 않을 학생이 있을까?(끝)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