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는 교회 역사를 바꿀 수는 없었다. 그러나 교회 내부에 만연한 무원칙과 혼탁성을 통렬히 비난하는 것으로 비정상적인 교권 행사에 대한 간접적인 '유죄'판결을 내렸다.  

서울지방법원 합의28부(재판장:문흥수 판사)는 지난 10월 17일 조영건 장로(경주 왜관병원 이사장)가 제기한 '이규호 목사(경주 구정교회)를 총회장에 선출한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제84회 총회 결의 무효 소송'에 대한 기각 판결을 내렸다. 기각 사유는 이 소송의 법률적 구성 요소가 충분치 못하다는 것.

그러나 11월 1일 소송 당사자들에게 전달된 판결문 내용에 따르면 재판부는 이규호 총회장 당선의 부당성을 상세히 나열, 사실상 '당선무효 판결'을 내리고 싶은 법원의 내심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즉 재판부는 '기각'판결 이유는 단 몇 줄로 설명하는 대신 '지적사항'이라는 전제를 내걸고, 이번 소송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판결문 3장에 걸쳐 상세하게 꼬집었다.  


첫 번째 문제점-선거조례 위반

법원은 선거부정 사건으로 부총회장 당선이 무효화된 이규호 목사가 이듬해 84회 총회(1999년 9월)에서 총회장에 당선된 것은 선거조례 절차를 무시한 불법이라고 지적했다.  

예장통합 선거조례는 이규호 목사 처럼 당선이 무효화된 부총회장이 생길 경우, 부총회장 유고시의 총회장 선출방식을 적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제84회 총회에서는 노회 및 추천인단의 후보자 추천 및 선거관리위원회의 신청서 조사 등의 '부총회장 선출'과 같은 동일한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총회장 선출의 편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이 모든 선거조례의 효력을 잠정적으로 정지한 가운데 진행됐다.

당시 84회 총회는 83회 부총회장 후보로 나선 이규호 목사 등 3인을 총회장 후보로 인정한 가운데 선거를 치르는 다소 기형적인 형태로 진행됐다.

재판부는 총회가 선거조례의 효력을 잠정적으로 정지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최고의결기관이라고 하더라도 정관을 무시하는 것은 '사단의 본질적 요소인 정관을 부정하는 것'이 되므로 법적으로 허용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두 번째 문제점-만장일치 결의의 부당성

재판부는 총회가 만장일치의 결의에 의해 선거조례의 효력을 일시 정지했다고 하지만 실제 반대의사가 있었던 사실이 분명한 만큼 이 부분도 적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당시 총회 석상에서는 총대인 홍성현씨가 '83회 총회 부총회장 선거 진상조사 기구'설치한다는 것을 전제로 임시 총회장 선거 절차를 '조건부 찬성'했으며, 권영철씨는 당선무효가 된 이규호 목사의 입후보 자체를 반대하는 의사표시를 분명히 밝힌 바 있다. 따라서 100% 동의가 없는 상태에서 당시 유의웅 총회장이 '예' '아니오'식으로 찬반 의사를 물어 총회를 진행시켰으면서도 '만장일치'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  


세 번째 문제점-이규호 목사의 총회장 후보 자격 없음

법원은 이규호 목사가 총회장 후보 자격도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법원은 그 근거로 이 목사가 선거조례에서 정한 후보자의 추천방식을 거치지 않았다는 점을 들고 있다.

재판부는 이 세 가지 점에서 이규호 목사 총회장 당선 결정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외에도 교회가 스스로 편법을 자행하여 사회에 깨끗한 물을 흘려 보내지 못하고 있는 모습은 참으로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꾸짖었다. 또 교권이라는 신성불가침의 영역 안에서 자행되는 불법과 부패한 모습을 따끔하게 훈계해서라도 고쳐보겠다는 사법부의 의지를 드러냈다.  

이번 법원 판결은 한 마디로 사회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기는커녕 자정능력을 상실한 우리 한국교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판결문 전문>

원고는 피고의 총대로서, 피고의 총회가 1999년 9월 13일 제84회 총회를 개최하여 이규호를 총회장으로 선출한 결의(이하 '이 사건 결의'라 한다)는 ▲이규호가 총회장의 피선거권이 없고 ▲위 총회가 선거조례를 일시 잠재하는 결의를 하여 총회장을 선출함에 있어 선거조례에서 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였고 ▲제83회 총회장에게 제84회 총회의 후보를 결정할 아무런 권한이 없으므로, 그 무효임의 확인을 구한다고 주장한다.

