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비평>은 2000년 가을호에서 [쟁점 - 한국의 지식권력 시리즈] 세 번째로 '권력으로서의 한국종교'를 다뤘다. 주제에서도 암시되듯이, 한국의 종교는 이미 하나의 권력으로 상징되고 있다. 그 권력의 힘이란 언론계와 더불어 절대성역으로 자리매김되어 있기도 하다.

'한국종교, 열광과 침묵 사이에서'(장석만) '개신교와 성장주의 이데올로기'(이진구) '불교계, 종단 권력의 정치학'(김종찬) '한국 천주교회의 빛과 그림자'(조현범) 등 4개의 글로 구성돼 있다. <뉴스앤조이>는 그중 이진구 선생(서울대 종교학 강사)이 쓴 '개신교와 성장주의 이데올로기' 게재를 요청했고, 이진구 선생이 기쁜 마음으로 흔쾌히 응했다. 이진구 선생의 글을 두 개의 작은 주제로 나눠 세 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1. 도마 위에 오른 교회세습
요즈음 신문과 인터넷상에 교회세습을 둘러싼 논의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지난 6월 세계 최대의 감리교회인 압구정동의 광림교회에서 진행된 부자세습 문제가 기사화되면서 그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는 다른 교회들의 경우도 여론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김영삼 전대통령이 장로로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소속 충현교회에서 몇 달 전에 일어난 목사 피습사건도 교회세습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처럼 요즈음 개신교계의 최대 이슈는 목회자의 교회 세습 문제이다.

이러한 세습 현상에 대하여 교회 밖의 사람들은 목소리를 높여 비판한다. 재벌기업의 총수가 자식에게 기업을 물려주는 것에 대해서도 사회 여론이 곱지 않은 이 마당에, 어떻게 '성스러운' 목자의 길을 가는 목사가 자식에게 막대한 재산과 신자를 지닌 교회를 넘길 수 있느냐는 것이다. 교회 밖에서만 비판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은 아니다. 개신교 내부에서도 비판적인 소리가 나오고 있다. 기독교 윤리의 실천을 통한 한국 교회의 개혁을 목표로 하여 설립되었다고 하는 '기독교윤리실천운동본부'는 교회 자체 내의 법을 제정해서라도 목회자 세습을 막아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면서 교회 세습에 반대하는 서명 작업을 벌이고 있다. 그리고 상당수의 교회 청년과 젊은 신학생들도 인터넷을 통하여 세습 반대 여론을 확산시키고 있다. 이처럼 세습 반대 여론이 급속도로 확산되자 광림교회의 홈페이지 게시판은 일시적으로 폐쇄조치를 단행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목회자 세습 현상은 갑자기 나타난 우발적 현상이라기 보다는 오늘날 한국 개신교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고 있는 한가지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교회 세습 현상은 한국 개신교에 만연되어 있는 외형적 성장주의와 대형교회의 선호, 교회운영의 비민주성와 여성 성직자의 배제, 종교재정의 불투명성과 성직자의 납세 거부, 공세적 선교활동 등의 문제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이 글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하여 드러나기 시작하는 한국 개신교 종교권력의 구조와 그 작동 방식을 추적해보고자 한다. 거시적으로 보면 개신교 종교권력은 국가권력과의 관계, 종교시장 부문, 교회내부의 영역이라는 3가지 차원에서 작동한다고 볼 수 있다. 이 3가지 영역은 이론적으로는 구별되지만 실제적 차원에서는 분리되지 않고 밀접한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 이 3가지 차원을 가로지르는 개신교의 에토스는 성장주의 이데올로기이므로 이 문제를 먼저 검토해 보도록 하자.  


2. 성공시대와 영웅신화
한국 개신교가 짧은 기간 내에 전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급성장을 거듭하여 온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이는 국내외의 학자들에게 지적 호기심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였기에 그 동안 한국 개신교의 팽창 요인에 대한 연구가 적지 않게 축적되었다. '성령의 역사'에서부터 '한국인의 기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성장 요인이 제시되었지만,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는 한가지 사실은 산업화 과정과 개신교 성장의 밀접한 관련성이다.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이렇다. 60년대에 시작된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계획에 의한 급속한 산업화 과정은 한국경제의 고도성장을 가져왔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회경제적 문제가 파생되었다. 급속한 도시화로 인한 이농현상과 도시빈민층의 형성, 혈연중심의 전통적 대가족제도의 붕괴, 빈부격차의 심화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의 증대, 노동운동의 억압과 인권탄압 등등. 이러한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상황이 오히려 개신교 성장의 비옥한 토양이 되었다는 것이다.

