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는 사랑의 이야기가 참 많습니다. 그 사랑의 이야기는 참으로 아름답고 감동적입니다. 산의 꽃처럼, 들의 내처럼 세상을 향기롭게 하며, 우리의 굳어진 마음을 잔잔히 적시는 그러한 사랑이 있기에 여전히 이 땅은 살만한 곳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랑보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어찌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사람들과 데이트하기를 즐기셨고, 사랑의 밀어를 나누기 위해 에덴동산에 자주 찾아오셔서 아담과 함께 거니시는 때가 많았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의 마음 안에 있고 아담이 하나님의 마음 안에 있을 때,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창조세계는 더욱 아름다웠습니다. 그 사랑을 멀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은 가죽 옷을 선물해 주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끝내 인간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대적하여 마침내는 죄와 사망의 포로가 되는 불행을 자초하고 말았습니다.

이때 눈에 보이지 않던 하나님은 예수님으로 성육신하여 인간을 사망 권세에서 자유케 하셨으나, 우리는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포기하지 않으셨고, 보혜사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셔서 영원한 러브스토리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주고받는 게 아니라 일방적으로 쏟아 부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성령의 은혜로운 임재로 우리와 함께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삼아 주셨습니다

1991년 4월에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11개월 된 아이를 자녀로 주셨습니다. 가문도, 외모도, 성격도, 지능도,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저는 그를 자녀로 삼아 호적에 올리고 평화로 불렀습니다. 낮에는 아내의 등에서, 아침저녁으로는 저의 팔을 베개하고 한 손으로는 저의 귀를 만지면서 우유를 먹다 잠들곤 하였습니다. 교회에서는 조촐한 돌잔치를 하였고, 성도들은 매일 와서 새 옷을 사다 입혔습니다. 어떤 이는 평화(아이 이름)의 고급 침대까지 사다 주는 정성을 다하였습니다.

이름 없는 가난한 한 농부가 천국에 감으로 말미암아 평화는 이렇게 저의 아들이 되었고, 육신적으로 '목사의 아들'이라는 신분으로 바뀌면서 많은 이들의 뜨거운 사랑을 한없이 받게 되었습니다.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누나들도 아낌없이 평화를 사랑하였습니다.

아이의 손짓 발짓 하나하나가 그렇게 신기했고, 입에서 나오는 모든 소리는 그 어떤 음악보다도 저를 기쁘게 하였습니다. 일과를 마치고 귀가할 때는 평화를 보고 싶은 급한 마음에 주차장에서부터 뛰었고, 엘리베이터가 그렇게 느릴 수가 없었습니다. 평화와 입맞춤을 하고 볼을 부비는 순간은 정말로 행복하였습니다. 아빠라고 부르는 소리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귀한 평화를 저의 아들로 삼은 것은 어떤 조건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원해서 그냥 저의 아들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로 삼으실 때에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회사에서 신입사원을 선발할 때처럼 어떤 학력이나 자격, 그리고 일정 정도의 수준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스스로 지은 죄로 말미암아 추하고 악해져서 저주와 죽음의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자녀로 삼아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평화가 저를 아버지로 삼은 것이 아니요, 제가 평화를 아들로 삼은 것같이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로 우리를 자녀로 삼으신 것입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요15:16).

하나님은 끝까지 참아주십니다

평화는 저와 잠깐이라도 헤어지는 것을 가장 싫어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침에 출근할 때에 평화 몰래 숨어서 집을 나서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요, 이제는 아예 파수를 보고 있으니 평화의 눈을 따돌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함께 출근하여 평화는 교회 놀이터에서 놀다가 함께 퇴근하는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출근하는 차 속에서 "찬양하라 내영혼아 찬양하라 내 영혼아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찬양하라"하며 함께 찬양하는 순간이 너무 좋았습니다. 유치원에 입학을 시켰더니 저와 헤어지는 일로 고통스러워하는 것 같아서 더 나이가 들면 보내기로 하고 다시 저와 출퇴근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평화는 어린아이요, 저는 어른이며 목사라는 입장인지라 도저히 용납하기 힘든 문제를 일으키곤 하였습니다. 일방적으로 자기만을 위해서 모든 것을 해 주기를 바랐고, 자기의 어린 감정에 제가 따를 것을 요구하였으며, 어떤 때에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들까지도  당연한 듯 억지를 쓰는 바람에 저의 입장이 난처해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보다 못해 주변에서는 아이 버릇 나쁘게 만든다고 핀잔을 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단연코 한 번도 "네가 누구인데 이렇게 함부로 구느냐, 내 입장을 이렇게 곤란하게 해도 되느냐, 네가 무엇인데 일방적으로 너 욕심만 채우려하느냐"고 꾸중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모든 게 그냥 좋기만 하였습니다.

