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이템, 좋은 프로젝트, 새로운 발상, 그들을 위한 첫 발걸음, 그들을 위한 헌신, 그렇게 '그들'을 위해 시작한 수많은 기독교 기반 NGO(비정부기구, 이하 FBO. Faith-Based Organization)의 개발 프로젝트…

얼마 전 후배와 식사하는 중에 나눈 대화다.

"선교사님. 우리 교회가 후원하는 재단에서 아프리카에서 진행하고 있는 사업 아시죠?"

"응. 잘 알지."

기독교인이면 대부분 알고 있는 그 사업은 표면적으로는 정말 건강하게 잘 진행되는 듯했다. 하지만 무분별한 사업 확장 때문에 내부적으로 여러 가지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NGO 관련 사업자들은 대부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거기서 자꾸 저보고 오라고 해요, 사람 없다고. 그런데 화가 나요. 젊을 때 좋은 일 해라. 하나님이 기뻐하실 거다. 가면 다 준비되어 있다. 그렇게 말하는데. 결국 자기들(어른들)이 싸 놓은 똥 나(젊은 사람)보고 치우라는 거잖아요."

조금 과격한 표현이었지만 대충 그림이 그려져서 웃고 말았다. 많은 교회와 기관, 선교 단체가 제3세계에서 효과적으로 예수님 사랑을 전하려고 NGO를 설립하거나, 현지에 한국 NGO의 지부 형태로 단체를 설립해 운영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NGO가 알아서 하겠지?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 기부 문화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많은 기업이 사회 공헌 파트를 조직하고,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외치며 아름다운 일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이는 분명 좋은 일이다.

나 역시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20대부터 몇몇 단체를 통해 1:1 아동 결연을 시작했다. 오랜 시간, 내가 굶을지언정 단 한 번도 그들에게 보내는 후원금을 끊은 적이 없을 정도로 열정을 가지고 참여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살면서 NGO 혜택을 입는 현지인도 보고, 그들을 관리한다는 현장 직원도 보고, 그들과 함께 지낸다는 해외 파견 직원 등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고, 다양한 관점에서 개발 현장을 보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중단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우리보다 어려우니까 무조건 도와야지'식으로만 생각하며 접근했던 단순함이 이들을 더 어렵게 만들 수 있으며, 후원금이 우리가 생각했던 대로 다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후원을 멈춘 가장 큰 이유는 나 자신의 태도와 마음가짐에서 문제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누군가를 돕고 있어. 내 마음으로 낳은 내 자식들이 지구 반대편에도 있어.' 그렇게 스스로 만족하고 뿌듯해했다. 하지만 그 후원금이 어떻게 전달되어 사용되는지, 후원금을 받은 수혜자에게 이롭다고 생각한 것 외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NGO가 알아서 하겠지. 난 돈을 보냈으니 내 할 일은 다 한 거야.' 그렇게 자기 만족감을 누리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내가 너무 무책임해 보였고, 위선적으로 느껴졌다.

개발 NGO는 대부분 선한 목적을 가지고 시작됐다. 그 광범위한 NGO 안에서도 기독교를 기반으로 시작된 FBO(Faith-Based Organization)를 바라보는 솔직한 마음을 나누려 한다. 우리가 모두 잘 아는 기아대책, 굿네이버스, 월드비전, 컴패션, 열매나눔재단, 아프리카미래재단, 남북나눔운동 등은 모두 FBO다.

시작은 제3세계에 있는 어려운 이웃을 예수님 사랑으로 돌보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많은 후원자를 모아 동참하게 하는 데 있었다. 좋은 취지이고 좋은 방법임에는 조금도 의심이 없다. 단 NGO로 사업을 진행할 때는 지혜로운 원칙들을 세울 필요가 있다.

우선 어려운 사람을 무조건 도와야 한다는 생각은 잠시 내려놓고, 조금 더 넓은 시야로 이 글을 봐 주기를 소망한다. 특히 '우리가 전쟁 이후에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도 도와야지'식의 접근은 지양해야 한다. '우리가 그랬으니까, 모두가 그럴 것이다'식의 접근은 너무 큰 모험이자 위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긴급 구호 형태로 지원하는 것은 나도 적극 찬성한다.

