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는 처음부터 평신도 운동이었다. 교회 역사에 있었던 교회 갱신이나 부흥은 성직자의 권력 독점에 대항해 평신도의 권리와 의무를 되찾으려 했던 운동이었다." - <존 스토트가 말하는 목회자와 평신도>(아바서원)

'그리스도인'은 교회 안에서 봉사만 열심히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뉴스앤조이>는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진격의 교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려고 합니다. 말씀대로 살기 위해 진격하는 크리스천들의 모습을 통해, 지금 한국 사회에 보여 줘야 할 진정한 기독교의 역할과 모습이 무엇인지 살펴보기 위해서입니다.

삶의 기로에서 소명과 진로를 고민하는 청년, 전문 영역에서 기독교인으로서 고군분투하며 사는 집사님·권사님·장로님, 성경에서 가르치는 모습을 좇아 약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는 교인분들을 소개합니다. 제보도 환영합니다. 주변에 '진격의 교인'이 있다면 언제든지 <뉴스앤조이> 홈페이지이메일페이스북카카오톡 등으로 알려 주세요. - 편집자 주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리버사이드 캠퍼스에서 인류학을 가르치는 이상희 교수(52)는 한국인 최초이자 유일한 '고인류학자'다. 이 교수가 다루는 고인류학은 고고학, 문화인류학 등과는 조금 다르다. 고인류학은 옛날 사람들의 몸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멀게는 500만 년 전부터 가까이는 1만 년 전, 지구에 살았던 인류가 남긴 뼈, 이빨, 화석 등이 주 연구 재료다. 과학기술 발달로 이 재료에서 DNA를 추출해 현세 인류와 유전자를 대조하며 그들의 형태를 추측해 나가는 학문이다. 고인류학은 과거 인류의 행동이나 문화가 아닌, 이들이 어떤 '몸'을 가졌는지에 주목한다.

인류의 몸이 어떤 변화를 거쳤는지 연구하는 직업인 만큼 진화론에 대한 이해는 필수다. 이상희 교수는 인류의 진화가 수백만 년에 걸쳐 계속되어 왔다는 사실을 믿는 '진화론자'다. 이 교수가 2015년 쓴 <인류의 기원>(사이언스북스)은 대중을 위한 고인류학 안내서다. 이 책에는 인류와 관련한 22가지 이야기가 담겨 있다.

2015년 처음 한국어판으로 출간된 <인류의 기원>은 영어(Close Encounters with Humankind), 스페인어, 중국어로도 번역돼 전 세계에서 독자들을 만나고 있다. 페미니스트인 이상희 교수는 영어 번역판을 발매할 때 남성 고인류가 중심이 된 삽화를 여성으로 변경하기도 했다.

한국교회에서는 '진화론'을 언급하기 조심스러운 게 사실이다. 많은 한국교회가 창조과학을 조직적으로 지지하고 가르친다. 사회에서는 한국창조과학회의 일원이었다는 이유로 장관에 내정됐다가 낙마할 정도로 '사이비 과학' 취급을 받지만, 한국교회에서 창조과학은 '주류'다.

<인류의 기원> 저자 이상희 교수는 진화론자이면서 개신교인이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지금도 인류가 조금씩 진화하고 있다고 믿는 이상희 교수는 13년 전 회심한 개신교 신앙인이다. 개신교인이라면 창조과학을 지지해야 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분위기에서, 심지어 전공을 하면서 하나님을 믿게 됐다. 진화론을 믿는 학자에게 하나님은 어떤 존재일까.

<인류의 기원> 강연으로 종종 한국을 찾는 이상희 교수를 11월 2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이상희 교수는 시종일관 유쾌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회심한 이야기를 할 때는 살짝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이 교수는 신앙과 진화론은 양립할 수 있으며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음은 이 교수와의 대화를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 자신을 '진화론자'라 부르는 개신교 신앙인이다. 언제 신앙을 갖게 됐나.

나는 좀 극적인 방법으로 신앙이 찾아왔다. 2005년 6월 즈음, 갑자기 손을 쓸 수 없게 됐다. 터널증후군인 줄 알고 병원에 갔는데 아니었다. 고칠 방법도 없다고 하고. 손을 쓰는 직업이라 난감했다. 그때 내 이야기를 들은 신학대를 졸업한 친구가 책이나 읽어 보라면서 C.S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를 줬다. 그 책을 읽는데 그냥 매일 눈물이 났다.

