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참사는 매번 얼굴을 바꾸고 사람들 앞에 나타났다. 292명의 목숨을 앗아간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1993)를 비롯해, 성수대교 붕괴(1994), 삼풍백화점 붕괴(1995),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1999), 대구 지하철 참사(2003),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붕괴(2014) 그리고 세월호 참사(2014)까지. 정부는 피해 가족들에게 사과하며 재발 방지를 약속했지만, 사고는 여지없이 같은 패턴으로 반복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4년 5월 19일,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34일 만에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사고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며 진상 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약속했다. 눈물까지 흘린 대국민 사과였지만, 몇몇 사람은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며 대통령을 믿지 않았다. 의심은 곧 확신으로 이어졌다. 이후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세월호 가족들에게 보인 태도는 침묵과 외면, 방해였다.

세월호 참사는 대한민국의 총체적 부실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참사가 발생한 지 약 4년이 됐는데도 의문은 그대로 남아 있다. 세월호가 왜 갑자기 침몰했는지, 참사 초기 해경은 왜 사람들을 구조하지 않았는지, 박근혜 대통령은 뭘 하고 있었는지. 가까스로 통과된 특조위 2기는 자유한국당의 비협조로 구성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목포신항에 거치된 세월호. 뉴스앤조이 박요셉
세월호 가족들은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을 방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세월호 참사 이전의 대한민국과 세월호 참사 이후의 대한민국은 달라야 한다. 세월호 가족을 비롯해 모든 국민이 그렇게 생각했다. 이번 기회에 대한민국을 수술대에 올려 썩은 부위를 도려내지 않으면, 참사가 또 반복될 것이다. 특조위가 좌초되고 온갖 방해 세력의 공작을 보면서,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정부와 국회에 떠맡긴 채 기다리기만 할 수는 없었다.

안전의 가치와 생명의 존엄성을 아는 사회는 결국 시민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고 세월호 가족들은 깨달았다.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1년간 논의 끝에 비영리 민간 재단 '4·16재단'을 설립하기로 결정했다. 세월호 가족들은 지난해 11월, 시민계·노동계·종교계와 함께 재단설립추진단을 발족하고, 현재 국민들을 대상으로 창립 기금을 모금하고 있다. 4·16재단은 올해 5월 정식 출범할 예정이다.

단원고 2학년 7반 영석 아빠 오병환 씨는 3월 21일 기자와의 만남에서 "4·16재단은 세월호 가족과 국민들이 함께 만드는 민간 재단"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정부 주도로 만든 공익 재단이 십수 년 후 본래 목적을 잃고 퇴직한 고위 공무원들의 노후 보장용으로 전락하는 경우를 종종 봤다. 정부가 예산안을 쥐고 있어, 어떤 성향의 정권이 들어서느냐에 따라 사업 규모도 매번 달라진다. 설립 취지에 맞는 재단을 만들기 위해서는 민간 기금 출연이 필요하다고 봤다"고 말했다.

4·16재단은 세월호특별법(40조)을 바탕으로 여러 사회적 지원 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안전사고 예방 및 안전 문화 확산 △생명안전공원 운영·관리 및 추모 행사 시행 △피해자 심리·생활 안정 및 사회 복귀 등 지원 등이다.

재단이 중점적으로 진행하는 사업 중 하나가 '청소년 지원'이다.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수학여행이나 외부 활동을 할 때 안전 교육을 하거나, 청소년의 의식을 향상하기 위한 안전 문화 체험 등 다양한 지원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영석 아빠와 함께 만난 단원고 2학년 9반 윤희 엄마 김순길 씨는 "가족들이 재단을 만든다고 했을 때, 많은 부모가 걱정했다. 그동안 가짜 뉴스에 시달려 왔던 터라, 세월호 가족들이 자기들만을 위한 재단을 만드는 거 아니냐는 소문이 도는 것을 우려했다"고 말했다.

그는 "4·16재단은 엄연히 국민 모두를 위한 재단이다. 가족들과 국민들이 힘을 합해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발판을 마련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특히 다음 세대인 청소년들이 건강하게 성장하고 자유롭게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여러 지원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다"고 강조했다.

