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개혁은 하나님도 못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한국교회 상황은 점점 나빠지고 이 흐름을 바꿀 만한 뾰족한 수도 없는 것 같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교회 개혁'이라는 거대 담론으로 접근하기보다 교회가 바꿔 나가야 할 것 하나하나에 집중해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교계에는 젊은이들의 목소리, 특히 여성들의 목소리가 별로 들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들이 외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아서겠지요. <뉴스앤조이>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여성 신학생·사역자들의 인터뷰를 연재합니다. - 기자 주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자신의 전공과 무관한 진로를 택하는 경우는 흔하다. 개인적으로도 고등학생 때는 미술을 했고, 재수는 인문계로 했으며, 대학은 경영학과를 나와, 지금은 기자 일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과거를 후회하지는 않지만 가끔씩 '결국 이렇게 살 거였으면 굳이 미술을? 재수를? 대학을?'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평범한 한국 학생이 스무 살 되기 전 자기 진로를 명확하게 계획하기란 쉽지 않다…는 말로 나를 달랜다.

신학을 공부하고서도 다른 길로 가는 경우가 더러 있다. 이유리 씨(28)는 감리교신학대학교 기독교교육학과를 졸업한 후 인생 방향을 틀었다. 디자인을 따로 배워 현재 일반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별 계획 없이 대학에 진학하고 일자리를 잡은 내 경우와 달리, 유리 씨는 고등학생 때부터 진지하게 진로를 계획했다. 신학과가 아니라 기독교교육학과를 택한 이유도, 어차피 신학은 대학원 가서 더 자세하게 배울 테니 학부 때 교육학을 배워 놔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대학 4년을 다닌 뒤 목회의 꿈을 접었다.

"그런 생각은 해 본 적 있어요. '내가 만약 남자였다면, 그래서 굳이 경험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목회를 접지는 않았겠다', '너무 자연스럽게 대학원에 가서 목사가 됐겠다'. 여성이기 때문에 경험해야 했던 일들이 분명 있었고, 그것들을 없었던 일처럼 생각할 수는 없잖아요. 그렇다고 지금 교회에 대대적인 변화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 보니 이 길을 가면 계속 피 터지게 싸우면서 지내야 할 것 같은 거예요. 교회 안에서 변화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 얼마나 지난한지 느꼈고, 그 벽을 깰 자신이 없었다고 해야 하나? 그 벽을 피해, 그렇지 않은 공동체를 찾아가는 게 저에게 더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쉽지만…."

유리 씨는 신학과 목회를 배울 것을 꿈꾸며 감신대에 입학했다. 하지만 현실은…. 뉴스앤조이 최승현
유리 씨는 신학과 목회를 배울 것을 꿈꾸며 감신대에 입학했다. 하지만 현실은…. 뉴스앤조이 최승현
너희들은 계획이 다 있구나…

신학교에 가겠다는 다짐은 진중했다. 청소년 때 가족 문제로 힘든 시기를 보냈고, 그때 교회는 따뜻하고 위로가 되는 공간이었다. 유리 씨는 교회를 좋아하게 됐다. 설교를 들은 후 혼자서 피드백을 해 볼 정도로 신앙에 대해 진지했다. 자연스럽게 좀 더 자세히 알고 싶다고, 이 따뜻한 공동체를 이끄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다. 대학 진로를 정하는 시기, 그는 "신학을 진지하게 공부해 보고 싶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린 후 허락받고 대학에 왔다. 신학교에 오는 사람은 다 그런 줄 알았다.

환상은 입학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와장창 깨졌다. 유리 씨가 경험한 신학대학교는 남자들의 반쪽 찾기, 사모 찾기 '대환장 파티'였다. 남성 신학생들은 여성 신학생들에게 '무차별적'이라 할 정도로 고백 폭탄을 날렸다. 얘한테 고백했던 애가 얼마 있다가 쟤한테 고백하는 일이 잦았다. '도대체 고등학생 때 무슨 일이 있었길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남학생들이 여학생들 외모에 순위를 매기는 일도 다반사였다.

