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에게 유교란 무엇일까. 한국 여성에게 유교란 무엇일까. 한국 여성 치고 유교가 편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근대화와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유교와 남성성의 연결은 일찌감치 끊어졌다. 산업 사회에서 군자 모델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아버지의 역할이라는 것으로 남성성과 유교가 어느 정도 관계를 가졌다 하더라도, 아버지는 더 이상 군자가 아닌 일꾼이자 산업 전사가 되어야 했기 때문에 남성들의 사회에서 유교적 윤리 규범은 사회적 지위와 나이에 따른 서열 관계를 제외하고는 딱히 설 자리가 없었다.

그러나 여성은 여전히 유교의 영향을 받았다. 가정의 표현적 역할, 곧 가정을 가정답게 만드는 역할을 부여받은 여성에게 유교의 윤리 규범은 여전히 공고했다. 여성의 이러한 역할을 전통의 담지자 역할이라고도 하는데, 근대화와 산업화로 사회가 달라지고 전통의 특수한 모습들은 사라지면서 획일화해 갈 때 가정은 오히려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과 문화를 지켜야 하는 곳으로 더욱 강조되었고, 주로 가정이 자신의 일터인 여성들에게 그 몫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식 때 남자는 양복을 입어도 여자는 한복을 입는다든가, 전통적인 예의 범절은 어머니를 통해 가정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든가 하는 관습과 규범들이 생겼다.

근대 사회는 공사 영역의 분리가 분명해지고 그 공사 영역을 일터와 가정으로 나눈 후 남성과 여성을 각 공간의 책임자로 배치해 온 과정인데, 그 과정에서 공적 공간은 합리성이 지배하는 공간이고, 사적 공간은 전통적이고 정서적인 공간으로 재배치되었다. 물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는 게 아니라 그렇다고 다들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적 공간을 책임지는 여성과 유교와 같은 전통적 윤리 규범은 본인이 원하건 원하지 않건 더 밀접한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반면, 남성은 돈을 벌어 오는 것 외에 딱히 가정에서 책임질 일이 없게 되면서, 오히려 전통 사회보다 가정에서 더 할 일이 없어졌다. 자기 부모님 문안도 아내가 대신 챙기면 되고, 자식의 교육과 훈육도 다 아내에게 맡기고 자신은 오로지 돈만 벌어 오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만큼 돈에만 매인 위신이기 때문에 불안한 것이기도 해서, 남성의 특권을 기형적으로 보장하는 쪽으로 전통 문화의 변형이 일어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여성들이 공적 공간으로 진입하는 것에 대한 제약이 여전히 심한 상황에서 남편을 혹은 아들을 성공시키기 위한 여성들의 기형적인 노력이 탄생한 것이다.

'전통'이라는 말에 페미니스트들은 바로 반기를 들 것이다. 그들에게 전통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여러 과정과 협상을 통해 변형되면서 이어 오는 것이고, 전통이 여성에게 불리하게 구성되었다면 굳이 옹호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들은 여성들의 전통을 따로 만들어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그렇게 자신들의 전통을 만들어 가는 게 페미니즘의 중요한 실천 중 하나이다. 페미니스트 여성들이 아들딸을 막론하고 자기 자녀들에게 이 실천을 전수하면서 계속해서 페미니즘의 전통을 이어 간다면, 그 전통의 계보가 생길 것이다. 그러나 자녀를 낳고 기르는 것에 대한 페미니스트들의 자세는 언제나 양가적이기 때문에 그 명맥을 이어 가는 것은 쉽지 않다.

여성의 경험으로서 아이를 낳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가부장제 사회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은 여성에게 행복이기보다 짐인 경우가 많다. 때문에 이 아이를 페미니스트 전통에서 키우는 보람과 자신이 페미니스트로서 자기 실현을 하고자 하는 욕망은 늘 충돌할 수밖에 없고, 대개는 후자가 이긴다. 전통은 대를 이어서 전수되는 것인데 더 이상 대를 생산하지 않는다면 그 전통을 이어 가는 방법은 전도 아니면 정치밖에 없다. 그래서 아이 낳는 것을 적극적으로 축복할 내적 근거가 없는 페미니즘은 정치에 더 열심을 낸다. 그것이 자신들의 전통을 세워 가는 유일한 경로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이 그러한 자신들의 전통을 세워 가는 데에 가장 강력한 걸림돌이 된 것이 바로 전통 문화의 이름으로 자리 잡은 삼종지도와 남녀유별의 유교이다. 이에 대한 논의에 들어가기에 앞서, 유교와 관련해서 두 가지를 먼저 지적하고자 한다. 하나는 유교의 종교적 성질에 대한 것이고, 또 하나는 유교 부활의 배경이다.

