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 지난 이야기 좀 하렵니다.

우리 농촌엔 여름마다 한총련(한국대학생총학생회연합) 중심의 농활(농민학생연대활동)이 진행 중입니다. 올해엔 2만여 명의 대학생들을 조직화하여 한·칠레자유무역협정으로 인해 뒤숭숭한 전국 농촌에 들어가 농민들과의 만남을 진행 중에 있습니다. 그들은 농활을 가서 근로봉사활동만 하는 것은 아니고, 호별방문·분반활동·마을잔치·체육대회 등을 합니다.

농활을 통해 농민-학생연대활동으로 규정하여, 수입개방과 도시이주로 인해 피폐해진 농민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우리 농업의 현실을 직시하며, 농민의 삶을 배우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기 위해 호별방문에 가서 농가부채는 얼마인지도 물어보고, 마을잔치를 하면서 어머니들 손도 잡고 안마도 해드리면서 이런 저런 가슴 속 대화를 나눕니다. 이 마을잔치를 위해서는 연극도 준비하고, 노래·풍물 등 여러 볼거리들을 준비하여 농민들의 마음을 풍족하게 해주기도 합니다.

농활을 통해 한총련은 농민들과의 굳건한 연대전선을 형성함과 동시에 학생회 강화에 그 주목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한총련의 농활은 투쟁이며 정치적 성격이 강합니다. 필자도 과거 한총련 농활의 선두에 서서 학생들을 조직화하고 그들과 함께 전북 진안의 농촌으로 떠나 참으로 열심히(?) 땀 흘렸던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농활을 수행한 후 끊임없는 질문들이 솟구쳐 올랐습니다. 과연 누구를 위한 농활인가? 우리가 부족한 일손은 채워 줄 수 있으나 농민들의 상처난 마음은 어떻게 하나? 희망 없이 공허해진 저들의 영혼에 분노를 채우고 돌아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내내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지금도 그때 함께 땀 흘렸던 친구들 중 일부는 한총련 농활을 조직화하여 농촌으로 떠났습니다.

하지만 농민들에게 있어서 농활은 대학생들이 생각하는 농활과는 좀 거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대학생들의 농활에 정치적 의미를 논하기보다는 일손 부족으로 힘들어하고 있는 농촌에 있어 대학생들은 단비와 같은 존재입니다. 또한, 아이들 울음소리가 끊긴지 오래인 농촌에서 젊은 대학생들의 움직임은 그 자체만으로도 농민들에게 흐뭇함을 선사합니다. 도시로 떠난 자식들을 보는 듯 하여 어찌나 지극 정성인지 모르겠습니다. 무언가 서로 코드가 맞지 않는 듯 합니다.

필자는 한총련 농활에 부정적 의미만 있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만, 이 시기 이젠 기독청년학생들이 농활의 진정한 의미를 찾을 때라 여겨집니다. 또 다른 이름의 농활! 농민학생연대활동이 아니라 농촌선교봉사활동이라는 이름으로 도시교회 청년대학부의 여름수련회가 농촌에서 치러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농촌교회는 더 이상 여름성경학교도 치를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아이들이 없는 교회가 부지기수요 설령 있다 하더라도 교사들의 노령화로 인해 목회자들이 여름성경학교를 모두 감당해야 합니다. 성도들뿐 아니라 마을 주민들에게 있어서 젊은 인력이 무척이나 아쉽기도 합니다.

정치투쟁적인 농활처럼 정부와의 대립의 각을 세우고 분노의 가슴을 품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농촌의 아픔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어루만지고 농촌 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기도하고, 여름성경학교를 대신 치러줌으로써 농촌 어린 학생들에게 신앙의 아름다움을 펼쳐 보인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노동의 진정한 가치도 깨닫는다면 인생에 있어 가장 보람찬 경험들을 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기독청년학생들로 인해 한국 농촌과 교회에 다시 한번 활기참이 가득해질 수 있다는 것은 정녕 꿈일까요. 해외선교를 해마다 떠나는 교회가 있다면 격년제로 조국 농촌교회로 농촌선교봉사활동을 추진하면 어떨까요. 한총련의 농민학생연대활동도 어느 정도 공감하지만, 기독청년학생들의 농촌선교봉사활동이 이 나라의 농촌에 더욱 활발해질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극단 제3무대 상임연출 / 기독문화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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