직권으로 원고가 피고의 이 사건 결의의 무효임의 확인을 구할 법률상 이익이 있는가에 대하여 보건대, 갑 제1,2호증을 제1호증의 각 기재, 증인 홍성현의 증언에 변론의 전 취지를 종합하면, 피고의 총회는 1년에 1회, 매년 9월경에 개최되는 사실, 피고의 이 사건 총회에서 총회의 부총회장으로 전서노회 총대인 박정식이 선출된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이 사건 소송 계속 중인 2000년 9월 25일 이규호의 총회장 임기가 종료되어 박정식이 새로운 총회장으로 자동승계된 사실은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는 바, 그렇다면 피고의 총회장으로서 이규호를 선출한 이 사건 결의의 무효 확인을 구하는 것은 과거의 법률관계 내지 권리 관계의 확인을 구하는 것에 불과하므로, 이 사건 소는 확인의 소로서의 권리보호요건을 결여한 것이라고 할 것이어서 부적법하여 각하하기로 하되, 법원의 재판의 사명이 일회적인 분쟁의 형식적 처리에 있지 않고, 실질적인 분쟁해결과 나아가 분쟁의 예방에까지 미쳐야 한다는 점에서 다음의 점을 지적하여 두기로 한다.

첫째, 앞서 인정한 사실을 종합하면, 피고의 총회장은 원칙적으로 현직 부총회장이 자동승계하도록 되어 있고, 예외적으로 부총회장의 유고시에는 부총회장 선출의 방식과 절차에 따라 총회장을 선출하도록 되어 있으며, 현직 부총회장의 유고로 인하여 총회장을 부총회장 선출의 방식에 의하여 선출하는 경우에 총회장의 후보는 지역안배제에 의거하여 총회장이 배출될 지역의 각 노회에서 후보자를 추천하고 선거관리위원회는 추천된 후보의 신청서를 조사하여 허위기재된 후보를 제외한 홍보자료를 총대에게 총회 1주일 전에 발송하고, 동일한 자료를 추천인단회의에 제출하여야 하며, 추천인단은 비밀, 무기명 투표를 통해 추천후보 중 다수득표자 3인을 총회에 추천하여 총회는 그 중 1인을 비밀, 무기명 투표를 통해 총회장을 선출하여야 한다.

돌이켜 이 사건 총회에 관하여 보건대, 피고의 제83회 총회에서 부총회장으로 선출된 이규호가 당선무효가 되어 현직 부총회장의 유고가 발생하였으므로, 피고는 앞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선거조례에 따라 현직 부총회장 유고시에 총회장 선출 방식에 의하여 총회장을 선출하였어야 할 것이나, 피고의 제83회 총회장인 유의웅은 총회장 선출의 편의를 위하여 총회의 총대들에게 피고 스스로가 공정한 임원선거를 위하여 제정한 선거조례의 효력을 잠정적으로 정지할 지를 들은 뒤 총대들이 이에 만장일치로 찬성하였다고 선언한 후, 선거조례에서 정한 각 노회 및 추천인단의 후보자 추천 절차와 선거관리위원회의 신청서 조사를 생략한 채로, 제83회 총회시 부총회장 후보자로 추천된 3인을 총회장 후보로 하여 선거를 진행하여 이규호를 총회장으로 선출하였다.

