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함양군 함양읍 난평리 신기마을 언덕배기에 자리잡고 있는 「함양사랑의집」. 이곳에선 걷지 못하고 대소변도 못가리는 노인 20여명이 서흥석 목사(51)와 한성례 사모(47)의 보살핌 속에 함께 생활을 하고 있다. 올해로 벌써 14년째다.

서목사 부부는 매끼니 식사를 준비하는 것은 물론 대소변을 받아내고 청소를 하고 침구를 깔고 개는 등 일상사 전부를 돕는다. 심지어 무료해하는 노인분들을 위해 판소리와 장구, 꽹과리 등을 배워 때때로 저녁 시간 노인들을 위한 오락도 펼치고 성격이 쾌활한 서목사는 몇차례 큰절도 하기 일쑤다.

서목사가 이 일에 나선 것은 86년. 서울의 모교회 부교역자 생활을 청산하고 경남 함양군 신기마을에 석복교회를 개척하고 한창 농촌목회에 전념할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루는 새벽예배를 마치고 나오는데 한 교인이 교회 앞의 집에 가보자고 하시더군요. 그 집은 며칠 전 할머니가 돌아간 집으로 아무도 없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누군가 계시다고 그러길래 찾아가보니 74세된 문둥병 양성환자 할아버지가 어둠컴컴한 곳에 누워 계시더라구요. 벌써 며칠째 아무것도 못먹고 말이지요. 듣고 보니 그 할아버지는 7년전 소록도를 빠져나온 이후 자신의 부인이 살고 있는 이곳 신기마을에 찾아와 아무도 모르게 집에서만 살고 계신 형편이었는데 그나마 부인마저 소천하니 더 이상 보살펴주는 이가 없는 상황이더라구요. 동네사람들의 눈이 무서워 집밖을 나가지 못하다 보니 자연스레 앉은뱅이가 됐고 또 빛을 보지 못하니 장님이 되었구요.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 꼭 짐승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디다."

목회자로서 양심상 도저히 나환자 할아버지를 외면할 수 없어 집으로 모셔와 함께 살던 기간이 채 5개월. 할아버지는 숨을 거두었고 서목사는 장례 후 자연스레 불쌍한 독거 노인환자 사역에 눈을 돌리게 됐다. 그후 자신의 집 앞에 쓰러져 신음하고 있는 치매할머니를 모셔오고 때로는 외지를 나갔다가 버려진 노인분들을 모셔와 돌보다 보니 오늘날 사랑의집이 이루어졌다는 것이 서목사의 얘기다. 처음 서목사 부부가 사는 단칸방에서 시작된 사랑의집 역시 현재는 연건평 300여평 규모의 조립식 막사로 여타 수용시설과 비교해볼 때 노인중환자들이 머무를 안락한 분위기가 마련돼 있다.

요사이 서목사는 중풍, 치매를 심하게 앓고 있는 무의탁노인들을 찾기에 여념이 없다. 모시고 있던 노인분들이 하나 둘씩 세상을 떠나기 때문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20여명 이상 함께 생활하던 노인들이 세상과 작별, 현재는 10명의 노인들만 남아 있다. 한해 평균 13명 정도가 소천하니 매월 한차례 장례예배를 드리는 셈이다. 주검은 후손들을 찾지 못하는 만큼 화장을 한다. 누구 하나 가슴 아픈 사연을 갖고 있지 않은 노인은 한사람도 없이 모두 다 구구절절한 인생역정을 살아오신 분들이었다. "틀림없이 천국으로 가셔서 편안한 삶을 사시리라고 믿습니다. 지금도 가끔씩 생각이 나곤 한답니다."

서목사는 언제라도 연락이나 추천이 들어오면 전국 어디를 가서라도 직접 노인환자를 모시고 올 생각이다. 기자 인터뷰에도 응하는 것은 칭찬을 듣거나 후원자를 찾기 위함이 아니라 지금도 어딘가 골방에 버려져 있을 노인환자들을 찾기 위함이다. 또 신문기사도 절대로 이같은 조건을 전제해 달라고 수없이 당부했다.

