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장합동이 성경을 단독번역하기로 결정했지만 교단 내부에서도 강한 반발이 부딪히고 있다. ⓒ뉴스앤조이 신철민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총회장 임태득 목사)가 보수교단용 성경 번역을 위해 교단 재정 5억 원을 집행하고 번역원칙을 세우는 등 번역을 위한 기초작업에 들어갔으나, 교단 안에서도 극심한 반대에 부딪히고 있다.

예장합동 산하 개역개정판성경대책위원회(위원장 임태득 목사)는 2월 실행위원회를 열어 합동이 주도하는 보수교단용 성경을 출간하기로 결의했다. 위원회는 올해 가을에 열리는 총회 전까지 시제품을 내놓을 계획이라고 밝히고, 총회로부터 5억 원의 재정까지 지원 받았다.

3월 22일에는 총신대 교수회와 연석회의를 열고 '원어 번역', '축자 번역', '1988년 한글맞춤법통일안 적용' 등 30개 가량의 원칙에 합의했다. 총신대 김의원 총장을 비롯해 서철원 김지찬 유재원 정훈택 권성수 교수를 번역위원으로 선임하는 등 성경번역을 위한 기초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위원회가 내세우는 단독성경 번역의 이유는 '대한성서공회가 개역한글판(1961년)을 수정해 내놓은 개역개정판(1998년)이 진보적이기 때문에 보수교단용 성경이 필요하다', '개역개정판에 참여한 학자들이 예장통합을 중심으로 한 진보진영 일색이다'는 점이다.

그러나 교단 내부에서는 위원회의 단독성경 번역이 교회의 일치를 파괴하는 위험한 발상일 뿐 아니라 이러한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위원회 안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높다. 최기채 목사(동명교회·전 위원장)는 "우리(예장합동)는 대한성서공회가 출간한 개역개정판(1998)을 받아들이기 위해 수년 동안 논의해왔다. 저쪽(대한성서공회)에서는 우리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려 하는데, 왜 우리가 특별한 이유도 없이 거부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그는 "개역개정판이 진보적이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단독 성경을 만들어 돈을 벌기 위한 변명에 불과하다"며 "교단 수익을 올리기 위해 성경을 번역해, 한국교회 연합을 깬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한명수 목사(창훈대교회 원로·전 총회장)도 "성경 출간은 교단을 넘어 한국교회 차원에서도 중요하고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먼저 총회에서 충분한 논의를 거쳐서 실행해야 한다"며 "돈을 벌기 위해 성경을 번역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노회들도 단독 성경 번역을 반대하고 나섰다. 봄 정기노회를 개최한 강원·경상·목포동·목포서·여수·전남·전북노회가 단독 성경 출간을 반대하는 헌의안을 올렸다. 아직 봄 노회를 끝내지 않은 노회들이 많아 반대 헌의안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분위기를 감지한 듯 총회 관계자도 "이런 추세라면 총회에서도 단독 성경 번역은 통과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성경공회와 합작할 가능성도

임태득 위원장은 "돈을 벌기 위해 성경 번역하는 것 아니고, 설령 번다고 하더라도 내 개인이 가져가는 것 아니다"고 설명했다.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않은 점에 대해서도 "작년 총회에서 위원회에게 전권을 맡겼고, 올해 총회가 반대하면 안 하면 된다"고 말했다.

6개월만에 성경을 번역할 수 있느냐는 주위의 우려에 대해 임 위원장은 "유재원 교수를 비롯해 상당수 교수들이 성경의 일부를 번역해 놓았기 때문에 기초작업을 빨리 끝낼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리고 임 위원장은 "성경공회(대표회장 이병규 목사)와 공동으로 출간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성경공회 김태윤 사무총장도 "예장합동이 원하면 언제든지 대화할 준비가 돼있다"고 밝혔다. 특히, 예장합동이 성경공회를 주도하고 있는 예장개혁(광주)과 통합을 논의하고 있어 이러한 가능성은 더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임 위원장과 김 사무총장은 "성경공동 출간 논의와 예장개혁과 합동의 통합 논의를 분리해서 생각해 달라"고 당부했다.

132개 보수교단이 가입한 성경공회는 1993년 표준새번역이 나오자 "자유주의 신학에 입각한 성경이다"며 독자적인 성경번역을 위해 발족했다. 성경공회는 12억 원을 투자해 8년에 걸친 작업 끝에 올해 12월 성경을 출간할 예정이다. 예장합동은 93년에 가입했다가 곧바로 탈퇴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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