그때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하,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대하시는구나.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도대체 너희들이 누군데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이것 달라 저것 달라, 큰소리치느냐"고 한 말씀만 하신다면, 우리의 삶은 절망의 수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비참한 존재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평화와 나날의 부대낌을 통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끝까지 참으시며 한없이 너그러우시며 모든 것을 감싸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에, 오늘도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을 저는 평화를 통해서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사랑하십니다

우리 집에는 기쁨과 고운이라는 두 자녀가 더 있는데, 사실은 평화가 기쁨이요, 고운 아름다움이며, 즐거움 그 자체였습니다. 잠을 잘 때에도 평화는 저의 귀를 만지며 잠이 들었고, 저는 평화의 고사리 같은 손을 쥐어야만 곤한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제가 자리에 누우면 평화는 다른 베개는 다 치우고 가장 낮은 내 베개를 찾아와 베개를 하였습니다.

누나들이 옆에서 떠들면 아빠 쉰다고 야단을 치기도 하였습니다. 매일 샤워를 할 때에는 항상 평화는 제 등을 밀어준다고 억지로 저를 엎드리게 하였습니다. 텔레비전을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뉴스 시간에는 꼭 저에게 양보하여 뉴스를 볼 수 있도록 배려하여 주곤 하였던 어린 어른이었습니다.

이렇게 그림자처럼 저를 따르던 평화가 저와의 40개월의 사랑을 천국 감으로써 끝내고 말았습니다. 말 한 마디 남기지 않고 훌쩍 떠나 버렸습니다. 저는 도무지 믿을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었습니다. 30여 분 동안 회생시키려고 안간힘을 쓰는 의료진에게서 끝내 평화의 주검을 받아 안은 순간, 허방을 디디는 것 같은 깊은 절망감에 빠졌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12시간 안에 평화의 영혼을 되돌려 달라고 밤새워 기도하였습니다. 눈물이 범벅이 되도록 호소하였지만, 평화는 되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평화의 묘에 장난감 자동차를 가져다주고, 평화가 사용하던 칫솔로 저의 이를 닦으면서 위로를 얻으려 해도 평화와 이별한 고통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심장을 칼로 도려내는 듯한 아픔, 가슴이 답답하여 숨을 쉴 수가 없어 큰 호흡을 계속해야 하는 고통이 계속 다가오기만 하였습니다. 어린아이들을 보면 모두 평화로 보였습니다. 잊으려고 여행을 가도 모든 것이 평화와 연관되어 더욱 고통스러울 뿐이었습니다. 평화와 같이 천국 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의미 없이 보였습니다. 누가 저에게 대통령의 자리를 준다 해도 전혀 위로가 될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 어떤 귀한 상 -설사 노벨상이라도 저에겐 무의미하였습니다. 오직 평화만 보고 싶었고, 평화의 목소리만 듣고 싶었습니다. 저에겐 평화가 그대로 부귀요, 명예요, 권력이요, 영화였습니다. 아니 저의 생명 그 자체처럼 여겨졌습니다.

이 고통 가운데 하나님은 저에게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너와 혈연적 관계도 없는 평화가 잠시 너의 아들이 되었다가 떠난 것이 그렇게 고통스러우냐? 나도 너를, 너희를 사랑한단다. 아니, 네가 평화를 사랑하는 것보다 천 배 만 배 너를, 너희 모두를 사랑한단다."

하나님의 위로의 음성이 귀를 때렸습니다. 한 생명을 천하보다도 귀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저를 천하보다 귀히 여기시는 그분의 사랑이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평화를 떠나보낸 고통 가운데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뼈에 사무치도록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저는 평화가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꿈에서라도 보고 싶은데 볼 수 없었습니다. 평화와 친하게 지냈던 현도라는 아이가 있습니다. 현도는 평화가 천국 가기 전날 밤 꿈에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형, 나 먼저 갈 거야. 잘 있어."그리고 천국 가던 날 밤에도 평화가 웃으면서 하늘로 날아가는 꿈을 꾸었답니다. 그러나 저는 꿈에서조차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아십니까?

