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도 없는 은인이었던 목사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돈을 가로챈 횡령범으로 돌변한 기가 막힌 사건이 발생했다. 부인이 죽고 나서 홀로 어린 자녀 4명을 키우는 딱한 사정이 방송에서 소개되어 거액의 후원금을 받게 된 황순원 씨(42). 그는 너무나 고마운 존재였던 목사에게 후원금이 들어오는 통장을 몽땅 맡겼지만 끝내 씁쓸한 배신을 당하고 말았다.
황순원 씨(42)는 일용직 노동자였다. 부인은 막내를 낳고 2개월 뒤에 세상을 떠났다. 황 씨는 혼자 4명의 아이를 키워야 했다. 주위에서는 아이들을 보육원에 맡기라고들 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아이들을 지키기로 아내와 약속했다. 하지만 너무 막막했다.
그런 황 씨 가족에게 김희성 목사(동두천 예향감리교회·43) 부부는 한 줄기 빛이었다. 김 목사 부부는 살림살이를 도와주고 일자리를 알아봐 주기도 했다. 4명의 아이에게 새로운 가족이 되어주었고, 막내 유진이를 맡아 키워주기까지 했다. 김 목사는 황 씨에게 둘도 없는 은인이었다.
황 씨의 큰딸 유정이는 KBS 1TV ‘현장르포 아름다운 동행’에서 2008년 5월 1일 방영된 ‘엄마 없는 하늘 아래’의 주인공이다. 방송이 나간 다음 날인 5월 2일부터 전국 각지에서 약 6000여 명의 후원자가 후원금을 보내줬다. 5월 2일 하루에만 4400만 원이 모이기 시작해서, 모금액이 총 3억여 원을 훌쩍 넘었다.
엄청난 금액의 후원금에 황 씨는 당황했다. 세상물정에 어두웠던 황 씨는 그렇게 큰돈을 관리할 엄두가 안 났다. 은인이었던 김 목사에게 통장을 맡기고 관리를 부탁했다. 목사님이면 믿고 맡길 수 있겠다 생각했다. 그게 화근이었다.
돈을 잘 관리해줄 줄 알았던 김 목사는 후원금을 가로챈 혐의로 지난 7월 10일 동두천경찰서(서장 오동욱)에 구속됐다. 경찰에 따르면 김 목사가 3억 1000만 원의 후원금 중 1억 2000만 원을 교회신축과 생활비 등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큰딸 유정이가 예향교회에 처음 나가기 시작한 때는 2007년 초였다. 예향교회는 교인이 20여 명뿐일 정도로 규모가 작았다. 유정이를 따라 엄마도 그 해 5월부터 교회에 나왔다. 같은 해 9월 11일 엄마는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다.
김 목사는 자신도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더 어려웠던 황 씨 가족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는 황 씨의 막내를 자기 자식처럼 키우기로 했다. 그리고 김 목사 부부는 천사운동본부(본부장 김지욱)에 황 씨의 사정을 알렸고, 그 소식을 들은 방송국 측은 연락을 해왔다. 방송이 나가고 엄청난 액수의 후원금이 들어왔다. 돈을 관리하기 어려웠던 황 씨는 김 목사에게 재정 관리를 부탁했다. 김 목사는 공과금과 학비, 양육비 등을 관리해주었다.
교회당을 건축 중이었던 김 목사는 황 씨에게 3000만 원 정도의 건축헌금을 할 것을 권유했다. 아이를 돌봐주고 생활에 도움을 준 김 목사가 고마워 황 씨는 그러자고 했다.
1년의 세월이 흘러 황 씨가 후원금을 관리하겠다며 통장을 돌려받았다. 통장명세를 살펴본 황 씨는 잔액이 50만 원 정도밖에 없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김 목사를 찾아가서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묻자 건축헌금에 일부 사용했다며 갚아주겠다고 했다.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황 씨는 결국 김 목사를 고소했다.