커피를 마시면서 벤치에 멍하니 앉아 있었는데 개미 떼가 죽은 파리를 운반하는 모습이 보였다. 죽은 파리가 너무 커서 개미굴에 안 들어가는데 개미들이 막 몸부림을 치는 게 보였다. 그게 내 삶인 것처럼 느껴져서 또 그렇게 눈물이 났다. 거대한 누군가가 손으로 톡 쳐 주면 되는 일인데 개미들에게는 엄청난 시련 아닌가. 그걸 보면서 울었다고 친구에게 얘기하자 이제는 성경을 읽을 때가 됐다면서 성경을 줬다.

그래서 성경을 읽기 시작했는데 또 왜 그렇게 눈물이 나는 건지…. 내가 성경을 읽으면서도 계속 운다고 하니까 친구가 주기도문을 외워 보라고 권했다. 사실 그때는 한국 개신교인들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이 있었다. 그럼에도 입으로 외우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라는 구절을 내 입으로 말하는데 갑자기 모든 게 이해되는 것 같았다. 내가 사는 하루하루가 이해되고… 손을 쓸 수 없어도 어쩔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게 하나님 뜻이라면 그렇게 살아야지 생각했다. 그런데 그냥 어느 날 갑자기, 고쳐 달라고 기도한 것도 아닌데 손이 괜찮아졌다.

- 진화론자로서 성경을 읽을 때 거슬리는 부분은 없는가.

성경이 교과서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나에게 천지창조를 두고 괜찮냐고 물어보는데, 사실 문제 삼으려면 천지창조도 필요 없다. 죽은 사람이 며칠 뒤에 살아나 하늘로 올라가고, 성관계 한 번 없이 아이 낳은 건 괜찮은가. 홍해가 갈라지고 사람이 900년을 살았다는데 그게 지금 과학으로 이해가 가는가. 그렇게 따지기 시작하면 천지창조가 문제가 아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와닿은 부분은 '죽은 사람이 대체 어떻게 살아났지'가 아니었다. 나사로는 죽은 뒤 염까지 해서 붕대로 손발을 꽁꽁 묶어 놓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의 "나사로야 나오너라" 한마디에 붕대가 풀어지고 자유의 몸이 된 것 아닌가. 나는 그 자유로움이 더 와닿았다.

인류는 수백 만년에 걸쳐 현재의 모습으로 진화했다. 전곡선사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인류 진화의 역사 모형. 전곡선사박물관 홈페이지 갈무리

-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대형 교회, 유명 목사 중에는 진화론을 인정하면 성경이 거짓말 가득한 책이 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서 개신교인이 진화론을 믿는 건 불가능한 것처럼 말하는데.

자기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것이 틀린 게 아니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떻게, 무슨 일을 하셨는지 과학적으로 본인이 이해하지 못하면 하나님도 그 일을 못한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하나님인가. 나는 어른이 돼 신앙을 갖게 됐다. 교수로서 위치도 어느 정도 정해지고 안정된 후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면서 말이다. 신앙이 쳐들어왔다는 표현이 맞겠다. 하지만 그 후에도 내가 하던 일을 그만둬야 한다든지, 신앙과 내가 하는 일이 대립한다든지 하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 없다.

나는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사실을 믿는다. 그리고 생물체는 진화한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은 할 수 없다. 그렇게 물어보는 사람 대부분은 토론이 아니라 싸우기 위해 물어본다. 그래서 별로 깊은 얘기는 안 하려 한다. 그럼에도 정말 궁금해서, 특히 학생들이 물어보는 경우에는 최대한 설명하려 노력한다.

'의미'와 '사실'은 다르다. '당신이 오늘 살아 숨 쉬는 이유가 뭔가요'라고 물었을 때 할 수 있는 대답은 여러 가지다. 하나님이 오늘 이 땅에서 선한 일을 이루시려고 나에게 숨을 주셔서 그 은혜로 살아 있다고 답할 수도 있고, 내 심장이 펌프질을 잘해서 적혈구가 산소를 우리 몸 구석구석까지 운반하기에 살아 있다고 할 수도 있다. 몇십 년 전 남녀가 만나 정을 나눈 그날 생명이 잉태돼 내가 지금 살아 있다는 답도 있을 거다.

이 중에서 어떤 게 맞는 걸까. 다 맞다. 다 맞지만 다른 의미로 맞다. 만약 생물학 시간에 생명의 발생 과정을 묻는데 거기서 은혜 얘기하면, 맞는 말이지만 0점이다. 교회학교에서 하나님 은혜 얘기하는데 거기서 순환 계통 얘기하면, 맞는 말이지만 한편으로는 틀린 답이다. 어떤 현상을 보는 데 층층이 다른 이유가 있고 그에 해당하는 의미가 있는데, 그중 하나만 옳고 절대적이라 주장하면 어쩔 수 없다. 그냥 그렇게 믿게 두는 수밖에….