그래 가족들이 눈치 채지 않도록 조용히 평화가 잠들어 있는 곳을 찾아가곤 했습니다. "평화야, 아빠 왔다"고 해도 조용했습니다. "평화야, 아빠 간다"며 내려와도 조용했습니다. 혼자 내려오는데도 아무 말도 없었습니다. 눈물이 앞을 가려 운전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차에서 통곡하고 있는 저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김 목사야, 네가 정녕 평화를 포기할 수 없느냐?" 저는 대답했습니다. "결코 평화를 포기할 수 없습니다." 그러자 다시 물으셨습니다. "그럼, 네가 평화를 살릴 수가 있느냐? "하나님, 제 힘으로는 평화를 살릴 수가 없습니다."

저의 힘없는 대답을 듣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평화를 살리지도 못하는 무능자이면서 평화를 포기하지 못하는구나. 그러나 생각해 보아라. 전능한 나는 너희들을 살릴 수가 있다. 너희를 살리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를 너희 대속물로 주기까지 하였다. 그런 내가 어떻게 너희들을 포기할 수 있겠느냐?"

제가 땅에 묻혀 버려 살릴 수조차 없는 평화를 포기하지 못하는데, 죽은 자도 살릴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들을 포기할 수 있겠는가 하는 깨달음이 저의 심장을 떨게 하였습니다. 아니, 생명의 길이, 살림의 길이 저기 있는데 딴 길로 가는 우리를 얼마나 안타까운 심정으로 바라보고 계실까 하는 마음이 저를 휩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사랑' 그 자체이심을 절감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죄를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교우들이 평화의 옷과 그리고 하다못해 장난감 하나까지도 치워 버려서 평화의 흔적을 찾을 수도 없는 것이 저에게는 더 큰 고통이었습니다. 그런데 신발장에 평화의 낡은 운동화 한 켤레 남아 있었습니다. 새 운동화를 사 달라고 조르는 아이에게 떨어진 밑창들 본드로 붙여 준, 바로 그 운동화였습니다.

자전거를 사 달라고 해도, 새 운동화를 사 달라고 해도 새 교회 건축한 다음에 사 주겠다고 미루었던 게 가슴을 다시 찢어 놓았습니다. 순간순간 평화와 함께했던 40개월 동안 더 베풀지 못했던 게 죄책감으로 나를 괴롭혔습니다. 비행기도 한번 태워 줄 걸, 공원에라도 같이 손잡고 갈 걸, 모든 게 후회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동안 평화가 나를 힘들게 했던 일들이 도무지 떠오르질 않았습니다. 아니, 그 일들이 도리어 아련한 추억으로만 가슴을 저몄습니다. 생각나는 것은 제가 해 주지 못한 것 뿐이었습니다. 그것만이 나를 고통스럽게 몰아넣은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아버지라고 부르는 하나님도 그러실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네가 평화의 잘못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나도 너희들의 죄를 기억하지 않는단다." 그것은 저의 옅은 믿음을 깊게 파 내려가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흘려보낸 저의 얕은 속을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무슨 잘못을 저질렀건 간에 회개만 하고 돌아서면 우리 죄를 기억하지 않고 용서해 주신다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새삼 감격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는 분이심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말로 너와 나, 우리 모두를 사랑하십니다. 여느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은 평화가 저에겐 생명보다 귀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 또한 하나님에게는 더 없이 귀한 존재들입니다. 세상이 손가락질하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손목을 잡아 주셨고, 세상이 멸시하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감싸 안으셨으며, 세상이 정죄하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허물과 죄까지도 외아들의 보혈 공로로 깨끗이 씻어 흰옷을 입혀 주셨습니다.

▲ 김정명 목사. ⓒ뉴스앤조이

평화는 40개월 동안 제가 보지 못했던 하나님을 볼 수 있게 해준 '어린 천사'였습니다. 외모도 뛰어나지 못하고 평범한 아이였으나 생명보다 귀한 저의 아들이었듯이,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 또한 하나님 앞에서는 그런 존재들입니다. 보잘 것 없지만 하나님에게는 그보다 더 귀할 수가 없는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기에 귀하고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이제 가을입니다. 스산한 바람이 불어오고 화려했던 여름의 기억들이 길가에 낙엽으로 흩어지고 있습니다. 빨갛던 잎사귀도, 노랗던 잎사귀도, 또 다른 잎사귀도 아름답던 제 빛깔을 잃으며 부스러지고 있습니다.

낙엽 같은 인생, 나그네 길을 기억하면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생각하며 낙엽 위를 걸어 봅시다. 하나님의 자녀다운 옷차림과 마음가짐으로 우리 갈 길을 손에 손잡고 함께 걸어갑시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김정명 목사 / 은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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