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가져왔다. 하지만 그 추종자들은 이 땅에 목사의 왕국을 건설했다. 목사의 왕국이 되어버린 교회는 슬프다. 정녕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바라보며 흘리신 눈물이 헛된(?)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게 하기에 그러하다. 사실 바늘도둑은 무서운 게 아니다. 어찌 보면 귀엽기조차 하다. 그러나 그것이 소도둑으로 성장할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정말 교회를 이렇게 키우기까지 제가 피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라고 말할 때는 교회에 대한 헌신의 절절함이 느껴져 감동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를 아들에게 물려주겠다고 할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교회가 더  이상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목사의 왕국이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내노라는 대형교회들이 당회장 목사 자리의 세습 문제로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이의를 제기하고 공개질의서를 보내는 등 파문이 일고 있다. 한 두 집안이 용기를 내어 세습을 하자 덩달아들 나서고 있는 모양이다.

세습 교회 중 하나인 광림교회는 감리교 교단지인 <기독교타임즈>를 통해 교회 입장을 밝히면서, 김정석 목사의 자질과 선정과정에서의 적법성을 강조했다. 적법성. 이게 문제다. 사실 적법한 절차를 거쳤다는 사실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이유는 전혀 없다. 당연히 적법하게 했을 테니까. 그러나 적법한 절차를 거쳐 공정하게 후임자를 결정한 만큼 세습이란 용어를 쓸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아연 실색할 따름이다.

공정이란 말을 그렇게 써도 되는가. 적법한 것이 곧 공정은 아니다. 김정일의 세습도 역시 적법한 절차를 따른 것이었으며 박정희의 종신 대통령도 적법한 것이었다. 재벌 삼성이 이재용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과정도 적법했다. 그들 주장의 핵심이 법적 절차에 하자가 없다는 것이지 않는가. 하지만 아무도 그것이 공정한 일이라고는 말하지는 않는다.

이제껏 세상에서 권력을 가진 자가 하는 일 중에 적법하지 않은 것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차피 법은 사람이 만들게 되어 있는 것인데, 실제적인 권력, 그것도 독재 권력을 가진 자가 적법한 절차를 거친다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적법한 절차를 빌미로 공정성을 얘기하려 하는가.

교회 당회장 목사 자리의 세습이 적법한 일임은 분명하다.(왜냐하면 아직은 세습은 안된다고 정한 법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정한 일은 절대로 아니다. 현 실력자의 아들과 생판 낯도 모르는 남을 후보로 내세울 경우, 대다수의 사람들은  아들에게 표를 던질 것이 뻔하다. 애비가 시퍼렇게 눈을 뜨고 보는데 현실적으로 남에게 표를 던지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런 판에서는 후보에 같이 오르겠다고 하는 자도 없을 것이다. 선택되기도 어렵지만 설령 어찌해서 된다고 해도 기존의 당회장 목사와 측근들로부터 조여올 압력과 방해를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은 스스로 나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게 어디 공정한 일인가.

세습이라는 것이 지니는 끔찍한 속성은 그것이 전제하는 신념에 있다.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것이다. 그러나 세습이라는 현상은, 교회가 하나님의 것이 아니라 목사의 것이었음을 드러내는 증거이다. 세습은 교회는 목사의 것이라는 신념에 근거해서 발생한 사건이라는 말이다.

사실 목사의 심정도 이해는 간다. 교회를 개척하고 키우기 위해 얼마나 피눈물을 흘리며 고생하고 노력했겠는가. 그렇게 키운 교회를, 어느 날 어디서 불쑥 나타난 낯도 모르는 인간에게 넘길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도 공짜로 줘 버리다니 말도 안될 일이다. 죽었다 깨어나도 그렇게는 못할 것이다. 내가 땀으로 일군 내 교회, 내 성도들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숨겨진 전제는 교회는 목사의 것이지 하나님의 것이 아니라는 신념이다. 그렇기에 더욱 끔찍한 일이다.

이제 한국교회에 남겨진 과제는, 과연 목사들이 교회를 하나님의 것으로 여기는지 자기 것으로 여기는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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