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3월 1일 오후 6시 명동성당에서 3.1절 57주년 기념 미사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3.1 민주 구국 선언'’이 발표됐는데 내용은 유신 정권을 반대하며 민주화와 통일을 호소하는 것이었다.

이 선언에 참여한 이들은 김대중, 윤보선, 정일형 등 정치인들과 문익환, 함석헌, 문동환, 서남동, 이해동, 안충석, 김택암, 장덕필 등 개신교 목사, 안병무, 이문영, 이우정 등 해직 교수, 함세웅, 문정현, 신현봉, 김승훈 등 가톨릭 신부들이었다.

뒤늦게 이 사실은 접한 박정희 정권은 선언 발표 날 저녁부터 이 선언에 관여한 이들을 투옥했고 이후 재판을 통해 징역과 자격정지 등의 유죄판결을 선고한다. 그리고 37년 뒤인 지난해 7월 3일 서울고법 형사8부(이진규 부장판사)는 전원 무죄 확정 판결을 내려 사면 복권이 이뤄졌다.

▲ 지난 3.1절 오후 2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9옥사 앞에서 '3.1절 95주년 및 3.1 민주 구국 선언 38주년 무죄판결 기념 3.1 민주 구국 선언 기념 대회'가 열렸다. 이번 행사는 김대중평화센터, 늦봄문익환목사0주기기념사업위원회,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센터,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주최했다. (사진 제공 <에큐메니안>)

지난 3.1절 오후 2시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이를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당시 참여했던 대부분의 인사들이 고인이 된 가운데 문동환, 이해동 목사와 함세웅 신부 등이 함께 자리했고 "3.1절 95주년 및 3.1 민주 구국 선언 38주년·무죄판결 기념 3.1 민주 구국 선언 기념 대회"를 개최했다.

NCCK인권센터 소장 정진우 목사의 사회로 시작된 기념 대회는 이재정 전 통일부장관의 개회사와 이희호 여사의 격려사, 문성근 씨의 3.1 민주 구국 선언문 낭독, 각 정당 대표 인사, 함세웅 신부와 이해동 목사의 기념사, 노래 공연, 성명서 발표와 만세 삼창 등으로 이어졌다.

▲ 좌측부터 사회를 맡은 NCCK인권센터 소장 정진우 목사, 3.1 민주 구국 선언문을 낭독한 문성근 국민행동 상임위원, 기념사를 맡은 함세웅 신부, 이해동 목사 (사진 제공 <에큐메니안>)

성명성 낭독은 3.1 구국 선언 당시 고초를 겪었던 주민교회 교우들을 대표해 주민교회 윤석민 교우와 그 사건을 통해 구속자가족협의회(현 민가협)의 활동이 고양되었던 점을 고려해 민가협 김현주 간사가 낭독했다.

대회 참가자들은 성명서를 통해 현 공안 기관의 행태를 강도 높게 비판하며 "'이 나라는 민주주의 기반 위에 서야 한다'고 외치던 38년 전의 외침대로 민주주의가 완성될 때까지 전진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후 만세 삼창에 앞서 3.1 구국 선언에 참여했던 문동환 목사는 "3.1 구국 선언은 전태일 열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소회하면서 "앞으로 이 자리를 통해 한반도와 세계 평화가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참가자들은 마지막으로 "자주 독립 만세, 민주주의 만세, 민족 통일 만세"를 외쳤다. (사진 제공 <에큐메니안>)

3.1 민주 구국 선언 38주년 및 최종 무죄판결 기념 성명서

오늘은 일제의 폭압에 항거하여 일어난 3.1운동 95주년이 되는 날이다. 또한, 3.1절을 맞아 자주독립의 성전에서 희생된 순국선열의 정신을 계승하여 유신 독재의 긴급조치 9호라는 폭거에 맞서 '자유민주주의 만세'를 외친 3.1 민주 구국 선언 38주년이 되는 뜻 깊은 날이기도 하다.

