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계교회 출신 제35기 연수원생과 연수원 모임중인 이 목사.

서울 신림동 고시촌에는 서울 하늘을 한눈으로 내려다 볼 수 있는, 유난히도 높은 9층 건물과 옥상에 하얀 십자가탑을 세운 신계교회(예장통합·이종운 담임목사)가 있다. 고시촌이라는 지역의 특성을 살려 사법고시, 행정고시, 변리사고시 등을 준비하는 고시생 200여 명을 그룹화하여, 매년 사법고시 합격자 10여 명을 배출하는 교회로 주목받고 있다.

신림동은 각종 고시를 준비하는 고시생들의 밀집지역으로 유명한 곳이다. 신림9동 청소년회관 주변에는 원룸과 고시원, 각종 고시학원들이 유난히도 많은데 사람들은 이곳을 일명 '신림동고시촌'이라 부른다.

큰 꿈을 품고 이 고시촌에 머물고 있는 젊은 고시생만도 한때는 5만여 명에 이르렀지만 인터넷 강의 등 고시준비 방법이 다양해  현재는 약 2만 5천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많은 청년들이 이곳 신림동 고시촌에서 20대의 젊음을 반납하고 두꺼운 법전과 멈출 줄 모르는 전투를 벌인다.

치열한 경쟁에서 장기전을 벌이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사회적 지위, 명예, 꿈 등 각자가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열심히 그리고 끈기 있게 노력하지만 그들 가운데서도 많은 사상자가 난다. 시간과 물질의 압박, 건강문제, 외로움 등 그들이 싸워야 하는 싸움은 비단 책과의 싸움만이 아닌 자신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지난 12일 이곳 고시촌의 중앙에 위치한 신계교회에서는 이곳에서 믿음생활을 하며 고시전투를 치르고 법조인이 된 10명이 이종운 목사를 초청해 섬기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종운 목사의 주도로 매월 정기적 만남의 시간이 있었으나 이제부터의 모임은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다. 교회와 담임목사의 섬김을 받았던 사법연수생들이 이제는 교회와 담임목사님을 섬긴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로 이종운 목사가 일산 사법연수원을 찾아갈 거라는 소식을 접한 기자는 동행을 요청, 사법연수생들의 영적생활을 취재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오후 6시경 일산 사법연수원에 도착. 연수원에서 기다리고 있자니 과거 신계교회 고시생들, 이제는 사법연수원 35기생들이 된 연수생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었다. 함께 온 신계교회 한경자 전도사는 그들의 달라진 모습에 연신 감탄사를 멈출 줄 몰랐다.

과거 고시촌 생활당시 수염을 깎는 듯 마는 듯한 외모와 평상복 차림이었던 그들이, 이제는 반듯한 정장 차림에 깨끗한 검은색 구두를 신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하나둘 반갑게 모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종운 목사의 얼굴에도 고시촌 생활 당시보다 훨씬 안정되어 있는 그들의 모습이 보기 좋았는지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하나 둘씩 모여 어느덧 8명. 두 명은 사정상 오지 못했지만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이들 8명은 지난해 45차 사법시험에 합격한 동기들이다. 현재 모두 사법연수원내 기독모임인 신우회의 회원이기도 하다.

과거 불투명한 미래를 놓고 고시공부를 해야 했던 힘든 시절, 신계교회는 고시생들을 기도로 섬기고, 24시간 교회를 개방함으로 그들이 언제든 하나님을 만나 기도할 수 있도록 장소를 개방했다. 또 수시로 고시생들을 위한 집회를 열어 지친 그들을 위로하고, 지쳐 쓰러져 있던 꿈을 다시 견고하게 붙들 수 있도록 돕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들은 내심 신계교회와 목사님의 배려에 고마움을 잊지 못한단다. 그리고 그러한 좋은 기억들이 오늘과 같은 만남의 유대관계를 있게 했다고 말한다. 

연수생 박승일(35)의 말이다. 