실패와 실수부터 인정해야

어떤 문제든지 해결을 위한 첫 단계는,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는 것이다. 보통 사업을 일으키거나, 투자를 받고 진행하는 사람은 어떻든지 좋은 결과를 만들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문제가 발생할 때 최대한 드러나지 않게 해결하려는 마음이 있을 수 있다. 인간의 본성이라 생각한다. 문제를 드러내는 것을 치부를 드러내는 것이라 생각하며 조용히 해결하려 들 수도 있다. 언제나 이럴 때 문제가 커지는 법이다.

믿음과 은혜로 덮어 와서 더 확장된 문제를 후배(또는 후손)에게 물려준 여러 단체의 사례와 선교 사업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부족한 현지 조사, 그들의 문화와 전통적인 습관을 무시하고 우리 세계관을 기준으로 시작한 사업들 실패 사례는 수없이 많다.

얼마 전 ODA워치에서 처음으로 '실패 포럼'을 개최했다. KOICA(한국국제협력단)을 비롯한 많은 개발 NGO가 참여해 솔직한 사례들을 발표했다. 용기 있는 시도였고,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우리가 좋은 뜻을 품고 시작한 수많은 사업이 효과를 내려면 분명히 실패를 다루고 점검해야 하기 때문이다.

잘못은 잘못이라 말해야 한다. 실수를 실수라 인정해야 한다. 잘된 사례만 광고해 후원금을 모으는 것은 FBO 취지에 어긋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사람이 중요하다

나는 개발이나 선교를 할 때 '지속 가능하느냐'를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속 가능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 이를 사업소를 유지하는 것이 잘하는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하면 곤란하다.

대부분의 NGO은 좋은 뜻을 품고, 좋은 아이템을 가지고 사업을 시작한다. 문제는 현장에서 그것을 얼마나 실현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보다 그럴 사람이 있느냐의 문제임을 인지해야 한다.

FBO를 비롯한 수많은 NGO가 가장 어려움을 겪고 있는 문제는 바로 사람이 없다는 것이리라. 오랫동안 일할 믿을 만한 사람이 없다. 제3세계에 파견 나간 직원들은 대부분 짧게는 1년, 길게는 3년 정도 일하고 다음 직원에게 일을 인계한다.

인수인계 기간도 짧다. '떠나면 뒤에 오는 사람이 알아서 하겠지. 나도 그렇게 고생했으니까' 같이 생각하는 직원이 거의 없다고 믿어 의심치 않지만, 그런 직원도 분명 있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한다.

국내에서 아무리 재정을 투명하게 공개해도 현장에서 후원금을 수령해 사용하는 현지 직원이 정직하지 못하면 말짱 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 것을 하나하나 감시하기에는 인력이 부족하다. 구조적으로도 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개도국에서는 선진국처럼 기계로 프린트한 영수증을 받는 것조차 어렵다. 돈이 어디서 나가는지, 진짜 구입해서 제대로 전달했는지 면밀하게 확인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한국말 잘하는 외국인이 있다고 하자. 그는 한국에서 10년 정도 살았다. 대화해 보니 말하는 것도 어느 정도 자연스럽고 한국 문화와 생활도 잘 아는 듯하다. 그러나 아무리 그가 언어를 잘하고 한국에 오래 있었어도 그가 우리를 모두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릴 적부터 자라오면서 얻게 되는 환경적인 요인과 습관, 역사적인 전통을 모두 습득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대화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나눌 수 있는 대화의 깊이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아무리 선교지 현장에서 오래 있어도 그들에게는 여전히 외국인이다. 떠날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으며, 자신들을 모두 이해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곳에서 그들을 위한 수많은 프로젝트를 하면서 거기에 어마어마한 돈이 흘러가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현지 직원들에게 새로운 한국 직원은 나쁘게 말하면 '봉'이다. 좋게 말하면 자신들에게 월급을 주는, 직위만 높은 '갑'일 뿐이다. 사람이 없으면 프로젝트가 아무리 훌륭해도 소용없다. 무슨 일이든 일단 시작하면 하나님께서 보내 주시고 채워 주신다는 신앙은 필자와 거리가 멀다.

후배의 표현을 빌리자면, 똥은 자기가 싸 놓고 하나님보고 치우라고 하는 것 같다. 믿음의 문제라 지적하면 할 말도 없다. 실제로 그렇게 시작해서 잘 진행되는 사례도 있다. 하지만 오히려 얼마 안 가 무산되거나, 현지인들에게 오히려 안 좋은 사례를 남긴 경우도 많이 봤다. 우리는 늘 잘된 사례들만 접하기 때문에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잘하고 있는 사람들 기를 죽이고, 잘못한 것을 들추어내어 비판하려고 이 글을 쓰는 게 아니다. 이 글의 목적은 시행착오와 실수를 줄여서 더 좋은 결실을 맺는 데 있다. 결국 그들을 위해 시작한 일 아닌가.

