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다.'
요즘 의사 파업 사태를 지켜보며 새삼 실감하는 말이다.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 노동조합은 신문 광고란을 통해 자신들의 소감을 다음과 같이 피력했다. "의사 폐업은 약자의 호소가 아닌 강자의 협박입니다."

국민 건강권 수호라는 거창한 명제를 내걸고 파업을 하고 있는 의사들이 들으면 경악(?)할 선언이다. 하지만 시민단체와 백성의 입을 통해 쏟아지는 목소리는 대개 수긍하는 기색이다.

의사들이 강조해 마지 않는 그들의 권리는 진료권이라는 것이다. 약사들이 의사들만의 고유 영역인 진료권을 침해할 소지를 허용하고 있는 약사법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약사들의 임의조제와 대체조제를 막고 의사의 진료권을 수호하기 위해 그들이 제시했다는 대정부 요구 안에는 약국에 판매·조제기록부를 비치하고 최소 포장 단위를 7일치로 제한하도록 하자는 비현실적인 주장이 들어 있다.

이러한 요구안에 대해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는, 의쟁투의 주장대로라면 약사가 알약을 팔 때도 환자의 주민등록증을 제시받아 판매약과 함께 일일이 기록해야 하고, 물약도 7일치를 판매해야 하기 때문에 음료수병 만한 용기에 담아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다고 지적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이 세상에 의사만 존재하고 의사의 진료권만이 지켜져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진료권을 지키겠다는 의사들의 주장 속에는 약사의 권리가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 약사가 단순한 약품 판매상이 아닐진대, 약에 대한 약사들의 지식과 조제권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의사들은 자신의 의료권 수호라는 명분 하에 거의 막가파식의 독단으로 치닫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환자가 어떤 병에 걸렸으며, 어떤 약으로 치료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고 환자에게 알리는 것은 의사의 고유 권리이다. 하지만 이미 똑같은 효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입증된 약이 있다면, 상황에 따라(약이 없거나, 환자의 경제형편이 나쁘거나) 대체할 수 있는 약에 대해 환자에게 정보를 제공할 권리가 약사에게 있는 것이다. 이것은 환자에 대한 약사로서의 신성한 의무이기도 하다.

의사가 제시한 치료법이 옳든 그르든 간에 결국 진료행위를 받아들일 것인지 말 것인지는 환자가 결정할 문제다. 의사에게 신뢰가 안 간다면 환자는 의사의 처방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 의사가 주장할 수 있는 진료권의 한계는 보다 좋다고 여겨지는 치료법에 대한 지식을 환자에게 권고하는데서 멈추어야 한다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약사의 조제권도, 같은 효능을 줄 수 있는 약의 종류와 약의 부작용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데서 멈추어야 한다. 그 다음 어떤 약을 쓸 것인지를 최종 결정하는 것은 환자의 치료권의 영역에 속한다. 따라서 의사가 정해준 약 외에는 절대로 안된다는 의사들의 발상은, 환자의 치료권을 침해하는 의사의 월권 행위에 해당한다.

환자의 치료권은 의사의 진료권이나 약사의 조제권에 의해 침해되어서는 안될 천부적 기본권이다. 의사의 진료권보다도 약사의 조제권보다도 더 우선되어야 할 상위 권리가 바로 환자의 치료권인 것이다.

그런데 요즘 폐업 사태에서 드러나는 의사들의 언행을 보면, 약사의 조제권도 환자의 치료권도 전혀 안중에 없다. 의사의 진료권을 확고히 보장하기 위해 약사도 환자도 자존심과 생명조차 포기할 것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촌각을 다투는 환자들을 외면한 채, 의사의 진료권 확보가 국민 건강권의 수호라고 치켜 세우며 파업을 하고, 의사가 처방한 약 외에는 같은 효능이 입증되었건 말건 의사로부터 허락이 떨어지기 전에는 절대로 대체할 수 없다는 식의 논리를 펴는 의사들의 진짜 (심중에 감추어 둔) 이유는 무엇일까.

환자에게 투여된 약의 종류나 가격이 적절한지를, 환자에 의해 통제 받지 않고 맘대로 판매하던 예전의 기득권을 수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기를 진정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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