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립 100주년을 맞은 시흥교회 전경 ⓒ뉴스앤조이 신철민
뉴스앤조이가 시흥교회(서울 금천구 시흥본동 841-25) 관련 뉴스를 처음으로 보도한 것은 2002년 1월. 당시 기사는 '영적패륜 겪는 99년 전통의 시흥교회'라는 다소 충격적인 제목. 이 기사 이후에도 담임목사 도덕성 문제로 심한 진통을 겪는 교회 내부의 숨가쁜 상황에 대한 보도가 계속 이어졌다.

그러나 어느 순간 시흥교회 사태는 단순히 담임목사와 교인 간의 다툼 차원에서 머물지 않고 교회 본질을 회복하기 위한 아름다운 몸짓으로 승화됐다. 교회 언로를 차단하고 무분별한 징계를 일삼는 목회자의 패권주의에 맞서 교인 스스로 교사모를 조직해,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내기 시작한 것은 물론 교회 개혁을 이루기 위한 숭고한 투쟁을 선언한 것.

당시 시흥교회 담임 목회자는 목회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교단헌법과 '주님의 종'이라는 '신성한 지위(?)'를 배경으로 자신의 흠을 감추면서 교인을 짓눌렀으나, 뚜렷한 불의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던 시흥교회 교인들의 일관된 개혁의지 앞에서 결국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시흥교회 100년 역사 속에 면면히 흐르는 개혁주의 전통은 창립 이후 유래가 없었던 2년 동안의 극심한 아픔을 선교 2세기를 앞두고 한국교회에 희망의 빛을 내뿜는 의미 있는 기회로 승화시켰다.

교회 내부의 의사결정 과정을 고립된 구조가 아닌 평신도까지 참여하는 '열린 구조'로 개선했으며, 담임목사 청빙 역시 교인 모두가 알 수 있는 투명한 절차를 밟도록 만들었다. 또 목회자와 장로 임기제를 도입해 교회 내부 권력구조가 부패할 수 있는 요인을 근원적으로 차단했다.

시흥교회는 진통의 와중에서 한국교회 개혁의 한 방법으로 떠오른 '모범정관'을 제정, 교회 민주화를 이룩하면서 한국교회 개혁의 모델이 될 만한 위치에 오를 수 있게 됐다. 이제 시흥교회 교인들은 2년 간의 엄청난 산고를 겪으면서 탄생한 모범정관에 커다란 애정을 갖고 있으며, 이 모범정관의 규정을 충실하게 지키면서 새로운 담임목사 청빙에 성공했다.

▲ ▲시흥교회 원로 차관영 목사(왼쪽)과 새 담임 방수성 목사가 교회 창립 100주년 기념 홍보물을 들어 보이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승균
시흥교회 새로운 담임목사 방수성 목사(45)는 젊고 참신한 목회 기풍을 가지고 있으며, 모범정관의 규정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미국장로교회(PCUSA)에서 목회한 경험을 바탕으로 투명하고 민주적으로 담임목사직을 수행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방 목사는 100주년 창립기념감사예배가 열리는 5월 23일 위임식을 갖는다. 

시흥교회는 올해 뜻 깊은 100주년과 모범정관에 따라 선임된 새 담임목사가 부임하는 겹경사 속에서 앞으로 다가올 100년 동안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을 완수하기 위한 또 한번 거듭나고 있다.

 

시흥교회 100주년 기념행사 어떻게 진행되나

▲ ▲100주년기념준비위원회 위원장 고선용 장로. ⓒ뉴스앤조이
시흥교회는 10년 전에 이미 100주년 기념준비위원회(위원장 고선용 장로)를 구성할 정도로 교회 창립 100주년에 큰 의미를 두고 있었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사건으로 교회가 진통을 겪으면서 100주년 사업에 차질을 빚었다.

10년 전에 기획된 100주년 사업의 주된 목표는 △100주년 기념예배당 건축 △사회봉사관 건축 △파이프 오르간 설치 등 3가지. 이 3가지 중에서 100주년 기념예배당인 안산시흥교회당만 성공적으로 건축했을 뿐 나머지는 성사되지 못했다.

100주년 준비위원장 고선용 장로는 "미리 기획해 놓고 이루지는 못했지만 과거의 목표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현재 100주년을 맞으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실추된 교회 이미지를 회복하고 침체된 교회 분위기를 회복하는 것이다"고 밝혔다.