유교는 종교인가. 유교는 왜 종교인가. 뉴스앤조이 이용필

먼저 유교의 종교적 성질에 대해 말하자면, '유교가 종교인가 아닌가'라는 주제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도 오랜 논쟁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유교는 어느 정도 종교로 인정되고 있다. 미로슬라브 볼프(Miroslav Volf)는 <인간의 번영>(IVP)에서 유교를 넓게 펼쳐진(diffused) 종교라고 본 조세프 아들러(Joseph Adler)의 견해를 받아들이면서, 유교를 세계 종교의 하나로 다루고 있다. 그러나 종교여성학 입장에서 유교가 종교인 이유는, 피터 버거(Peter L. Berger)가 말한 종교의 사회적 기능에 비추어 볼 때 더 잘 이해된다. 내 책 <교회 언니의 페미니즘 수업>(비아토르)에서도 설명했지만, 종교의 중요한 사회적 기능은 만들어진 이 세계가 실재의 세계와 일치한다는 것을 그 구성원들에게 효과적으로 (그리고 종종 강력하게) 설득하는 것인데, 지금까지 종교는 남자는 원래 그렇고 여자는 원래 그런 것이라고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받아들일 수 있게 설득함으로써 현재의 젠더 관계가 실재 세계의 젠더 관계인 것으로 정당화했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 그러한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유교이다.

한국에 정착한 유교는 남자에게는 남자의 도리가 있고 여자에게는 여자의 도리가 있으며 그것이 천리라고 가르쳤다. 비비안-리 니트레이(Vivian-Lee Nyitray)라고 하는 중국학 전문 종교학자는, 유교 젠더 규범의 생명력이 그렇기 질긴 이유는 유교가 종교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구성된 전통이고 정치적인 것으로만 보려 하기 때문에 유교 젠더 규범을 제대로 상대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두 번째로 유교의 부활 배경에 대해서 말하자면,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별 주목을 받지 못한 유교가 대대적으로 부활한 데에는 유교 문화권 나라들의 경제성장과 깊은 연관이 있다. 아무리 자기 문화에 자부심을 가지려 해도 딱히 보여 줄 게 없으면 말하기가 힘든 법이다. 따라서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부터 아시아의 네 호랑이 등의 말이 만들어지면서 유교권 나라들의 경제적 성장이 부각되자 그 성과와 유교를 연결하고자 하는 노력이 부쩍 많아졌다. 물론 이러한 흐름에 대해 학자들은 다소 비판적이지만, 동아시아 나라들의 경제성장과 유교 정신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은 지을 수 없다 해도, 유교권 나라들의 경제력이 국제 사회에서 상대할 만한 규모로 큰 것이 자신들의 내적 자원을 돌아보게 하는 중요한 계기를 만들어 준 것은 사실이다. 특히 유교의 발원지로서, 중국은 자신들의 중요한 정신적 자원으로 더욱 적극적으로 유교를 자기 것으로 선전하고 있다.

지난번 글에서 이슬람 페미니즘의 부상 배경에 이슬람 여성에 대한 서구의 왜곡된 재현과 정치적 이슬람의 부상 등이 있다고 했는데, 유교 페미니즘의 경우 경제적 자신감의 회복이라는 배경은 차이가 있지만, 서구에 의해 왜곡되게 재현되었던 유교 문화권 여성들의 경험을 재조명한다는 점에서는 이슬람 페미니즘과 같다. 결국 이슬람권 여성이든 유교권 여성이든, 자기 전통 안에서 페미니즘의 자원을 찾지 않으면 서구의 어설픈 흉내 내기가 될 수밖에 없고, 실제로 변화를 일으켜야 하는 자기 사회와는 유리된 채 서구의 페미니즘 언어에 능숙한 소수 동류들끼리의 교류 이상 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러한 노력들이 나오는 것이다.

너희 문화·종교는 심각하게 가부장적이어서 너희 문화·종교의 여성들이 해방되려면 서구 페미니즘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식의 암묵적 주장은, 이슬람권 여성이나 유교 문화권 여성에게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하와이대 교수이자 유교 페미니스트인 리-시앙 리사 로즌리(Li-Hsiang Lisa Rosenlee)는 자기 문화·종교에 대해 변명하거나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페미니즘 작업을 할 수 있기 위해서라도 유교 페미니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1990년대로 들어서면서 부쩍 늘어난 비서구권 여성들의 이러한 자세는, 국적도 전통도 없이 유리하는 여성들을 만들어 낸 자유주의 페미니즘이 확실히 한계에 달했음을 보여 준다.

