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여자친구는 참으로 용감무쌍하고 겁을 모르던 여걸이었다. 도대체가 무지막지한 행동을 서슴없이 저지르니, 웬만한 남자들은 말 상대도 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물리적인 힘으로도 한 수 아래였다. 사실 힘으로야 남자들이 지기야 하겠느냐마는, 그녀의 겁없이 행동하는 괴력에 아예 기가 꺽여 상대를 해보기도 전에 '깨갱' 하고 꼬리를 접는 것이다.

그런데 이같이 천상천하 유아독존 같은 괴력의 열혈여아도 한 가지 약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고소공포증 앞에서는 고양이 앞에 쥐처럼 꼼짝 못하고 벌벌 떤다는 것이다. 한번은 바이킹이라는 놀이기구를 함께 탄 적이 있었다. 타기도 전에 두려워 떠는 모습이 그녀의 다른 면을 보는 것 같았는데, 막상 놀이기구에 올라타니 그 정도가 심했다.

나 또한 고소공포증의 증세가 만만치 않다. 높은 옥상에만 올라가면 형언할 수 없는 두려움이 전신을 감싸 온몸을 굵은 동아줄에 묶어 놓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런 고소공포증 환자가 무슨 배짱으로 번지점프를 하겠다고 나섰는지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몸에 약간의 전율을 느끼고는 한다. 번지점프를 하는 것을 영상으로 볼 때에는 '참 멋있구나' 생각하면서 '나도 기회가 되면 한번 해보아야지' 하는 생각을 했는데, 번지점프 하는 곳을 보고서도 돈이 비싸다는 이유로 그냥 지나쳤다.

그런데 아주 저렴하게 하는 곳을 발견하고는 나는 무작정 신청을 하였다. 무작정 신청을 한 이유는 기회라는 것이 그때를 놓치면 영영 경험해 보지 못하는 일들이 많이 발생하고 나중에 강한 후회감이 몰려와서 오랬동안 나의 정신적 괴로움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그동안 인생을 살아오면서 터득한 것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일을 저지르면 결과는 얻어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해서였다.

차츰차츰 나의 차례가 다가오는데, 나의 심장은 경운기의 엔진소리마냥 강하게 뛰기 시작했다. 아! 내가 왜 이같은 바보짓을 했는가 하는 후회감과 함께, 이번 기회를 놓치면 이같은 경험은 두번 다시 해볼 수 없다는 명분이 교차했다. 정신적 혼란은 온통 뒤죽박죽 심장 뛰는 소리만큼 강렬하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드디어 나는 엘리베이터 같은 물체를 타고 서서히 고공으로 올라갔다. '도저히 못하겠다고 말하고 내려갈까?' 하는 생각이 나의 온정신을 지배했다. 그 말을 못나오게 막은 것이 바로 아래에서 쳐다보는 아내와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남자로서 다시 내려간다는 것은 죽음보다도 견디기 힘든 자존심의 문제였다. 만약에 아래에서 날 쳐다보는 시선이 없었다면 수치도 부끄러움도 없으니 나는 1백프로 포기하였을 것이다.

나는 그 자존심 때문에 두려움을 이겨냈는지도 모른다. 이제 뛰어내리기 직전이 되었다. 밑을 보니 공포는 극에 다다랐다. "안돼" 하고 소리치며 포기하고 싶었지만 입은 벌어지지 않았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카운트다운은 시작되고 나는 떨어지지 않으려고 애쓰다가 몸이 동그랗게 말리며 떨어졌다. '다 떨어졌나' 하는 생각과 동시에 다시 내 몸이 솟구치니 두려움은 또다시 온몸을 감쌌다. 나의 신발 한짝은 저수지 한가운데에 떨어졌다. 산 지 얼마 안된 운동화였기에 아깝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그 두렵던 시간이 시간에 의해 지나갔다.

지나간 고통은 보람과 기쁨과 추억을 만든다는 것을 나는 지난 그 시간을 되돌아보며 깨닫는다. 그리고 인간의 특성은 분명 다르다는 것을 다시금 자각한다. 수학을 잘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있다. 말을 잘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글을 잘쓰는 사람이 있다. 멀쩡한 사람이 있는 반면에 몸이 부자유스러운 사람도 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기껏해야 상대성에 기반을 둔 도토리 키재기일뿐이다.

우리 기독자들은 이같이 인간의 나약함을 발견하고 결코 완벽하지 못한 인간의 단점을 보면서 결코 자랑할 것이 아무 것도 없는 불완전한 병자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본다. 모자라거나 부족한 부분이 죄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하여 주의 은혜가 얼마나 필요한 것임을 깨닫고 겸손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나약한 인간과의 비교의식은 나의 교만이요 나의 사망의 시초일 뿐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서 본다면 결코 인간에게서는 잘난 것이 나올 수 없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나의 자랑이 나의 죄로 비쳐지는 것이다.

나는 두번 다시는 번지점프를 하지 않을 것이다. 모르겠다. 돈의 유혹에 약한 인간이니 몇백만원 준다면 또다시 번지점프를 할지 모르겠지만. 나의 아내는 몇백만원을 준다고 해도 못뛰어내린다고 말한다. 한 1억이면 생각해볼 의향이 있다고 말한다. 참으로 인간의 가치기준은 정답이 없다. 사람의 능력에 따라 다른 것이다.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하는 것은 자기의 사고력이 네모난 상자에 갇혀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은 아닐까? 인간의 생각은 인간의 사고 안에서만 활동하도록 제한된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능력을 대단하게 여기는 것은 신앙적으로 옳은 일이 결코 아니다. 인간의 지혜를 넘어서는 진리를 알 수 있는 길은 오직 주님의 은혜에서만이 가능한 일이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