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가는공동체교회의 예배 모습. ⓒ뉴스앤조이 양정지건

'함께가는공동체교회'(이창열 목사·서울 관악구 신림8동·www.gotogether.or.kr)는 찾기가 참 어렵다. 이창열 목사의 자세한 설명에 의지해 교회를 찾아갔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둘러보아도 십자가는 물론 교회 간판도 보이지 않는다. 계단을 올라 허름한 문을 열어도 여기가 교회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당연히 보여야 할 강대상도 보이지 않고 교회 사무실도 눈에 띄지 않는다. 아주머니 몇 분이 의자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눌 뿐이다.

이러한 낯설음은 주일예배에도 반복되는 풍경이다. 그럴듯한 강대상 하나 없고, 멋들어진 가운을 입은 목사님도 보이지 않는다. 신나게 예배당을 뛰어다니는 아이, 예배 도중에 연달아 박수를 치는 아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 아이, 엄마 손에 붙들려 가만히 앉아 있는 아이, 다들 각양각색이다. 예배라면 으레 연상되는 조용함과 엄숙함이 전혀 없다. 함께가는공동체교회에서 가장 이상한 점은 이런 모든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의 표정이 한없이 밝다는 것이다. 더더욱 이상한 것은, 그 소란 속에서 예배를 드리는 기자의 마음에도 근원을 알 수 없는 기쁨과 평안이 찾아왔다는 사실이다.  

십자가·간판이 없는 교회

▲교회임을 알리는 표지판은 이것이 전부다. ⓒ뉴스앤조이 양정지건

함께가는공동체교회가 이런 남다른 모습을 가지게 된 것은 순전히 장애아동 덕분이다. 이 교회가 소망하는 것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하나가 되어 공동체를 이루는 것. 좀 느리더라도 그렇게 함께 가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라는 믿음으로 교회 문을 연지 3년이 되어 간다. 교회를 처음 찾는 사람들은 '장애인과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나'라는 의문을 가지기 마련이다. 기자 역시 그런 의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은 늘 인간의 예측과 상식을 벗어나는 모양인가 보다. 함께가는공동체교회에서 드린 예배는 어느 예배보다 은혜로웠다. 장애와 비장애를 구분하던 나의 속내는 스스럼없이 어울려 친구가 되는 아이들의 모습 앞에서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교회 아이들의 밝은 모습.ⓒ뉴스앤조이 양정지건
이 교회에 건물이 따로 없는 것은 '함께가는특수교육센터'(http://hamsa.or.kr)와 같은 공간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평일에는 발달장애아동을 위한 일대일 특수교육을 하는 장소로 사용되다가, 주일에는 그 공간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화려한 십자가나 높은 강대상이 있을래야 있을 수 없는 셈이다. 함께가는특수교육센터 원장 문연상 목사는 초기에는 이창열 목사와 공동목회를 하다가 지금은 센터 일에 전념하고 있다. 센터에 오는 장애아동과 부모들이 있으니 목회하기가 수월할 듯도 한데, 이 목사의 생각은 다르다. 센터에서 일하는 교사와 학부모에게 교회 출석을 강요하지 않는 것이 그의 원칙이다. 그저 도와주고 같이 아파하며 삶을 나누다가 그들이 공동체를 필요로 할 때 나선다는 것이다.

이창열 목사는 2년 넘게 한 대형교회의 장애인부서를 담당한 경험이 있다. 그는 그곳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분리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여러 문제점을 보았다. 장애아동을 둔 부모가 교회공동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외곽을 떠도는 모습도 안타까웠고, 아이들을 돌보느라 맘놓고 예배 한 번 드리지 못하는 모습도 이 목사에게는 늘 마음의 짐이었다. 그런 고민 끝에 이 목사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모이는 공동체교회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장애인을 돕기 위해 만든 장애인부서가 또 다른 소외를 만드는 것을 경험한 이 목사의 대안은 통합목회였다. 장소를 물색하다가 저소득층이 많고 주변에 장애인학교가 있는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자리 잡았다. '통합목회'에 뜻을 같이 한 문연상 목사가 많은 힘이 되었다. 처음에는 소란스러운 분위기 때문에 예배를 드리는 데 어려움이 많았지만, 그 어려움은 얼마 지나지 않아 더 큰 은혜로 되돌아왔다.

장애인 소외시키는 장애인부서

▲이창열 목사(오른쪽)와 주일학교를 맡고 있는 박병우 목사.
ⓒ뉴스앤조이 양정지건

굳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 목사의 대답은 이렇다. "우리 사회는 힘있는 자들이 없는 자들을 지배해 자기 영역에 편입하게 만든다. 장애아동에게도 나름대로의 세계가 있다. 그들의 세계를 무시하고 비장애인의 세계로 편입하게 만들기보다는, 너와 나의 구분을 없애고 어울리면 서로 배울 부분이 있다. 장애아동만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니라 비장애아동도 함께 사는 세상을 배울 수 있다."

