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3년 언더우드 선교사가 설립한 광명교회 전경.(광명교회 제공)

1903년 5월 언더우드 선교사가 세운 광명교회(경기도 광명시 광명7동 304-12, 이도형 목사)가 올해 창립 100주년을 맞는다. 광명교회는 4월 27일 (주일) 광명 시내 교계 및 지역대표들을 초청한 가운데 창립 100주년 감사예배를 드릴 예정이다.

이날 언더우드 선교사의 손자 원일한 박사와 창립교인인 송준호 홍수범 홍문필 김흥서 홍영길 등의 후손들에게 감사패를 수여하고, 광명교회 출신 교역자와 성도들을 초청하는 '홈 커밍데이' 행사도 마련된다.

또 6월 14일에는 기념음악회와 100주년 기념 타임캡슐을 땅에 묻는 행사도 개최한다. 타임캡슐에는 전 교인이 함께 쓴 신구약 성경과 교회 역사 자료가 들어 있으며, 100년 후의 교인들에게 개봉될 예정이다.
▲이도형 목사
2001년 4대째 담임으로 부임한 이도형 목사(47)는 광명시 복음화와 민족구원 세계선교를 표방하며 100년의 전통을 토대로 광명교회가 지역사회와 함께 호흡하는 교회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광명교회는 100주년을 기념해 경기도 안산과 인도 하이데라바드시에 각각 교회를 개척, 국내 전도와 세계선교라는 비전을 구체적으로 실현해 나가고 있다. 광명교회는 안산 고잔동 신도시의 안산 광명교회 개척을 위해 교회건물 117평을 완전 매입하고 기존 교인들 중 안산에 거주하는 12명을 개척멤버로 파송했다. 또 향후 3년간 개척교회 담임목사 사례비 전액을 지원하는 등 안정된 자립기반 마련에 신경을 쓰고 있다.

인도 하이데라바드시 외곽에 세워질 디비야죠띠 교회는 올 10월 헌당할 예정이며 인도 중앙지역 전도를 위한 기지 역할을 하게 된다. 역시 이곳에 파송된 윌슨싱검 목사는 광명교회 제1호 인도선교사로써 3년간 본교회의 지원을 받는다.

광명교회는 인도 전도를 위해 우물 파주기 염소보내기 운동 등 사회적 지원을 병행할 예정이다. 또 현재 30여명의 인도 청년들을 신앙훈련으로 양육하고 있어, 이들이 현지 선교사 역할을 감당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광명교회가 걸어온 100년>    
▲50년 초 찍은 교인 단체사진(광명교회 제공)

광명교회는 언더우드 선교사가 소래포구에서 영등포로 왕래하다가 관원이나 양반 지주의 손길이 잘 닿지 않는 광명리에서 송준호 김흥서 김형약 등을 전도한 것이 교회의 시작이다. 이들과 홍수범 홍문필 등이 후에 신자가 되면서 '야소교장로회 광명리예배당'이라는 현판을 걸고 교회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창립 초기 예배당 없었으나 1912년 언더우드 목사의 지원과 하안리교회 김기현 전도사의 도움으로 시흥리 석수동에 있던 빈 절집을 헐어 6간 12평 규모로 최초의 예배당을 건축했다. 이 일을 담당한 이는 치병 때문에 예수를 믿게 된 영수 김흥서의 손자 김명길. 예배당을 지은 후 1920년대에는 교인이 50여명으로 늘어 인근에서는 제일 교세가 큰 교회로 성장했다.

그러나 1930년대 이후 일제의 착취와 수탈로 농촌이 쇠퇴하고 살기 어려워지면서 교회도 쇠퇴의 길을 걷게 되고 교인도 11명으로 줄어들었고, 1945년 해방이 될 때는 4-5명만이 남아 명맥을 겨우 유지하였다. 그러나 광명교회 초창기 역사의 특징적이고 자랑할 만한 일은 교인이 줄고 시련과 역경에 처했던 시기에 단 한차례도 예배가 중단된 적 없이 계속되었으며, 전담 목회자 없이 평신도들만의 믿음으로 줄기차게 신앙을 지키고 교회를 유지해 왔다는 것이다.

1954년 초대 장로인 지연일 장로는 조선신학교(현 한신대학교)를 찾아가 김재준 목사의 제자를 파송해 주기를 요청했다. 조선신학교는 이런 요청에 따라 신학생 윤석주 전도사를 보내주었다. 그후 광명교회는 한국기독교장로회에 소속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86세인 지 장로는 1992년에 은퇴하여 오늘날까지 생존해 있으며 광명교회 산증인으로 아직까지 생존해 있다.
▲55년 교회당 앞에서 찍은 사진. 뒤의 남자가 윤석수 초대 교역자.(광명교회 제공)

1962년에 초대 담임목사인 김귀혁 목사가 부임하였다. 김 목사는 1989년 은퇴할 때까지 27년간 담임목사로 시무하며 지연일 장로와 더불어 광명교회 부흥과 성장을 이룬 주역이다. 김 목사는 한신대를 졸업하고 영등포에서 교사로 봉직하던 중 광명교회 초대 담임목사로 부임하여 주로 성경말씀을 중심으로 한 신앙교육과 기도운동과 성령운동을 일으켰다. 광명교회는 뜨겁게 부흥하여 성장을 이루었으며 그 부흥의 여세로 1973년에 3번째 성전인 90평 교회당을 건축하였다. 1988년에는 교회 부지를 확보하고 4번째 성전인 현재 4층 적벽돌 건물 연건평 550평을 건축하고 제74회 기독교장로회 총회를 열도록 하였으며 광명교회의 전성기를 열었다.

1989년 제2대 담임 고완철 목사, 1993년 제3대 담임 고명수 목사 시기에 광명교회는 지역사회 참여 및 사회 민주화에도 관심을 갖고 기도하고 참여하였다. 1995년도에 교육관 4층 건물 연건평 450평을 건축하였으며, 저소득 어린이를 위한 솔로몬 어린이집을 운영하여 현재 직원 6명, 어린이 60여명을 돌보고 있으며 매주 목요일 지역 노인정의 노인들 120여명을 초청하여 예배드리고 점심을 대접하고 있다. 이때 이발과 미용 봉사와 지역병원과 연계하여 무료로 물리치료 및 안과치료를 제공하고 있다. 이후 2001년 제4대 이도형 목사가 부임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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