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길이 열렸다. 고려항공이 평양 순안공항을 출발하여 서해안 직항로를 따라 서울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분단 55년이 만들어낸 역사적, 심리적 거리가 1시간으로 좁혀지는 화해의 경험이었다. 서울과 평양에서 이루어진 이산가족 상봉. 냉전의 벽이 녹아 내리고 결국 우리는 하나의 민족이라는 본질적 자각이 다시 자리를 잡았다. 이중 삼중의 고통을 분담해야 했던 민초들의 입장에서는 분단 55년의 세월들이 참으로 무의미하고 부질없는 권력의 장난으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민족분단이라는 광야길을 돌고 돌아 이루어진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과 이산가족 상봉을 눈물과 감격으로 지켜보면서 우리 민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총과 섭리에 감사드린다. 분단의 고통 속에서 남북의 화해와 협력, 그리고 평화통일을 위해 울부짖는 민족의 외침을, 특별히 남북한과 해외동포 그리스도인들이 고난 가운데서 드린 눈물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해방 이후 분단의 장벽을 온몸으로 뛰어 넘어 민족통일의 제단에 자신의 삶을 드린 남북한과 해외 평화통일운동의 선각자들의 희생적 삶을 헛되이 돌리지 않으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요, 분단으로 고통 당하는 민족의 마음에 희망의 등불을 밝히시려는 하나님의 카이로스적인 역사 개입이다.

반세기 이상 대결로 일관해 온 냉전체제의 경계를 넘어서 남북정상이 화해와 협력을 위해 만나고, 이산가족 상봉의 첫걸음을 내딛은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큰 진전을 이루었다. 이들의 만남을 통해 상호오해와 불신이 해소되고 평화와 협력을 위한 이해의 큰 발판이 마련되었다. 분단의 역사가 남긴 모든 문제를 한 번의 범례적 만남을 통해 온전히 해결할 수는 없다.

먼저 남북정상이 합의한 것부터 실천하고 합의를 이루지 못한 부분은 책임 있는 당국자들의 지속적인 만남과 대화를 통해 진전을 이루어야 한다. 남북의 당국자들은 상호 적개심과 소모적 경쟁을 청산하고 상호협력체제를 공고히 할 뿐만 아니라, 군비축소와 한반도에서의 전쟁위협 요소 제거를 통해 냉전을 종식하므로 남북의 7천만 동포가 안심하고 살 수 있는 평화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평화통일을 위한 민족자주의 원칙을 지키며, 남북화해공동위원회를 가동하고, 서울과 평양에 상주대표부를 설치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 뿐만 아니라, 이산가족 상봉의 정례화와 풀뿌리 시민들의 상호방문, 남한의 미전향 장기수들과 북한의 납북자들의 석방도 이루어야 한다. 그들이 원하는 땅에서 살 수 있는 기본권 보장이 민족 평화통일로의 발걸음을 옮기는 필수적 요건이다.

남북이 표방하는 평화통일방안이 지닌 공통성을 인정하고 거기서부터 시작하여 통일조국의 체제를 함께 만들어 가야 한다. 이를 위해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을 위한 경제협력 하부구조를 구축하고, 사회, 문화, 체육, 보건, 환경 등 다방면에 걸친 상호교류와 협력을 공식화해야 한다.

민족 평화통일의 새 역사를 함께 만들어 가기 위해 분단도 통일도 이제는 더 이상 체제유지를 위한 정치적 목적으로, 특정집단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상품'으로 오용되어서는 안된다. 통일된 민족공동체를 꾸려나가기 위하여 먼저 남한사회는 물질주의에 의해 더럽혀진 도덕성을 회복하고 부정부패를 근절하며 경건과 절제를 실천하고 생명의 존엄성을 회복해야 한다. 그리고, 북한사회는 새롭게 전개되는 세계화 속에서 창의적으로 자기를 개방하므로 경제발전을 이룩하고 세계가 공감할 수 있는 인간화된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인간의 생명을 풍요롭게 하는 이념과 체제만이 인류사회의 평화발전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분단된 한반도의 지정학적 환경을 자신들의 국익을 위해 이용해 왔던 주변강대국들도 이제는 우리 민족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저해하는 반통일적이고 반평화적인 도모를 즉각 중단하고 세계평화의 길에 함께 서야 한다.

특별히 우리 남한의 교회는 고난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며 살아온 그루터기와 같은 북한의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 앞에 부끄럽지 않은 교회로 거듭나야 한다. 민족의 평화통일은 정치적 사건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선교적 사건이다. 냉전시대의 교회의 유산을 신앙적으로 극복하고 평화통일시대에 적합한 교회의 삶의 양식을 정립해야 한다. 자발적인 가난을 훈련하는 교회로, 민족의 일치를 위해 교회의 일치를 먼저 이루어내는 교회로, 평화통일을 위해 구체적으로 인적 물적 자원을 준비하는 교회로, 이념과 체제의 경계를 넘어 나눔과 섬김의 본을 보이는 교회로, 마음의 빗장을 열고 역사적 경험의 한계와 지역적 혈연적 경계를 넘어 하나되는 연습을 하는 교회로 우리들의 모습을 바꾸어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하여 무엇보다도 한국교회의 냉전적 정치학은 극복되어야 한다. 자본주의는 민주적, 인간적, 도덕적이고, 자유와 사랑과 평화를 창출하며, 종교적, 특별히 기독교적이고, 공산주의는 독재적, 비인간적, 비도덕적, 반기독교적으로 파괴와 폭력과 집단살해와 혁명을 생산한다는 이원론적 상극적 냉전사고는 극복되어야 한다. 또한, 미국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좋은 기독교 국가요, 이 시대의 선민이며, 한국을 위한 시혜자요, 구원자이지만, 북한은 반드시 파괴되어야 할 사탄의 제국이라는 사고 역시 수정되어야 한다.

한국교회는 역사로부터 배울 뿐만 아니라 역사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신앙적 노력을 함께 하므로 민족 평화통일의 새 역사를 함께 만들어 나가야 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평화통일의 길을 가는 민족공동체의 예표요 상징으로 거듭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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