3.1 민주 구국 선언문은 국민주권의 원칙을 천명하고, 재벌 위주, 외세 의존적 경제 입국론의 허상을 폭로하였으며, 나아가 모든 질곡의 근원으로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이란 찬란한 미래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말 그대로 나라를 구한다는 '구국'의 구체적 청사진을 제시한 불명의 선언이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은 민주적으로 양심적인 세력들이 치열한 고민과 자기 성찰을 통해 밝힌 찬란한 조국의 미래에 대해 한마디로 '정부 전복 선동'이라 폄훼했다.

3.1 민주 구국 선언 이후 관련자들은 '반정부 선동'으로 옥고를 치뤘다. 적게는 1년에서 길게는 5년까지 20여 명의 민주 인사들이 고문과 가혹한 형벌 속에서 고통받았다. 공안 기관과 검찰은 사건을 조작했으며, 법원은 이 무고한 이들에게 중형을 선고하였다. 한마디로 '사법부'가 권력의 시녀로 전락한 것이다. 비록 37년이 지나 작년 재심 법정에서 전원 무죄가 선고되고, 후배 법관이 판결문을 통해 '사과'의 말을 전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당시 사건을 조작하고 확대하여 정권 안위에 도구로 악용한 '가해자'들은 권력의 중심에서 '호위호식'하고 있음을 우리는 똑똑히 알고 있다.

지금도 권력의 정점에 서 있는 그들의 모습은 '김용판 사건'에 '무죄'를 선고하고, '강기훈 무죄'에 '항소'하며, '증거 조작'으로 간첩을 만들면서도 희희낙락하고 있는 오늘날 국정원과 사법부의 미래 모습이다. 따라서, 우리는 당시 사건 조작 관련자들의 사좌와 반성을 엄중히 촉구하며, 아울러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는 공안 기관에 의한 민주주의 압살과 권력에 굴종하는 사법부, 이를 방관하는 언론의 부당한 행태를 준열히 규탄한다.

3.1운동이 자주독립의 영원한 깃발이라면, 3.1 민주 구국 선언은 이 땅 민주화의 불명의 시대 정신이다. 우리에게 3.1 민주 구국 선언의 정신이 살아 있는 한 민주주의 역사를 거꾸로 되돌리려는 어떤 노력도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이 나라는 민주주의 기반 위에 서야 한다"고 절박하게 외치던 38년 전의 외침대로 우리 모두는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완성되는 그날까지 '국민과 함께' 전진 또 전진할 것을 다짐한다.

2014년 3월 1일
3.1 민주 구국 선언 기념 대회 참가자 일동

3.1 민주 구국 선언문 전문

오늘로 3.1절 쉰일곱 돌을 맞으면서 우리는 1919년 3월 1일 전 세계에 울려 퍼지던 이 민족의 함성, 자주독립을 부르짖던 아우성이 쟁쟁히 울려와서 이대로 앉아 있는 것은 구국 선열들의 피를 이 땅에 묻어 버리는 죄가 되는 것 같아 우리의 뜻을 모아 '민주 구국 선언'을 국내외에 선포하고자 한다.

8.15 해방의 부푼 희망을 부수어 버린 국토 분단의 비극은 이 민족에게 거듭되는 시련을 안겨 주었지만 이 민족은 끝내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6.25 동란의 폐허를 딛고 일어섰고, 4.19 학생 의거로 이승만 독재를 무너뜨려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가슴가슴에 회생시켰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이 민족은 또다시 독재 정권의 쇠사슬에 매이게 되었다. 삼권분립은 허울만 남고 말았다. 국가 안보라는 구실 아래 신앙과 양심의 자유는 날로 위축되어 가고 언론의 자유, 학원의 자주성은 압살당하고 말았다.

현 정권 아래서 체결된 한일 협정은 이 나라의 경제를 일본에 완전히 예속시켜 모든 산업과 노동력을 일본 경제 침략의 희생물로 만들어 버렸다.

눈을 국외로 돌려 보면 대한민국은 국제사회에서 보기도 초라한 고아가 되고 말았다. 한반도에서 UN의 승인을 받은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말도 이제는 지난날의 신화가 되고 말았다. 동서 양 진영 사이에 결정적인 쐐기를 박고 세계사에 새 힘으로 대두한 제3세계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서방 세계만 의존하다가 서방 세계에마저 버림을 받고 말았다.

