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도부터 북한 선교를 했던 임현수 목사는 현재 억류된 상태다. (우리민족끼리TV 영상 갈무리)

1996년도부터 북한에 드나들며 대북 지원 사업을 벌였던 임현수 목사. 그는 지난 1월 31일 평양 방문 후 소식이 끊겼다. 6개월 후 임 목사는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7월 30일 공개한 기자회견 영상에 등장한 것이다. 그는 "공화국의 최고 존엄과 체제를 중상 모독하고 국가 전복 행위를 감행했다"는 내용의 기자회견문을 읽어 내려갔다. (관련 기사: 북한, 억류 중인 임현수 목사 기자회견 공개)

임 목사는 8월 2일 평양에 있는 봉수교회에도 나타났다. 북한 우리민족끼리TV는 임 목사가 일요 예배에서 속죄했다면서 다음 날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에서도 임 목사는 "저는 커 가면서 민족 복음화와 예수 민족화라는 극단적인 신앙관으로 세뇌되었고, 고난의 행군 시절에 목격한 북한의 참상이 지도부의 잘못 때문에 비롯되었다는 비판을 했습니다. (중략)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수령님은 정말 소박하고 겸손하고 인간적인 풍모를 지닌 분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라고 했다.

현재는 억류되어 있지만, 임현수 목사는 북한 선교의 '큰손'으로 통했다. 평소 임 목사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가 대북 지원에 재정을 아끼지 않은 결과 북한 당국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고 했다. 주 활동 무대는 나진·선봉 경제특구(나선특구)였다. 그가 사역했던 토론토 큰빛교회 홈페이지에 있는 2013년 8월 목회 칼럼을 보면 임 목사의 대북 지원 사업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전략) 북한 일정을 잘 마쳤습니다. 끝없는 발걸음이 이어져야 할 땅입니다. 3차 양로원 건립은 멋지게 완성되어서 금년 11월 입주 예정입니다. 목욕탕도 반은 우리 교회가 짓고 반은 나진시에서 짓는 어려움 속에서, 일단 마무리 작업에 들어가 10월 개장 예정입니다. 4계절 비닐하우스 3동을 짓고, 자연 농법 양계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트레이드 쇼(일종의 마케팅 전시회 – 기자 주)를 통해 사무실 장비들과 자동차를 구입하고 본격적인 비즈니스 선교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임 목사는 나선특구를 넘어 평양을 비롯한 북한 곳곳에도 지원 사업을 벌였다. 극동방송은 3월 9일 뉴스에서 임 목사의 장기 억류는 북한에도 좋지 않다며, 그가 평양에 대규모 영어·컴퓨터 강습소와 500명 규모의 가발 공장을 세운 사실을 강조했다. 식품업·어업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교계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 정부와 체제를 비판했던 임 목사의

교계 전문가들, '북한 붕괴설'에 입각한 임현수 목사의 선교관 지적

대북 지원 사업을 하면서 북한 당국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던 임현수 목사이기에, 그의 억류는 수긍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지난 3월 채널A도 "북한에서 VVIP로 대접받던 임현수 목사를 당국이 갑자기 억류한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교계 북한 전문가들은 의외로 간단하고 일관되게 답변했다. 북한 정부와 체제를 비판했던 그의 발언들이 문제가 된 것 아니겠냐고 했다.

임 목사가 인도한 집회나 작성한 칼럼을 보면, 그의 평소 대북관이 담긴 발언이나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임 목사의 기자회견 후, 국내 언론들이 주목한 건 2013년 11월 미국 휴스턴의 한 교회 부흥회에서 그가 했던 발언이었다. 당시 집회에서 임 목사는, '김정은의 폭력과 공포정치에 신음하는 동포들을 구원하자', '북한은 하나님의 시간에 맞추어 곧 붕괴한다'는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1월 토론토 큰빛교회 홈페이지에 게시한 '잊혀진 통일의 꿈 되살리자'라는 칼럼에서는, 북한 주민들을 "가난한 심령들이고, 평생을 속아 살아 온 허망한 마음을 메꿀 수 있는 대안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했다. 임 목사는 북한 주민들에 대한 측은지심이 있으면서도 김정은 정권에는 비판을 감추지 않았다.

교계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이 임현수 목사의 체제 비판 발언들을 주목해 왔을 것이라고 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활동하는 하나누리 대표 방인성 목사는, "거대한 지원 사업을 통해 북한에 영향을 끼쳤던 임 목사라도 김정은 체제를 비판하면 북한 내 활동을 제약받을 수밖에 없다. 신중치 못한 비판은 사역의 진정성을 훼손할 위험이 있다. 북측은 임 목사가 숨은 의도를 가지고 접근했던 게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고 했다.

