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가 급속한 위기 속에 빠져들고 있다. 한국경제의 견인차적 역할을 했던 현대건설이 부도직전의 상태에 몰리는 수모를 겪고 있으며, 이 외에도 중소기업들의 몰락이 이어지고 있다. 이른바 'IMF 3년 증후군의 덫'에 한국이 걸려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의 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본격적인 겨울의 추위는 멀어 보이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이미 경제한파로 한겨울 얼음처럼 얼어붙고 있다. 기업과 금융권의 무더기 퇴출, 이후 벌어질 대대적인 감원, 하청업체의 도산, 깊어가는 불황에 폭락하는 주가... 한겨울 칼바람보다 더 혹독한 불황의 찬바람이 사람들의 가슴을 휑하니 훑고 있다. ‘불안한 현실’과 더욱 ‘불투명한 미래’ 앞에 사람들은 꽁꽁 얼어붙은 몸과 마음을 움츠리고 있다.

지도층에서부터 밑바닥까지의 <아노미 현상>
이러한 상황은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를 급속하게 떨어뜨리고 있는데,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것이 김대중 대통령의 정치력에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 참여가 사람들의 빈정거림의 대상이 될 정도로 대통령의 권위는 추락하고 있다. 최근 민주당 최고위원들의 뼈아픈 소리가 대통령에게 전달되었다고 하는데 과연 그것이 특효약이 되었을지는 좀더 두고 봐야 하는 상황이다. 특단의 결단이 매번 이야기되고 있기는 하지만, 정작 그렇게 특단의 의지로 사태를 해결하는 것을 그간 별로 보지 못한 탓이다. 야당과의 <연립 내각론>까지 나오고 있긴 하지만, 여야간의 정쟁은 날이 갈수록 날카로워져 민생은 불확실한 전망으로 고단하기 짝이 없는 실정에 처해 있다.  

개혁을 내세웠던 정권이 개혁을 제대로 추진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개혁 피로감>이라는 말에 둘러 싸여있고, 정권에 우호적이었던 세력들조차 고개를 가로젓고 있는 상태이다. 이것은 실로 김대중 정권의 중대위기이자, 나라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일들이 아닐 수 없다. 대기업들의 부도상태를 국민들의 부담으로 막아내고, 공적자금을 거의 무제한적으로 투입시키는 방식을 반복하는 것은 한국경제 전체를 거덜나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게 하고 있는 것이다.

또다시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아래 무수한 노동자들이 잘려나가고, 그 과정에서 겪을 상처와 갈등은 한국사회를 여러 가지 차원에서 멍들게 할 것이 분명하다. 이런 식으로 미래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날이 갈수록 거칠어져 가고 이기적인 생존원리에 몰두해버릴 수밖에 없는 현실에 처하게 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나 몰라라 하고 어떻게든 큰 것 하나 먹어야겠다는 한탕주의가 범람하는 것을 목격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지도층에서부터 밑바닥에 이르기까지 <도덕적인 해이>는 극에 달하고 있는 상황이다. 도덕적 해이가 일단 그 사회의 생존방식처럼 되면, 그 공동체의 미래는 보장할 수 없게 된다. 너나 할 것 없이 자기 마음대로, 자기 욕심껏 생존경쟁을 하는 그악한 사회가 되기 때문이다.

한 사회가 위기에 처하면 그 위기에 대하여 모두가 결연한 자세로 대응해나가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그렇지 못한 상태로 빠져들고 있으니 모두가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공동체 전체가 일종의 아노미(anomi), 즉 규범이 사라지고 마는 혼돈의 터널 속으로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이럴 때 일 수록 교회는 우리사회의 정신적 혼미를 일깨우고 그 도덕적 파산이 가져올 위기를 경고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IMF위기 직후 한국교회가 그토록 회개하고 자기 반성적 성찰을 했지만, 그 결과가 어떤 것인지 회의스럽다. 한국교회는 여전히 한국사회의 현실과 유리된 채 자기만의 성채를 쌓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근본적인 반성이 요구되는 것이 아닌가?

농심(農心)이 흔들리면...
그렇지 않아도 지난달 전국 농민회 총연맹을 중심으로 전국 21개 농민단체가 참여한 전국 172개 시군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농민시위가 일어났던 것은 한국경제의 근본이 심각한 위기국면에 직면해 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셈이었다. “농가부채 특별법 제정을 위한 100만 농민 총궐기 대회”라는 이름을 걸고 이루어진 이날 시위는 부채상환의 유예와 농축산물 가격의 보장 등을 요구하는 것이었는데, 이는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과 겹쳐 한국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노동자와 농민들의 삶이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지고 있음을 확인시킨 사건이었다.

