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에 있어 목회자의 역할과 사역의 다양성은 인정되어야 하지만 그래도 목사에게 있어 설교사역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설교사역은 설교자의 사사로운 감정과 논리에 좌우될 것이 아니라 항상 '신율적인 상호작용'속에서 행해져야 마땅할 것이다.

다음은 목사의 설교가 길어질 때 그 이유를 다시 한번 짚어봄으로써 설교사역의 귀중성을 반추하고자 한다. 그렇다고 설교가 길다고 해서 다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다만 특정한 시점에 혹은 어느날 갑자기 그것도 아니면 일정한 기간을 두고 점차적으로 늘어갈 때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설교가 짧다고 해서 다 좋은 것은 더더욱 아님을 밝혀둔다. 대개 설교자의 횡포가 설교가 길어짐을 통해 쉽게 나타나기 때문에 이것을 경계하고자 하는 것이다.


1.자신의 설교가 잘한다고 착각할 때
대부분의 목사들은 자신이 설교를 잘한다고 생각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이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물론 겉으로는 '부족하다' 말하고 아직 채워야 할 부분이 많다고 말하지만 그런 사람일수록 설교에 대한 평을 하면 굉장히 싫어하고 때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다. 이 '잘하는 설교에 왜 은혜를 못 받느냐' 하는 식이다. 그래서 목사는 누구나 자기의 설교가 최고인 양 생각하기 때문에 이 잘하는 설교를 오래 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므로 설교가 자꾸 길어진다. 정말이지 다시 신학교에 가야 할 사람이다.

2.목회의 헤게모니를 장악했을 때
간혹 새로운 교회에 부임하면 처음부터 과격(?)하게 하는 사람은 드물다. 얼마 동안 분위기를 파악하고 살피게 된다. 그 과정에서 힘겨루기의 양상도 일어난다. 권모술수의 정치도 오고 간다. 그러다가 목회적인 헤게모니를 완전히 장악하게 되면 거칠 것이 없어지므로 말이 많아지고 당연히 설교가 길어지게 된다.
이런 사람은 말로는 '주님의 교회', '주님이 주인되는 교회'라고 외치지만 교회를 가장 사유화하기 쉬운 사람이기에 교회의 주인되시는 주님에게 자리를 내어 드리고 교회를 나가야 한다.

3.본문의 핵심을 짚어내지 못할 때
대개 설교 준비가 부족하면 설교가 짧아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길어진다. 시간 가는줄 모른다. 열정적으로 해서가 아니라 횡설수설하기 때문에 끝을 맺지 못하고 자꾸 길어진다. 그래도 이런 사람은 인간적이다.

4. 목회플랜을 위해 설교를 이용할려고 할 때
설교를 통해서 목회적 플랜을 설명할려는 사람들이 있다. 목회적 플랜은 목회행정을 통해서 접근되어야 하고 논의되고 결정되어야 한다. 설교와 목회적 플랜은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다시 말하자면 목회적 플랜의 성취를 위해서 설교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렇게 되면 원래 전해져야 할 말씀에 목회적 플랜의 욕심이 추가되기 때문에 설교가 어떤 사업설명회로 전락될 수 있으며 자연 길어질 수 있다. 차라리 이런 사람은 목회자를 하기 보다 장로로서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5.지나친 준비도 설교를 길게 한다.
설교를 무슨 경연대회를 치루는 사람 마냥 준비하고 나오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준비가 지나친 나머지 자기까지 드러내는 사람들이 있다. 소위 설교로 폼잡는 사람들이다. 설교로 자기의 인기와 명성을 획득하고 유지할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대단히 위험한 사람들이다.

현대에 있어서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과 동시에 말씀을 통해서 성도를 섬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포자로서 당당함을 잃지 않아야 하지만 청중을 섬기는 자로서의 겸손과 배려를 잊어서도 아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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