현 정권은 이 나라를 여기까지 끌고 온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국내의 비판적인 세력을 탄압하다가 민주국가들의 신임을 잃게 된 것을 통탄히 여겨야 하며, 제3세계의 대두와 함께 UN이 변질되었다는 것을 탓하기 전에 긴 안목으로 세계사의 흐름을 쳐다보지 못한 것을 스스로 탓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비원인 민족 통일을 향해서 국내외로 키우고 규합하여 한 걸음 한 걸음 착실히 전진해야 할 이 마당에 이 나라는 1인 독재 아래 인권은 유린되고 자유는 박탈당하고 있다. 이리하여 이 민족은 목적의식과 방향 감각,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잃고 총 파국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서고 있다.

우리는 이를 보고만 있을 수 없어 여야의 정치적 전략이나 이해를 넘어 이 나라의 먼 앞날을 내다보면서 '민주 구국 선언'을 선포하는 바이다.

1. 이 나라는 민주주의 기반 위에 서야 한다.

민주주의는 대한민국의 국시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공산주의 정권과 치열한 경쟁에 뛰어든 이 마당에 우리가 길러야 할 힘은 민주 역량이다. 국방력도, 경제력도 길러야 하지만 민주 역량의 뒷받침이 없을 때 그것은 모래 위에 세운 집과 같다.

그러면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그것은 남의 나라에서 실천되고 있는 어떤 특정한 제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회를 형성한 성원들의 뜻에 따라 최선의 제도를 장만하고 부단히 개선해 가면서 성원 전체의 권익과 행복을 도모하는 자세요, 신념을 말한다.

그러므로 민주주의는 '국민을 위해서'보다는 '국민에게서'가 앞서야 한다. 무엇이 나라와 겨레를 '위해서' 좋으냐는 판단이 '국민에게서' 나와야 한다는 말이다. 그 판단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국민을 위한다는 생각만으로 민주주의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으로 민주주의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명령과 복종을 민주주의라고 착각하는 일이다. 국민은 복종을 원하지 않고 주체적인 참여를 주장한다. 국민은 정부를 감시하고 비판할 기본권을 포기할 수 없다. 그것은 민주주의를 포기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는 긴급조치를 철폐하고 민주주의를 요구하다가 투옥된 민주 인사들과 학생들을 석방하라고 요구한다. 국민의 의사가 자유로이 표명될 수 있도록 집회·출판의 자유를 국민에게 돌리라고 요구한다.

다음으로 우리는 유신헌법으로 허울만 남은 의회정치가 회복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유로이 표현되는 민의를 국회는 법 제정에 반영시켜야 하고, 정부는 이를 행정에 반영해야 한다. 이것을 꺼리고 막는 정권은 국민을 위한다면서 실은 국민을 위하려는 뜻이 없는 정권이다.

셋째로 우리는 사법부의 독립을 촉구한다. 사법권의 독립 없이 국민은 강자의 횡포에서 보호받을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법부를 시녀로 거느리는 정권은 처음부터 국민을 위하려는 뜻이 없다고 보아야 한다.

2. 경제 입국의 구상과 자세가 근본적으로 검토되어야 한다.

경제 발전이 국력 배양에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그렇다고 경제력이 곧 국력인 것은 아니다. 그런데 현 정권은 경제력이 곧 국력이라는 좁은 생각을 가지고 모든 희생시켜 가면서 경제 발전에 전력을 쏟아 왔다.

그런데 그 결과는 어떠한가? 국민경제의 수탈을 바탕으로 한 수출 산업은 '74년, '75년 두 해에 40억 불이라는 엄청난 무역 적자를 내었고, 그 적자 폭은 앞으로 줄어들 가망이 없다. 1975년 말 현재 우리나라의 외채 총액은 57억 8000만 불에 이르렀다. 차관 기업들이 부실 기업으로 도산하고 난 다음 이 엄청난 빚은 누구의 어깨 위에 메어질 것인가?