즉 100주년을 맞기 직전에 발생한 시련이 지역사회에 파문을 일으키고 교인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긴 만큼 과거의 아픈 기억을 100주년 행사를 통해 말끔하게 씻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라는 것. 이런 의미를 담아 행사의 주제를 시흥교회 100주년 맞이 큰 잔치 '백년의 약속'이라고 정했다.

행사의 목적도 금천지역과 금천구민을 기반으로 성장한 점을 감안, 지역주민과 함께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따라서 10년 전에 정했던 100주년 사업의 방향보다 훨씬 성숙한 교회의 비전을 담아냈다는 평가를 들을만한 프로그램으로 짜여 있다.

5월 15일 오후 5시부터 마련되는 첫 번째 행사는 자녀와 부모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홍순관의 미니콘서트와 '황금빛 똥을 누는 아기'의 저자 최민희 선생의 강연이 준비돼 있다. 두 사람은 모두 자기의 분야에서 녹록치 않은 의식을 지닌 탁월한 크리스천으로 알려져 있다.

16일 주일에는 시흥교회 청년 극단 '고백'의 '다녀왔습니다'는 공연이 무대에 오른다. 이 작품은 평범한 가정 소희네 집을 통해 가족의 의미와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22일 오후 7시에는 청소년들과 함께 하는 한스밴드의 콘서트와 신세대 영어 강사 이근철의 '나도 영어 잘 할 수 있다'는 강연이 준비된다.

29일 오후 5시는 어린이를 위한 극단 사다리의 공연 '무엇이 될까'가 무대에 오르고 30일 주일에는 지역 주민과 교인들이 함께 들을 수 있는 창립100주년 기념음악예배가 열린다.

시흥교회는 이들 행사가 금천지역과 주민들을 섬기고 학생과 청소년 및 학부모들의 다양한 교육적 필요를 채워줘 가정의 소중한 의미를 되새기게 하면서 참 예수 정신을 이 지역에 뿌리 내리게 만드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역주민과 함께 웃고 울었던 시흥교회"
35년 증인 차관영 원로목사 "살아서 100주년 맞아 감사"

▲ ▲차관영 목사. ⓒ뉴스앤조이
지금부터 1세기 전인 1902년 2월 7일, 시흥리 탑골의 한 개인 집에서 언더우드 선교사의 인도로 예배를 드린 것이 시흥교회(서울 금천구 시흥본동 841-25)의 시초다. 그 후 시흥교회는 지역사회에 착실한 기반을 닦으면서 꾸준히 성장해 왔다.
차관영 원로목사(78)는 지난 1959년 부임해 1994년까지 무려 35년 동안 시흥교회를 줄 곧 담임했다. 본인이 66세에 스스로 물러나지 않고 70세까지 계속 목회 했다면 40년을 채웠을 것이다. 

차 목사는 "살아서 100주년을 맞이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로 가슴벅찬 심경을 표현하고 있다. 45년 전 서울에서 가장 가난한 동네 중의 하나인 시흥에 부임했을 때 하나님께서 자신을 가장 적절한 장소에 보내주셨다며 못내 감사했다는 차 목사는 "교인과 주민과 함께 울고 웃던 그 동안의 세월을 송두리째 보상받은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차 목사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물론 최근 2년 간의 세월이 그에게도 가장 큰 아픔이었다. 그는 자신이 선택한 후임 목사에게 고소를 당하는 패륜을 겪으면서 "왜 죽지 않고 살아서 이런 험한 꼴을 당해야 하는가"라고 스스로 물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차 목사는 모진 시련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또 한번 체험했으며 나아가 창립 100주년이라는 뜻 깊은 시간을 맞게 됐다. 그는 비록 견디기 힘든 시련을 겪었으나 이제 새롭게 거듭나는 시흥교회의 모습을 보면서 여태 생명을 연장해 주신 하나님께 새삼 깊은 감사를 드리고 있다. 또 한편으로 자신의 35년 목회 인생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보람도 느끼고 있다. 

차 목사는 70년대와 80년대 중반까지 군사정권 시대의 소위 요시찰 인물이었다. 교회 내에 근로청소년 학교를 운영했을 뿐만 아니라 도시산업선교회 위원장도 역임하는 등 소외된 노동자 문제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중앙정보부의 서슬퍼런 감시를 받았고 주일예배 때는 형사들이 날카로운 눈으로 설교하는 차 목사를 노려보곤 했다.

