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엔 모두 네 군데 약국이 있습니다. 그러나 명절 때면 언제나 황 선생님의 약국만 문을 엽니다. 약사인 황 선생님은 목사님의 사모님이기도 합니다. 처음엔 다른 약국들이 문을 열지 않으니 손님을 '독점'하고 싶어 무리하나보다,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다른 약국 약사 아저씨로부터 사정을 듣고 나서야 나의 이런 오해는 풀렸습니다.

약사들이 모여서 휴일에 약국 문을 열 당번을 정하는데 서로들 미루고, 더 유리한 날짜만 고집하자 황 선생님이 "그러면 내가 명절기간 동안 문을 열 테니 모두 고향 다녀오세요" 했답니다. 이런 모습 때문에 황 선생님은 다른 약사들로부터 누나로 통합니다. 한두 번 그런 뒤로 아예 명절엔 황 선생님이 당번서는 걸 당연시하게 됐습니다. 약사들은 황 선생님의 이런 친절에 감사해서 주일 당번 명단에서는 빼줍니다. 사모님이란 사실을 고려해준 것입니다.

말이 나온 김에 황 선생님 이야기를 더 하겠습니다. 이 약국은 우리동네에서 가장 오래된 약국입니다. 손님도 가장 많습니다. 오래됐기 때문이 아니라 황 선생님의 정성 때문입니다. 그의 컴퓨터 속엔 손님들의 건강이력이 차곡차곡 적혀 있습니다. 형식이 아닙니다. 이 이력서엔 나도 모르는 나의 '과거'가 가득할 정도입니다. 약이 필요 없는 경우엔 절대 약을 주지 않는 것도 황 선생님의 신뢰를 높여줍니다. 가령 멀미니 가벼운 감기니 하는 것은 적절한 처치법만 가르쳐 줍니다. 비싼 영양제는 급하지 않는 이상 '싼 도매상'을 이용하도록 권합니다. 밤에도 급하면 황 선생님 댁에 전화부터 하는 게 우리 동네 사람들의 습성이 됐습니다.

이런 황 선생님이 언젠가 이사를 가려한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그러자 동네 주민들이 모두들 있어달라고 만류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이사를 포기했다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그 말이 사실인 듯 합니다. 우리 동네 사람들 가운데 많은 사람은 황 선생님 권유로 교회에 갑니다. 콩을 팥이라 해도 그의 말은 믿기 때문입니다.

황 선생님을 보면 세상을 사는 지혜가 열리는 듯 합니다. 더불어 함께 사는 일, 그런 일이라면 무엇이든 가치 있고 소중합니다. 내가 하는 일을 돌아봅니다. 내 일이 소중하기 위해 갖춰야 할 것을 황 선생님으로부터 배웁니다. 내가 그리스도인으로 아름다운 공동체의 한 사람이 되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 지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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