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제1장 10~17절)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주일 낮 예배, 주일 찬양예배, 수요예배, 구역예배, 금요철야예배, 새벽예배, 개업예배, 추모예배, 생일감사예배, 각종 심방예배 등 예배의 종류가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예배 들릴 때마다 제물을 대신할 헌금을 드립니다. 기도를 드립니다. 찬양도 드립니다. 서로 따뜻한 인사를 나누면서 성도의 거룩한 교제도 있습니다. 얼마나 아름답고 믿음이 충만해 보이는 영적인 활동들입니까. 그래서 이런 사람들을 교회에서는 믿음이 좋다고 칭찬을 하고, 직분도 주지 않습니까.

그런데 웬일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이런 모든 행위들에 대해 잘했다고 칭찬을 하시기는커녕 헌금을 기뻐하지 않는다 하시고, 주일 성수 등 많은 예배를 받는 것도 지쳤다고 하시며, 또 우리의 기도마저 듣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왜 우리의 거룩한 믿음의 표현들을 가증한 위선이라 하시며 악업이라고 무서운 책망을 하십니까. 그러면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시고 기대를 하시는 건지요.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하나님의 일(事)이란 곧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교회 안에서의 예배가 아니었습니다. 나의 소원을 쏟아놓는 기도도 아니었습니다. 나의 감정에 복받쳐서 드리는 찬양도 아니었습니다.

진정한 선행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인데, 하나님 사랑하는 방법은 예배에 앞서 먼저 이웃,  약자에 대한 관심과 사랑의 실천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고 하셨지요.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삶을 보고 결국 하나님께 돌아올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공생애 가운데서 예배를 드리고 기도와 찬양과 헌금을 드린다면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기뻐하며 받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충만한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성령 충만한 축복보다 더 값지고 귀한 축복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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