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지난해 9월, 주요 교단 총회를 앞두고 몇몇 기독 청년 단체가 '한국교회의 갱신과 개혁을 바라는 기독 청년 성명서'를 발표했다. △중·장년 남성 중심의 폐쇄적 의사 결정 구조 개편 △극우 세력과 결별 △교회 재정 운영의 투명화 △환대와 사랑의 교회 공동체 건설 △세습 금지 등 지극히 상식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다.

한국기독청년협의회(EYCK·하성웅 총무)가 성명서 작성을 주도하고 가맹 단체격인 기독교대한감리회,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한국기독교장로회, 기독교한국루터회 청년회가 연서명했다. 이들은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은 전광훈 목사(사랑제일교회) 등을 '극우 세력'으로 규정하면서 한국교회가 이들과 선을 그어야 한다고 강변했다. 일반 언론은 한국교회 안에 자정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EYCK는 1976년 결성된 기독 청년 단체다. 독재로 얼룩진 군사정권 시절,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고 1990년대에는 통일 운동에 뛰어들었다. 왕성한 활동을 해 왔지만, 다른 에큐메니컬 단체들과 마찬가지로 2000년대 들어 규모가 축소되고 영향력도 줄어들었다.

한국기독청년협의회 하성웅 총무를 6월 3일 한국기독교회관 사무실에서 만났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한국기독청년협의회 하성웅 총무를 6월 3일 한국기독교회관 사무실에서 만났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그럼에도 EYCK는 연대가 필요한 각종 사회 현장에 모습을 드러내고, 기독 청년을 위한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등 여전히 꾸준하게 활동 중이다. 교회 청년이 자꾸 줄어드는 현실 앞에서 어떻게 단체의 정체성을 이어 갈 수 있을지 고민도 하고 있다. EYCK 사무실이 있는 서울 종로 한국기독교회관에서 6월 3일 하성웅 총무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청년회 연합 활동 축소로 시작된 쇠락
그 속에서도 계속되는 고민들

EYCK가 결성될 때만 해도 각 교단 청년전국연합회들은 규모도 크고 활동도 다양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민중 교회가 쇠퇴하기 시작했고, 에큐메니컬 운동도 축소했다. 게다가 단체는 청년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기 보다, 당시 사회적 대의를 따라 통일 운동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청년들이 통일 운동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면서 EYCK는 일종의 '암흑기'를 거쳤다.

교단 소속 교회 청년 중심으로 운동을 꾸려야 하는데, 개교회주의가 성행하면서 연합 운동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목회자들의 시각도 EYCK 규모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 교회 청년부는 부흥했지만, 각 지방회·노회에 속한 청년회는 사라졌다. 지방 청년회, 전국청년연합회, EYCK로 이어지는 구조상, 가장 기본이 되는 지방 청년회가 없으니 그만큼 운동의 동력이 약화됐다.

하성웅 총무는 현실적으로 구조적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하 총무는 "1990년대만 해도 지방에 EYCK 분회가 있었다. 기독교대한감리회 청년전국연합회 총무로 있을 때도 지방 청년 조직을 살리는 게 주요 업무였는데, 목회자들을 설득하는 게 쉽지 않았다. 대형 교회는 내부적으로 프로그램을 소화할 수 있으니까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작은 교회는 청년이 없거나 연합 활동에 부정적이었다. 또 연합 활동을 할 정도로 청년들이 시간이 많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활동을 멈출 수는 없었다. EYCK는 2000년대 들어 '생명·평화'를 기조로 정하고, 이를 어떻게 기독 청년 시각으로 해석하고, 삶에 녹아들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해 왔다. '청년 평화 캠프', '생명 평화 순례', '탈핵 아카데미' 등도 다 이 같은 맥락에서 기획·실행한 것이다.

한국기독청년협의회는 지난해 9월 주요 교단 총회를 앞두고 성명을 발표했다. 발언하고 있는 하성웅 총무. 뉴스앤조이 이은혜
한국기독청년협의회는 지난해 9월 주요 교단 총회를 앞두고 성명을 발표했다. 발언하고 있는 하성웅 총무. 뉴스앤조이 이은혜

'세대 운동'을 하는 EYCK는 지금 이 시대 청년에게 가장 중요한 의제가 무엇인지 발굴하는 일도 한다. 가장 최근에는 회원들이 모여 '청년 빈곤'을 공부하고 있다. 하성웅 총무는 대학 등록금,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 청년 고독사 등 꼬리에 꼬리를 무는 청년 빈곤 관련 주제가 요즘 제일 큰 관심사라고 했다.