"제가 입학한 지 한 달도 안 되는 동안 고백을 5번이나 받았어요. 이런 얘기하면 '자랑한다'고 생각하실 분도 있겠지만, 당시 저는 자퇴를 고민할 정도로 너무 힘들었거든요. 앞으로 4년간 같이 신학을 공부할 동료들의 상태가 이 모양이라니…. 고백은 대부분 남학생들이 했고, 여학생들은 대부분 착해서 완곡하게 거절했어요. 그러면 또 '내숭 떤다', '그렇게 밥 얻어먹고 다니더니', '남자들을 이용했다' 등등 별 소문이 다 돌았어요.

 

저처럼 사회적 미의 기준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도 그 정도였는데, 그 기준에 맞는 친구들은 더 힘들었죠. 쉬는 시간마다 남자들이 찾아와서 '네가 13학번 톱 #이라며?', '너는 인기 많아서 나 같은 애는 싫겠네' 이런 소리나 하고. 어떤 복학생들은 '열 번 찍어서 안 넘어갈 나무 없다'는 태도로 계속 고백하고…. 이런 문화가 너무 당연하고 팽배했어요."

감신대 신학부는 2학년 때 전공을 결정한다. 유리 씨는 기독교교육학과를 택했다. 주변 남성들의 반응은 대체로 이랬다. "아, 너 사모 되려고?" 남학생들의 머릿속에는 '교육=여성=사모'라는 등식이 성립돼 있는 것 같았다. 자신이 나중에 교회를 개척하면 아이들은 아내가 돌봐야 하니, 이왕이면 교육을 공부한 여성이 좋겠다는 생각. 그래서인지 남학생들이 소위 '사모감'을 찾는 1순위가 기독교교육학과였다. 유리 씨는 생각했다. '너희들은 계획이 다 있구나….'

"남학생들아, 너희들은 계획이 다 있구나." 영화 기생충 갈무리
"남학생들아, 너희들은 계획이 다 있구나." 영화 기생충 갈무리

'치마'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유리 씨는 어쩌다가 대형 교회에서 파트타임 간사로 사역하게 됐다. "대형 교회인 줄 모르고 갔다가 '조직의 뜨거운 맛'을 봤죠.(웃음)" 그 교회에서는 여성 사역자들이 무조건 치마를 입어야 했다. 모든 여성 사역자가 허리 라인이 들어간 정장 상의에, H라인 스커트를 입었다. 유리 씨는 평소 바지를 즐겨 입었고, 아직 대학교 2학년이라 그런 정장을 살 때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끝까지 바지를 입고 다녔다.

"하루는 한 전도사님이 제 복장을 보며 걱정을 하시더라고요. 여성 사역자는 치마를 입어야 하는데 왜 말을 듣지 않느냐는 거죠. 그래서 제가 여쭤봤어요. '치마를 입어야 하는 이유가 뭔가요?' 그랬더니 '담임목사님이 좋아해서'라고 하더군요. 아니… 좋으면 자기가 입으면 되지, 왜 우리더러 입으라는 거야.(웃음) 그 교회는 그럴 만해요. 예배가 끝나면 교역자들이 서열(?)대로 좍 줄을 선 다음, 담임목사 뒤로 줄 서서 예배당을 빠져나가거든요. 담임목사가 차에서 내리면 90도로 인사해야 하고.

 

재밌는 건 제가 사역한 또 다른 교회에서는 여성 사역자들이 치마를 입으면 혼나는 분위기였다는 거예요. 거기서는 무조건 바지를 입어야 했죠. 예상할 수 있는 이유예요. 여성 사역자가 치마를 입으면 남성 성도들이 시험에 든다는 거예요. 참 나, 사역지를 옮길 때마다 옷장을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것도 저것도 다 성차별이죠."

