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련 사무실에서 목숨을 끊은 육우당의 유서.
4월 25일 밤 스무 살 동성애자 청년이 자신이 활동하던 사무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술, 담배, 녹차, 파운데이션, 수면제, 묵주를 친구로 삼고 자신의 아호를 육우당(六友堂)이라 붙였던 그는 시조시인을 꿈꾸던 평범한 문학청년이었다. 다른 점이 있었다면 대부분의 '일반'인들이 인정해주지 않는 성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 그는 다음과 같은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등졌다.

"내 한 목숨 죽어서 동성애 사이트가 유해 매체에서 삭제되고 소돔과 고모라 운운하는 가식적인 기독교인들에게 무언가 깨달음을 준다면, 난 그것만으로도 나 죽은 게 아깝지 않다고 봐요. 몰지각한 편견과 씹스러운 사회가 한 사람을, 아니 수많은 성적 소수자를 낭떠러지로 내모는 것이 얼마나 잔인하고도 반성경적 반인류적인지…. 우리더러 죄인이라 하기 전에 자기네들이나 먼저 회개하고 이웃사랑 실천을 해야 할 거예요."

목숨을 던지며 한국교회에 외친 그의 절규는 대부분의 기독인에게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목숨을 던져 '가식적인 기독인'들에게 깨달음을 주기 원했지만, 아쉽게도 그의 죽음은 신문 한켠을 쓸쓸히 장식했을 뿐이다. 고인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와 <국민일보>의 동성애에 대한 적대적인 태도를 접하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기에 한기총과 <국민일보>의 매정한 반응에 더 마음이 아팠을지도 모르겠다.

육우당과 비슷한 시기에 30대 후반의 한 동성애자도 자살을 선택했다. 기독교인이었던 그는 "하늘이 허락해 다시 태어난다면 결코 이렇게 태어나고 싶지 않다"는 글을 남기고 세상을 등졌다. 기독교 신앙은 두 사람이 겪었던 고통과 좌절을 크게 줄여주지는 못했다. 육우당의 경우, 기독교 신앙이 오히려 그 짐을 더욱 무겁게 만들었을 뿐이다.

▲육우당 추모제 전경. 영정 없는 제단이 동성애자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을
소리 없이 웅변하고 있다. (동성애인권연대 제공)

미국에서 이뤄진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17세 남성 동성애자의 자살율이 이성애자 남성에 비해 16배 높다고 한다. 동성애자들의 자살율은 20세에는 이성애자의 13배, 25세에는 6배에 이른다. 이러한 결과는 사춘기의 고민과 성정체성에 대한 갈등이 맞물려 끝내 죽음을 선택하는 동성애자 청소년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죽음의 유혹은 동성애자들을 끈질기게 따라다닌다. 취재 중에 만난 한 동성애자는 "대부분의 동성애자들이 손목에 칼자국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며 희미하게 웃었다. 가족은 물론 가장 가까운 친구도 동성애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그래도 꿋꿋이 살아라"라고 말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 가벼운 말일 수도 있다.

동성애자를 죽음으로 모는 사회

▲ⓒ뉴스앤조이 김승범
동성애자가 전체 인구 중에 얼마나 되는가는 그 누구도 정확한 답을 가지고 있지 않은 어려운 문제이다. 동성애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전체 인구의 10% 이상이 동성애자라고 주장한다. 반면에 동성애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은 인구의 4%라고 말하기도 한다. 줄이고 줄여 인구의 1%가 동성애자라고 하더라도 대략 45만 명의 동성애자가 우리 나라에 살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이성애자들은 직접 동성애자들을 만난 경험이 거의 없을 것이다. 과연 그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답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정말 동성애자들이 없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일 수도 있고, 동성애자들이 모두 숨어버린 것일 수도 있다. 동성애자인권연대 대표를 지낸 바 있는 임태훈(28) 씨는 동성애자들이 사회의 차가운 시선 때문에 자신을 감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장애인과 이주노동자는 가족의 지지라도 받지만, 동성애자가 가족의 지지를 받는 것은 한국 상황에선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동성애자들에 대한 사회의 낮은 지지도와 동성애자 자신의 무너진 자존감이 많은 동성애자들을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동성애자인권연대 전 대표
임태훈 씨. ⓒ뉴스앤조이 양정지건
기독교 신앙을 가진 동성애자의 경우, 어려움은 더욱 커진다. 이성애자들이 그렇듯이, 대부분의 동성애자들은 사춘기 시절에 자신이 동성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거의가 자신이 동성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강하게 부정하지만, 그러한 과정을 통해 이성애자로 바뀌는 경우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동성애자들은 자신의 '일반적'이지 않은 성정체성을 가지고 씨름을 하며 살아야 한다. 이 길고 힘든 싸움의 과정에서 많은 교회들이 동성애자들에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더 깊은 상처를 준다. 강단에서 선포되는 동성애자에 대한 정죄와 교인들 사이에서 우스개로 하는 동성애를 비하하는 농담들은 아픈 화살이 되어 이들의 가슴에 꽂히기 일쑤다.