"청년 고독사가 늘어나고 있는데 교회는 어떤 복음을 외치고 있나. 교회는 여전히 개인의 능력을 중요시하고 성공한 청년 이야기에만 초점을 맞춘다. '돈 벌어서 남 주자', 물론 좋은 이야기이긴 한데 그게 과연 모든 청년에게 해당될까."

하성웅 총무는 '에큐메니컬 운동'을 교회 청년들에게 더 많이 소개하고 싶다고도 했다. 그는 "하나님의 집 안에 서로 조화롭게 공존하는 것이 에큐메니컬 신앙의 기본적 가치라고 생각한다. 이미 자본주의 가치에 물들어 있고, 대형 교회 이름이 브랜드처럼 여겨지는 한국교회 현실에서, 이 같은 가치를 어떻게 더 설득적으로 녹여 낼 수 있을지 고민하는 EYCK 운동이 하나의 대안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교회 청년 부재 지적하면서 지도력 안 주고,
활동가는 커리어 이어 가기 힘든 게 현실"

EYCK는 교단에 속한 청년전국연합회와 발맞춰 활동하기 때문에, 교단 내 청년 지도력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다. 예를 들어, 교단 총회가 열리면 청년들은 내빈 인사 때 잠깐 단상에 올라 총대들을 향해 인사한다. 하지만 총회 참관만 허용될 뿐 의결권을 행사할 수는 없다. 교회에 청년이 없다고 한탄하면서도, 청년이 의사 결정 구조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은 막아 두고 있는 셈이다.

교단에서 청년이 목소리 낼 수 없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EYCK는 청년의 눈으로 교단 헌법을 읽고 무엇이 문제인지 발표하는 자리를 계획 중이다. 하성웅 총무는 "총대 평균 나이가 60세 이상이고, 여성 총대도 늘 10% 미만이다. 청년이 설 자리는 더더욱 없다. 당장 청년에게 막강한 권한을 달라는 게 아니다. 교단의 상위 의사 결정 기구에 청년 한 명이라도 들어갈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나름 역사성이 있는 기독교 사회단체, 연합 기구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문제다. 청년들이 주체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권한·기회를 전적으로 보장해야 하는데, 실질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운동에서 미래를 찾지 못한 젋은 활동가가 떠나고, 또 다른 신규 활동가가 들어와 얼마 안 가 떠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실정이다.

하성웅 총무는 교회에 에큐메니컬 운동을 더 많이 소개하고 싶다고 했다. 하 총무 뒤로 한국기독청년협의회가 모토로 삼고 있는 '청년 예수' 글귀가 보인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하성웅 총무는 교회에 에큐메니컬 운동을 더 많이 소개하고 싶다고 했다. 하 총무 뒤로 한국기독청년협의회가 모토로 삼고 있는 '청년 예수' 글귀가 보인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청년 활동가가 사라지고 있다는 건 10년 전부터 나온 이야기다. 월급도 적을 뿐더러 무엇을 할 수 있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평신도 운동인데도 평신도가 없다. 젊은 활동가가 다음 스텝을 꿈꾸기 힘든 구조다. 이전에는 EYCK에서 활동하면 교단이나 교계 연합 기관에서도 활동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자리가 없다. 어떻게 지속 가능한 운동을 만들지도 리더십 차원에서 고민해야 할 지점이다."

EYCK 운동이 더 활성화하려면 일단 교단 청년연합회가 재건돼야 한다. 사라진 지방 청년연합회를 세우기 위해서는 목사들을 설득하고, 실제로 청년들이 모였을 때 할 수 있는 재미있는 활동거리를 찾아야 한다. 하성웅 총무는 "단순히 호소문이나 성명서 발표만으로는 바꿔야 할 부분들을 바꿀 수 없고, 활발한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한국교회 개혁·갱신을 하루아침에 이뤄 낼 수는 없으니, 긴 호흡으로 접근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땅에 떨어진 개신교의 이미지를 딛고, 타 종교와의 평화로운 연대 활동을 고민하는 일도 EYCK가 주력하는 부분 중 하나다. 최근 일부 개신교인들이 석가탄신일에 조계사 앞에서 소란을 피운 행위를 놓고, 대한불교청년회에서 도대체 누구냐고 물어 온 일이 있었다.

하성웅 총무는 "타 종교인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개신교의 현재 위치가 어떤지 더 확실하게 체감할 수 있다. 그동안 기성 교회가 개인 구원 차원에만 머무는 값싼 이원론을 설파해 왔는데, 이 복음을 어떻게 사회 현장과 삶에 녹여 내고 생명·평화의 가치를 심을 수 있을지, 교회 청년들과 고민하고 작은 목소리부터 만들어 내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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