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이 취업, 주거, 부채 문제 등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교회가 청년들을 돌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출구가 안 보인다." 설 연휴, 고향에서 만난 고등학교 동창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대학 졸업 이후 줄곧 공무원 시험에 매달렸지만 합격선을 넘지 못했다. 어느새 나이는 서른 중반이 됐고, 부모님 건강까지 좋지 않아 걱정만 한가득이다. 한때나마 교회에서 위로를 받았지만, 어느 순간 발길을 끊었다.

"교회가 싫어서가 아니라, 그냥 나가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되더라. '왜 나만 안 될까'라는 생각도 들고…."

청년실업률이 높다는 말은 이제 아무런 자극도 되지 않는 세상이 됐다. 오늘날 청년들은 취업 문제만 겪는 게 아니다. 주거·부채·결혼 등 여러 문제를 안고 산다. 청년 문제는 사회구조와 맞닿아 있다는 분석이 쏟아지지만,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한국 사회에 발을 딛고 사는 교회 청년들도 마찬가지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사회봉사부(오상열 총무)가 2월 22일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에서 '한국교회와 청년 복지'를 주제로 두 번째 세미나를 개최했다. 양희송 대표(청어람ARMC)와 임왕성 목사(새벽이슬)가 주제 강사로 나섰다. 70여 명이 참석해 세미나실을 가득 채웠다.

"믿으면 잘된다는 말, 이제 그만"
지역 교회, 청년 주거·부채 관심 필요

요즘 청년은 '자기 개발 세대'로 불린다. 대학은 취업을 위해 스펙을 쌓는 곳이다. 생존주의와 성공주의 담론이 동시에 작용하고 있다. 양희송 대표는 "<88만 원 세대> 저자 우석훈‧박권일은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들어 기성세대에 저항하라'고 했지만, 88만 원 세대는 수험서와 영어 공부를 하는 '자기 개발 세대'가 됐다"고 표현했다.

양 대표는 교회가 청년 문제를 시혜적으로 해결해 줄 수 없다고 했다. 새로운 담론을 창출해 직간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봤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 안에서 '청년 자치'가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그동안 교회 안에서 청년을 자치의 주체가 아닌 교육의 대상으로 인식해 왔고, 주체적 인간형보다 순응형 인간형을 더 많이 양산했다고 했다.

교회라서 유리한 지점이 분명 있다. 양 대표는 "우석훈은 오늘날 2030 세대들에게 가장 결핍된 게 '연대감'인데, 이 현상에서 유일한 반례가 강남의 대형 교회 청년부라고 했다. 사교 집단 같다는 여지를 남겼지만, 한국교회는 연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살려 보아야 한다"고 했다.

적절한 신학적‧목회적 틀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양 대표는 "청년 문제를 세대 간 갈등으로 몰아갈 게 아니라, 공공신학과 선교적 교회론을 통해 현실적으로 시도할 필요가 있다. 지역 교회와 기독 단체가 나서 청년들의 주거, 학비, 부채 탕감 문제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며 선순환의 연대를 형성해야 한다"고 했다.

세미나에서는 교회가 청년의 자치를 확보해 주고, 번영신학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사진 왼쪽부터 양희송 대표, 성석환 교수, 임왕성 목사. 뉴스앤조이 이용필

부흥을 거듭해 온 한국 개신교는 대한민국 1대 종교로 자리매김했다. 사회적으로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지만, 가난한 시대에 형성된 기복신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임왕성 목사는 한국교회가 모든 문제를 기도와 믿음의 문제로 치환하려는 단순 논리주의 안에 갇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무조건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면 다 해결된다는 주술적인 이야기를 반복한다. 오늘날에는 청년들이 아무리 예수를 잘 믿어도 성공하기 힘들다. 그런 청년들에게 믿으면 잘된다고 말하면 무슨 생각을 하겠느냐"고 했다.

번영신학과 영광신학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성육신과 자기 비움의 신학이 필요한 때라고 했다. 임 목사는 "약자·빈자·패자를 위한 신학이 필요하다. 청년은 사회 속에서 약자·빈자·패자에 속한다. 복음이 어떻게 저들을 끌어안고, (사회구조) 문제를 뛰어넘을 수 있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와 달리 사회 문화에 대한 청년들의 인식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임왕성 목사는 교회가 청년들에게 성과 동성애 문제에 과도한 잣대를 들이대서는 안 된다고도 했다. 이러한 잣대가 성서와 예수의 삶으로부터 온 건지 아니면 시대적‧상황적 전통과 교리에서 온 건지 잘 살펴야 한다고 했다.

"사회·정치 문제 신학으로 조명해야
좋든 싫든 교회가 떠안아야 할 문제"

주제 강의가 끝난 뒤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지금의 청년 문제가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교회가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지 등 다양한 질문이 나왔다.

질의응답 사회자로 나선 성석환 교수(장신대)는, 청년 문제의 원인은 복합적이라고 진단했다. 고용 없는 성장, 세대 간 갈등, 청년들의 문제의식 부재 등을 꼽으며, 교회가 사회·정치 문제를 신학으로 조명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했다.

양희송 대표는 한국교회가 청년 세대의 위기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양 대표는 "좋든 싫든 청년 세대 문제를 교회가 떠안아야 한다. 교회가 청년 자치를 위한 발판을 마련해 주고, 학습과 실천을 병행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임왕성 목사는 위로받기를 원하는 청년들에게 뭔가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임 목사는 "교회 간증을 보면, 소위 성공한 사람만 강대상에 세운다. 그렇지 않은 청년은 열패감에 시달린다. 자기가 잘못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청년들을 위로해 줄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적 기업 대표를 맡고 있는 기독 청년들이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김경환·도현명·이경황 대표. 뉴스앤조이 이용필

이날 세미나는 1·2부로 나뉘어 진행됐다. 2부 시간에는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는 기독 청년 도현명(임팩트 스퀘어)·김경환(프로젝트 비욘드)·이경황(오파테크) 대표가 나와, 소셜 벤처를 창업하게 된 계기, 성공과 실패 사례 이야기를 간략하게 전달했다.

이들은 "사회적 기업을 꿈꾸는 기독 청년들이라면 소명이 있는지,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사업을 할 의향이 있어야 한다. 할 일을 못 찾아서, 개인의 성공만을 위해서 뛰어들면 안 된다"고 말했다.

한국교회와 청년 복지를 주제로 한 세미나에 대한 관심은 뜨거웠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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