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안에서 문안드립니다.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참담함으로, 불쌍한 대한민국의 의사들, 특히 전공의, 학생들... 마치 길 잃은 양들이 갈 바를 몰라 해 저문 산 속에서 방황하는 모습을 연상케 하는 애처로운 무리들을 생각하면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그 와중에 우리는 주님의 음성에 귀기울이며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를 공유하고 용기있게 생명의 고귀함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러나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한다는 말로 모든 주장과 행동들이 부당하게 매도되고 있는 대한민국 의사 집단에 우리 역시 속하고 있으며, 지금 우리 사회 분위기는 (우리의 뜻과 의지와는 무관하게) 우리가 의사들이 현재 취하고 있는 집단행동에 대해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 면죄부가 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 역시 지금 도매금으로 그간에 우리가 무엇을 했고, 어떤 생각을 갖는가 하는 것은 국민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단지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의사를 직업으로 갖고 있는 피도 눈물도 없고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 생명을 우습게 생각할 수 있는 부도덕한 집단일 뿐입니다. 불행히도 이것이 작금의 현실입니다.

약사법에 대한 중재활동도 좋고, 합리적인 대안도 필요합니다. 결국 어떻게든 이 문제는 해결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상황이 종료되고 난 후에 일어날 일들을 생각하면서 저에게는 그보다 더 저의 마음을 치는 것이 있습니다.

첫째로는 국민들의 마음의 상처입니다. 최소한 폐업 기간에 어떤 형태로든 불편을 겪은 분들로부터 생명이 위협을 받고 이로 인해 공포와 분노로 상처받은 많은 분들을 과연 우리가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둘째 그러나 저는 그에 못지 않게 의사들이 부당하게 왜곡된 공중파의 무책임하고 비양심적인 방송행태와 그를 사주한 정부당국의 부도덕하고 오만한 폭력에 의해 받은 상처를 결코 간과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전공의의 한 사람으로서 전공의들이 이번 폐업의 와중에 받은 마음의 상처가 과연 쉽게 치유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부분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다시 말해서 정부가 자신의 속내를 감추고 정책적 과오와 정치적 부담을 피하기 위해 권력을 잡은 자의 본능(권력을 놓지 않으려는)으로 저지른 이 만행(의사들을 매도하고 국민과 의사들을 격리시켜 결코 쉽게 허물 수 없는 벽을 만든 행위)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필요없는 오해와 왜곡된 정보로 인해 국민들과 의사들이 받은 마음의 상처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대로라면 어쩌면 우리 의사들은 대한민국에서 다시는 진짜 의사가 되지 못할 지도 모릅니다. 가운을 입고 청진기를 대고 수술을 한다고 해서 의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환자의 신뢰을 잃고 단지 의학적 사실과 기술을 제공한다고 해서 의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정말 우리는 결코 잃어버려서는 안될 것들을 잃어버렸는지 모릅니다.

과연 이 나라 의료에 미래는 있을 것인가? 결코 고개를 끄덕일 수 없습니다. 이 젊은 영혼들의 가슴에 새겨진 아픈 상처가 치유되지 않고는 결코 밝다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생명을 존중하고 이를 구현하기 위한 참 의료개혁이 이제 대장정을 시작했다면, 그 첫걸음은 약사법 개정이 아니라 의사와 국민이 마음을 열고 서로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를 이해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두 가지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1) 전국교회에 섬기고 계시는 기독의료인들이 역량이 허락하는 대로 교회에 무료진료소를 운영할 것을 제안합니다. 그리고 어떤 형태로든 기독교 시설물(예를 들어 교회)에 무료진료소가 설치되면 참의료진료단이 아무 조건없이 인력과 약품을 제공하는 형태의 의사 국민 만남의 장을 우리 기독의료인들이 앞장서서 만들어 줄 것을 제안합니다.(무료진료소를 참의료진료단이 함께 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개방할 것을 제안합니다) 이 제안에 대해 참의료진료단은 적극적인 입장을 갖고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의사들이 그간 방기했던 사회적 책임을 자각하고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자신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했던 부분이 있으면 국민 앞에 고백하고 용서를 받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고, 그간 의사들을 막연한 양가감정과 이유 없는 질시로 그들이 자신들을 위해 어떤 노고를 하는 지 한 번도 진지하게 고민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새삼 의사들의 노고와 어려움을 확인할 수 있는 그런 자리가 반드시 필요할 것입니다.

이 자리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막힌 담을 허셨듯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제사장이 되어 의사와 국민들 사이에 거짓된 오해와 반목, 적개심으로 쌓인 막힌 담을 허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이것은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태로 인해 받은 사회적 치유의 시작일 수 있습니다.

(2) 개혁의 주체와 객체도 구분할 줄 모르는 무책임한 오만한 이 정권에 의해 받은 이 사회적인 상처에 대해 주님의 치유를 간구하며 우리 기독인들이 그 상처를 싸안아야 할 것입니다. 이제 그 방법을 기도와 지혜로 모색해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러한 내용을 담보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 기독 의료인들의 활발한 논의를 제안합니다.

어떤 식으로든 국민과 의사들이 함께 의료개혁이라는 사회적인 사건 속에 서로가 받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국민과 의료인이 더욱 가까워지고 공고한 관계 속에 서로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 생겨나기를 기도합니다.

이 글은 한국누가회 소속 전공의 김정훈씨가 최근 의료계 사태의 한 가운데 서 있는 기독의사로서의 고뇌와 갈등, 그리고 대안을 모색하는 글을 한국누가회 홈페이지에 올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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