하지만 목사들이 설교 시간에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건 좀 다르다. 우리 학교에 다니는 어떤 한국 학생은, 자기가 다니는 한인 교회 목사님이 "진화론 가르치는 사람은 사탄이니까 진화론을 알거나 배우려고 하지 말고 가르치는 교수 곁에도 가지 말라"고 했다더라. 그 말에는 분노했다.

목사가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거나 달 착륙이 음모론이라고 믿는 것까지 어떻게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런 잘못된 정보를 목사의 권위를 가지고 교인들에게 주입하는 건 잘못된 일이다. 목사는 그렇게 자신의 권력을 확인하고 교인을 자기 사람으로 만드는 것 같다.

안 그래도 주류 사회에 진입하기 힘든 이민자들인데,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자라서 나중에 학교 가면 그동안 교회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얼마나 말이 안 되는 것인지 알게 된다. 그러면 그 친구는 교회에서 소속을 확인하며 더 창조과학에 빠지든지, 아니면 아예 교회와 단절된 삶을 산다. 한국교회도 마찬가지다. 목사들은 교회에서 창조과학을 강요하고 진화론을 부정하는 게 교인들을 얼마나 '바보' 만드는 일인지 알아야 한다.

이상희 교수는 진화론에 등장하는 임의성 또한 하나님의 능력에 속한 일이라고 봤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 <인류의 기원> 출간 후 혹시 기독교계에서 부정적인 피드백은 없었나.

한국교회에서 워낙 창조과학이 대세라 막 공격받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긍정적인 반응이 있었다. 출간 후 목사 혹은 전도사들의 메시지를 몇 차례 받았다. 공개적으로 글을 쓰고 싶은데 그러면 교인들이 보고 뭐라 할까 봐 메시지 드린다고 하면서 보내왔다. 자기는 '진화론' 하면 사탄의 목소리인 줄 알고 두려웠는데, 이 책을 읽고 하나님의 무궁무진한, 불가능이 없는 사역을 느끼고 은혜를 받았다는 거다.

우리가 정말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것도 느꼈다고 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잘나서가 아니라 존재 자체로 구원해 주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메시지를 주는 분들도 있었다. 그런 걸 읽고 울컥했다. 신앙이 내게 그냥 찾아왔듯이, 이해하는 것 역시 하나님이 주관하실 일이라는 것을 느꼈다.

- 진화론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원숭이가 사람이 됐다면 지금도 어디에선가 사람으로 진화하고 있는 원숭이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한다.

무식한 소리다. 예를 들어 보자. 나와 내 사촌은 할머니를 공동 조상으로 두고 있다. 사촌은 할머니를 쏙 빼닮았고, 나는 아니다. 그렇다고 사촌이 할머니는 아니다. 내가 할머니도 아니다. 원숭이를 인간과 비교했을 때 원숭이가 공동 조상에 더 가깝다. 인간은 변화가 많이 일어났다. 원숭이와 인간의 공동 조상이 같은 건 맞지만, 그게 원숭이가 인간이라는 말은 아니다.

또 원숭이와 인간 둘 다 동시대에 잘 살아 있다. 원숭이는 원숭이 나름대로 잘 살고 있는데 뭐가 아쉬워서 인간이 되려고 안간힘을 쓸까. 인간이 모든 종의 종착점이라는 생각에서 나온 발상이다. 사촌은 내가 될 수 없다.

- '우연'의 반복으로 진화가 발생했다는 데 반감을 갖는 것 같다.

인류 진화의 역사를 보면 변화가 여기저기서 무작위로 일어난다. 여러 변이 가운데 우연히 환경에 더 잘 살아남는 변화가 있었을 수 있다. 그 변화를 가지고 있는 개체가 환경에 더 잘 살아남으니까 더 잘 번식할 수 있었다. 변화가 없는 개체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니까 더 일찍 죽고 언젠가는 대가 끊긴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특정한 변화를 지닌 사람 혹은 생물이 많아지는 게 진화다. 변화가 무작위로, 임의로 일어난다. 기린이 높은 곳에 있는 뭘 따 먹기 위해 목을 점점 늘려서 길어졌다는 '용불용설'과는 다르다.

