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은 거대한 음란물이 춤추는 곳이다. 깊은 산골 숲속 외딴집에서 자란 사람과 도시의 빈민가에서 자란 사람과는 생각하는 차원이 다르고 그 마음의 오염도가 다를 것이다. 즉 죄밖에 본 것이 없는 사람의 생각은 온통 머리 속이 죄로 가득 찰 것이요, 그저 나무와 돌멩이, 맑은 물만을 보고 자란 사람의 마음은 자연에 동화되어 해맑은 심성을 지닐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깨끗한 곳에서 자연과 숨쉬며 살아온 사람도 현대의 물질주의만이 판치는 현대사회 속으로 이끌려 들어온다면 그 순수성은 어느새 시커먼 탐욕으로 변질될 것이다.

나는 이 세상이 거대한 음란물이 춤추는 곳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아무리 보지 않으려고 해도 내 앞에는 발가벗겨진 여인이 유혹의 춤을 추는 모습이 보여진다. 눈을 감고 살까?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며 살까? 이렇게 하면 나의 마음이 유혹의 미끼를 삼키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이런 생각들이 다 부질없는 짓임을 깨달았다. 끊임없이 전개되는 죄악 속에서 아무리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없고 의를 추구하겠다고 행동하는 것 자체가 위선의 가증함만 더하는 짓임을 깨달았다. 속이 시커먼데 겉을 아름답게 보인다 한들 나 자신은 속일 수 없으리라.

현대사회의 부조리는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심각하다. 이런 사회에서 살아남겠다는 생각을 한 자라면 그 부조리에 함께 휩쓸리지 않고는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홀로 살아보겠다는 생각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리라. 그런데 이런 수많은 부조리들이 세상적인 관점으로는 별반 죄가 되지 않는 것이 많다. 즉 아무리 마음으로 간음을 하고 탐욕을 하고 미움을 지닌다 해도 그것이 행동화하지 않기만 한다면 그 자는 의로운 자로 둔갑할 수 있다.

세상적 관점에서 보면 의롭고 선한 사람이 많이 배출될 수도 있다. 허나 하나님의 의와 비교한다면 인간은 죄밖에 드러날 것이 없다. 하나님은 인간의 행위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을 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모두가 추악하고 더러운 인간들 뿐일 것이다.

인간들의 탐욕에 의해 세워진 사회는 탐욕이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는 곳이다. 물론 탐욕의 행동을 하지 않는다 해도 탐욕의 생각은 하게 되니 탐욕을 행동화한 사람과 별반 차이는 없으리라. 헌데 이런 자신들의 추악한 모습을 자각하지 못하고 온통 구원의 자랑만 늘어놓고, 성령이 임하면 예수님처럼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하는 자가 있으니, 예수님처럼 영원한 권세와 영원한 삶을 살고픈 자들의 욕심이 기형적으로 변한 것이리라.

육의 몸을 지니고 있는 한 죄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으리라. 그렇다면 자신의 추악한 모습 앞에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구원받았다고 자랑할 일인가? 주님을 믿는다고 자랑할 것인가? 자신은 끊임없이 죄를 따르는 모습을 하면서 주님의 이름을 들먹이고 하나님의 자식이라고 하니 하나님이 언제나 욕을 먹는 것이다.

아무리 자신이 발버둥쳐도 이 세상의 거대한 음란물 같은 곳을 회피할 수는 없다. 오히려 나는 깨끗하다라고 말하는 자들의 위선이 드러나는 것이다. 차라리 자신의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하고 주님 앞에 자복하는 것이 위선의 껍질을 뒤집어 쓰지 않을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주님은 바로 이와 같이 자신의 어찌할 수 없는 처지를 깨닫고 주님 앞에 모든 인간이 나아오기를 바라시는 것이 아닐까? 이런 모습이 상한 심령이 아닐까? 이런 모습이 애통한 자의 모습이 아닐까? 이것이 겸손을 알 수 있는 모습이 아닐까?

수많은 교인들과 목사들이 자신들의 믿음을 자랑하고 자신들의 믿음을 인정받으려고 간증하고 신유하고 능력을 자랑한다. 설교를 자랑하고 자선을 자랑한다. 온통 자랑만이 넘쳐나는 것이 한국교회의 현주소다. 이런 속에서 자랑할 것이 없는 자는 믿음없는 자로 전락한다. 믿음을 드러내지 못하면 믿음없는 자로 인정되고, 구원받았다 자랑하지 않으면 구원 못 받는 자로 인정된다.

자신의 더러운 죄를 고백하면 아직도 젖먹이 신자라고 매도한다. 주님만 믿으면 죄가 없다고 말하는 자들만이 수두룩하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이 세상은 거대한 음란물이 춤추는 곳이기에 아무리 죄를 짓지 않으려고 해도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속에서 죄없다 하니 그 모습이 얼마나 가증스럽게 보이겠는가? 죄없다 하는 그 교만함 때문에 주님이 매일 욕을 먹는 것이다. 하나님이 값어치 없는 분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회개하라"는 말은 상기하자. 기껏해야 형식적으로 고백하는 나의 죄를 가지고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모습을 깨닫자. 참으로 더러운 인간임을 잊지 말고 이런 더러운 죄를 씻어줄 이는 주님밖에는 없음을 깨닫고 주님의 은혜만을 소망하자. 살려는 자는 죽고 죽으려는 자는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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