"사실 고시촌에서 고시공부할 당시 신계교회 친구들과 별로 교제할 기회가 없었어요. 다들 고시공부라는 압박감 때문에 교제를 나눌 심적 여유가 없었지요. 고시생들의 부담을 알고 신계교회 자체에서 청년들에게 어떠한 모임에 참석할 것을 재촉하지 않았던 게 좋았던 것 같아요. 사실 우리가 서로 가까워진 것은 연수원에 들어오고 나서부터예요. 그때부터 서로 같은 교회 출신이라는 것이 묘한 유대감으로 작용해 가까워지는 동기가 됐지요."

사법연수원에 들어간 후 어떻게 다른 생활을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박지영(28) 자매 연수생은

"고시촌 당시 생활과 지금의 생활을 비교하자면 딱히 달라진 것은 없어요. 있다면 험에 합격한 것에서 오는 안정감이랄까. 산 넘어 산이라고 합격하고 나니 취업 관련해서 새로운 고민에 쫓기고 있어요"라고 행복한 고민을 털어놨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하루에 주어진 과업의 분량이나 무게는 고시촌 당시와 비교해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더욱 튼튼한 터에서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 달라진 점이란다. 이날 모임은 오랜만에 만난 가족인양 즐거운 담화가 그칠 줄 몰랐다. 최근 화두로 떠오른 로스쿨 문제 같은 사회 전반적인 내용은 물론, 각자의 개인사까지 다양하게 교제의 내용으로 오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고시생활 당시 가장 어렵고 힘들었던 점은 역시 미래의 불투명에 대한 것이었죠. 이종운 목사는 '비전'에 관련한 말씀을 많이 전해주셨어요. 지금 딱히 기억나는 말씀은 없지만 그때 들었던 그 말씀 때문에 힘들었던 고시생활을 이겨낼 수 있다"고 박승일(35)연수생은 말한다.

연수원에서 생활하고 있는 그들은 고시촌의 생활보다 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수업시간이 끝나면 칼같이 도서관으로 가서 공부를 한다. 결혼한 이의 경우 가족과 시간을 보내야 하기 때문에 공부할 시간이 여의치 않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이유로 그들은 어쩌면 더욱 영적인 갈급함에 노출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연수원 내의 기독모임인 신우회 모임이 연수원 측의 사정으로 연수원내에서 모임장소를 잡기 힘들어 영적인 고갈을 이전보다 더 느끼고 있었다. 그랬기에 그들은 한 달에 한번 있는, 바쁜 그들을 배려해 서울에서 일산까지 직접 찾아오는 것을 마다 않는 목사님과 만난 것이 더욱 귀하게 느껴진단다.

한 달에 한 번, 이종운 목사는 그들과 함께 필요한 말씀을 나눈다. 마른땅에 단비를 내리듯, 이날 이종운 목사가 떼어준 생명의 양식 또한 그간의 갈급함을 해소시켜 주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날 그들이 받은 말씀은 바쁜 일상일지라도 반드시 지킬 필요가 있는 일종의 행동강령이었다.

▲ 신계교회 이종운 목사.

또 이종운 목사는 바쁜 일상으로 인해 하나님과 교제의 시간을 잃어가고 있는 삶의 모습에 일침을 가했다. 고시촌을 떠나 연수원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가장 좋은 시간은 이른 아침의 산책길, 도서관에서 짧은 기도, 매 식사 때마다 식기도가 생활화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날 35기 연수생들의 모임은 신계교회 출신들만의 최초의 모임으로 이름을 '그루터기'로 명명했다.

이날을 시작으로 다음 기수에 들어오게 될 후배들을 포함, 정기적인 모임으로 이끌어 나가기로 결정했다. 감사한 일은 때에 일정하게 만날 수 있는 모임의 장소가 준비됐다는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뜻을 같이 하는 이들의 모임, 하나님 안에서 영적인 교제가 필요한 이때에 '그루터기'가 믿음에 바탕을 둔 법조인을 세우는데 희망적인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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