사랑의집에선 걷지도 못하고 대소변도 못가리는 무의탁노인만 생활한다. 세상에서 홀로 살아갈 능력이 없는 분들 가운데 가장 힘들게 살아가는 분들만 모시고 사는 셈이다. 사랑의집은 공동체 생활을 위해 전염병, 피부병 환자, 정신질환자는 받지 않는다. 자활을 희망하는 사람들도 받지 않는다. 혼자서는 도저히 생활할 수 없는 무의탁노인, 즉 걷지 못하고 대소변도 못 가리는 홀로노인만을 받는다. 혼자 힘으로는 걸식조차 못하는 절대빈곤의 행려병자에겐 언제나 문이 열려 있는 셈이다. 노인을 돌보기 위한 일체의 경비도 일절 사양한다. 그리고 한번 공동체 생활을 하면 돌아가실 때까지 끝까지 가족과 함께 정성을 다해 돌보며 섬긴다.

사랑의 집은 14년이 넘도록 아직까지 제대로 된 후원자가 없다. 그러나 재정적인 걱정은 아예 하지 않는다. 남목사 스스로 이 일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하는 일인 만큼 물질에 대한 걱정은 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월 400만원 정도의 생활비가 드는 사랑의집 살림이지만 서목사는 지금껏 어느 누구에게나 후원을 요청하지 않는다. 실질적으로 후원해 주는 사람도 적을 뿐만 아니라 가난을 기본으로 하지 않은 섬김과 헌신은 자칫 위선과 타락으로 흐를수도 있다는 사실을 경계하기 때문이다.

서목사는 함양군내 12개면을 두루 돌아다닌다. 각 마을마다 가가호호 방문하면서 쌀을 얻기 위해서다. 물론 사랑의집에 필요한 식량을 얻기 위함이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자신이 가난한 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난할 때라야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섬김이 이뤄진다고 확신하는 탓이다.  

서목사와 한사모는 하루에도 몇차례씩 예배를 드린다. 그리고 몇시간씩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한다. 육체적으로 병이 들고 정신적으로 외로운 분들을 그리스도의 사랑과 영성으로 치유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들 먼저 영적으로 거듭나고 또 다시 다짐을 하기 위해서다. 중풍이나 치매에 걸린 노인들의 수발을 되기 위해선 끊임없는 자기포기와 결단이 요청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거듭해서 주검을 만지고 하루에도 수십번씩 변을 치우는 일을 기쁨으로 할 수 없다고 서목사는 토로했다.

노인환자들의 육체, 정신, 정서, 재정 및 영적 고통을 함께 나누고 치유해야 하는 것 역시 자신들이 해야 할 몫이기 때문에 서목사 부부에게 영적 재충전은 필수부가결한 생활이 되었다. 그만큼 서목사 부부에게 있어 사랑의집이란 육체의 고난을 내 몸에 채우려 한다는 사도 바울의 고백(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로새서 1장 24절)을 몸으로 실천하는 장(場)인 것이다.  

5년 전까지만 해도 예장(대신) 교단 소속의 목회자였던 서목사는 노인환자들과 함께 생활을 하면서 교회 목회를 더이상 하지 않았고 교단 역시 탈퇴했다. 교회란 테두리에서 이 생활을 병행하기가 실제적으로 여러가지 면에서 힘들고 어렵다는 것이 서목사의 솔직한 고백이다. 한편 서목사의 봉사활동에 감명을 받고 자란 하나양(경희대 사회복지학과 3년) 요한군(성남계원예고 2학년) 역시 앞으로 학교 졸업 후 부모의 사역을 도울 예정이다.

"비록 자격은 안되겠지만 성프란시스의 가난한 봉사, 테레사 수녀의 무일푼 봉사를 섬기고 싶습니다. 주님도 가난하시지 않았습니까. 가난 속에서 이루어지는 봉사와 헌신이 진정한 크리스천으로서의 삶이라고 확신합니다. 가난과 헌신의 삶, 그 속에서 주님으로부터 부여되는 진정한 영성의 기쁨은 그 무엇보다 나 자신을 자유롭고 아름답게 만들어 주십니다."

서목사는 자신을 천국을 눈 앞에 두고 있는 불쌍한 노인환자들의 '장의사'라며 사랑의집 한켠에는 항상 관(棺)이 2∼3개 놓여있다고 말했다. 그리곤 '사랑이란 사랑에 굶주린 이들과 함께 같이 사는 삶'이라고 되뇌었다. 그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태복음 16장 24절)는 말씀을 자신의 삶의 푯대로 여긴다고 덧붙였다.(☎055-964-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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