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가 급성장의 후유증을 앓고 있듯이 한국교회 역시 급성장이 가져온 그림자로 인해 적절한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지적 받고 있다. 교회가 가진 다양한 얼굴보다는 성장에만 치우친 데 따른 부작용들이 속속 드러나기 때문이다. 가령 머리가 몸에 비해 지나치게 크든지 팔 다리만 유난히 긴, 그런 볼썽 사나운 모습이 돼버렸다는 얘기다. 균형 잡기 목회를 강조하는 목소리는 쉽게 예견된 셈이다.

특히 디아코니아, 곧 봉사와 섬김의 목회는 성장주의 드라이브에 밀려 한국교회가 놓쳐버린 대표적인 영역이다. 게다가 다양한 섬김이 이뤄지고 있는 목회현장이라 할지라도 디아코니아 그 자체가 목적이 되기보다 교회성장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밀려나버리기 십상이다.

결국 이래 저래 한국교회는 이웃으로부터 손가락질 받고, 행여 교회당이라도 건축하려면 마치 쓰레기 하치장을 반대하듯 온 주민들이 쌍수를 들고 시위에 나서는 형국이다. 이런 풍토를 만들 수밖에 없는 성장이라면 이것은 수평이동의 역효과를 감안하지 않더라도 의미를 잃고 만다. 한국교회 전체를 놓고 보면 결국 마이너스 효과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가 옆에 있어 행복하다"고 말하는 주민들, 그들을 대상으로 복음전도사역을 하는 교회, 이것이야말로 올바른 교회의 얼굴이 아닐까. 아니 성장주의자들의 용어를 빌자면 "효과적인 전도전략"이 아닐까.

장학봉 목사(42)가 목회하는 성안교회는 이런 교회들 가운데 하나다. 개척 후 13년간 교회 문을 닫은 적이 없는 교회, 주중엔 예비군들의 교육장소가 되기도 하고 피아노학원의 발표회장이 되기도 하는 교회다.

"교인들은 말은 않지만 은근히 싫어하는 기색을 보여요. 잃어버리는 게 많거든요. 심지어 신디사이저는 다섯 대나 잃어버렸어요. 그러나 주님이 내 집을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하셨는데 누군가 기도하러 교회에 왔다가 문이 잠겨 있고 경비들 때문에 출입이 제한 받는다면 그게 어디 교회겠어요? 게다가 이 좋은 장소를 주일에만 쓴다면 그건 너무나 불합리하죠. 그렇다고 이게 무슨 대여사업인 양 따로 청소부를 두거나 하지도 않아요. 우리 교회니 우리가 직접 청소하는 게 옳죠. 예비군훈련이 끝나는 날엔 담배꽁초도 여기 저기 널려 있지만 그것 때문에 교회 문을 걸 필요야 없잖아요. 우리가 조금만 수고하면 동민들이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우리 동의 예비군훈련 담당자는 저에게 '목사님 같은 분 처음'이라며 감사패까지 주던 걸요."

교회가 있기 때문에 온 마을이 즐거워야 한다는 게 장 목사의 지론이다. 얼마 전엔 풍납2동 축구대회가 열렸다. 마을 행사인데다 교인들까지 참여하는데 지역의 교회가 가만 있을 수 없어 음료수를 대접했다. 또 적은 액수지만 성의를 담아 격려금도 준비했다. 장 목사는 음식만 달랑 배달해주고 몰라라 할 수 없어 직접 찾아가선 본의 아니게 축구게임까지 뛰었다. 그날 모두들 장 목사를 보면서 한마디씩 던졌다. "이런 목사님 때문에 교회가 좋다"는 것이다. 장 목사는 그 말에 뭣보다 큰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장 목사는 세상 사람들과 단절된 목회는 절름발이 목회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는 동네 사람들과 조기축구회 모임도 갖는다. 그는 동안교회 김동호 목사의 말을 자주 인용한다. "우리 교회는 통장 반장 잘하면 집사 준다"는 말 말이다.

"맞는 말이에요. 우린 지금까지 세상과 나는 간 곳 없다고만 했고, 세상으로부터 부름 받은 사람만 관리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오산입니다. 예수님을 보세요, 파송하셨잖아요. 세상으로 내보내는 일, 여기까지 이르러야 바른 목회라 할 수 있지요."

장 목사의 이런 디아코니아 정신은 여기서 머물지 않는다. 해외선교까지 그런 섬김의 마음이 확장된 것이 된다. 몇 주 전 금요철야기도회에선 설교 없이 영상자료를 대신 상영했다. '캄보디아의 빈민 돕기 현장'을 다룬 TV 다큐멘터리를 녹화한 것이었다. 먼저 장 목사가 큰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47분간의 영상물을 보면서 온 교인들이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시간을 가진 것이다. 선교의 동기는 여기서부터다. 단지 몇 명 파송을 내세우며, 한국교회가 심하게 일그러진 해외선교를 해왔을 뿐이다.

성안교회 주위엔 대형교회들이 즐비하다. 그 틈바구니에서 이 지역 아파트 주민들은 성안교회를 가장 많이 찾는다. 매년 두 차례씩은 주민들을 초청해 잔치를 여는 교회, 주민들을 위해 존재하는 교회를 주민들이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이제 장 목사 개인적인 이야기 몇 가지만 더 보탠다.
그는 13년간 사택을 열 일곱 번이나 옮겼다. 1년 이상 한 곳에 머무르지 못했다. 교회에 돈이 필요하면 자기 집부터 내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배운 건 가재도구를 줄이는 것이었다. 새 교회당을 건축하면서 3층에 사택을 마련했지만 여전히 누가 쓰던 3만원 짜리 중고소파에 붙박이장이 있고 그 속엔 누군가 입다 물려준 옷들이 있다. 그는 이것이 매월 사례비 140만원에 자녀교육비 20만원으로 '풍요롭게(?)' 살 수 있는 비결이라 말한다. 목회비가 있지만 이건 모아뒀다 복사기니 컴퓨터니 액정 등을 구입하는데 사용한다. 빚도 있다. 건축헌금으로 1600만원 작정한 것으로 이제 다 갚고 400만원이 남았다.

장 목사에겐 자그마한 소원 하나가 있다. 첼로 연주에 뛰어난 천부성을 가진 아들(예원중 1)에게 자기 악기 하나를 사주고 싶은 것이다. "아빠가 목사라 너희들을 돈으로 키울 수는 없다"고 말은 했지만 그래도 악기 때문에 놀림감이 되는 아이를 보면 마음이 아프다. 그러나 장 목사는 "돈 대신 누구보다 정성어린 기도로 키웠으니 어찌 보면 더 감사할 일인지 모른다"며 위로를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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