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 신철민
"한국사회는 가라앉는 타이타닉호와 같다. 배가 가라앉고 있는데 정신을 못 차리고 제 물건 챙기기에 급급한 사람들이 넘쳐난다. 한마디로 총체적 위기다."

기독교정당 관계자가 현 시국을 평가한 말이다. 이런 위기의식은 3·1절 국민대회에 참가한 사람들에게도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이들이 최근 상황을 위기라고 판단하는 주된 근거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경제 위기, 정치 부패, 반미친북 성향이 그것이다.

이들은 경제 위기의 근본 책임이 강성노조에 있다고 평가한다. 2월 6일 열린 정치권복음화운동 발기인대회에서도 경제 파탄의 배경으로 '강성노조에 지친 기업'을 내세웠다. 노조 때문에 한국을 떠나는 외국기업이 줄을 잇고 있다는 사례도 이들이 주로 사용하는 단골메뉴다. 이러한 시국관은 자연스럽게 '시장경제 절대 옹호'로 귀결된다. 기독교정당과 3·1절 국민대회에 공통으로 나타난 구호는 '공산주의로부터 시장경제를 지켜내자'였다.

이들이 바라보는 한국정치는 '총체적 혼란'에 다름 아니다. 김준곤 목사는 이런 상황을 "머리가 깨진 것도 모르고 몸통만 살아 꿈틀거리는 사람"이라는 극단적인 모습으로 형상화했다. 신실한 기독인 국회의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정당정치 구조 아래 자신의 신념을 펼칠 수 없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이에 대한 해답은 자연스럽게 기독교정당으로 초점이 맞춰진다. 기독교정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기독교정당을 통해 깨끗한 정치를 구현하겠다는 것이 이들의 목표다.

소위 '반미·친북' 분위기는 기독교정당과 3·1절 국민대회가 가장 소리 높여 성토하는 부분. 이들은 "일부 젊은이들이 6·25전쟁에 참가해 수만 명을 희생시킨 미국의 고마움을 잊고 북한에 마음이 쏠리고 있다"고 걱정한다.

이런 생각은 종종 북한에 대한 굉장한 적개심으로 표출된다. "공산주의자들이 회개할 줄 모르고 남쪽을 삼키려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고 있다" "하나님이 부정하신 사회주의·공산주의 혁명이 거품처럼 사라진 마당에도 양의 탈을 쓴 이리떼가 활개치고 있다" 등의 표현에서 이들이 가진 증오가 잘 드러난다. 3·1절 국민대회에서 제기된 '2005년 북한붕괴론'은 북한에 대한 적대감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지난해 시청 앞 기도회 때 절정을 이룬 이 같은 시국관은 올해도 마치 판박이처럼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보수 우익적 색채를 지닌 목회자들이 전혀 달라지지 않은 모습으로 시국을 비판하고 있으며, 나아가 기독교정당이라는 구체적 정치참여 행태로 한단계 업그레이된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시청 앞 국민대회에서 친북좌익 척결이라 쓴 띠를 두르고 성구가 쓰인 팻말을 들며 환호하고 있는 참석자. ⓒ뉴스앤조이 신철민
단지 지난해 북한을 비난하는 단골메뉴로 등장했던 땅굴론이 거짓말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진 점만 색다르다. 일부 대형교회 자금이 땅굴 확인 작업에 투자됐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물에 대해 입을 다문 채 마치 앵무새 마냥 같은 논리를 되풀이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과연 이들의 시국관이 기독교적 가치관이나 현실에 부합하고 국가와 민족을 진정으로 아끼는 마음에서 우러난 것일까. 우선 현 정권이 과거 정권에 비해 더 부패했다는 주장부터 의문이 제기된다.

손봉호 교수(한성대 이사장)는 "과거 정권보다 현 정권이 부패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오히려 "잠재해 있던 곪은 부패가 터져 나온 것이다"고 밝히고 있다. 즉 노 정권이 검찰권을 독립시킴으로 성역 없는 수사가 가능했고, 결과적으로 정치부패 구조가 일찍 드러났으며, 이것은 곧 정치개혁을 이룩하는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명수 목사(전 예장합동 총회장)는 "만약 보수정당이 정권을 잡았을 경우 각종 정치비리가 발각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오히려 현재의 정치부패가 정치개혁을 위한 과도기적 현상이며 현 정권의 업적 중의 하나로 평가하고 있다.

변화된 국제 정세에 따라 미국과 한국의 자리를 재정립하자는 것을 '반미'로 몰아붙이고 북한을 엄연한 실체로 인정하자는 흐름을 '친북'으로 매도하는 것 역시 온당치 않은 평가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공산주의에 대한 적대감을 적나라하게 표출하는 것이 통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심해야 한다는 말이다.

박종화 목사(경동교회)는 미국에 대한 보수수구적인 시각에서 제기되는 반미나 친북 논쟁의 허구성에 대해서 신랄하게 지적한다. 박 목사는 "지금의 미국은 한미동맹 관계에 의한 나라 대 나라로 볼 수 없는 로마제국과 같은 존재다"고 말하고 "미국은 전세계 지도를 놓고 미국의 이해득실에 따라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우리는 짝사랑 비슷하게 미국의 정책에 대한 입장을 놓고 반미냐 친미냐를 따진다"고 평한다.

이런 우리의 모습에 대해 박 목사가 내놓는 대안은 '적극적 자주론'. 즉 미국과 중국 러시아 일본 등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과 우리나라의 이익을 고려한 적극적 친 주변국가 정책이다.

"우리가 취해야할 길은 친미나 반미 등 이분법적 자세가 아니다. 적극적 자주론에 입각해 친미 친중 친러라고 하는 적극적 자세가 생존방법이다. 북한은 소극적 자주였다. 북한의 비동맹정책은 냉전시대에 일부 통했지만 지금은 완전히 실패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아직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적극적 자주를 통해 동북아 국제정세의 한 축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갈 수 있다."

박 목사의 적극적 자주론은 친미냐 반미냐를 따지기 이전에 국가의 이득을 위해 주변 강대국들과의 능동적인 관계를 형성해 나가자는 일종의 실용주의 대세론인 셈이다.

한편 보수수구 측이 현 시국이 지나치게 친북성향으로 흐른다고 주장하는 것은 대북 교류 및 경제 원조 등 통일기반 조성 정책을 정말 북한이 좋아서 남한을 북한처럼 만들기 위한 행동으로 매도해 버리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손 교수는 단호하게 현재의 친북론에 대한 두려움은 매우 과장되어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따라서 수구보수 진영의 정치부패와 반미 친북론에 입각한 불안한 시국관은 어쩌면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로 이어지는 잇따른 진보정권(?)의 등장에 위기감을 느낀 우리사회 일부 보수진영의 불안감에서 비롯된  왜곡된 '시대 읽기'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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