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교단 중 가장 큰 교세를 자랑하는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는 자신들을 가리켜 장자교단이라고 즐겨 부른다. 이 교단은 6100여 개나 넘은 산하 교회를 거느리고 있어 규모 면에서는 단연 장자 급이다. 그러나 최근 이 교단 내부에서는 장자교단 호칭이 부끄러운 일련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예장합동은 한국교회에서는 최초로 3년 전부터 제비뽑기 제도를 실시하는 보기 드문 교단. 이 교단이 한국교회 만성적 문제점으로 꼽히는 금권선거를 뿌리 뽑기 위해 제비뽑기를 실시한다는 점에서 타 교단보다 깨끗하고 투명한 행정을 기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막상 제비뽑기로 선출된 현 교권 수뇌부의 행보는 이런 기대를 전혀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있다. 제비뽑기가 어쩔 수 없이 내포하고 있는 '불확실성'으로 교단이 추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는 단순한 기우로 끝나지 않고 현실로 등장하고 있는 것.  

현재 예장합동 교단의 총회장과 부총회장을 비롯한 총회 임원은 모두 제비뽑기 출신이다. 교단 산하 교회들은 이 제비뽑기 세대가 불확실성을 극복하고 제비뽑기의 원래 의도인 투명한 행정과 깨끗한 총회정치를 구현해 주기를 꿈꾸고 있다.   

제비뽑기로 선출된 임원진 일체감 과시


제비뽑기는 일단 시행 3년을 맞으면서 금권선거와 선거브로커가 판치는 구태는 현저하게 사라졌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그러나 정작 제비뽑기로 당선된 총회 임원들이 최근 보여주는 행보는 정상적인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우선 총회임원의 수장 격인 임태득 총회장은 취임 후 기저귀 발언으로 여성계의 타도 대상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교단은 아직껏 이 문제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다. 제비뽑기 제도가 외부 세계에서 인정할 수 없는 도박적 요소를 함유한 비정상적 논리 속에서 파생된 것처럼 예장합동 역시 세상과는 유리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임태득 총회장은 또 예장합동의 대표적인 아킬레스건으로 불리는 은급재단 사건에서도 자유스럽지 못하다. 은급재단 사무국장이 임의로 40억 원의 재단 돈을 빼내 납골당 매입에 사용한 사건은 임 총회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만약 임 총회장의 구체적인 개입여부가 증명될 경우 이 사건은 자칫 형사소송은 물론 은급재단 자체마저도 흔들릴 수 있는 치명적인 악재다. 물론 이 사건은 임 총회장 한 사람의 문제는 아니다. 수 십억 원에 달하는 은급재단 기금이 이렇듯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었다는 것은 결국 교권 핵심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교단 일각에서는 임 총회장이 은급재단 사건에 덜미가 잡혀 교단 행정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그 중의 하나가 공금유용과 권한 남용 등 혐의로 징계 대상에 올랐던 <기독신문> 사장과 주필이 사과문 하나 내는 것으로 모든 의혹에서 자유의 몸(?)이 된 사건이다.


한 예장합동 관계자는 "임 총회장이 은급재단 문제로 <기독신문> 관계자에게 덜미를 잡혀 결국 <기독신문> 사장과 주필 등을 강경하게 처리하지 못한 것 아니냐"고 볼멘 소리를 털어 놓은 바 있다. 즉 임 총회장은 기독신문사 사장과 주필을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는 입장을 줄 곧 유지했으나 지난 3월 이후 갑자기 기존 입장에서 180도 선회, 이 같은 의혹을 스스로 자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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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영입문제, 절차상 문제 노출


하지만 의혹은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우선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가 교단에서 이단으로 규정한 소위 류광수 씨의 다락방(전도총회. 총회장 정은주) 영입문제와 교단 단독 성경 번역 및 출판 문제. 다락방의 경우는 기관지인 <기독신문>에 다락방 측의 광고가 실리고 총회 임원회가 직접 나서서 실행위원회를 소집, 영입여부를 상정했다는 면에서 여러 가지 반발을 사고 있다.
 
우선 다락방 영입에 대해서 이단대책위원회가 발끈하고 나섰다. 뭔가 순수하지 못한 냄새가 감지된다는 것이다. 이대위는 이단으로 규정된 다락방 문제라면 먼저 이단 관련 주무부서인 이대위나 신학부에서 검토하도록 행정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반발한 것. 교단 산하 노회에서도 다락방 영입과 관련된 총회 임원회의 태도에 불만을 제기했다. 이미 여러 노회가 다락방 영입 반대 헌의안을 총회에 상정해 놓고 있다.
  