정부는 일단 부채 분할상환을 통해 농가의 부채부담을 경감하는 정책을 추진할 것이라고 하지만, 농민들의 고통이 본질적으로 농정실패에서 기인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자면 이러한 대증요법은 아무래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느낌이 짙다. 농촌의 교회들은 바로 이러한 농민들의 부채로 인해 겪는 아픔에 대해서 좀더 목소리를 합해 정치권에 명확한 발언을 할 필요가 있다.  

빚더미에 오른 농민들의 삶을 그대로 방치하고서 한국경제가 회생할 방법도 없거니와, 교회도 따로 무슨 생명의 메시지를 전하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노릇이 아닌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고 여긴 농민들의 집단적 저항이 첨예화 될 경우, 사태는 정말 겉잡을 수 없게 된다.

여기서 농정실패란 다른 것이 아니다. 농업시장을 너무 성급하게 개방했고 이것이 농가 수익에 결정적인 타격을 주었다는 점에 그 실패의 핵심이 있다. 정부보조도 금지시키고 있는 WTO정책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결과이다. 결국 한국농업은 만성적인 빚더미에서 신음하지 않을 수 없고, 일단 빚의 굴레에 끼이면, 빚으로 빚을 갚는 악순환의 연속으로 인해 농촌은 파산을 향해 달려갈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개인들의 부채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고 있고, 여기에 빈부격차의 심화가 가세해서 사회적으로 심각한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 국제유가의 인상과 더불어 생필품의 물가인상까지 겹치게 되면 일반서민들의 생활은 허덕이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이것은 한국의 시장 자체를 동요시켜 경제 전반의 장기침체와 민생의 파탄으로 이어질 수 있는 중대사이다.  

이 모든 사태의 보다 깊은 배경
우리 사회는 사전경고의 소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가, 사태가 일단 해결하기 어려운 지점에 가야 비로소 정신들을 차리고 열들을 내는 습관이 있다. 그러다가 잠시 문제가 풀리는 듯 하면 다시 구태로 돌아가고 만다. IMF가 한국경제를 쥐락펴락 하자 그토록 가슴을 치며 통회하던 마음들이 이제 다 사라지고, 김대중 정권을 비난하는 일에만 열중하고 있다. 김대중 정부가 일차적인 책임을 질 수밖에 없지만, 우리 모두의 결연한 의지와 태세, 그리고 새로운 발상과 자세가 더욱 필요하다.

이 모든 사태의 보다 깊은 배경에는 사회가 위기에 처했을 때 그 위기에 대하여 모두가 결연한 자세로 그 원인을 진단하고, 자잘한 이익을 내세움 없이 전체의 복지를 위해 힘을 모아 극복하려는 지혜로움의 결여에 있다. 어려운 때일수록 차분하게 자신을 짚어보고, 그 한계가 무엇인지 깨우치며 이 깨달음을 전체적인 역량으로 전환시켜나가는 지혜와 노력이 필요하다. 정치계나 경제계나 학계나 언론계나, 그밖에 한국사회를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가는 집단과 개인은 이러한 사태를 맞이하여 또다시 이 나라를 고통에 찬 위기의 수렁에 빠뜨리지 않기 위해 중대한 각오와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앞세우는 자세를 갖추어나가야 한다.

교회는 이러한 현실에서 가장 지혜로운 권고로 한국사회의 방향을 일깨우고, 지도층의 자세를 바꾸는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자칫 <게으르고 악한 종>이 될 처지에 빠져 있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교회”의 모습은 보기에도 초라하고 민망하다. 경고의 나팔소리와, 지혜의 말씀이 흘러나오는 교회의 진정한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이제 한국경제의 현실과 마주하여 민생의 고달픔을 더는 보다 치열한 각오가 필요한 시점이다.

가장 어려운 처지에 빠져 있는 이들의 고통을 끌어안는 절절한 마음을 갖고, ‘목자 없는 양들처럼 빈들에서 헤매고 있는 사람들’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교회는 스스로 가진 것을 나눌 뿐만 아니라, 더 큰 안목에서 정작 이 나라가 직면한 사태의 근본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의 무딘 의식을 일깨우고 민족의 진로를 새롭게 하는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하나님 나라의 의를 바탕으로 우리의 삶과 현실을 근본적으로 되돌아보면서 정작 이루어져야 할 일들이 무엇인지를 선포해야 한다.

권력의 오만을 일깨우고, 가난한 이들의 고통이 깊어지는 것에 눈물 흘리며 아파하는 용기있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경쟁주의 논리에 끌려가고 있는 조국의 현실 앞에서 공동체의 가치를 새롭게 강조하고, 누리기보다는 섬기는 자의 모습으로 나서야 한다. 언제 어디서나 가장 고통받고 있는 현장에는 바로 교회가 우뚝 서 있어야 한다. 섬김과 나눔의 삶은 우리에게 생명과 평화를 만들어 준다. 교회가 오늘의 위기에 빛을 발하는 희망의 등대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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