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에 들어가서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들고 있던 V/S노트(시간마다 환자의 맥박이나 체온 등을 기록한 노트)를 떨어뜨린 채 “악!”,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붕대를 벗겨낸 그의 얼굴은 정말 내가 상상도 못했던 모습이었다. 언젠가 TV에서 본 징그러운 파충류가 바로 내 앞에 있는 듯 했다. 안경을 걸친 콧대에서 대충 멈춰버린 콧날, 흔적 없이 사라진 귀, 가까스로 반절만 남아 다섯 개를 채운 손가락들...

그가 이상하리 만치 밝은 미소를 띠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 동안 정말 고마웠다며. 잡고 싶지 않았다. 내 손가락조차 그렇게 반죽이 돼 버릴 것 같았다. 바들바들 떨면서 겨우 잡은 채, “뭘요”라며 간신히 대답했다. 그가 말했다.

“붕대에 감겨 있는 동안 줄곧 내 얼굴이 어떻게 됐을까, 궁금했어요. 두려울 때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을 수백 번 수천 번 중얼거렸지요. 그리고 어제 밤 붕대를 풀어낸 내 얼굴을 보았을 때, 나도 거울을 놓쳐버렸답니다. 그리고 한밤중에 혼자 깨었을 때였어요. 내 심장이 팔딱팔딱 뛰고 있음이 들렸습니다. 신기하고 감사했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생생히 살아계심을 느낀 것입니다. 지금 내 얼굴이 보이는 것만으로도 난 감사했어요.”

그의 눈에 눈물이 어려 있었다. 난 기도했다. 내가 가진 예쁜 코와 귀와 눈, 그리고 숫자가 딱 맞는 손가락을 갖고 있었지만 여태껏 한번도 감사하지 못한 불구자였음을 회개했어요. 나도 잠자다 일어났을 때 내게 심장이 뛰는 걸 느끼고 감사하고 싶었다. 물론 죽음이란 잠에서 깨났을 때도 말이다.

지금은 주부가 된 김해정 씨의 글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심정을 글로 옮겼습니다. 문득 만나는 감사의 환희를 공유할 수 있어 아름다운 글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 묵상제목을 떠올립니다. 외모입니다. 세상을 만만찮게 살아 본 사람들은 알고 있습니다. 세상을 사는데 외모가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음을 말입니다. 주님은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말라 말씀하셨지만 그렇게 강조하신 만큼 세상은 반대로 외모를 중시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선입관은 감사하는 마음을 차단하는 바리케이트 같은 것입니다. 선입관 없이 누군가와 만나고 싶습니다. 외모에 대한 선입관 때문에 소외된 이웃이 생겨난다면 이는 인권의 문제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 있으며, 하나님 앞에서 나보다 소중하지 않은 존재는 아무도 없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자유를 보장하는 대헌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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