그럼에도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은 유교 페미니즘이 한국에서 활용될 여지가 없다고 본다. 이것은 한국 페미니스트 의식의 시초가 기독교 전파와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유교는 구시대의 유물이고 폐기되어야 하며 오직 (서구식) 문명개화만이 살길로 선전되기 시작하던 19세기 말, 그 흐름에 앞장선 것은 한국에 막 전파되기 시작한 개신교였다. 문명개화의 중요한 내용이 여성 교육과 여성 개화였기 때문에 여성들을 위한 공공 교육을 처음 시작한 개신교의 영향은 클 수밖에 없었고 - 한국 여성학의 산실인 이화여대도 감리교 선교사가 시작한 학교이다 - 그만큼 빠르게 유교 문화의 가치를 대체할 수 있었다. 또한 식민기 동안에도 기독교는 민족 의식의 고취에 영향을 미치면서 점차 한국의 종교로 자리 잡았고, 한국전쟁 후에는 급격한 성장을 경험하면서 불교와 나란히 한국의 다수 종교가 되었다. 따라서 우리에게 유교의 잔재는 있을지언정, 유교를 굳이 우리 것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고 보게 된 것이다.

지난번 글에서 언급했듯,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기독교 페미니스트들은 더 쉽게 서구 자유주의 기반의 기독교 페미니즘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우리는 개인주의의 유산을 가진 토양에서 자란 백인 여성이 아니다. 그 여성들은 자기 토양과 문화를 염두에 두고 페미니즘 작업을 한 것이고, 기본적으로 우리의 문제에 관심이 없다. 또한 탈식민 시대 이후로는 섣부른 개입도 하지 않는다. 식민주의적 관점을 가지고 있다는 말 - 이런 말은 요즘 시대에 제법 큰 타격을 주는 말이다 - 을 듣고 싶지 않은 이상, 너희 문화는 가부장적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결국 우리 안의 여성 문제는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이고, 어설픈 백인 흉내로 우스워지지 않을 거라면 그것을 푸는 방법도 우리를 문화적으로 구성한 우리 자원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유교 페미니즘은 바로 그 자원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보여 준다.   

물론 기독교인이 유교 페미니즘을 다 받아들이거나 옹호할 필요는 없다. 다만 우리 안에 이식된 기독교는 진공상태에서 된 게 아니라 500년 이상 유교라는 윤리 규범 안에서 생활해 온 사회 속에 이식된 것이기 때문에, 자기 토양에서 자라야 하는 페미니즘의 방법을 찾아가는 데에 있어서 좋은 참고가 된다. 

유교 페미니즘도 이슬람 페미니즘과 마찬가지로 자기 종교를 가부장제에서 구하는 작업을 한다. 즉 알려진 바와 달리, 유교는 속속들이 가부장적이어서 폐기되어야 하는 종교가 아니라, 가부장적 요소를 극복할 수 있는 자원을 그 안에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려 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과제는 남녀차별의 근거가 되었던 남녀유별이라는 윤리 규범에 따라, 남성과 여성에게 서로 다르게 부과했던 윤리적 실천을 해결할 방법을 찾는 것이다.

이 작업은 우선 남녀유별이 얼마나 유교에 본질적인 것인지, 즉 그것을 폐기하거나 변형하면 유교의 중요한 정체성이 사라지는지의 문제이기도 한데, 유교 페미니스트 학자들은 오늘날 이 윤리는 더 이상 적용되기 힘들며, 적어도 변형이 필요하다는 데에 동의한다. 이들은 유교의 핵심 윤리는 인이며, 이것은 남녀 구분 없이 적용되는 보편적 윤리로서 남녀유별보다 우위의 규범이라고 해석한다. 나아가서 인의 윤리는 서구 페미니즘의 중요한 작업인 돌봄의 윤리(care ethics)와도 일맥상통한다고 주장한다.

돌봄의 윤리란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인간을 규범으로 삼는 윤리에 대한 페미니스트적 대항이자 대안이다. 이 대안은,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인간 규범은 자녀 양육에서부터 병자를 돌보는 일에 이르기까지 돌봄의 노동을 주로 담당해 온 여성의 경험을 담아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보게 만드는 남성 중심적 가치임을 지적한다. 돌보고 돌봄을 받는 인간의 상호 관계성을 중심으로 하는 윤리가 그러한 남성 중심적 윤리를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돌봄의 가치가 생물학적 여성과 남성을 뛰어넘는 보편적 가치로 자리 잡아야 한다는 말이다.