예향교회는 2008년 9월에 신축건물을 지었다. 교회 건물과 사택을 포함해 2억 9000만 원가량 들었다고 한다.
한편 황 씨가 <뉴스앤조이>에 제공한 통장 거래명세서에서는 방송 다음날인 2008년 5월 2일부터 17차례에 걸쳐 김 목사가 자신이 관리하는 동두천기독교협동조합 계좌로 무려 1억 9200만 원을 이체한 것이 확인되었다. 김 목사는 돈이 입금되기 시작한 5월 2일 하루에만 500만 원씩 7차례에 걸쳐 3500만 원을 이체했다.
그러나 황 씨는 그러한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말한다. 황 씨가 6월 3일 통장을 돌려받았을 당시 잔액은 고작 50만 원뿐이었다. 4일 전인 5월 29일 통장 잔액은 5000원에 불과했지만 매달 들어오는 정기 후원금 때문에 그나마 몇십 만 원이 남아 있었던 셈이다.
김 목사와 부인 신지선 씨는 황 씨에게 미안해하고는 있다. 그러나 신 씨는 그렇게 큰 은혜를 베풀었는데 고소까지 한 것은 너무하지 않느냐며 '황 씨가 너무 야속하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많은 분이 후원해주셨는데 후원금을 지키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뿐이에요. 아이들만 아니면 죽고 싶어요.”
황 씨는 인터뷰에서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황 씨는 김 목사에게 먼저 후원금 관리를 부탁했다고 한다.
“공과금·학비·양육비만 신경 써 달라고 했어요. 목사님이 5월 말 교회 짓는 데 2000만 원 정도 헌금을 해달라고 했어요. 목사님께 고마운 것도 많으니 처음에는 흔쾌히 승낙했죠. 그런데 6월 말에 600만 원, 9월에 400만 원을 더 헌금해달라고 했어요. 막내를 키워주기에 헌금하는 것이 내키지 않았지만 그렇게 하라고 했어요.”
황 씨는 헌금하겠다고 동의한 액수가 3000만 원 정도였다고 했다.
황 씨는 후원금 중 가족을 위해서는 1억 1천만 원 정도 썼다고 밝혔다.
“집 구입비 7500만 원, 차 구입비 1500만 원, 아내 납골당비 250만 원, 아내 빚 500만 원, 장인어른 중고차 구입비 300만 원, 생활비 1000만 원 등 1억 1000만 원 정도예요.”
2008년 8월쯤 황 씨는 김 목사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목사님과 함께 은행에 갔어요. 목사님이 통장을 보여주지 않고 숨기더라고요.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목사님을 계속 믿었죠.”
황 씨는 설마 목사님이 자신을 속이겠느냐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황 씨는 10개월이 지난 올해 6월 1일에야 김 목사에게 통장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김 목사는 바로 통장을 돌려주지 않고 생각을 해보자고 했다. 이상하게 생각한 황 씨는 3일 교회에 찾아가서 통장을 달라고 했다. 김 목사는 거래 내용이 없는 새 통장과 황 씨 이름으로 3000만 원이 들어 있는 통장을 건네줬다.
“은행에 가서 입출금 내용을 확인했는데 6월 3일 잔액이 50만 원밖에 없더라고요. 4일 전인 5월 29일에는 불과 5000원밖에 없었어요. 명세서를 뽑아서 목사님에게 가져갔죠.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는데 목사님은 나보고 돈을 사용하라고 하지 않았느냐며 언짢아했어요.”
황 씨는 목사를 찾아가 돈을 돌려달라고 했다. 김 목사 옆에 있던 신 씨가 “설사 돈을 썼다고 해도 베풀어준 은혜가 있는데 이렇게 따질 수 있느냐”고 오히려 황 씨를 나무랐다. 황 씨는 돈을 돌려주지 않으면 경찰서에 신고하겠다고 했다.