개신교, 재단 설립에 적극적
안산 지역 교회는 관심 저조

4·16재단은 세월호 가족과 시민이 함께 만드는 비영리 민간 재단이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희생자 304명이 모두 4·16재단 명예이사장에 오른다. 4·16재단 홈페이지 갈무리

세월호 가족들은 재단 출범을 앞두고 4·16재단 국민발기인과 4·16기억위원을 모집하고 있다. 모금을 시작한 지 약 3개월밖에 안 됐지만, 지금까지 300명이 국민발기인으로, 8358명이 4·16기억위원으로 참여했다. 현재까지 모금한 금액은 약 5억 3000만 원이다.

짧은 시간에 적지 않은 인원이 참여한 것을 보고, 모금·모집을 담당하는 영석 아빠는 걱정을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언론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는데도, 단기간에 생각보다 많은 분이 참여해 줬다. 하지만 여전히 목표치에는 부족한 상황이다. 지난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위해 시민 700만 명이 서명에 동참해 줬다. 이번 재단 설립에도 많은 시민이 동참해 주리라 믿고 있다"고 말했다.

'4·16기억위원'은 재단 창립 기금 후원자로, 이후 4·16생명안전공원 완공 시 기념비에 이름이 새겨진다. '발기인'은 4·16기억위원 중 100만 원 이상 후원한 회원이다. 창립총회에서 회원으로서 의결에 참여할 수 있다.

세월호 가족들은 156가정이 각각 500만 원씩 출연 기금을 내놓았다. 엄마‧아빠들은 모두 자기 이름 대신 자녀들을 가족발기인 명단에 올렸다. 희생된 아이들 역시 대한민국이 안전을 중요하게 여기고 생명을 존엄하게 여기는 사회로 나아가길 원하리라고 부모들은 생각했다.

4·16기억위원 중에는 희생자 친구들도 있다. 아르바이트해서 모은 돈, 명절에 받은 세뱃돈을 후원하고 4·16기억위원이 되었다. 시민단체 간담회, 교회 기도회에서 세월호 가족들을 만난 뒤 선뜻 만 원, 오만 원짜리 지폐를 꺼내며 후원에 동참하는 이들도 있었다.

윤희 엄마는 가족들이 지방에 갈 때마다 버스를 몰아 줬던 운전기사 한 분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엄마들이 기억위원이 돼 달라며 약정서를 건넸을 때, 그분이 거절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자신은 발기인이 되겠다는 것이다. 그 자리에서 100만 원을 약정해 줬다. 그런 분이 한두 명이 아니다. 후원 액수를 떠나 너무 감사하고 소중하다"고 말했다.

영석 아빠는 광화문광장에서 특별법 제정을 위해 40일간 단식한 방인성 목사, 광장에서 2년간 천막 카페를 운영해 온 양민철 목사(희망찬교회)를 떠올렸다. 그는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했던 분들이 지금까지도 세월호를 잊지 않고 힘을 실어 주고 있다. 이분들 덕에 가족들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영석 아빠 오병환 씨는 작은 교회 목사와 교인이 재단 설립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세월호 가족들은 대형 교회 목사들이 남긴 상처를 작은 교회 목사와 교인들이 가족들과 함께하면서 치료해 주는 것 같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영석 아빠는 4·16재단 설립에 개신교가 적극 동참하고 있다며 고마워했다. 지난 4년간 팽목항, 안산 합동 분향소,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가족들을 위해 기도해 줬던 많은 작은 교회 목사와 교인들이 발기인과 기억위원으로 동참하고 있다고 했다. "참사 초기 대형 교회 목사들이 막말로 가족들에게 대못을 박았다. 그렇지만 지금은 작은 교회 목사와 교인들이 그때 그 상처를 치료해 주는 것 같다"고 했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윤희 엄마는 요새 매주 교회에 나간다. 많은 교회에서 4·16재단에 대해 설명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는 "처음에는 개신교에 대한 이미지가 안 좋았다. '세월호 참사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한 사람도 목사 아니었나. 그런데 이번에 설명회를 다니면서 좋은 목사와 교인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정작 안산 지역 교회들은 세월호를 잊은 것 같다고 했다. 영석 아빠는 "안산에 있는 중·대형 교회는 세월호에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가슴이 아프다. 주님은 아픈 이들을 위로하고 함께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우리 지역에 있는 유명한 교회들은 왜 그러지 않는지 모르겠다. 이제부터라도 이분들이 세월호에 관심을 갖고 재단 설립에 동참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국민발기인/4·16기억위원 신청하기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