종교는 사회적 위기상황과 불안기에 번성하는 경향이 있다.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으로 소외된 계층은 자신들의 불안감과 위기감을 해소시킬 수 있는 새로운 '피난처'를 필요로 한다. 당시에는 교회가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위로하고 치유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 역할을 적절하게 수행하였다. 목사의 열정적인 설교와 뜨거운 기도, 그리고 우렁찬 찬송가로 가득 찬 예배 분위기는 소외계층이 당하는 현실의 고통과 아픔을 일시적으로나마 잊게 해 줄 수 있었다. 나아가 교회는 '고향을 잃은 사람들'(월남한 자나 농촌에서 도시로 올라온 자)에게 새로운 소속감과 유대감을 부여함으로써 전통적 가족공동체의 기능을 대체하는 새로운 공동체 역할도 하였다. 이처럼 산업화 시기의 사회경제적 모순이 엄청난 수의 '산업 예비군'을 '종교시장'으로 밀어내는 요인(push factor)으로 작용하고, 교회의 뜨거운 메시지와 신앙공동체가 이들을 교회당으로 끌어들이는 요인(pull factor)으로 작용하면서, 개신교는 엄청난 교세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개신교의 급성장 과정은 한국경제의 고도성장과 매우 유사한 측면을 보이고 있다. 한국 경제가 '한강의 기적'을 일으키며 고도성장을 거듭하는 동안, 교회는 '성령의 기적'을 일으키며 경제 성장을 앞지르는 고속 성장 시대를 구가하였다. 경제 분야의 고도성장이 '재벌'의 형성으로 귀결되었다면, 종교 부문의 고도성장은 '맘모스 교회'를 등장시켰다. 경제 분야에서 현대, 삼성, 대우(지금은 해체되었지만), 선경 등으로 대표되는 거대 기업이 등장하였다면, 개신교 교회에서는 순복음교회, 광림교회, 충현교회, 영락교회 등으로 대표되는 초대형교회가 출현하였다.

대기업의 창업자들은 자신들이 맨손으로 출발하여 오늘의 거대그룹을 이루어 냈음을 자랑스러이 회고한다. 초창기의 어려운 시절에 점심을 굶어가며 피와 땀을 흘려 마침내 오늘의 '영광'을 얻게 된, 이들의 회고담은 후배 기업인들에게 감동적이고도 교훈적인 이야기로 다가온다. 그들은 한국경제의 고도성장을 이끈 시대적 '영웅'으로 자리매김되며 그들의 생애는 '영웅신화'로 각색되어 유통된다. 이러한 '영웅신화'에서는 당시 정권이 재벌을 키우기 위해 투여한 엄청난 국민의 혈세나 그 과정에서 흘린 산업노동자의 피땀은 철저히 배제된다.

한편 대형교회의 창립자들은 '천막교회'에서 시작하여 오늘의 거대한 '맘모스 교회'를 세웠다. 따라서 이들의 회고담 역시 교회 개척 당시의 산동네나 달동네에서 그들이 겪은 험난한 인생역정과 고난의 이야기를 빠뜨리지 않는다. 이들의 '개척 이야기'는 젊은 목회지망생이나 소형교회의 목회자들에게 하나의 '영웅신화'로 받아들여진다. 이러한 '영웅신화'에서도 교회의 밑거름이 된 신자들의 고난과 피땀 이야기는 '영웅'의 활약을 빛내주는 주변적 이야기로만 등장할 뿐이다.

이처럼 60년대에서 80년대에 이르는 시기의 한국 경제와 한국 교회는 '성공신화'를 공유하고 있다. 이러한 성공한 영웅들의 이야기가 지속적으로 유통될 수 있는 것은 우리사회에서 성장주의 이데올로기가 지배적 에토스로 자리잡아 왔기 때문이다. 현재 세계 50대 교회 가운데 23개 교회, 세계 10대 교회 가운데 4개 교회가 우리 나라에 있다고 한다. 전 세계 초대형교회의 절반이 한국에 있는 셈이다. 개신교계에서 발행되는 신문을 보면, 교회성장 전략과 비법에 관한 광고가 가득 차 있으며 급성장하는 교회를 소개하는 기사가 빠지는 적이 없다. 교계 신문을 구독하는 주요 독자가 목회자 지망생과 현역 목회자들이라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교회 지도자들 사이에서 교회성장에 대한 꿈과 기대가 얼마나 큰가를 알 수 있다. 오늘날 한국 개신교의 목회자들 중 자신의 교회를 대형교회로 키워보겠다는 꿈을 지니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메가 처치(mega church)에의 꿈! 여기에 한국 개신교의 놀라운 성장과 힘, 그리고 동시에 종교권력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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