이후 김 목사는 황 씨에게 8000만 원 더 헌금하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주장했다. 황 씨는 전혀 들어보지 못했다고 김 목사에게 대답했다.
김 목사는 황 씨에게 합의를 요구했다. 황 씨는 “더는 믿을 수 없다”며 합의를 거절했다. 황 씨가 합의를 거절하자 교인 한 명이 찾아와서 거칠게 합의를 종용하기도 했다.
김 목사는 황 씨를 찾아와 재정 관리를 잘못했다며 사과했다. 황 씨는 김 목사의 사과가 “돈을 마음대로 사용한 것을 사과하지 않고, 재정 관리를 잘못했다는 사과였다”고 말하고 “진심이 느껴지지 않았다”고 했다.
“유정이를 만난 지는 2년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유정이가 교회 처음 오던 날 종이 쪽지를 가져왔어요. 그 안에는 엄마가 병원에서 넷째를 낳는 데도와달라는 내용이 있었어요.”신지선 씨(40)는 유정이가 교회에 나오면서부터, 황 씨 가족을 돕기 시작했다. 막내 유진이는 병원으로 가던 구급차에서 저체중으로 태어났다. 신 씨는 병원비를 치르고 황 씨의 아내와 아이들을 돌보아주었다. 유정이를 따라 엄마도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유진이를 보면 가슴이 아파요. 유진이를 두고 세상을 떠난 유정이 엄마를 생각하면 더 가슴이 아프고요.”
신 씨는 울먹이며 말을 이었다. 당시 황 씨는 형편이 어려워 유진이를 보육원에 보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우리도 풍족하지는 않지만 하나님이 마음을 주셔서 유진이를 맡아서 키워야겠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하나님께서 목사님에게도 같은 마음을 주셨고요.”
김 목사 부부는 황 씨에게 3명의 아이를 열심히 돌본다면 유진이를 키워주겠다고 했다. 김 목사 부부는 천사운동본부에 황 씨 가족의 사연을 알렸다. 방송국 쪽에서 천사운동본부를 통해 김 목사에게 연락했다.
“방송을 내보내자고 하더라고요. 저희는 걱정되었어요. 후원금이 모이면 나쁜 사람들이 찾아오지는 않을까, 애들이 위험해지지는 않을까란 생각에 거절했어요.”
방송국 쪽은 재차 김 목사에게 취재 요청을 하다가, 황 씨에게 직접 연락을 했다. 황 씨는 촬영에 응하기로 했다.
황 씨는 김 목사에게 방송 후 들어온 후원금을 관리해 달라고 부탁했다. 신 씨는 “김 목사가 공과금과 양육비 이외에 개인적으로 사용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한 달에 100만 원을 양육비로 달라고 했어요. 예전 상황과 다르게 후원금도 많이 들어왔고, 황 씨에게 책임감을 준다는 측면에서 부탁했죠.”
신 씨는 김 목사가 교회와 사택을 짓던 중에 자잿값이 뛰었고, 재정이 모자라는 부득이한 상황이어서 황 씨에게 건축 헌금을 부탁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헌금을 부탁했는데, 이후에는 부탁하지 못하고 썼어요. 저희가 실수한 부분이 있습니다. 황 씨가 자원함으로 드리지 않았던 헌금에 대해 사과했어요.”
신 씨는 황 씨에게 말하지 않고 후원금을 건축 헌금으로 쓴 부분을 인정했다.
“허락을 받지 않고 돈을 쓴 것은 잘못이지만, 이전의 은혜를 기억한다면 목사님이 잘못이 있어도 그 정도는 이해할 수 있지 않겠어요?”
신 씨는 합의하려고 하는데 황 씨가 마음을 안 열어 답답하다고 했다.
“일부러 돈을 노리고 접근했다는 보도는 억울해요. 지은 잘못 때문에 받는 벌이라면 달게 받겠지만, 우리의 선한 의도를 매도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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