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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과 실천의 서구적 이원화 틀 해체하고 탄생한 '도의 신학'

평자는 2015년 <한밝 변찬린: 한국 종교 사상가>(2017)의 기초 자료를 광범위하게 조사하면서 신학 역사를 연구하던 중 '도의 신학자' 김흡영 선생과 그의 저서 <도의 신학Ⅱ>(2012)를 만났다. 그 후 저자로부터 2020년 5월 6일 출간 소식을 전해 들었다.

저자는 유교 전통 집안의 장자로 태어나 그리스도교인으로 회심하는 극적인 종교체험을 한다. 우주공학도에서 신학으로 전환한 그의 종교적 생애는 '도의 신학'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다. 대부분 신학자가 교차적·실존적 신앙 체험 없이 신학하는 반면, 그의 독창적 신학 사유의 배경에는 특별한 종교 이력과 전공 전환이 있다. 회심 사건 후 그는 유교인·그리스도교인·세계 속 한국인으로서 "'신학과 동양 종교' 그리고 '신학과 과학'이라는 두 주제가 결국 '신학, 동양 종교, 자연과학 간의 삼중적 대화'라는 명제에 이르게 되었고, 이 삼중적 대화가 현재 내가 추구하고 있는 길이다. (중략) 결국 천지인의 궁극적 자리太極에서 하늘나라를 탐구하고 실현하고자 하는 도의 신학자가 된 것이다"라고 고백하고 있다(<도의 신학Ⅱ>, 374쪽).

그는 한국에서 조직신학회장이었으나 국내보다는 오히려 해외 신학계에 잘 알려진 신학자다. 전 강남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버클리연합신학대학원 석학교수 등을 역임했으며, 현 한국과학생명포럼 대표이고 과학종교학술원(International Society for Science and Religion)의 창립 펠로우이기도 하다. 그의 신학 여정은 <Wang Yang-ming and Karl Barth>(1996), <도의 신학>(2000), <현대과학과 그리스도교>(2006), <Christ and the Tao>(2010), <도의 신학Ⅱ>(2012), <가온 찍기 다석 유영모: 글로벌 한국신학 서설>(2013)과 <A Theology of Dao>(2017), <왕양명과 칼 바르트: 유교와 그리스도교의 대화>(2020) 등의 단독 저서와 26권의 공동 저서(영문 17권 포함), 그리고 국내외 학술지에 실린 30여 편의 논문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의 상표와 같은 '도의 신학'은 여타 토착화신학과 결을 달리한다. 한국의 토착화신학이 서구 신학 전통을 표준으로 삼아 한국 종교 문화를 재단하는 선교신학의 모습을 가진다면, '도의 신학'은 서구 로고스 신학(Theo-logos)과 프락시스 신학(Theo-praxis)의 뿌리 깊은 이원론으로부터 코페르니쿠스적 변환을 시도한 신학이다. '도의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도(hodos, 행 9:2, 19:9, 22:4, 24:14, 22)라고 하는 성서적 준거에서 착안했다. 다시 말해, 서구에서 형성된 '로고스' 신학 패러다임을 '도'로 재구성하는 신학이다. 신학 토착화가 아닌 창조와 생명의 근본 자리에서 서구 신학의 근본 오류를 혁신하는 새로운 신학을 지향한다.

<왕양명과 칼 바르트 - 유교와 그리스도교의 대화> / 김흡영 지음 / 예문서원 펴냄 / 368쪽 / 3만 3000원
<왕양명과 칼 바르트 - 유교와 그리스도교의 대화> / 김흡영 지음 / 예문서원 펴냄 / 368쪽 / 3만 3000원
양명학 창시자 왕양명과
신정통주의 신학자 칼 바르트의
문명사적 대화

당시 세계 종교는 일반적으로 유대교·그리스도교·이슬람교 등 유일신 종교, 힌두교·자이나교·불교 등 인도계 종교, 유교·도교 등 동아시아계 종교로 구분할 수 있다. 그리스도교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기해 가톨릭 신학자들을 중심으로 다른 종교와 대화에 적극 나선다. 이 주제에 국한하면 유일신 종교 간의 대화, 그리스도교와 인도계 종교와는 대화가 활발했지만, 유교 등 동아시아 종교와의 대화는 상대적으로 빈약했다. 이 가운데 뚜웨이밍杜维明는 유학을 서구 근대 문명과 융합해 미래 문명으로 구축하려는 구상을 학계에 소개했고, 줄리아 칭은 유교·도교 등 중국 종교의 신비주의적 경향을 강조하며, 이를 서술적으로 대비하는 데 치중했다. 저자의 대화 모델은 이러한 종교 환경에서 나왔다.

