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을 듣고 알고 있었지만 진지하게 복음 앞에 서보지 않았던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 5박 6일 동안 복음 앞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복음을 영화롭게 하라! 이 부르심 앞에 해당되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복음학교를 지원하실 모든 훈련생들을 축복합니다."

복음학교에서 훈련생을 모집하기 위해 낸 인터넷 광고이다. 선배 목사님으로부터 7월 첫 주에 목회자를 위한 복음학교가 '연합과 섬김'을 주제로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선배 목사님은 그 선교단체의 지도자가 신학 경력이 없고 학력도 중졸에 불과한 분이라고 하셨다. 그러나 어떤 신학교육을 받은 분들보다 복음을 잘 전하셔서 목사들도 은혜를 받는다고 했다. 그런 말을 듣자 계급장(?) 떼고 은혜를 받을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고 겸손을 시험할 수 있는 장이라고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와 인터넷으로 그 분의 설교를 동영상으로 들어보았다. 성경 해석은 평범하지만 재미있고 청중을 끄는 대단한 힘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자 나는 그 분에 대한 호기심이 증폭되었다. 그래서 복음학교에 참석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원서모집 기간은 이미 끝난 뒤였고 훈련생 명단도 이미 발표된 후였다. 그러나 집회에 참석하고 싶은 마음은 원서모집 기간에 얽매이지 않았다.

복음학교는 월요일 오전 8시에 시작해서 토요일 오후 8시에 끝나는 5박 6일의 강행군이라고 했다. 강의는 녹음을 할 수 없고, 강의실에서 컴퓨터나 엠피쓰리, 핸드폰은 허용하지 않는다. 지참물로는 침구와 개인 컵이 전부였다. 회비는 은혜를 받은 만큼 하면 된다.

참으로 복음학교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2주를 기도로 준비했다. 원서모집 기간이 끝난 후라 혹시 등록을 거절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복음에 갈급해 있는 마음을 담아 정성껏 편지를 써서 입학원서 앞에 붙였다.

집회가 시작되는 날, 새벽에 일찍 일어나 전날 준비해 둔 가방을 들고 선배 목사님과 함께 2시간에 걸쳐서 둔촌동의 한 교회에 갔다. 도착하니 8시가 좀 못되었다. 훈련생들을 섬기기 위해 온 자원봉사자들은 대부분 젊은 청년들이었다. 그곳에서 헌신하는 젊은이들을 보며 그들이 헌신하는 단체인 Mobile Mission이라는 이름답게 역동적이라고 생각했다.

함께 간 선배 목사님은 원서가 신청된 상태였기 때문에 등록을 하셨다. 그러나 나는 신청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안내하는 분이 신청한 사람들만 교육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간절한 마음을 전하며 준비해 간 서류를 허리를 굽혀 내밀었다. 그러자 그 분은 서류를 다른 곳으로 보냈다. 한참을 기다렸다. 그러나 소식이 없었다. 그 사이에 등록은 끝났고, 3명이 결석을 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결석자가 생겼으니 나에게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계속 기다렸다.

9시가 되어 훈련이 시작된다는 광고가 들려오자 훈련생들은 모두 지하 예배실로 내려갔다. 나는 복음의 대열에 참여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지하에서 한참동안 찬송 소리와 통성기도 소리가 들려왔다. 초대받지 못한 나는 입을 가지고도 찬송을 할 수 없었다. 진행자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는 듯 했다. 그 사이 역동적인 형제와 자매들이 식사준비를 하기 위해서 교육관 문 앞을 지나갔지만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것을 보며 내가 생각한 복음과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임을 시작한지 한 시간쯤 지났을 때, 진행본부장이란 명찰을 단 형제가 올라왔다. 복음학교는 미리 원서를 낸 사람들에게만 기회가 주어진다고 했다. 그 사람들을 위해서 한 달 전부터 기도하며 준비해 왔기 때문에 나에게는 기회를 줄 수 없다고 했다. 마치 미리 기도로 준비해 오지 못한 사람은 복음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처럼 들렸다. 그래서 나는 선교사님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그 형제는 선교사님은 복음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누구도 만나줄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럭저럭 그 장소에 도착한지 2시간 반이 지나고 있었다. 그들은 나를 무관심으로 내쫓고 있는 것 같았다. 잠시 쉬는 시간이 되자 동행했던 선배 목사님이 근심어린 눈으로 올라와서 어떤 통보를 받았느냐고 기대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나 선배 목사님은 내 얼굴을 보자 이내 실망하고 말았다. 일정을 물어 보니까 자세한 일정보다는 은혜에 따른 일정이라고 말했다. 나는 계속 기다려 보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선배 목사님도 다시 지하로 내려갔다.

