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종교에 대해 명령

얼마 전에 기독노조로 인하여 아멘교회의 사찰집사가 부당해고를 받았노라고 판결을 받았다는 기사와 기독신문 사장투표와 관련하여 법정에 투표용지를 가져간 사건을 다룬 <뉴스앤조이> 기사를 보았다.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기에 여러 가지 문제가 없을 수는 없지만 이 기사를 보면서 상당한 우려가 일었다.

그 우려는 국가가 종교적인 일에 개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교회에 관련된 기독노조가  개입을 먼저 요구했고, 노동위원회는 이들의 요구를 노동법을 살펴서 법적인 정당한 요구를 들어주었다고 본다면 문제로 취급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국가가 가지고 있는 '칼의 힘'이 종교기관에 작용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하고, 또 한편으로는 기독교인들이 국가가 가진 칼의 힘에 기대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국가는 종교를 통제하는 기관?

종교란 국가를 초월하여 존재한다. 물론 국가 내에서 태동하여 다른 나라로 전파되지 않고 그 나라에서만 존재하는 종교도 있겠지만, 종교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전파돼  초월하는 특징이 있다. 또 종교는 개인의 양심과 선택의 자유를 기초로 한다. 이것은 기독교가 아닌 다른 종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국가란 종교와는 별개로 그 나라의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존재한다. 그리고 그 수단으로 사람들이 합의한 법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에 그 일을 해결하기 위해 칼의 힘(강제력)을 사용한다. 종교가 양심에 호소한다면 국가는 우리의 양심과는 상관없이 강제력을 가진 법을 따라서 어떤 일을 진행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국가와 종교는 엄연히 다른 법칙에 의하여 지배되는 실체다. 만일 국가가 종교를 지배하려 하거나 종교가 국가를 지배하려 하면 엄청난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양심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들, 특히 종교적인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들에는 국가가 때때로 판단할 수 없는 일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국가와 종교는 서로가 조심해야 한다.

예를 들면 장로교 안의 '선교비 지출'이 한 나라로만 지원되는 것을 당회가 결정하고 집행할 때에 그것을 시정 명령할 수 있는 강제권을 가진 기관은 존재하지 않는다(만일 있다면 그 교회 내부에 있는 구성원들의 의견 외에는 없다). 한 교회의 예산이 집행될 때에도 한쪽으로 치우쳐서 집행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고, 균형을 잡지 못하고 쓰이는 경우도 많이 있다. 그러나 이 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여 국가가 종교기관에 명령을 할 수는 없다.

기독노조를 통하여 아멘교회에 내려진 노동위원회의 결정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그 판결을 받은 교회의 부정적인 면들을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또 한편으로는 "도대체 교회의 일에 국가가 어디까지 명령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극단적으로는 교회의 구조를 변경하거나 인력을 재배치할 경우에 직업(노동)을 가진 사람이 동의하지 않거나 이의를 제기하면, 아무리 '정당한 과정과 의견수렴과정'을 거쳤다고 할지라도 문제를 일으키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됐다. 사실 종교기관이라고 할지라도 조직이 있는 곳에는 돈과 인력이 배치되는 일이 있게 마련이고, 또 교회는 그러한 재배치가 거의 1년주기로 일어나는 것이 통례이기 때문이다. 물론 변화가 없는 경우가 더 많을 수도 있으나 형식적으로는 1년마다 모든 것이 새롭게 재배치된다.

그리스도의 교훈, 세상법보다 우선

교회의 지도부가 배려 없이 일방적으로 유급직원들을 취급하거나 대우하는 것이 이런 일들이 일어나게 하는 근본적인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보도된 기사의 일도 이런 류의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서 기독노조에서 국가의 힘을 빌어서 문제해결을 위해서 중재에 나섰다고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들이 앞으로 교회의 풍조가 되어버릴 것에 대하여 우려한다. 그리스도인 집단에서 일어나는 일을 해결하기 위하여 법에 기댈 수밖에 없다면 이미 그 집단은 그리스도의 교훈에서 멀어진 단체이기 때문이다. 그런 단체는 기독교성을 지닌 단체이기를 스스로 포기한 집단으로도 볼 수 있다.

일전에 어떤 이에게 듣기를 "어떤 정치적인 색이 강한 목사님은 자신에게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반드시 세상법정에 고소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심히 유감스러운 말이다. 물론 그 소문에 대하여 사실 확인을 한 것은 아니지만, 교회가 양보와 배려를 더는 하지 않으려는 순간 이미 그 집단은 기독교이기를 포기한 집단이다. 그것이 교회이든지, 기독교관련 기관이든지 상관없이 모두 그리스도의 교훈에서 멀리 있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세상법을 정당하게 이용하는 것은 악이 아니다. 또한 그것이 지탄할 일도 아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우선해야 하는 것이 있다. 교회는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것에서부터 모든 일을 진행해야 한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여러 사태를 보면 심히 우려스럽다. 기독교이기를 포기한 많은 사람들과 단체를 내가 보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이런 모든 사람들은 바울 사도의 말을 꼭 기억하고 행했으면 한다.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빌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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