이 목사는 "사랑을 말하는 교회가 장애인과 함께 하는 통합목회에 관심이 없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며 "장애아동만 모이는 부서가 존재하는 한국교회의 상황이 바로 장애다"고 강조했다. 교회 규모가 크기 때문에 통합예배를 드리는 것이 어렵지 않겠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 목사는 "교회가 커서 못한다면 나눠서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간단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이어서 "자기만 편하자고 누군가를 소외하면서 예배를 드리는 이유가 교회 크기를 유지하려는 것이라면, 그 크기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조용하지 않으면 거룩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고정관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목사는 "물론 통합예배를 드리면 처음에는 어려움도 있고 집중도 잘 되지 않는다. 그러나 조금만 적응이 되면 오히려 더 은혜롭고 풍성한 예배를 드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교회가 자신에게 어린이들이 가까이 오는 것을 막지 않으셨던 예수님을 닮아야지, 아이들을 쫓아내던 제자들을 닮아서야 되겠냐는 것이다.

이 목사는 통합목회가 인기가 없는 가장 큰 이유를 "효율과 편리성을 강조하는 교회는 장애인부서가 효율적이고 통합예배는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교회는 일사분란을 추구하는 곳이 아니다. 느려도 같이 가는 것이 교회다. 교회가 효율과 편리라는 우상을 넘어서야 한다"고 설명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하는 것은 힘들고 돈도 많이 드는 일임에 틀림없지만, 그래도 같이 가는 것이 교회의 본질"이라는 이 목사의 말을 들으며 뒤통수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효율과 편리의 우상 넘어서야

▲영성모임 시간. ⓒ뉴스앤조이 양정지건

함께가는공동체교회에는 현재 열 가정과 청년 두 명이 모이고 있다. 이 중 다섯 가정은 장애아동을 둔 가정이고 나머지는 비장애아동 가정이다. 주일예배는 두 번에 걸쳐서 드려진다. 어린이 예배를 드리는 동안, 어른들은 작은 방에 모여 이창열 목사와 함께 영성모임을 갖는다. 주로 신앙서적을 읽고 느낀 점을 나누는 방식이다. 아이들의 예배가 끝나면 자연스럽게 한 자리에 모여 함께 예배를 드린다. 기타와 키보드 반주에 맞춰 부르는 찬양은 제각각의 멜로디가 합쳐져 묘한 화음을 만들어낸다.

말씀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소란은 간간이 이어졌다. 아이들은 그 새를 못 참고 부모님들이 모여서 영성모임을 하던 뒷방에 아예 판을 벌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설교를 하는 사람이나 말씀을 듣는 공동체식구 모두 진지한 표정이다. 예배가 끝나자 자연스럽게 그 자리에 상이 펴지고 점심이 차려진다. 된장국에 나물, 김으로 차려진 소박한 밥상이다. 어른·아이·장애아동·비장애아동 모두가 밥상 앞에 앉아 즐거운 식사를 나눈다.

▲교회 식구들이 모두 둘러 앉은 밥상. ⓒ뉴스앤조이 양정지건

2000년 8월부터 공동체 식구가 된 김영숙·유흥우 부부는 처음 교회에 왔을 때에는 갈등과 어려움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곧 그 어려움은 기쁨으로 바뀌었다.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은 어른보다 아이들이 훨씬 빨랐다. 초등학교 2학년인 딸은 장애인을 대하는 태도가 많이 달라졌다. 교회에서 나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운 것이다. 같은 반에 있는 자폐아동과 친구처럼 지낼 수 있는 것도 이들과 함께 노는 법을 교회에서 터득했기 때문이다.

▲김영숙·유흥우 부부와 가족의 모습. ⓒ뉴스앤조이 양정지건

한 때 대형교회가 운영하는 장애인부서에 다니다가 2000년 11월 공동체 식구가 된 백금순 집사. 자폐가 있는 아들과 함께 교회에 나오는 그는 '서로 부족하더라도 상대를 다듬어 주는 교회'에 가고 싶어서 기꺼이 공동체 식구가 되었다. 그는 "장애아동들에게도 예배를 드릴 권리가 있다. 쥐죽은 듯 조용히 드리는 예배와 시끄러워도 함께 드리는 예배 중 하나님이 어느 것을 더 기뻐하시겠냐"고 말했다. 예배를 드리며 기뻐하는 아이들을 보며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을 알았다고 고백했다.

교회 문을 나서니 화사한 봄 햇살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 햇살 속에서 방금 보았던 아이들의 환한 웃음과 나와 다름을 넉넉히 품어 안는 어른들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다. 유쾌한 소란에서 빠져 나온 나의 마음도 햇살만큼이나 가벼웠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