또 이대위는 이단 광고를 싣지 않은 것으로 유명한 <기독신문>에 다락방 광고가 실린 것도 주목하고 광고가 실린 경위에 대해서 신문사 사장에게 질의서를 보낼 방침이다. 그러나 신문사 측에서는 이단 단체 광고 게재를 단독으로 결정할 수 없어 총회장과 부총회장, 심지어는 총무로부터 허가 사인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다락방 광고와 관련, 교권의 최고 핵심 관계자 사이에서는 일찌감치 이 문제에 대해 내부적 합의가 있었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성경단독 출간과 관련된 교권의 움직임 역시 논란의 대상이다. 예장합동은 1993년 총회에서 새로운 성경 번역 문제가 최고 관심사로 떠올랐으나 당시 최기채 총회장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백지화된 이후 이 문제는 수면 밑으로 줄곧 가라앉아 있었다. 그 후 10여년이 흐른 지금 임 총회장 시대를 맞아 또 다시 성경 출판 문제가 급격하게 이슈로 등장하게 된 것.
 
예장합동의 단독성경 출간은 특정 출판사 개입 의혹으로 논란의 대상이 됐던 한국성경공회와 어떤 식으로든 연계될 것이라는 추측을 낳고 있다. 한국성경공회는 대한성서공회가 <표준새번역성경>을 발간하자 이 성경을 사용할 수 없다는 구실로 예장개혁 등 몇몇 군소교단 중심으로 창설된 단체.

한국성경공회는 한국교회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지만 만약 예장합동 측이 가입할 경우 일약 한국교회 중심적인 성경출판 기관으로 도약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성경공회 정기총회 때 예장합동 석병규 목사(개역성경개정판대책위원회 총무)가 참석한 것은 이 두 기관의 관련성 여부를 직접적으로 드러낸 사건이다.   

성경공회 파문 10년 만에 재현되나   


더구나 1992년 이후 독자적인 성경 번역을 추진하던 예장개혁(광주) 측과의 교단 합동 문제도 성경번역과 연관된 것이라는 추측을 낳게 하고 있다. 예장개혁(광주)은 대한성서공회에 반발해 태생된 한국성경공회를 이끄는 중심 교단이기 때문에 이 교단 영입과 성경번역을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현재 교단영입위원회 위원장은 서기행 부총회장, 성경번역 문제는 임 총회장이 관할하고 있어, 현직 총회장과 부총회장이 성경과 관련된 일련의 교단 행보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모습이다. 성경 번역 및 출간은 기독교 출판계 최대의 이권 사업이라는 측면에서 과연 이들의 행보가 순수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벌써부터 논란이 일고 있다. 다락방 문제처럼 교단 산하 노회에서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기 때문이다. 

이단 단체인 다락방 영입과 성경번역 문제는 모두 지극히 예민하고 한국교회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총회 임원회는 즉흥적이고 근시안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또 한편으로는 제비뽑기를 통해 뽑혔다는 일체감과 동지애를 갖고 있는 것처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정작 심각한 문제인 은급재단 40억 원 유출된 사건이나 기독신문사 사장이 임 총회장에게 500만 원이 든 돈 가방을 건네려다 들통난 사실, 그리고 기저귀 발언에 대한 입장 표명 등 정작 중요하게 생각해야할 사안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구체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있다. 다락방 영입과 성경번역 문제 등을 일사천리로 처리해 낼 때의 결속력이라면 위의 사건을 신속하게 마무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그들의 침묵은 계속되고 있다.

단지 교권의 행보를 우려 깊게 바라보는 일부에서는 오는 9월 총회 때 모든 것이 교통정리될 것이라는 기대감만 피력하고 있는 실정이다. 즉 현재 교권 측이 주도하는 몇몇 사안이 총회 산하 전체 교회의 뜻과는 유리된 것이기 때문에 절대 반영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전 총회장 한명수 목사(창훈대교회)는 현재의 교단 사태에 대해 못내 우려하는 교단 중진 인사 중 하나다. 한 목사는 "교단이 정의로운 방향으로 흘러가야 하지만 중심을 잡아 줄 인물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토로했다.

제비뽑기를 통해 선출된 불확실성의 세대가 주도하는 예장합동의 행보는 과연 카인의 제사처럼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는 모습은 아닌지 스스로 돌이켜봐야 할 때인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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