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진 표용은, 재건 YMCA"를 외치는 참석자들. ⓒ뉴스앤조이 주재일

10월 15일 열린 서울YMCA의 두 번째 만민공동회에는 회원·실무자·시민 등 400여 명이 참여해 서울YMCA 개혁을 지지하는 소리가 여전히 뜨거움을 과시했다.

서울YMCA 개혁이라는 주제는, 70세가 넘은 회원과 이날 회원으로 처음 등록한 청년들이 한자리에서 터놓고 이야기하게 만들었다. 간간이 부른 노래도 우리가락 찬송이어서 참석자들에게 호응을 받았다. 표용은 이사장에 대한 분노를 참지 못했던 제1차 만민공동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이날 대회에는 서울YMCA의 정신적인 '어른' 전택부 명예총무가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전 명예총무는 총무를 사퇴한 지 28년 동안 한번도 공식 석상에 나서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후배들이 표 이사장의 독선에 맞서 싸운다는 소식을 듣고, 기꺼이 힘을 실어주기 위해 병환 중에도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참석자들이 모두 일어나서 "영원한 청년!"을 외치며 박수를 치자, 전 명예총무는 사람들의 부축을 받아 강단에 올라 '격려의 말씀'을 이어갔다.

▲전택부 명예총무가 후배 간사·회원들의 개혁운동을 격려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주재일

"1913년 친일파들이 유신회를 만들어 YMCA를 파괴하려 했습니다. 김린 YMCA 부총무가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했습니다. YMCA 이사회는 이 자를 만장일치로 몰아냈습니다. 간사들도 이사회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회원대회를 개최했습니다. 오늘도 그날과 비슷한 대회를 하고 있습니다. 다른 것은 그 당시는 이사회를 돕기 위해 모였습니다만, 오늘은 무책임한 이사회를 깨우쳐 주기 위해 모였다는 사실입니다.

표용은 이사장은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나 YMCA 명예를 위해서 책임지고 스스로 물러나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개혁운동도 단순한 규탄대회 같은 것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개혁 대상은 어떤 특정인물만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거듭나기 위한 운동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전 명예총무의 격려에 힘을 얻은 참석자들은 YMCA 개혁을 위한 다양한 청사진들을 내놓았다. 서울YMCA 개혁과 재건을 위한 회원비상회의 임건묵 공동사무국장은 대표제언에서 "표용은 이사장은 국장 배후조종·비자금 의혹·법인카드 사용 등 문제가 많다. 회원들은 자신의 돈을 쓰면서 봉사하는데 표 이사장은 법인카드로 시민들의 돈을 쓰고 있다. 그러면서도 봉사한다고 되레 큰소리다"며 "법적인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청년들과 노인들이 한자리에 있는 것이 자연스럽다. ⓒ뉴스앤조이 주재일

이번 만민공동회는 여성들처럼 서울YMCA가 소외시켜온 사람들의 한을 풀어내는 시간이었다. 박윤애 서울YMCA 청소년상담위원은 "여성들이야말로 진정 YMCA의 손과 발 노릇을 해왔다. 그러나 서울YMCA는 여성이 주인으로 참여하는 길을 막았다"며 "꿈과 희망을 줄 수 없는 서울YMCA는 이제 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미옥 어린이영상문화연회 회원도 "스스로 회원의 권리를 찾지 못한 것을 반성한다. 열심히 봉사하고 참여하면서도 회원총회에 한번도 공식 초청받지 못했다"며 "내가 여성으로서 서울YMCA 이사가 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냐"고 말해 참석자들로부터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이문석 고교YMCA 자원지도자는 "YMCA는 공간이 좁다는 이유로 찾아오는 청소년들에게 눈치를 주고 있다"며 "서울YMCA회관 안에 청소년이 와서 편히 쉴 수 있는 마음의 쉼터, 용돈 걱정 없이 대화할 수 있는 카페, 학습자료 등이 있는 청소년을 위한 도서관, 음악 감상실 등이 만들어지길 소망한다"고 제언했다.