다윈의 진화론적 입장은, 우연히 목이 긴 기린이 태어났는데 마침 높은 곳에 먹을 게 많아서 목 짧은 기린보다 목 긴 기린이 더 오래 살고 새끼도 많이 낳고 번성했다는 것이다. 우연히 환경이 바뀌어서 다 초지로 바뀌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목 긴 애들은 죽고 목 짧은 애들이 살아남는다. 그 임의성이 거슬린다는 사람이 많다.

진화론을 반대하는 종교인들이 가장 반감을 느끼는 것 중 하나는 진화가 '너는 특별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전한다는 거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셨다는데 특별하지 않고 무작위로 변화가 나타났다고 하니까. 그런데 성경을 읽어 보니 그 무작위도 하나님의 방법이었다. 신약성경에 제비뽑기 이야기 많이 나오지 않나. 또 신약에서 꾸준히 전하는 메시지가 뭔가. 인간인 우리가 특출하거나 능력이 출중해야 구원받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구원하신다는 것 아닌가.

- 고인류학은 결국 인간이 다른 생물을 뛰어넘는 특별함을 지닌 게 아니라는 걸 보여 주는 것 같다.

맞다. 우리가 생각하던, 인간이 진화하는 모든 동물의 최정점에 서 있다는 식의 특별함은 아니다. 생물의 지능은 순차적·점층적으로 달라진다. 각자 필요한 지능이 다르다. 곤충부터 다람쥐까지 끊어서 여기까지는 하등한 지능, 까마귀 이상은 고급 지능이라고 할 수 없다. 뛰어난 지능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인간만 특별한 게 아니다.

인간은 종의 최정상에 있어서 특별한 게 아니라, 그냥 인간이라서 특별하다. 인간이 지닌 독특한 형질 때문에 특별한 게 아니다. 내가 딸을 사랑하는 이유는 예뻐서도, 공부를 잘해서도, 말을 잘 들어서도 아니다. 그냥 내 딸이니까 특별하고 사랑한다.

- 과거 인류가 진화했다면 지금도 인류는 진화하고 있을까.

진화한다. 하지만 진화를 목격할 수는 없다. 진화는 서너 세대에 목격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변이가 나타나는 건 무작위고 확률이다. 예를 들어 1000명 중 1명 꼴로 변이가 나타난다고 하면, 변이가 발생하는 확률이 똑같다고 가정할 때 인구 1만 명이면 변이가 10개 생긴다. 인구 수가 꾸준히 증가했기 때문에 변이가 더 많이 발생할 수도 있다. 진화의 기본 재료가 충족됐기 때문에 또 다른 방향의 진화도 발생할 수 있다.

지난 11월 3일, 서울시립과학원에서 '인류의 기원'을 주제로 강의하는 이상희 교수. 사진 제공 심왕찬

- 인류 진화를 연구하는 게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인류 진화의 역사를 보면 수백만 년 전 존재한 인류가 지금 현세 인류의 모습이 되겠다고 '노력'해서 진화한 게 아니다. 그때 처한 환경에서 발생한 돌연변이의 결과로 우연히 발생한 형질이 있었고, 마침 그 환경과 잘 융합해서 후손을 많이 번식시켜 현세까지 이르게 됐다. 일어나서 사냥하고 후손 번식하고 열심히 하루를 살다 보니까 지금 인류까지 이어져 왔다는 이야기다.

신앙도 마찬가지다. 내가 어떤 사람이 돼야 한다는 큰 그림과 목표가 있는 것도 좋겠지만, 신앙을 접하고 나서 느낀 건 그게 아니었다. 오늘 하루 내게 주어진 삶을 충실히 살다 보면 내 인생도 위에서 이끄시는 방향으로 잘 흘러가겠구나 하는 자유함을 느꼈다. 나만 그렇게 산 게 아니라, 수백만 년 전 살았던 인류도 그렇게 매일을 충실히 살아 내면서 이 역사가 지속됐다는 서사가 나에게는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우연이라고 임의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우연과 임의성 역시 하나님께 속해 있다고 생각한다.

- 창조과학이 정말 '과학'이라고 믿는 개신교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개신교의 시작을 떠올려 보면 좋겠다. 개신교는 중개인을 통하지 않은 직접 거래 아닌가. 그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가끔 목사를 교황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조금 놀랍다. 개신교는 목사님이 하나님과 더 가깝고 우리가 목사님 통해서 천국 간다고 믿는 게 아니지 않나.

'개신교인'이라면 이런 사안에 있어서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목사 혹은 교회에서 창조과학이 맞다고 하니까 덩달아 믿는 게 아니라, 진화에 대해 우리 인간이 걸어 온 역사에 대해 읽고 스스로 판단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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