대형 교회에 있을 때는 남성 사역자와 여성 사역자 비율이 9대 1이었다. 자기 말고 여성 전도사가 두 명 더 있었는데, 한 명은 고분고분한 스타일이라 조용했고, 한 명은 진취적이고 리더십 있는 스타일이라 회의 때마다 아이디어를 많이 내놨다. 리더십 있는 여성 사역자는 이내 '따돌림'을 당했다. 남성 사역자들의 미움을 샀다. 상사 목사도 끝까지 그를 인정해 주지 않았다. "그분 얘기 들었으면 흥했을 행사도 많았는데 아쉬웠어요. 저는 그분과 친하게 지냈어요. 같은 을의 입장에서 서로 위로하면서."

복장은 유리 씨가 경험한 교회 내 성차별을 단적으로 드러내 주는 것이었다. 
복장은 유리 씨가 경험한 교회 내 성차별을 단적으로 드러내 주는 것이었다. 

비교적 개혁적인 교회에서 경험한 성차별은 유리 씨에게 큰 상처를 줬다. 그가 마지막으로 사역한 교회는 작고 진보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교회였다. 주일 점심은 교인들이 각자 반찬을 조금씩 가져와서 함께 나눠 먹었다. 그런 가족 같은 분위기가 좋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여성 교인들만 반찬을 가져왔다. 그걸로 상을 차리는 일도 여성들만 했다. 주방은 여성들의 공간이 됐다.

"문제의식을 느껴서 어느 날 이야기를 했어요. 식사할 때 여성들만 일하게 되니까, 설거지는 남성 교인들이 하면 좋겠다고요. 그랬더니 '그건 안 되겠다. 남자들만 설거지하는 건 불합리한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아니, 그동안 '여자가 하는 밥이 맛있지' 이러면서 먹어 놓고 설거지는 왜 안 되지? 부엌에 들어가면 안 되는 병이라도 걸렸나? 정말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그 교회는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남자 교인도 많았고, 그중에는 노조에서 일하셨던 분도 있었어요. 항상 자신이 그때 얼마나 멋졌는지 이야기하던 분들인데. 그래서 저도 '이 정도는 받아들여지겠지'라고 기대하고 어렵게 꺼낸 얘긴데 말이죠. 처참하게 실패했죠. 그 뒤로 교회 공동체에 대한 신뢰가 많이 깨졌어요. 기대를 안 했으면 그렇게 힘들지도 않았을 거예요."

여러 교회에서 사역하면서, 유리 씨는 오히려 점점 교회에서 멀어지고 있음을 느꼈다. 이후 반년 정도는 아예 교회를 다니지 않았다. "교회는 서로 사랑해야 하는데, 이 '사랑'에 너무 많은 배제가 있는 거예요. 모두를 사랑해야 하는데, 그 '모두'가 모두가 아닌 거죠. 여긴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찾아갔지만 역시 그렇고, 또 아닐 거라고 기대했지만 역시 그렇고…. 이런 실패의 경험들이 '결국 교회 공동체에서는 진짜 사랑을 찾을 수 없겠다', '교회에서 포괄적인 사랑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했어요."

비혼주의자가 되다
유리 씨가 좋아한다는 '연반인(연예인+일반인)' 재재. '비혼식'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JTBC 유튜브 채널 갈무리
유리 씨가 좋아한다는 '연반인(연예인+일반인)' 재재. '비혼식'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JTBC 유튜브 채널 갈무리

유리 씨가 대학교 4학년이던 2016년에는 사회적으로 충격을 준 여성 혐오 범죄가 여러 건 있었다. 강남역 살인 사건과 여러 대학들의 단체 채팅방 성희롱 사건 등이다. 감신대에서도 성희롱 사건이 발생했다. 유리 씨는 이를 '총학 성희롱 사건'이라 명명했고, 이 사건 이후 여성 인권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책을 읽고 시위에 나가고 여성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의 경험이 결코 나만의 경험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그 경험에 제대로 된 언어를 붙일 수 있었다.

