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총회장 임태득 목사(대명교회)가 은급재단 이사장으로 재직 중인 작년 초 총회의 명령을 어기고 사용한 은급기금 20억 원을 채워넣기 위해, 통일교 실력자 박보희 씨가 연대보증한 22억 짜리 어음을 사채 시장에서 할인해 작년 7월 은급재단 통장에 입금한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박보희 씨는 세계일보 사장, 한국문화재단 이사장, 금강산국제그룹 대표 등 굴지의 통일교 관련 기업과 단체의 대표를 지낸 바 있는 명실상부한 통일교 핵심 실세다. 박 씨는 최근 부동산 관련 사기혐의로 구속된 상태.

국내 굴지의 개신교단 총회장이 사채를 20억 원이나 끌어 쓰고 이 과정에서 이단집단으로 치부되는 통일교의 실력자 박 씨의 조력을 받은 사실은 교단은 물론 한국교회 내에서 큰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전망된다.

더구나 박보희 씨가 배서한 17억 원짜리 어음이 사채시장에서 현금으로 할인된 후 곧 부도 처리되자, 12억 원을 은급기금에서 또다시 빼내 사채업자에게 돌려준 의혹도 있어 파문은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20억 사채 왜 썼나

예장합동 은급재단은 납골당 관련 사업을 하지 말라는 총회의 결의를 무시하고 2002년 말 납골당 사업자 최 아무개 씨에게 20억 원을 대출해 주었고, 작년 초 이 사실을 확인한 한명수 총회장으로부터 채워 넣으라는 지시를 받은 바 있다.

당시 은급재단 이사장 겸 부총회장 임태득 목사는 20억 원을 채워 넣지 않으면 총회장에 취임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자 작년 7월 급하게 이 돈을 메웠다. 한명수 총회장 등 일부에서는 20억 원의 출처를 밝혀야 한다고 임 총회장을 압박했지만,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총회장의 말은 구속력이 약했다.

임 총회장이 가져온 돈의 출처는 계속 묻혀 있다가 최근 엉뚱한 곳에서 드러났다. 은급재단의 돈을 빌려 쓴 최 권사와 한 때 최 권사와 동업한 조 아무개 씨 사이에서 벌어진 납골당 소유권을 둘러싼 법정 소송 과정에서, 당시 환수한 20억 원의 출처를 입증하는 어음과 증빙자료들이 쏟아져 나온 것.

최 권사와 동업자간의 법정 공방서 자료 나와

임 총회장에게 흘러간 어음은 17억 원짜리와 5억 원짜리 두 개로 모두 인쇄업체 (주)디엔피테크에서 발행했고, 박보희 씨가 배서했다. 이 어음이 사채 시장에서 할인해 임 총회장에게 건너갔다. 김장수 전 은급재단 국장과 조 씨, 그리고 박보희 씨를 연결해 준 김 아무개 장로, 디엔피테크 사장 윤 아무개 씨 등은 이 돈이 은급재단 통장에 입금됐다고 진술했다.

임 총회장이 20억 원을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최 권사의 동업자 조 아무개 씨. 조 씨는 김 아무개 장로에게 "부총회장인 임 목사가 총회장 선거를 목전에 두고 20억 원을 불법 대출해 궁지에 몰렸으니 상장 어음을 구해달라"고 부탁하자, 김 장로는 자신이 투자하고 있는 디엔피테크가 발행한 어음 17억 원, 5억 원, 3억 원짜리 세 장을 구해줬다고 밝혔다.

조 씨는 어음을 발행할 당시 "20억 원은 임 총회장 측이 쓰고, 자금 사정이 좋지 않은 윤 사장에게 나머지 5억 원을 주기로 서로 약속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임 총회장 측은 이 어음만으로는 할인이 곤란하다며 공신력 있는 사람을 지급보증인으로 세워달라고 김 장로에게 부탁했다. 중소기업에서 발행한 어음을 사채시장에서 높은 가격에 현금으로 할인 받기 위해서는 신용도가 높은 개인이나 단체의 배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김 장로는 자신과 친분이 있는 박보희 씨에게 사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조 씨는 "자신이 모든 민·형사상 책임을 진다는 각서까지 써준 후에 박 씨로부터 배서를 받는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박 씨가 배서한 어음은 17억 원과 5억 원짜리 어음 2장이며, 3억 원짜리 어음에는 배서하지 않았다.