물음표를 던지자

"안녕하세요. 저는 아프리카 대륙 동쪽에 위치한 케냐에 살고 있는 교육공무원입니다.

1년에 2000번, 제가 기부 단체나 원조 개발자와 갖는 회의의 빈도입니다. 휴일까지 회의를 한다 치더라도 하루에 5번이 넘는 회의를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도 우리 아이들 10명 중 하나는 굶주림과 사소한 질병으로 5살을 넘기지 못하고 죽습니다.

제가 들인 시간과 비용은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지난 50년 동안 선진국 및 서방 국가에서 해외 원조에 투자한 금액은 2조 3000억 달러. 하지만 여전히 12센트짜리 약을 구하지 못해 말라리아로 죽는 사람들이 있고, 개발도상국 아이들 중 약 10%는 굶주림과 사소한 질병으로 만 5세를 넘기지 못하고 사망하고 있습니다.

안타깝고 의아한 일입니다. 그 인력과 시간과 비용은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월드뱅크의 2006년 보고 자료에 따르면 후진국의 에이즈 퇴치를 위한 자금 절반가량이 의약품 암시장, 터무니없게 높게 책정된 운송료, 유령 고용인의 월급 등으로 유용됐다고 합니다.

이 프로젝트뿐 아니라 기부와 원조의 과정은 구조적 문제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우선, 기부와 원조가 이루어지는 곳은 도움을 받을 현지에서 멀리 떨어진 선진국의 도시입니다. 기관의 유지비와 인건비 등, 간접 비용이 차지하는 부분이 커서 예산의 일부만이 실제 원조에 쓰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상 지역에 재해나 분쟁이 일어나면 그 지역을 위해 일하던 외국인은 그곳을 떠나게 됩니다. 임기를 마친 경우에도 마찬가지이지요. 그 땅에서 평생을 살아갈 사람이 아니라면, 장기적인 효과는 보장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원조 기구의 인력을 무조건 줄이거나 공터에서 사무를 보게 할 수는 없고, 분쟁과 내전의 피해를 직접적으로 겪고 있는 위험한 지역에 무턱대고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그렇다면, 원조는 안 하느니만 못한 일일까요?

이제까지의 원조 방식은 그 대상을 무지하고 무력하고 아무 발전 가능성이 없는 존재로 간주해서 일방적으로 원조해 주는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개발도상국 사람들이 손쓸 도리 없이 무지하고, 그 당이 발전 가능성을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의 의지, 그들의 땅이 가진 가능성을 최대한 활용할 줄 모르는 기존의 원조 방식이야말로 무지의 소치입니다.

최대한 현지 노동력을 활용하여 자생력과 자긍심을 키우기보다는 재빨리 성과를 내기 위해 자신들의 방식대로 분배하고 건설하는 원조 방식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입니다. 이러한 무지를 깨지 않는 한, 원조는 계속해서 블랙홀 속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무지를 깨고 '지금의 약자'인 이들과 그들의 터전의 가능성을 연구하고 활용한다면, 원조는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열쇠가 될 것입니다."

- 국제아동돕기연합, <힐 더 월드>(문학동네)

그렇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수혜자가 생각하는 것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위의 현지 공무원 말처럼 그들도 다 알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어쩌면 누군가의 도움 없이도 충분히 잘 살 수 있었던 과거를 잊고, 오랜 시간 형성된 '우리는 늘 그래 왔으니까 도움을 받아야만 해'라는 생각과 세계관이 그들의 의지를 무뎌지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 게다가 오랫동안 수혜자 입장에 있으면서 정말 많은 경험과 사례를 접했을 터인데, 서방 NGO를 다루는 방식에 도가 트지 않았을까.

가시적인 성과에 집착하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관 교육과 그들 스스로 움직이게 하는 '보이지 않는' 운동(movement)에 조금 더 지혜를 모을 수 있기를 바란다.

이 글이 NGO를 통해 제3세계에 들어가 하나님나라의 확장을 위해 헌신하려는 수많은 교회와 선교 단체, 재단 리더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그들의 눈으로 바라보는 현장을 이해하는 데 조금이라도 참고가 되길 소망하는 마음이다. 지혜롭게 도울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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