그러므로, 먼저 피고의 이 사건 총회가 선거조례의 효력을 잠정적으로 정지할 수 있는지에 관하여 보건대, 피고 총회는 그 법적 본질이 사단이라고 할 것이고, 사단의 본질은 그 행동방법을 정한 정관의 존재와 대표자의 존재라고 할 것인데, 사단의 최고 의결기관이라 하더라고 정관을 무시하는 것은 사단의 본질적 요소인 정관을 부정하는 것이 되므로 법적으로 허용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설사 피고의 총회가 선거조례를 개정할 권한이 있어 선거조례의 효력을 일시 정지하는 내용으로 선거조례를 개정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선거 조례를 개정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 선거조례의 개정절차를 밟지 아니한 이상, 피고 총회의 결의만을 통해서는 선거조례의 효력을 일시 정지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대한민국 국회가 국회법을 무시하기로 결의하고, 그 결의에 따라 의사진행을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에 대하여 피고는,
1, 선거조례에 따른 총회장 선출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므로, 위와 같이 선거조례의 효력을 일시 정지하고 총회장을 선출한 것은 그 정당성이 있고,
2, 선거조례의 개정절차는 번거로운 절차만을 반복하는 것이므로 개정절차에 의하지 아니한 만장일치의 의결로써 선거조례의 효력을 정지한 것은 정당하다고 주장하나 선거조례가 현실과 유리되었다면, 선거조례를 현실과 부합하도록 개정하였어야 할 것이고 선거조례의 개정은 입법 기술적으로 다양한 방식이 있으므로 개정절차를 거치는 것이 번거로운 절차만의 반복이라고 볼 수 없으므로, 피고의 위 주장은 이유없다.

둘째, 선거조례의 효력을 일시정지하고, 유의웅이 제안하는 방식에 의하여 총회장을 선출한 것에 대하여 총회 참석 총대들의 만장일치의 결의가 있었는지에 관하여 보건대, 갑 제2호증의 기재에 의하면, 만장일치의 의결이 있었던 것으로 되어 있으나, 홍성현은 제83회 총회 부총회장 선거의 진상을 밝힐 기구를 설치할 것을 조건으로 유의웅의 제안에 찬성하였으며, 권영철은 당선무효가 된 후보의 입후보를 반대하는 의사표시를 분명히 하였고, 소의수, 권용의 반대취지의 의사진행발언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하고, 유의웅의 위 제안이 총회의 정식안건으로 상정된 여부도 불명확한 상태에서 총대들의 찬반의사를 '예', '아니오'식으로 물어 결국 총대들의 의사가 분명하게 표명되지 아니한 채로 총회가 진행된 사실은 앞서 인정한 바와 같으므로, 유의웅의 제안이 적법하게 의결되었다고 볼 수도 없다.

셋째, 이규호에게 이 사건 총회의 총회장의 피선거권 또는 피선거권 또는 후보의 자격이 있는지에 관하여 보건대, 피고의 선거조례의 효력이 개정의 방법을 통하여 일시 정지되지 아니한 이상 여전히 유효하다고 할 것이고, 선거조례에서 정한 후보자의 추천방식을 거치지 아니한 사람은 총회장 후보의 자격이 없다고 할 것인 바, 이규호는 선거조례에서 정한 총회장 후보의 선거과정을 거치지 아니하였으므로 총회장 후보의 자격이 없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건 결의는 피고가 정한 선거조례의 절차에 따르지 아니하였으므로 무효라고 할 것이다.

탈법과 편법이 횡행하는 우리 사회에서 기독교회가 그것을 지양하여 더욱 모범적인 법집행을 도모함으로써 사회에 깨끗한 물을 흘려 보내지 못하고, 편법을 자행하여 스스로 혼탁한 소용돌이인 법적 분쟁을 일으킨다는 것은 참으로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할 것이다. 아무리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된다고 하더라고 기독교회로서는 원칙을 지키는 모범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또한 기독교 교리상 교회의 문제를 '세속법정에서 해결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는 바 그렇다면 기독교 교리란 기독교인들이 믿는 신의 명령일진대 교회문제를 세속법정에서 해결하려 하는 것은 신의 명령에 반하는 것이 되고 당사자 자신과 그것을 지켜보는 이들의 영혼을 망하게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용서와 화해는 보편적인 가치일 뿐만 아니라 특히 기독교에서는 이를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바 용서와 화해의 결을 차지 않고 세속 법정에서 시비를 가리려 든다면 스스로 절대자요, 최후의 심판자인 신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이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기독교회로서는 모든 일을 모범적으로 처리함으로써 분쟁의 소지를 없애야 할뿐더러 분쟁이 일어난 경우 신의 존재를 믿는다면 세속 법정으로 문제를 가져올 것이 아니라 용서와 화해의 정신으로 이를 처리해야 한다는 점을 밝혀두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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