점심 식사시간이면 어떤 일이 생기겠지 하고 기다렸다. 1시가 되어도 식사하지 않았다. 2층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준비하는 반찬 냄새가 아침도 먹지 못하고 새벽같이 나온 나의 코를 자극했다. 그러나 낮은 자세로 평신도의 순순한 복음을 들어 보겠다는 생각은 복음을 채우지 못해 허기가 느껴진 뱃속보다 더 쓰라렸다.

2시 반 정도가 되었을 때 지하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점심시간이 된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시간표를 은혜로 조절하며 신축성 있게 한다는 말이 맞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밖에 객을 두고 혼자서 식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혹시 선교사라는 그 분이 6시간이나 밖에서 서성인 사람을 보고 식사라도 같이 하자고 하겠지 하는 기대가 밀려왔다.

목회자를 위한 복음학교에 온 사람들은 나이가 중년인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부부가 같이 온 분들도 보였다. 그들은 요한복음 3:16절을 우렁찬 소리로 암송한 후 조별 식사를 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교육관의 입구에 서성이고 있는 나를 애석하게 바라보는 것 같았지만 말을 걸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마치 복음학교의 금기 인물인 이단자라도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몸에 문둥병이 발했나?’하고 팔을 만져보기도 했다.

점심을 먹고 난 사람들은 화장실을 가느라고 교육관 출입문을 드나들었다. 아마 그 건물 안에는 화장실이 없는 듯 했다. 어떤 사람들은 커피를 손에 들고 나왔고 이쑤시개를 물고 나오는 분도 보였다. 늦게 점심을 먹은 사람들은 복음의 긴장을 늦추고 포만감을 즐기고 있었다.

3시 가량 되었을 때 한 자매가 다가왔다. 진행이란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진행본부장이란 형제에 비하여 눈매가 예리했으며 복음으로 더욱 무장되어 있는 것처럼 당당했다. 그녀는 나에게 이곳을 떠나달라고 했다. 나보다는 10살이나 어려 보였지만 목소리는 엄했고 교훈적이었다. 나는 복음학교라서 은혜를 구하러 왔는데 이런 대접을 받아 섭섭하다고 하자 정식 과정을 밟아 오면 복음의 진수를 맛보고 이해할 수 있다며 당당한 목소리로 나를 밀어내었다. 가지 않으면 물리적으로라도 어떻게 하겠다고 위협까지 했다.

그 때쯤 되자 같이 간 선배 목사님이 나를 타이르며 가라고 했다. 나는 선배 목사님의 권유가 아니라면 좀 더 버티고 싶었지만 선배 목사님이 은혜를 받는데 혹시 방해될까 자리를 비켰다. 이민목회를 하다가 복음에 갈급하여 고국까지 오신 선배 목사님의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 곳을 떠나오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과연 복음이란 이런 것일까? 복음학교에는 이방인의 뜰도, 늦게 온 자를 위한 은혜도 없구나 하는 한없는 좌절감에 휩싸였다. 참으로 힘들었다. 복음학교에서 받은 설움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 역시 목사랍시고 그렇게 복음 사역을 한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허기도 달아났고 얼굴이 붉어졌다.

역설적이게도 하나님은 그 곳을 떠난 나에게 보이지 않는 복음학교를 열어 주었다. 그것은 논리적인 지식으로 얻는 살찐 복음이 아니라, 지식을 다이어트 해야 얻을 수 있는 비밀의 복음이었다. 가짐으로 배우는 복음이 아니라 버림으로 얻는 복음, 잘남으로 얻는 복음이 아니라 천시를 당함으로 얻는 복음이었다.

유대인들의 제사에는 하나님이 없었다. 지난 2000년의 교회사에는 복음이 없었던 교회가 많았다. 21세기를 맞은 오늘 한국교회에 복음이 있을까? 복음학교에서 가르친다는 복음은 무엇일까? 문밖의 복음학교에서 예수님은 교회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울고 계셨다.

복음전도자에게 복음이 없을 수 있다. 목사에게도 복음이 없을 수 있다. 이 화두는 내 평생에 잊지 못할 교훈이 될 것 같다. 참으로 귀한 복음학교를 5박 6일이 아니라 7시간 만에 마치고 온 것이었다. 그 깨달음의 복음이 진정 나에게 필요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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