하지만 그는 군사정권 비판도 서슴지 않았고 심지어는 79년 10.26 사태 발생 1주일 전 설교 시간에 "부자도 죽고 박정희도 결국 죽는다"는 말까지 남긴바 있다. 차 목사에게 '반골'이란 별명이 붙여진 이유를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시흥교회 교인들이 교회 내부의 불의 앞에 거세게 저항할 수 있었던 것은 차 목사의 일관된 행동과 가르침이 교인들의 의식 속에 깊게 뿌리 내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런 차 목사의 목회관은 시흥교회가 자연스럽게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교회'로 정착하는 바탕이 됐다. 교회에서 근로청소년 학교를 운영하는 외에도 지역 초등학교에 제대로 된 강당이 없던 시절에는 본당을 개방, 수많은 어린이에게 좋은 교육환경을 제공했다. 또 믿지 않는 주민이라도 원할 경우에는 기꺼이 본당을 결혼식장으로 제공해 줬다. 

현재의 금천구 구청장이 초등학교 1학년 때 교회에서 배웠을 정도로 이 지역 주민들은 시흥교회의 직간접적인 교육 혜택을 입었다. 또 불교신자가 30만원의 건축헌금을 낸 사실은 시흥교회에 대한 지역사회의 신뢰가 결코 작지 않았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한편 차 목사는 가난한 교인들의 무거운 삶의 짐을 함께 나누다 당시 가난이 낳은 병으로 불리는 폐결핵에 걸려 갈비뼈 5대를 잃기도 했다. 때문에 차 목사의 몸은 한쪽으로 삐딱하게 기울어 있다. 폐결핵의 무서움을 몸소 체험한 차 목사는 지역 주민들에게 약을 나눠주거나 주사 놓는 법을 배워 직접 주사를 놔주기도 했다.

차 목사는 조기은퇴를 일찌감치 실천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70세 정년을 4년 앞둔 66세에 은퇴를 선언한 것. 그것도 멋진 팔각정 예배당을 완성한 직후다. 그는 자신 보다 뛰어난 영성을 지닌 후임자가 시흥교회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뒤를 이은 후임자로 인해 교회가 예기치 않은 시련을 겪었지만 일찍 은퇴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차 목사는 자신의 옆구리에서 빠져나간 갈비뼈 5개가 시흥교회의 미래를 굳건하게 지키는 작은 버팀목이 되기를 간절하게 기도하고 있다.  
    

한국교회 개혁 모델 제시하는 교회로
방수성 신임 담임목사 "100년 전통 살려 새 역사 이어갈 것"

▲ ▲방수성 목사. ⓒ뉴스앤조이
"시흥교회는 일반 로컬처치에 머물지 않고 한국교회 대표성 있는 교회 중의 하나이다. 100년의 저력을 바탕으로 한국교회 개혁 모델을 제시하는 교회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다."

시흥교회 새로운 담임 방수성 목사(45)는 오는 5월 23일 공식 취임식에 앞서 굳은 각오를 밝혔다. 방 목사는 "시흥교회 교인들은 100년을 이어온 교회를 출석하는 신자답게 신앙 훈련이 잘 되어 있다"며 "과거 2년 간 교인들이 겪은 아픔을 치유하는데 주력하면서 이 지역에 교회의 영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방 목사는 "시흥교회는 현재 지난 100년의 역사를 마무리하고 미래 1세기를 열어가는 변화기를 맞고 있다"며 "이 변화기를 잘 인도하는 것이 나의 몫이다"고 말한다. 즉 시흥교회가 과거 지역사회와 함께 한 전통을 계승하고 더 나아가 지역사회의 흐름을 읽고 사회봉사와 더불어 지역 주민들의 정신적·영적인 빈곤을 채워줄 수 있도록 목회방침을 설정하겠다는 것.

"교회는 사회변화를 주도해야 한다. 세속의 유행을 쫓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문을 열어 놓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사회를 포용하고 그들을 진리로 인도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가 120킬로로 달리고 있다면 교회는 60킬로로 전진하고 있다."

방 목사는 사회의 흐름을 쫓기 위해서는 목회자도 CEO의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기업적 경쟁을 통한 교회 성장을 추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변화를 주도하는 개혁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목회자가 치열한 자기성찰에 앞장서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

또 시흥교회가 모진 산고 끝에 탄생시킨 모범정관의 규정을 충실하게 지켜가면서 규약을 제정한 본래의 뜻을 잃지 않도록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함석헌 선생이 남긴 '한국교회에는 훌륭한 전도인은 많지만 훌륭한 기독교인은 없다'는 교훈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교인들이 훌륭한 기독인이 될 수 있도록 숫자 불리기 식의 성장주의를 배격하고 한 영혼의 인격적 변화해 지역사회 속에서 소금과 빛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