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주일 아침이면 우리 집은 전쟁이다.
우유 병을 챙기고 옷을 입고 아이들 깨우고 주보 챙기고...
좀 더 일찍 일어나면 한층 여유가 있겠지만, 토요일 늦은 시간까지 일하고 퇴근하는 나로서는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정신없이 준비를 하여 차를 타고 30분 정도 가면 교회에 도착한다. 찬양대 연습실로 가서 20여분 동안 연습을 하고 예배당으로 간다.

나는 신앙인의 첫째 항목인 주일 성수를 위해, 또한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을 지키기 위해 언제나 변함없이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러나 예배시간과 설교시간에 나는 속에서 일어나는 목사님에 대한 '반발심'을 잠재우느라 고생을 한다. 물론 목회자에 대한 이러한 반발심은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도저히 마음 속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이러한 '마귀성 마음'은 어쩌지 못한다.

무엇이 나를 '반발심'으로 이끄는 것일까? 나는 그 동안 속으로만 눌러오던 이러한 반발심의 내용을 <뉴스앤조이>의 독자들에게 공개하기로 한다. 물론 이러한 내용은 나 개인의 '신앙 부족'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전제한다. 믿음이 더 커지면 그러한 반발심은 없어질 테니까...
그러나 평범한 평신도의 이러한 의견도 목회자들이 들어보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고등학교 졸업 후 신학대학을 가고 신학대학원 등으로 향한 목회자들은 대체로 일반 평신도들의 일반생활 등에 대한 이해 면에서 부족하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생업에 종사하다 주일 교회에 간 평신도들에게 "하루가 아닌 온 날을 주님께 바쳐야 한다"고 강변하는 목사님들의 설교는 참으로 안타깝다.

마치 온 몸을 드린 신학생 내지 수도자들을 앞에 두고 설교하는 것 같다. 평신도들은 주일이면 마음의 평안을 얻고 싶은 마음이 크지만 설교의 내용은 헌신과 봉사에 치중되어 있다.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보다 교회의 활동에 더욱 전력해야 한다는 공동체적 의식 심기의 내용이 더 많다.

나는 주일 설교시간에 '더 많이 헌신하지 못하고 더 많은 시간을 드리지 못하는' 책망을 들으며 죄책감으로 고개를 숙여야 한다.
내가 일반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아닌 사역의 길에 있는 사람이라면 나의 온 시간과 열정을 드릴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교회는 조그마한 교회이다. 조그마한 교회일수록 예배 참석인원이 가변적이다. 몇 가족만 빠져도 온 교회가 썰렁한 것 같다.
이 때문인지 우리 교회는 예배가 시작되면 긴 서론을 들어야 한다. "오늘은 자리가 많이 비어 있습니다. 주일이면 어느 일에 앞서 예배 참석에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듣지 않아도 될 '책망'을 듣는 것으로 예배는 시작된다. 예배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닌 마치 공동체 훈련의 장 같다.

우리 교회의 예배 끝나는 시간은 무척 유동적이다. 어떤 날은 1시간만에, 어떤 날은 1시간 10분, 15분.... 대체로 설교와 광고시간이 길어지느냐 짧아지느냐에 따라 그 시간이 달라진다.

설교시간이 되어 예배석을 돌아보면 다들 움직이지 않는 '목석' 같다. 어떤 사람은 눈을 감고, 어떤 이는 앞을 쳐다보지만 눈은 '약간 간 것' 같다. 어떤 이는 아예 졸고 있다.
내 경험에 비춰 다들 설교시간을 견디고 있는 것 같다. 설교내용을 들어보면 조는 것이 당연하다. 설교의 제목과 주제는 틀리지만 조금 듣다보면 거의 매번 나오던 레파토리의 연속이다. 새로운 생동감과 비전을 주는 내용이 아닌 같은 톤의 같은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설교 원고대로만 해도 '은혜'가 될 것을, 가끔씩 원고 밖으로 외출했다 다시 돌아오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다. 그 외출이란 것이 항상 입에 붙어있는 내용이다. 가장 자신 있는 내용이겠지만 매번 들어야 하는 이들로서는 귀에 들어올 리 없다. 그러나 문제는 그 외출과 돌아온 설교의 내용이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 하기를 축원합니다" 목사님의 큰 권면의 말씀에 다들 이제 끝났다 보다 하고 생각하고 고개를 숙였는데 이어 나오는 말씀. "셋째로..." 모두가 머쓱해진다. 그냥 끝나도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을 꼭 원고의 끝은 보고야 만다.
가끔씩 설교와 광고시간이 결합되기도 한다. 설교의 '힘'을 빌려 광고에 효력을 더하기도 한다.

과연 우리 목사님은 설교를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준비할까?
평신도에 대한 이해 부족과 목회에 대한 준비 부족...
이러한 교회일수록 발전의 속도는 없는 것 같다.
주일 하루에 어려운 걸음걸이로 참석한 이들에게 희망과 신앙의 힘을 듬뿍 안겨주기 위해서는 목회자가 주일이 아닌 다른 날에는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

생동감 없는 예배는 그 자리에 참석한 평신도들의 열정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 열정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목회자의 책임이 크다는 사실을 목회자들은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대체로 목회자들은 그 책임을 교인들에게 돌린다. 더 많이 헌신하지 않고 더욱 섬기지 못하는 교인들을 책망하고 또 책망한다.
그러나 정작 온 몸과 시간을 헌신한 목회자들은 그 설교 준비 하나 제대로 하지 않는다. 새로운 변화의 시도 없이 항상 그 모습대로 '목회'를 꾸려간다.

목회자에 대한 불만을 나타내는 교인들에 대해서는 '문제 교인'으로 분류해 거리를 두는 것으로 '반대의견'을 용납하지도 않는다.

주일에 교회를 섬겼다는 이유로 목회자들과 교회직원들은 월요일을 휴무로 정한다. 그러나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생업에 종사하는 교인들은 주일 교회에서 하룻동안의 온전한 주일성수를 요구받는다.
주일을 '일'로 생각하는 목회자와 '섬김의 날'로 요구받는 평신도의 거리는 좁혀지기 힘들 것 같다.

온 기독교인이 모두 신학교에 가서 헌신하는 것만이 이 차이를 극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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