저자는 중국 명대 양명학 창시자 왕양명(1472~1528)과 스위스 신정통주의 신학자 칼 바르트(1886~1968)를 대화 상대로 선정한다. 두 종교인은 비교 대상으로 그다지 적합하지 않다. 특히 칼 바르트는 하나님의 계시와 그리스도 사건에 절대적 지위를 부여해 다른 종교를 배척하는 입장이기에 종교 간 대화를 주장하는 학자의 비판 대상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히려 한국 보수 교단에 큰 영향을 미치는 장 칼뱅과 주자학 창시자 주희, 대화 신학자인 폴 틸리히(1886~1965)와 명대 삼일교 교조인 임조은(1517~1598) 등의 주제가 합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이 이 책의 가치를 드러낸다. 근본적 차이를 가진 학자를 대화 테이블에 올려 치밀하게 대화를 주선하면서 종국에는 유교와 그리스도교가 한 차원 높은 지향점을 향한 이웃 종교라는 점을 논증하기 때문이다. 대화 상대가 되지 않는 두 종교인을 대화할 수 있는 이해 지평의 융합으로 이끌어 낸다면, 다른 종교 간 해석학적 대화 공간은 상대적으로 쉽게 열릴 것이다.

왕양명은 왕희지 자손으로 중국 유학사에서 공자-맹자-주자를 잇는 걸출한 유학자다. 학문적으로 정주학의 폐단을 공격하고, 종교적으로 불교와 도교에 심취했으며, 장군으로서 무술에도 능숙하였다. 치양지致良知와 지행합일을 요체로 주자학적 패러다임을 실천론적 유학으로 변모시킨 <전습록>을 남겼다. 양명학은 명대 후기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 개화기 사상가, 일본 명치유신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현대 중국 실용주의 사상의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한편 칼 바르트는 현대 신학 교부로 신정통주의 신학자다. 키에르케고르의 철학 방법으로 하나님과 인간을 직면시킨 변증법적 신학을 주창한다. 그는 삼위일체 신학이 그리스도교 특성이라고 강조하며 그리스도 일원론적 신학을 펼친다. 특히 문화 그리스도교 현상을 비판하며 절대적 계시와 유일한 그리스도 사건의 초월성을 강조한다. 이에 따라 그의 신학은 다른 종교와의 대화가 아닌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이자 선포의 신학으로 <로마서 강해>와 미완성인 <교회 교의학> 13권을 남기고 있다. 그는 '20세기의 바울'이라고 불릴 정도로 세계 신학계와 한국교회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이 책은 동서 사유 체계가 합류하는 시점에 유·불·도의 회통을 추구한 왕양명의 <전습록>과 신정통주의 신학의 초월적 영성을 추구한 칼 바르트의 <교회 교의학> 텍스트를 주로 사용한다. 신학자 칼 바르트와 유학자 왕양명의 대화는 그야말로 용호상박龍虎相搏의 문명사적 시도다. 이런 대화는 국제 질서에서 핵심 축으로 부상하는 중국의 사유 체계와 서구 그리스도교 문명의 만남의 장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현재도 시의성이 있다.

저자의 문제의식은 사유 체계의 무미건조한 비교가 아니다. 유교와 그리스도교가 대화하기 위한 실존적 신학 작업이며, 삶의 중심으로부터 '어떻게 완전한 인간이 되는가'하는 역동적인 주제를 선정한다. 초월적 영성의 성서적 인간과 내재적 영성의 유교적 인간이 어떠한 접점에서 만날 수 있는지 두 인물의 사유 체계를 구성신학적 방법을 통해 체계화·구조화한다. 이런 시도를 통해 도의 신학자로서 성장해 가는 초창기 저자의 학술적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이 책은 3부로 구성돼 있다. 저자가 24년이나 지난 영문 저서를 거의 수정하지 않고 한국에 번역·발간하는 의도를 알 수 있는 서론 부분(19~40쪽)은 정독해야 한다.

첫째 부분은 두 종교인이 '근본적 상이성 안에서의 두터운 유사성'을 가진 인물로서 대화의 틀과 조건을 구조화한다. 왕양명은 유교적 패러다임에서 주자학의 성즉리를 심즉리로, 격물치지가 아닌 치지격물로서 지행합일의 이론적 실천을 한다는 패러다임 전환을 제시한다. 양지良知와 인을 인간성 패러다임으로 설정하고, 이기적 욕구를 극복하는 치양지致良知가 말씀을 체화하는 성을 수신의 근본 메타포로 맥락화한다. 한편 칼 바르트는 루터의 '율법과 복음'을 '복음과 율법'으로 도치하며, 신학과 윤리의 합일을 지향한다. 그리스도의 인성(humanitas Christ)과 신의 형상(Imago Dei)을 왕양명의 양지와 인의 인간성 패러다임으로 상응하게 설정하고, 태만을 초극하여 성령의 인도에 의해 사랑의 화신체가 되는 것을 성화의 근본 메타포로서 왕양명의 성과 유비 기제로 삼는다.

