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관계는 힘의 관계이다. 힘이 있는 자가 약한 자를 상대로 벌이는 지배력의 유희 중 하나가 바로 성 관계이다.

두 개체 사이의 지배관계를 결정하는 요건은 다양하다. 돈, 신분, 권위, 무력, 정력, 외모 등등 여러 가지 요건에 의해 규정되기에, 성적 폭력이 명백한 형태로 정죄되기가 어려운 점도 있다.

특히나 종교적 권위에 짓눌려 있는 상태에서 이루어진 성적 폭력은, 외적으로 보았을 때 자발적 행위처럼 보여지기에, 법적 개념으로서 폭력에 의한, 혹은 강압에 의한 관계였다고 말하기가 어렵다. 이러한 사정이  종교적 권위를 가진 사람들의 성 폭력에 대해 무력 내지는 관대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상황을 초래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에 보도된 예장합동 소속 ㅅ노회 임아무개 목사 경우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분명히 성적 폭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종교적 차원의) 아가페적 사랑의 표현'이라는 엄한 방패막이를 들어댐으로써, 임목사는 자신의 범죄행위에 대한 책임을 비껴가려 하고 있다.

이처럼 종교 지도자가 자신의 행위를, 하나님이라는 신앙의 절대적 대상과 연계함으로써 신도들의 사고와 행동을 일시 마비시킬 수 있다는 사실은 비종교인들에게는 실상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목사가 자신의 말과 판단과 행동을, 신앙적 차원의 것으로 규정하고 신도들에게 세뇌시킴으로써 신도들의 비판적인 판단을 무력화시키는 것은, 사이비 종교 교주의 일상화된 패턴이다. 그런데 걱정스럽게도 오늘날 한국교회에서도 이런한 사이비 교주적 현상이 점점 심화하고 있는 것 같다. 상식적으로  잘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종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실제 상황으로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당사자들은 전혀 그 부조리함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니 더욱 문제가 심각한 것이다.  

목사의 뜻에 따르는 것이 곧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라는 공식이 신학 이론적으로는 부정되고 있지만, 실제 교회 안의 신앙 생활에서는 지배적 신념으로서 작동하고 있다는 이중성이 오늘날 한국교회의 현실이다.

성적 요구조차 하나님의 은혜로 여겨지려 하고, 이를 거스리면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 같고, 설마 목사님이 부정한 짓을 요구할 리는 없다는 등의 심리적 인식은, 오랜 시간 한국교회의 교역자들이 자신들의 입을 통해 뿌린 복음(?)의 결실이다.

교회의 정책과 신앙의 모범 등 신앙에 관련된 일체의 논의를 외면한 채, 교인들에게 무조건적 순종을 내세우며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는 것이 이제까지 한국교회 목사들이 실행해온 목회 노선이었다. 덩달아 교인들은, 자꾸 말하면 교회가 시끄러워질까봐, 혹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 같아서, 또는 은혜가 안되서 자신의 눈(양식)을 덮어버리고 목사님 뜻대로 맡겨버렸다.

목사의 말과 행위에 대한 검증의 여지가 점점 사라지고, 어느덧 목사들은 무오설이라는 투명 갑옷을 온 몸에 두를 수 있게 되었다. 어떤 목사도 무오설을 주장하지 않지만, 실상 교인과 목사의 관계에서는 순종이라는 껍데기를 쓴 채 무오설이 지배적인 힘을 발휘하고 있다.

요즘 신문을 장식하는 교회의 다양한 뉴스거리(재정 비리, 교회 세습, 성 폭력 등)는 한국교회가 서 있는 자리가 심각한 위기 수준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돈과 성과 권력이라는 세상의 욕망이 교회의 헤게모니를 잡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일련의 사건들이 속속 불거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교회 지도자들은 은혜스럽게 해결해야지 세상 법정에 의존하다니, 라고 압박을 가하며 터지는 주머니를 가리는데만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 같다.

설사 교회 안에서 발생한 일일지라도, 세상법정이든 어디든 정의와 진실이 밝혀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가야 한다. 세상이라고 불리는 곳이 하나님과 전혀 무관한 곳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빙자해 정의와 진실을 따돌린다면, 교회는 세상 법정을 통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이방인을 통해 이스라엘을 심판한 일이 성경에도 비일비재하지 않는가.

지금 한국교회의 병적 상태가, 예수 팔아 온갖 장사 다해먹는다는 교회 밖의 빈정거림을 단지 비신앙자의 무지한 악담 정도로 간주할 수만은 없는 상태에 이른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이 주신 개인적, 사회적 양심에 비추어 우리의 신앙 행태를 끝없이 검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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