노동자들에게 노조 조직권과 파업권을 박탈하고 노동자, 농민을 차관 기업과 외국 자본에의 착취에 내어 맡기고 구상된 경제 입국의 경륜은 처음부터 국민을 위하는 것이 아니었다. 국민의 경제력을 키우면서 그 기반 위에 수출 산업을 육성하지 않는 것이 잘못이었다. 농촌 경제의 잿더미 위에 거대한 현대 산업을 세우려고 한 것이 망상이었다.

차관에만 의존한 경제체제는 처음부터 부패의 요인을 안고 있었다. 이대로 나간다면 이 나라의 경제 파국은 시간 문제다. 현 정권은 이 나라를 경제 파탄에서 건질 능력을 잃은 지 오래다. 경제 부조리와 부패는 권력 구조의 심장부에서 발달되었기 때문이다. 사태가 이에 이르고 보면 박 정권은 책임을 지고 물러날 수밖에 다른 길이 없다. 경제 파국을 미연에 방지하여 국제사회에서 아주 신임을 잃지 않도록. 차관 상환의 유예를 차관 국가들과 은행들에 요청하기 위해서라도 정권 교체는 불가피하다는 판단이다.

만약 그럴 겸허와 용기가 없다면 심장이라도 도려내는 심정으로 경제 입국의 구상을 전적으로 재검토하라고 우리는 촉구한다. 실정을 정당화하지 말고 솔직히 승인하라. 국민의 국세 부담력을 무시하고 짜여진 팽창 예산을 지양하라. 부의 재분배를 철저하고 과감하게 실천하여 국민의 구매력을 키우라. 그래야 공산주의의 온상이 되는 부익부 빈익빈의 부조리 현상이 시정되고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회복될 것이며, 북녘 공산 정권에 대해선 민족 통일의 주도권을 잡게 될 것이다.

3. 민족 통일은 오늘 이 겨레가 짊어진 최대의 과업이다.

국토 분단의 비극은 해방 후 30년 동안 남과 북에 독재의 구실을 마련해 주었고, 국가의 번영과 민족의 행복과 창조적 발전을 위해서 동원되어야 할 정신적, 물질적 자원을 고갈시키고 있다. 외국의 군사 원조 없이 100만을 넘는 남북한의 상비군을 현대 무기로 무장하고 이를 유지한다는 일은 한반도의 생산력과 경제력만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더욱 참을 수 없는 일은 우리의 문화 창조에 동원되어야 할 이 겨레의 슬기와 창의가 파괴적으로 낭비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민족 통일은 지금 이 겨레가 짊어진 지상 과업이다. 5000만 겨레의 슬기와 힘으로 무너뜨려야 할 절벽이다.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민족 통일을 저희의 전략적인 목적을 위해서 이용한다거나 저지한다면 이는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민족 통일의 기회는 남과 북의 정치가들의 자세 여하로 다가가질 수도 있고 멀어질 수도 있다. 진정 나라와 겨레를 위한다면 변해 가는 국제 정세를 유지해 가면서 때가 왔을 때 이를 놓치지 않고 과감하게 잡을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이때에 우리에게는 지켜야 할 마지막 선이 있다. 그것은 통일된 이 나라, 이 겨레를 위한 최선의 제도와 정책이 '국민에게서' 나와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대헌장이다. 다가오고 있는 그날을 내다보면서 우리는 민주 역량을 키우고 있는가, 위축하고 있는가?

승공의 길, 민족 통일의 첩경은 민주 역량을 기르는 일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5000만 온 겨레가 새 역사 창조에 발벗고 나서는 일이다. 이것이야말로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틈바구니에서 당한 고생을 살려 민주주의의 진면목을 세계 만방에 드날리는 일이다. 이것이야말로 통일된 민족으로, 정의가 실현되고 인권이 보장되는 평화스런 나라 국민으로 국제사회에서 어깨를 펴고 떳떳이 살게 하는 일이다.

민주주의 만세!

1976년 3월 1일

함석헌, 윤보선, 정일형, 김대중, 윤반웅, 안병무, 이문영, 서남동,

이우정, 문동환, 함세웅, 안병무, 정태영, 김승훈, 장덕필, 김택암, 안충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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