둘째 부분은 유교와 그리스도교를 동등한 조건에서 비교할 수 있는 해석학적 틀을 규정한다. 바로 그리스도교 신학(theology)에 대응하는 유교의 조직 유학(confuciology)이다. 그는 이런 대화적 틀의 필요성 못지않게 이로 인해 야기되는 한계성도 적확하게 인식한다. 다른 신학자와 차별화되는 통찰력이 이 책의 백미이다(255~266쪽, 315~334쪽). 이런 구조화가 전제되지 않는 종교 간 대화 모델은 형식적 선언이지 종교 간 대화의 궁극적 지향점은 될 수 없다. 이 책은 두 종교인의 사상을 근거(마음과 하나님 말씀), 패러다임 전환(심즉리와 복음과 율법), 출발점(입지와 신앙), 이론과 실천(지행합일과 신학과 윤리의 합일성), 악의 문제(사욕과 태만) 등으로 비교한다. '어떻게 완전한 인간이 될 수 있는가?'하는 핵심 질문을 놓치지 않고 왕양명의 내재적 영성과 칼 바르트의 초월적 영성이 만나는 지점으로 견인한다.

셋째 부분은 그리스도교와 유교가 서로 다른 종교 문화에서 형성된 종교이지만 '수신'이라는 조직 유학의 궁극적 인간과 '성화'라는 신학적 인간은 다르지 않음을 보여 준다. 저자는 우주적 인간으로서 성장해 가는 '도의 인간'으로서 궁극적 인간, 즉 '우주적 인간성'을 지향해야 하는 과제를 남기고 마무리한다.

포월적 상생 대화 모델로
에큐메니컬 신학 지향하자

저자는 근본적 상이성을 가진 왕양명과 칼 바르트을 통해 상생적 대화 모델을 제시한다. 1996년에는 근본적 유사성 속에 차별성을 가진 대화 모델을 종교학자 금장태 교수와 공동 연구한 <존 칼빈과 이퇴계의 인간론에 관한 비교 연구>를 통하여 '도의 신학'의 확장성을 입증했다.

이 책의 장점은 무엇보다 동등한 이해 지평에서 대화 모델을 만들기 위해 상응하는 해석학적 용어와 방법론을 치밀하게 논거하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이 지점이 종교 간 대화에서 가장 중요하다. 'Christianity'(그리스도교)라는 단어에는 이미 자신만이 유일한 종교이며, 다른 종교 하나의 -ism으로, 무언가 결핍된 학문이라는 학문 제국주의가 함의되어 있다. 중국이 부상함에 따라 현대 중국어 발음을 반영해 유교는 루이즘(ruism), 도교는 따오이즘(daoism)으로 통용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리스도교를 제외한 다른 종교는'이즘'(-ism)으로 설정된다.

서구 그리스도교에 편향된 학자가 종교 간 대화의 당사자·주인공·중개인으로 나서기보다는 아시아 신학자 혹은 종교학자가 이 역할을 공정하게 수행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정황에서 한국 유학생이 그리스도교신학(theology)과 대등한 개념의 '조직유학'으로 상생 대화 모델을 28년 전 미국 버클리연합신학대학원(Graduate Theological Union) 박사 학위논문에서 제안했다는 것은 큰 신학적 사건이다. 더구나 줄리아 칭을 포함해 유교·그리스도교 비교에 관심있는 여타 신학자들은 종교 간 대화로서 서술-규범적인 방법을 적용했지만, 저자는 과감하게 구체-보편적 방법을 통해 확장성 있는 대화 모델을 만들어 냈다. 서구 신학 전통과 유학 전통의 이해 지평이 대화할 수 있도록 조직유학과 신학이 공명하는 모델을 만들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해야 한다.

특히 김흡영이 '도의 신학'이라는 근본 메타포를 가지고 예전 종교적 정체성이었던 유교와 지금 종교적 정체성인 그리스도교를 '몸과 맘'의 신학으로 내면화해 치열하게 회통적 신학을 추구한 학문적 열정과 용기를 본받아야 한다. 공명 대화 모델은 이세종, 유영모, 함석헌, 변찬린 등과 같은 독창적이면서도 보편적인 한국 종교 자산에 대해서도 세계 신학계와 소통할 수 있는 하나의 타당한 모델로 적용할 수 있다. 이는 앞으로 한국 신학계가 풀어야 할 큰 숙제이다. 저자가 앞으로도 '도의 신학'에 대한 후속 작업을 통해 한국 신학의 잠재력을 세계 신학계에 보여 주기를 기대한다.

이호재 / 중국사회과학원에서 중국 종교로 종교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성균관대 교수로 재직했으며, 현재 자하원 원장이다. 관심 영역은 동서양 종교 사상 연구를 바탕으로 '새 축 시대의 영성 생활인' 생활 프로젝트를 세계화하는 데 있다. 주요 저서로는 <포스트 종교운동>(2018), <한밝 변찬린: 한국 종교 사상가>(2017), <인생 지도>(2017)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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