유리 씨는 비혼주의자다. 처음에는 그냥 '결혼식 문화'가 싫었다. 몇십만 원 짜리 화장을 하고 웨딩드레스를 입고, 무슨 소유물처럼 아버지 손에 이끌려 남편 손에 넘겨지는 게 싫었다. 결혼 예배 주례자는 항상 남성이었고, 그는 남성에게는 "아내를 사랑하라"고 하고 여성에게는 "남편에게 순종하라"고 했다. '사랑해서 결혼한다면 그냥 서로 사랑하면 되지, 왜 여자한테만 순종하래?' 사람들이 그런 성차별적인 설교를 들으며 감동받고 "아멘"이라고 화답하는 것을 참고 있기 힘들었다.

"저는 친구 결혼식에도 안 가요. 친한 친구에게는 제가 왜 결혼식에 안 가는지 이야기하고, 대신 선물을 주죠. 참고 가 봤는데 너무 고통스럽더라고요. 가면 다들 '너는 언제 결혼할 거야?'라고 묻는데, '나는 이러저러해서 비혼주의야'라고 계속 설명해야 하는 것도 힘들고요. 신학교 친구들 결혼식 가면 한 달 만에 저한테 고백했던 애들도 와 있어요.(웃음) 너무 다사다난한 자리잖아요. 그래서 안 가요."

결혼식 문화도 그렇지만, 한국 사회에서 보통의 결혼이 가족 간의 결합이 된다는 점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유리 씨는 언젠가 애인의 부모님을 만난 적이 있다고 했다. 그저 한 번 만난 것뿐인데도 왠지 잘해 드려야 할 것 같고 헌신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너무 자연스럽게. '정상성'을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가 강한 탓이다. 게다가 결혼하면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왠지 갈등 관계에 놓일 것 같은, 그 사이에 남자는 쏙 빠져 있는 구조도 싫었다.

2016년 말 정부가 내놓은 '가임기 여성 지도'는 많은 여성을 분노하게 했다. 이는 사회적으로 페미니즘이 고조되던 상황에서도 국가는 여전히 여성을 출산의 도구로 본다는 증거였다. 이때 여성들의 비혼주의 물결이 일었다. "이전까지는 제 주변에도 결혼하든 안 하든 상관없다는 사람이 많았는데, 가임기 여성 지도 사건 이후로 비혼을 선언하는 사람이 많아졌어요. 저도 그렇고요. '이따위 세상에서 못 해 먹겠다'는 거죠."

비혼은 한국 사회에서 환영받는 분위기가 전혀 아니다. 청년들을 위한 여러 정책도 '신혼부부'여야 우대를 받게 된다. 먹고살기가 힘드니 유리 씨도 "가끔씩 신혼부부 주거 정책 대상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마음 한구석에 '혼인신고라도 할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최근 여성가족부에서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하겠다고 한 것이 실낱같은 희망이다.

가임기 여성 수를 지역별로 집계해서 보여 준 '대한민국 출산 지도'. 2016년 당시 행정자치부가 기획
가임기 여성 수를 지역별로 집계해서 보여 준 '대한민국 출산 지도'. 2016년 당시 행정자치부가 저출산 극복 프로젝트로 내놨다가 무수한 비판을 받고 철회했다. 

교회는 결혼을 신성하게 여겨 축복이라고 이야기한다. 결혼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고, 하지 않으면 '비정상'이 된다. 2030 여성들은 교회에서 '결혼 언제 할 거니'라는 질문을 받는 게 일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비혼주의자로 산다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모태신앙으로 자라 신학을 공부한 유리 씨에게 비혼을 선언할 때 어떤 신앙적 거리낌은 없었을까 궁금했다.

