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슬람을 믿는 친구와 처음 대화를 나눠 본 것은, 군대 제대 후 복학을 앞두고 학비마련과 현장체험 삼아 안산 시화공단의 어느 금형 공장에서 잠시 일할 무렵이었다. 당시 이슬람에 대해 거의 무지에 가까웠던 나는, 이웃 공장에서 일하던 파키스탄 출신의 사키라는 친구와 대화를 하면서 그 궁금증을 조금이나마 푸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사키는 한국에 머문지 꽤 되어 한국어를 잘하는 편이었는데, 자신의 가족들 이야기와 그가 믿는 이슬람 신앙이 어떤 건지 간단하게 나마 잘 설명해준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에 내가 처음으로 알게된 사실은 이슬람과 기독교의 신앙이 비슷한 구석이 많다는 점이었다. 이것은 그 전에 그들의 신앙 내용은 잘 모른 채 그림이나 사진을 통해 간혹 접했던 이슬람이 너무 이질적으로 보여, 기독교와는 전혀 다른 종교라는 인상 밖에 없었던 나에겐 하나의 새로운 발견이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그 뒤로 나는 이슬람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다른 시도를 해보거나 적당한 기회를 도무지 얻지 못했던 것이다.

많은 시간이 흐르고, 미국과 아프칸이 심각한 전쟁을 벌이고 있는 지금에 와서야 다시금 이슬람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하긴 이것은 비단 나만의 게으름은 아니었던 것 같다. 왜냐면 이 책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그 동안 우리 나라에서 이슬람을 제대로 이해하고 소개한 서적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 많은 세월 침묵을 딛고 나온 이번 책은 이슬람 입문서치고는 매우 훌륭한 서적으로 손꼽을 만하다.

그것은 이 책이 단순히 최근 아프칸 전쟁에 따른 시류에 편승해서 급조되어 출간되는 일부 이슬람 소개서들과 같이 빤짝 유행하는 책이 결코 아니라는 점에서 알 수 있다. 이 책이 그 신뢰도와 무게를 더해주고 있는 것은, 이슬람 국가 현지에서 다년간 공부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한 12명의 한국인 소장학자들이 무려 2년 이상의 연구기간을 거쳐 많은 보완과 수정을 통해 완성하여 출간한 책이기 때문이다. 요행히도 그 출간 시기가 아프칸 전쟁과 맞물리면서 주목받는 책이 된 것은 책으로서 갖게 된 크나 큰 행운인 것 같다.

이 책은 종교중심의 서술을 탈피하여 이슬람 문명의 역사와 이슬람 국가들의 현실과 특성, 이슬람을 움직이는 대표적 인물들, 한국과의 관계 등 매우 다양한 내용들을 두루 섭렵하며 한국인의 시각에서 바라보려고 애쓴 흔적이 돋보인다. 책을 읽어가면서 나는 이슬람 문명이 얼마나 수많은 나라들에 깊이 뿌리 박혀있으며, 그 영향력을 점차 확대해 가고 있는지에 대해 알 수 있었고 앞으로 그들의 종교 문화적 가능성을 대략이나마 가늠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과거 중세 기독교가 왜 그렇게 순식간에 이슬람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게 되었는지도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슬람은 내가 기존에 갖고있던 선입관보다 훨씬 관대하며 융화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었고 나름의 민주적인 면모도 지니고 있었다. 예컨데, 이슬람국가들은 처음부터 기독교나 유대교에 대해 종교적 자유를 보장하면서 비교적 관대하게 대했으며, 코란경의 가르침에도 타종교인들을 적대시 말 것을 종용하고 있다. 비록 그들이 서구적 시각에서 볼 때는 매우 전근대적이고 고집불통에다 싸움을 좋아하는 기질을 가진 사람들로 비춰질지라도, 그 모든 건 서구적 잣대에서 나온 오만한 편견일 뿐 전혀 사실과는 달랐던 것이다.

이슬람 특유의 생활종교 문화와 끈끈한 형제애는 55개국이 넘는 다양한 이슬람 국가들을 하나로 결집시키고 있다. 그리고 그 힘이 이제는 자국에만 머무르지 않고 독일 영국 미국 같은 나라를 중심으로 유럽 이민을 통해 그 지평을 서구사회까지 꾸준히 확장해나가는 단계에 있다. 일례를 들어보자. 현재 프랑스의 2대 종교는 이슬람이며, 미국에는 600만의 무슬림과 1,500여 개의 이슬람 성원이 있다한다. 프로권투 전세계 헤비급 챔피언 무하마드 알리와 타이슨, 프로농구 천재 압둘 자바, 종교를 통한 인권운동가 말콤 X도 무슬림이었다. 놀랍지 않는가? 게다가 지금 유럽은 백인 우월주의에 대한 반기와 증오와 분노로 인해 수많은 젊은 이들이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있다. 이는 유럽 내에서 이슬람을 두 번째 종교로 급부상 시키고있는 주된 요인들 중에 하나이다.

역시 종교인이다 보니 다른 분야들 보다 그들 종교문제에 더 관심 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슬람교 내에 성직자 제도가 따로 없다는 점은 또 하나의 신선한 충격이었다. 무슬림들은 성장하면서 이슬람을 체계적으로 배우기 때문에 누구나 선교사나 종교 교육자로 활동할 수 있는 자질을 가지게 되며, 예배를 인도하는 '이맘'은 모든 무슬림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학자집단인 '울라마'는 종교 법학자 및 신학자들인데 이들은 종교에 대한 가르침과 올바른 해석을 해주는 지식인일 뿐 성직자로서의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성직자도 없는 종교가 이토록 급성장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다른 무엇보다 이슬람교가 경전연구 중심이 아닌 생활신앙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꾸란에 대한 강론 같은 이론적 가르침 중심이 아니라, 태어나서 무덤까지 이슬람의 독특한 문화와 법의 테두리 속에 살면서 저절로 철저한 이슬람인이 되는 게 아닐까? 사내라면 치러야하는 할례의식, 평생 한번은 꼭 해야 할 성지순례, 매년 1달이나 지키는 라마단 금식 등을 거치면서 그들의 종교적인 습속이 아예 몸에 배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여하튼 이번 아프칸 전쟁을 계기로 전세계가 이슬람을 이해하고자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은 불행 중 다행이라 할만 하다. 그 동안 서로에 대해 너무 무지하다보니, 미국보다도 거리로도 더욱 가까운 이슬람 국가들에 대해 멀게만 느꼈다. 이번 기회에 이슬람을 보다 깊이 이해하면서 기독교와 이슬람간의 종교간의 대화도 더 한층 성숙한 단계로 접어들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정병진 / 솔샘교회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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