이러한 돌봄의 윤리가 유교와 가지는 공통 분모는 관계성에 대한 강조이다. 그러나 그 차이는 분명하다. 서구 페미니스트들이 작업한 돌봄의 윤리는, 개인주의 사회에서 독립적인 인간을 성숙한 인간의 규범으로 삼았기 때문에, 자신이 수행해 온 노동의 특성상 독립적이기보다 관계적인 여성이 미성숙한 존재로 규정된 것에 대한 저항의 작업이다. 즉 여성은 남성보다 미성숙한 존재가 아니라 다른 윤리적 규범으로 구성된 존재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반면, 유교는 아예 처음부터 인간을 독립적 개인이 아닌 가족을 중심으로 하는 여러 관계망 속의 존재로 본다. 말하자면 서구 페미니스트들이 대안으로 찾고자 하는 관계성이 이미 형성되어 있는 문화인 것이다.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이 돌봄의 윤리보다는 여전히 정의의 윤리에 치우치는 이유는 그러한 관계성의 강조가 별로 새롭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 해방보다는 억압을 더 많이 경험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것보다 복잡하다. 이미 오랜 세월 관계성을 중심으로 형성된 문화 속에서 사회화하고 그 정서 구조를 체화한 여성들은 결코 서구의 개인주의 문화에서 자란 백인 여성들 같을 수 없다. 그것은 서구의 페미니스트들이 아무리 관계성을 강조해도 그들의 개인주의를 극복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들이 관계적이려고 노력하는 만큼 우리는 개인적이 되려고 노력할 따름이다. 그리고 그 노력은 우주적 진공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자신이 자란 토양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만약 유교가 페미니스트적 작업을 통해서 관계성의 좋은 면은 유지하되 개인으로서 살 자리도 마련해 줄 수 있다면, 그것을 활용하는 것이 개인주의 토양에서 관계성을 심으려고 노력하는, 즉 우리와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서구 페미니즘의 계보를 따라가는 것보다 효과적일 것이다.

사실 돌봄의 윤리는 서구 여성에게든 우리에게든 일종의 뜨거운 감자이다. 돌봄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사회는 없다. 오히려 너무 중요해서 공기처럼 되어 버린 게 돌봄의 가치이다. 그렇다고 이 가치의 중요성을 부각한다고 여성의 지위가 자동적으로 달라지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동안 여성들이 해 오던 일을 그냥 반복해서 하게 될 뿐이다. 계속 좋은 아내, 좋은 엄마, 좋은 며느리로 살면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돌봄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면 오랜 세월 그 역할을 주되게 수행하면서 구성된 여성들의 행위성과 주체성은 제대로 인정되지 않는다. 그래서 가부장제가 유지되는 한 돌봄의 가치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페미니스트들은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 역시 완벽하지 않은 세계 속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양육하고 사랑해 온 여성들의 경험을 폄하하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받아 준다는 말에 많이들 공감하는 것 같은데, 그 "있는 그대로"에는 유교 문화권에서 자란 자신의 경험도 포함된다. 그것을 폄하하고 욕할수록 긍정할 수 있는 자신의 경험도 그만큼 줄어든다. 로즌리는 제국주의적 헤게모니를 거부해야 마땅한 것으로 알고 있는 페미니스트 공동체에서도, 비서구 전통은 페미니스트적으로 고려할 가치가 없는 것으로 여기는 식민주의적 가정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지적한다. 유교 전통에서 기독교 전통으로 갈아탄 사람들은 유교가 가지는 관계성의 위계적 특징을 지적하면서 유교를 돌아보려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선교사도 없이 자발적으로 처음 가톨릭 기독교를 받아들인 선조들은 기독교가 유교를 완성시킨다고 보았다. 유교가 제시한 이상적 인간을 현실적으로 가능하게 해 줄 초월적 신의 존재를 기독교 안에서 만났기 때문이다.

약 30년 전 통역을 담당했던 어느 백인 여선교사는 기독교라는 선물을 전할 때 서구라는 포장 없이 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오랜 세월 동남아시아에서 선교사로 일한 그의 노력의 흔적을 읽을 수 있었다. 기독교는 무국적자를 만드는 종교가 아니다. 페미니즘은 자기 토양에서 자라는 식물이다. 그렇다면 기독교 페미니즘도 국적도 전통도 없이 유리하는 세계 시민의 환상을 깨고 나와야 비로소 실제적인 변화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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