▲ 임태득 목사가 통일교 실력자 박보희 씨의 배서를 받아 할인한 17억 원짜리 어음.  ⓒ뉴스앤조이

그 후 17억 원짜리 어음은 서초동의 한 법무법인에서 공증받아 사채업자 이 아무개 씨한테 할인됐다. 조 씨 측 변호인에 따르면, 작년 7월 10일 이 법무법인에서 작성한 '17억 금전소비대차 공정증서'에는 임 총회장과 최 권사, 김장수 전 은급재단 사무국장이 공동으로 돈을 빌린 것으로 표기돼 있다.

또 다른 5억 원짜리 어음은 사채 시장에서 할인해 3억 원은 임 총회장에게 건너갔다. 나머지 2억 원을 누가 받았는지를 놓고 한 때 동업자였던 최 씨와 조 씨가 쌍방 고소를 벌이고 있다. 조 씨는 어음 발행인 윤 사장이 2억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고, 윤 사장도 돈을 받았다고 인정하고 있다.

최 권사는 "2억 원을 김 장로가 썼다"며 증거자료로 5억 원짜리 어음을 검찰에 제출했다. 최 씨가 제시한 5억 원짜리 어음은 박보희 씨와 임 총회장, 김 전 국장 등이 차례로 배서한 후 사채시장에서 현금으로 할인된 후 은급재단 통장으로 입금된 문제의 어음이다.

▲ 임태득 목사는 17억 짜리와 5억 원짜리 어음(사진)을 사채 시장에서 할인해 그 가운데 2억은 발행인에게 주고, 나머지 돈 가운데 15억 원을 작년 7월 14일 은급재단에 입금했다. ⓒ뉴스앤조이

한편, 최 씨는 박 씨의 인감이 위조됐다는 주장도 아울러 펼치고 있다. 또 최 씨는 "17억 짜리 어음이 곧 부도처리 됐기 때문에, 임태득 목사 교회 권사와 권 아무개 장로 등에게 돈을 빌려 사채업자에게 돈을 줬다. 박보희 씨의 도움을 받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러나 조 씨 등은 공증받을 당시 박 씨의 인감증명서도 함께 법무법인에 제출됐다며 ‘인감 위조설’을 일축했다. 또 부도어음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디엔피테크가 부도난 것은 작년 7월 16일이지만, 7월 10일 어음 공증을 받았고 이날 은급재단 보통예금 통장에 15억 원을 입금한 것이 확인됐다"면서 "박 씨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는 주장은 거짓말이다"고 반박했다.

김장수 전 국장 역시 이 부분에 대해 "우리는 17억 원짜리 어음과 5억 원짜리 어음을 받았지만 어음을 발행한 회사가 곧바로 부도나, 17억 원짜리 어음은 딱지어음(가짜 약속어음)에 불과했다"면서 "현금으로 바꾼 17억 원 가운데 12억 원을 사채업자 이 씨에게 돌려줬다"고 설명했다. 또 "사채업자에게 돌려준 12억 원이 은급재단에서 불법 대출한 기금에서 나간 것이다"고 말했다.

김장수 전 국장이 알아서 한 일인가

박보희 씨의 도움을 받았다는 내용에 대해, 임 총회장과 김 국장은 정반대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임 총회장은 <뉴스앤조이>와의 전화통화에서 "(박 이사장의 도움을 받았다고) 누가 그러냐, 미친놈들이다. 나는 그런 일 없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그러나 김장수 전 국장은 "박보희 씨의 배서를 받아 17억 원짜리와 5억 원짜리 어음을 할인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김 전 국장은 "박 씨가 통일교 실력자라는 사실은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어음 뒷면에 '한국문화재단이사장 박보희'라고만 씌여 있어 박 씨가 통일교 실력자라는 사실은 생각도 못했다는 것이다.

한편, 임 총회장이 20억 원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김 전 국장이 구체적인 실무를 처리한 것으로 보인다. 임 총회장은 "현찰만 받았다", "내 통장에 돈이 들어왔지, 그런 거(박보희 관련 사실)는 모른다"며, 모든 책임을 실무자인 김 전 국장에게 떠넘겼다.

김 전 국장도 "임 총회장은 따라다니며 도장만 찍었지, 나머지는 아무 것도 모른다"고 말하고 "그는 어떻게 해서든 돈을 구하는데 신경을 썼지, 어디서 들어오는지는 모두 내가 알아서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임 총회장이 과연 박보희 씨가 어음에 배서한 사실을 몰랐는지의 여부는 여전히 의혹으로 남는다. 조 씨가 "17억 원을 공증 받을 때 임 총회장도 그 자리에 있었다"면서 "어떻게 자기 위에 배서한 사람의 이름을 모를 수 있느냐"고 반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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