한반도평화연구원 윤환철 연구위원도 공권력의 필연적 반응을 염두에 두어야 했다고 말했다. "임현수 목사의 선교 사역이 아무리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진행된다 하더라도, 북한 정부는 자신들의 정당성을 위협하는 인물을 좌시할 수 없다. 북한이 자신들만의 법 체제를 구축한 주권 국가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임 목사의 발언들에서 보수 기독교의 북한 선교관도 볼 수 있다고 했다. 북한 체제와 정부를 부정하는 '북한 붕괴론'과 북한 주민의 개종을 염두에 둔 '복음 통일'이다. 부자 나라가 가난한 나라에게 재원을 쏟아부으면서 정부의 호의나 개인 회심 등의 열매를 바라는 선교 방식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선교 방식은 북한의 가난한 이들을 섬기는 모습으로 보이지 않고 일종의 기독교식 정복으로 비칠 수 있다고 했다. 이 둘을 결합하면 마치 기독교 국가를 세우려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니 북한 정부 입장에서는 달가워할 리 없다.

그러나 역시, 북한이 과한 처사를 내린 것도 자명한 사실이다. 기독교통일학회 명예회장 주도홍 교수는 "인도주의적 지원 사업을 벌이면서 북한을 위해 많은 걸 희생한 임 목사에게 북한이 너무 엄한 처우를 했다. 이데올로기가 다른 사람들을 대상으로 선교 사역을 보고하고 후원금을 받는 과정에서 북한 정부의 비위를 거스르는 말을 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대북 사업하는 모든 사람이 공산주의자가 될 수도 없는 것 아니냐. 남북통일을 위해서라도 기준을 정해 서로를 용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현재 북한은 시장경제를 점진적으로 도입하면서 변화하는 중이다. (유튜브 영상 갈무리)

북한 시장경제 점진적 증가…국가 통제 수단으로 이용했을 수도

임현수 목사의 억류와 기자회견은 단지 임 목사의 발언 때문이라고 볼 수는 없다. 교계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 정부가 체제·정권 유지를 위해 임 목사를 이용하는 것 같다고도 했다. 북한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전문가는, 현재 북한에 점진적으로 도입되는 시장경제가 체제 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고 했다.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에 시장경제가 활성화하고 대외적으로 개방이 일어나면 주민들의 인식은 필연적으로 변한다. 이런 시국에 정부가 적절히 통제하지 않으면 정권 유지는 힘들다는 것이다.

실제로 북한의 경제는 상당 부분 변하고 있다. 시사 주간지 <시사인>은 8월호 커버스토리에서, 북한 경제에 등장한 신흥 자본가 '돈주'를 소개하며 북한 경제의 변화를 짚었다. 돈주는 북한 사회주의 체제 안에서 나름의 생존 방식을 통해 자본을 축적한 사람들을 뜻한다. 북한 경제가 어렵던 90년대 중반, 북한의 국가 경제가 공급하지 못하는 생필품을 개인이 공급하는 (자유) 시장이 생겨나면서 돈주들은 자본을 확보할 수 있었다. 2000년대에는 국가 경제가 미치지 못하는 산업 부분에 개인 기업들이 생겨났으며, 이 기업들을 기반으로 돈주는 시장경제를 움직이는 개념인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북한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다.

북한이 시장을 확장하고 대외에 개방하는 과정에서, 늘어나는 외부 투자자들을 통제할 의도로 임 목사를 본보기 삼은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다. 한 교계 북한 전문가는, "많은 사업을 유치하려면 대외 인사들과 사업가들을 초청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북한 정권에 불리하게 발언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면 체제 유지에 좋지 않다. 이를 위해 북한이 임 목사를 하나의 비즈니스적 표본으로 삼은 것일 수 있다"고 했다.

현재 임현수 목사의 가족들과 토론토 큰빛교회는 그의 조속한 송환을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고 있다. <자유아시아방송>은 7월 30일 임 목사 가족들의 성명 내용을 보도했다. 큰빛교회의 리사 박 대변인은 가족들을 대신해, 북한을 사랑하기 때문에 인도적 차원의 지원 사업을 한 임 목사의 송환을 요청했다. 그는 동정심이 많고 너그러운 사람이라면서, 임 목사의 조속한 석방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호소했다.

임현수 목사에 대한 한국교회의 움직임은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가 캐나다 시민권자라 국내 기독교인들이 섣불리 나서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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