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맥을 따라 읽자

성서 본문이 주어질 때, 흔히 교재에서는 요절(要節)의 형식으로 주어진다. 그것은 이미 문맥을 떠난 것이어서 그것만을 읽고 명상하다가는, 때로는 엉뚱한 곳으로 빠져 버릴 수도 있다. 그 요절의 뜻을 잘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 본문이 들어 있는 그 자리로 가서 전후의 문맥을 따라 그 요절이 지닌 뜻을 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기존의 우리말 번역 성서는 문단 구분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요즘에 출판되는 성서는 대한성서공회에서 출판되는 것이든 일반출판사에서 출판되는 해설 성서의 경우든, 모두 성서의 본문이 문단별로 편집되어 있지 않고 매 절이 독립된 채 절별로 편집이 되어 있어서 문단을 구분해 보기가 어렵다. 다만, 편집 형태에 따라서 옛 편집의 문단 구분 표시인 각설표 ( )를 절 머리에 그대로 살려 두어서 그것이 새로운 문단의 시작임을 알 수는 있으나 시각적으로 문단 구분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편집에 따라서는 소제목(小題目)을 붙여놓은 것이 있어서 그 소제목을 보고 문단을 확인할 수 있는 편집이 있다.

때로는 그것이 구약에서 인용된 본문일 경우에는 구약의 출처를 펼쳐 그 문맥 안에서 그 말이 어떤 의미로 쓰이고 어떤 기능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을 파악하여야 한다. 이런 경우에는 관주(貫珠) 성서나 관주를 해설한 성서가 큰 도움이 된다.

문맥을 떠나서 읽는 본문이 때로 얼마나 독자를 오도하는가 하는 것을, 여기에서는 아주 대표적인 경우들만을 예로 들어 제시해 보았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였거든"
요한복음서 10장 35절
사람이 하나님이 될 수 있다는 말이 아니다


"사람도 하나님이 될 수 있다! 성경에 그렇게 쓰여있다!"고 말하면서, 흥분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 온 한 동료 목회자가 있었다. 나는, 태초의 뱀이 하와를 유혹할 때, 사람이 금단의 열매를 먹으면 눈이 밝아지고 "하나님처럼 되어" 선과 악을 알게 된다는 말을 했던 것은 기억하고 있었기에, "그것은 뱀이 사탄을 유혹할 때 한 말인데," 하고 말했더니, 그는, 사람이 "하나님처럼" 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실제로 "신, 곧 하나님"이 된다고, 예수께서 직접 그렇게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면 신이 된다"고, 곧 "하나님"이 된다고 성경에 적혀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를 받아들인 기독교인은 하나님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디에 그런 구절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요한복음서 10장 35절을 들여 민다. [개역]의 본문을 보니까,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이라는 말이 있다. 그 구절만 보니, 과연, 그 목회자가 흥분할 만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는 여기에 곁들여,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니까, 신, 곧 하나님이시고, 우리 신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받은 사람들이므로 "신들"이 되었고, 그래서 예수와 우리는 진정으로 형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예수는 맏형이고 우리는 다 그의 아우들이라는 것이다.

위대한 신학적 진리나 발견한 것처럼 흥분하는 그 목회자의 전화를 받고서, 나는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 지 막막했다. 우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로 하여금, 이 말이 나오는 본문의 문맥을 살펴보도록 권하는 일이었다.

문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유대 사람들이 예수를 돌로 치려고 했다. 까닭은, 예수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곧 하나님을 모욕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예수가 사람이면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니,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면 곧 "하나님"과 같은 신적인 존재인데, 예수가 사람이면서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하니,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군중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으신 예수께서는, 시편에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 곧, "내가 너희를 신들이라고 하였다"(시 82:6) 하고 하신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하나님께서는 "[왕과 같은] 통치자나 재판관 같은 사람들"을 가리켜서 말씀하실 때에도, 그들을 "신들 (엘로힘)"이라고 하신 적이 있는데, 그리고 하나님의 메시지를 위탁받은 사람들을 신들 (엘로힘)이라고 말씀하셨는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시어 세상에 보내신 사람이,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 말을 가지고, 어찌하여 하나님을 모독한다고 하느냐?" ([표준새번역] 요 10:34-36) 하고 반문하신 바로 그 맥락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다"는 말이 들어 있다. 더욱이 시편 82편에 등장하는 "신들"은 악인의 편을 들어서 공정하지 않은 재판을 되풀이한 "악한 자들"을 두고 한 말이다.  

(1) 하나님이 하나님의 회 가운데 서시며 재판장들 중에서 판단하시되 (2) 너희가 불공평한 판단을 하며 악인의 낯 보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셀라) (3) 가난한 자와 고아를 위하여 판단하며 곤란한 자와 빈궁한 자에게 공의를 베풀지며 (4)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구원하여 악인들의 손에서 건질지니라 하시는도다 (5) 저희는 무지무각하여 흑암 중에 왕래하니 땅의 모든 터가 흔들리도다 (6)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였으나 (7) 너희는 범인 같이 죽으며 방백의 하나 같이 엎더지리로다 (8) 하나님이여 일어나사 세상을 판단하소서 모든 열방이 주의 기업이 되겠음이니이다 (시 82:1-8)

이상의 맥락에서 보듯이, 이 본문이 말하려는 것은,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도 영원히 사는 불사의 존재인 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예수께서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한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구약의 본문을 인용해가면서 주장한 것일 뿐이다.

고대 근동의 신화에서는 사람도 신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구약에서나 신약에서는 사람은 하나님이 되지 못한다. 바빌로니아의 홍수설화인 길가메쉬 서사시의 주인공 우트나피스팀은, 노아와 같은 "사람"이면서, 홍수 이후에 "신들"과 같은 생명을 얻어 죽지 아니하는 불사(不死)의 존재로 바뀐다. 그러나 창세기의 노아는 홍수를 피하여 구원을 받고 살아난 이후에도 신적 존재가 아닌 여전한 "인간"으로 남는다. 성서에서는,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고 사람은 사람이다. 사람이 신이 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렇게 설명하고도 남는 문제가 있다. "(34)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율법에 기록한 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35)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개역] 요 10:34-35)에서 34절의 말씀은 구약 시편 82편 6절의 인용인데, 35절의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이라는 구절의 출처는 찾을 수가 없다. 다만 주석(註釋)들의 견해를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은 예언자를 말한다기보다는,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은 이스라엘, 혹은 통치와 재판의 권위를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은 통치자들을 일컫는 것이다.

<이 글은 민영진 칼럼이나 신학 섹션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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