"제가 신학을 배운 게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죠. 성경은 사람이 쓴 것이고, 필진이 죄다 남성이라는 걸 배웠잖아요. 그래서 비혼을 결정할 때 내적인 부딪힘은 없었어요. 더욱이 요새는 여성주의 관점으로 성경 텍스트를 해체하는 작업도 많이 돼 있으니까요. 저는 예전부터 제가 행복해야 하나님도 행복해하실 거라는 믿음이 있었어요.

 

교회에서 제가 비혼주의자라고 하면, 어른들이 '그래도 언젠가 하게 돼 있어', '그런 사람들도 나중에 다 하더라' 이런 말씀 많이 하세요. 그러면 저는 끝까지 '아 네, 그래도 안 해요', '진짜 안 하는 사람도 있어야죠'라고 웃으면서 말해요.(웃음) 제가 '연반인' 재재 님 팬인데요. 언제나 그런 유쾌함을 유지하고 싶어요. 좀 아쉬운 건, 교회 어른들 중 누구도 '그래, 결혼 안 해도 되지'라고 말씀하시는 분이 없다는 거예요."

기회를 박탈하지 말라

목회를 접은 이유 중 하나는 교회 교육의 한계를 절감한 것이다. 학교에서 배운 여러 방법론을 교회학교에서 써 보려 했지만 장벽이 느껴졌다. 6일간 학교와 가정에서 살다가 하루 몇 시간 만나 이야기하는 것으로는 교육이 되지 않았다. 아이들의 언어로 성평등을 가르쳐 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교인들이 와서 '남자가 무슨 핑크색이야'라고 툭 던지면 그동안 공들인 게 와르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어느 순간 제 길은 아닌가 보다 싶더라고요. 이렇게 자주 낙담하는 걸 보면."

지난 몇 년간 '교인'으로 신앙생활 했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이지만, 여성 사역자의 현실을 몸으로 경험했고 그 고충을 잘 알기 때문에, 어떤 모양으로든 여성 목회자들을 서포트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다. "제 친구들이 이제 목사 안수를 받을지 말지 엄청 고민하는 시즌이거든요. 목사 안수받아도 뭘 해야 할지 잘 그려지지 않으니까요. 그래도 저는 항상 '너는 해야지!', '여자 목사도 있어야지!'라고 말해요. 정작 저는 안 하면서.(웃음)"

자신은 결국 포기했지만 한국교회에 여성 목회자가 많아져야 한다는 믿음이 있다. 그래야 무너져 가는 교회가 그나마 숨통을 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신학교와 교회가 무엇을 바꿔야 할 것 같은지 묻자, 유리 씨는 "그들도 다 알고 있을 거예요. 알고 있는데 안 하는 거 같아요"라고 말했다.

"여성 인권을 비롯한 모든 인권 영역에서 교회가 사회보다 30년은 느리게 가는 것 같아요. 이걸 2021년에 바라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는데… 담임목사든 누구든 여성 전도사에게 뭘 요구할 때 한번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내가 남성 전도사들에게 이걸 요구하면 이상하지 않을까'라고. 그러면 그게 성차별인지 아닌지 금방 알 수 있거든요. 그런 이상한 요구만 없어도 뜻있는 여성 전도사들은 진짜 열심히 버텨요.

 

여성들에게 기회를 많이 줬으면 좋겠어요. 신학교에서도 여성 교수 비율을 많이 늘려야 하고요. 여학생들끼리 모여서 '우린 뭐 해 먹고 살지'라는 고민 정말 많이 하거든요. 어떤 롤 모델이 없으니까요. 교계에는 '여성은 결혼하면 떠날 사람'이라는 고정관념이 있는 것 같아요. 여자 전도사 중에서도 결혼하지 않으려는 사람도 있고, 결혼하더라도 일을 지장 없이 할 사람도 있어요. 여자라는 이유로 기회를 박탈하지 않았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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