기독인 동성애자 모임을 이끌고 있는 안드레(닉네임) 씨는 "동성애자는 구원도 받지 못한다고 말하는 교회의 냉대와 보수적인 정서가 동성애자들을 교회에서 몰아내고 있다"고 개탄했다. 그는 "동성애가 죄라고 한다면, 죄인들을 사랑으로 보살피는 것이 교회의 임무가 아닌가"라며 "교회가 동성애자들을 사랑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발로 차서 내쫓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질문했다. 물론 그의 질문에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동안 다녔던 어떤 교회에서도 동성애자들을 만났다거나, 누군가가 그들에 대해 호의적인 말을 하는 것을 들어본 일이 없기 때문이다.

동성애자 발로 차는 한국교회

▲ⓒ뉴스앤조이 김승범
동성애자들을 힘들게 하는 오해와 편견은 다양하게 존재한다. 대부분의 언론들은 늘 동성애자들의 성생활에 초점을 맞추어 동성애 문제를 다룬다. 한 동성애자는 "이성애자들이 맨날 섹스만 하면서 사는 것이 아니듯이, 동성애자도 하루 종일 섹스 생각만 하는 것은 아니다"는 말로 불만을 표현했다. 임태훈 씨는 "이성애자들에게 자주 듣는 질문이 '언제 동성애자가 되었나', '왜 동성애자가 되었나', '파트너와 어떻게 섹스를 하는가' 등이다"라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이런 질문들을 자신에게 그대로 다시 던져보면 이성애자들이 동성애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지 곧 알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성애자에게 언제, 왜 이성을 사랑하게 되었냐고 묻는 질문이 우스운 것처럼, 동성애자에게 그런 질문을 하는 것도 우습지 않느냐는 것이다.

동성애자들은 성적으로 문란할 것이라는 생각도 근거 없는 편견 중의 하나이다. 동성애자인권연대 정욜(26) 대표는 "이성애자 중에서도 사창가를 찾는 문란한 사람이 있고 매일 파트너를 바꾸는 사람도 있는 것처럼, 동성애자 중에도 문란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이성애자 모두가 성적으로 문란한 사람이 아니듯이, 동성애자 역시 모두가 문란한 성생활을 즐기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30대 후반의 한 동성애자는 외국처럼 동성애자간의 결혼을 허용하는 것이 일부 문란한 동성애 행위를 막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제안을 내놓았다. 동성애자를 자꾸 지하로 내모니 그곳에서 건전하지 못한 것들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그들은 동성애자 때문에 에이즈가 만연한다는 주장 또한 별 다른 근거 없는 편견이라고 말한다. 초창기와는 달리 실제 에이즈 감염자의 대부분이 이성애자인 상황에서, 동성애자를 에이즈의 주범으로 모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또한 에이즈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져 대부분의 동성애자들이 안전한 섹스를 선호하는 상황에서, 이들을 무작정 에이즈 전파자로 모는 것은 에이즈를 예방하는 차원에서도 도움될 것이 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정죄에 앞서 해야 할 일

동성애가 죄인가 아닌가를 논하는 일은 교회로서는 굉장히 중요하고 시급한 일일지도 모른다. 동성애의 원인을 밝혀내는 것도 어떤 사람들에게는 심각한 과제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상당수의 동성애자들이 이미 '존재'한다는 것이고, 그들 중의 상당수는 우리의 무관심과 냉대를 이기지 못해 결국 하나님이 그에게 허락하신 생명을 끊는다는 것이다. 취재 중에 만난 한 동성애자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교회는 갈 곳 없는 사람들의 피난처 아닌가요? 예수님이 그런 분 아니셨던가요?"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