서울YMCA 밖에 있던 사람들은 "그동안 YMCA가 교회 현실을 외면했다"며 "이제는 교회 개혁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내야 할 때가 됐다"고 다그쳤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 권장희 총무는 "YMCA의 C(Christian)는 YMCA가 기독교단체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며 "신음하는 교회의 현실을 더 이상 외면하지 말라"고 말했다.

민경중 전 CBS 노조위원장은 "CBS나 YMCA는 닮은 것이 많다. 모두 하나님이 세운 기관으로 사회의 등불이 되라는 소명을 받고 출발했다. 그런데 표용은 목사가 두 기관에 이사장으로 수십 년씩 장기집권하자 이 두 곳이 무너져 가고 있다"며 "함께 힘을 합쳐 싸워야 교회연합사업을 개혁하자"고 말했다.

그는 CBS 노조의 굳은 개혁 의지를 9개월간 무노동 무임금 투쟁을 벌이던 CBS 노조원의 말을 빌어 설명했다. "나는 경제적인 고통을 견딜 수 있다. 그러나 희망 없는 CBS는 참을 수 없다."

▲노종호 공동대표가 생명나무에 소망을 붙이고 있다.
ⓒ뉴스앤조이 주재일
1부를 마치고 쉬는 시간을 이용해 참석자들은 YMCA가 버려야 할 것과 YMCA가 회복해야 할 것을 각각 낙엽과 푸른잎에 적어 '생명의 나무'에 달았다. 참석자들은 버려야 할 것으로 '여성에게 주지 않는 투표권', '하나님과 시민 대신 YMCA에 주인으로 있는 표용은 이사장', '비민주적인 이사회'를 꼽았다. 푸른잎에는 '개혁에 힘쓰시는 우리 아빠 파이팅!', '우리의 꿈을 찾아주세요'라는 소원들이 담겨 있었다.

둘째 마당은 강남향린교회 국악단이 열었다. 방기순 집사의 구성진 목소리와 신명나는 우리 가락이 어우러진 찬송은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게 만들었다. '갈릴리로 가요'를 부를 때는 참석자들도 따라 부르고 흥겨운 시간을 보냈다.

2부에서는 더욱 다양한 사람들의 제안이 쏟아졌다. 김재구 시민논단위원은 "이사회가 공천위원회를 맘대로 주무르며 개혁적인 회원들이 이사로 진출하는 길을 봉쇄해왔다"며 이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했다. 이윤미 호서대 YMCA 회장은 "역사책에서 밑줄 그어가며 읽던 만민공동회에 참석해 영광이다"며 "YMCA 개혁에 힘이 되겠다"고 말했다. 두정연 청소년자원상담원회 회장도 "89년부터 서울YMCA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했는데, 많은 실망을 안고 떠났다. 그러나 개혁의 소리를 듣고 다시 돌아왔다"며 "내년에는 여성인 나도 투표하게 해주세요"라고 호소했다.

수많은 발언들은 자연스럽게 '서울YMCA 개혁·재건운동 7대 비전'으로 모아졌다. 7대 비전에서 YMCA는 △시민과 함께 하며 △한국의 사회적 약자와 함께 하고 △여성과 남성이 평등하게 참여하고 △떠났던 청소년·대학생·청년들이 돌아오게 하며 △민주적인 조직운영의 모델을 만들어 가겠다는 다짐이 들어있다.

특히 YMCA는 7대 과제에서 그동안 교회 개혁이라는 과제에 충실하지 못했다며 한국교회가 바로 서기 위한 싸움의 과정에 기꺼이 동참하겠다고 밝혀 관심을 모았다.

▲"영광은 하나님께 공은 나라에" 청년의 노래를 부르는 참석자들. ⓒ뉴스앤조이 주재일

4시간 가까운 시간 동안 이어진 제2차 만민공동회는 서로에게 불꽃을 밝혀주며 '청년의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마치는 기도를 했던 이신행 교수는 "사람들이 많이 올 것 같지 않아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그런데 300여 명이 끝까지 남아 개혁 의지를 불태우니 자신감이 넘친다. 간사들이 힘든 가운데서도 준비를 잘한 결과다. 새롭게 힘을 모았으니 개혁이 이뤄질 때까지 잘 싸워보자"고 호소했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