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착오적인 사상과 이념 논쟁에 불이 붙었다. 해방 전후사의 좌우 대립의 불행한 시대를 방불케 한다. NL, PD 논쟁과 보수 반동주의. 정녕 역사는 반복되는가? 좌우 기회주의자들, 정치 엘리트, 소위 먹물들, 이리 떼 같은 이들이 오늘도 고달프고 서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 땅의 들풀 같은 민초들을 유린하고 있다.

한 줌도 안 되는 좌우 대립 조장 세력들, 매카시즘으로 국민을 기만하고, 언론을 통한 대중 조작, 국론 갈등의 판을 키워서 사적 이익을 독점하려는 정치 모리배 세력은 반드시 역사의 준엄한 비판과 단죄를 받게 될 것이다. 해방 전후사를 기술하신 분들, 현대 정치와 국제 정치를 역사적 혜안으로 전해 주신 이영희 선생님이 살아 계셨다면 지금의 시국을 어떻게 보셨을지 자못 궁금하다.

이데올로기 논쟁, NLPDR, PDR, CDR(CNP논쟁), M-L주의, 주사파, 민족경제론, NL주사파, 사회 성격 논쟁, 사회구성체 논쟁, 식민지 반봉건사회론, 종속적 독점자본주의론,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론, 식반론-민족모순(분단), 종독자-계급모순(국내독점재벌), 신국독자-계급모순(초국가독점자본), 3대 모순: 계급모순-지역모순-이념모순(=체제모순=분단모순), 민중신학, 해방신학….

역사박물관에서나 볼 법한, 이미 지나간 낡은 과거의 유물들이 재등장했다. 이러한 사상을 주장했던 사람들은 고인이 됐거나, 자기모순을 인정하고 이미 폐기한 주장들이 대부분이다. 주체사상의 창시자인 황장엽 선생도, 생전에 여의도 사무실에서 만나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분은 "기독교 사상만이 북한의 사상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하셨다. 그분을 중국에서부터 모신 수양딸이 믿음 좋으신 교회 권사님이자 교수이시다. 황 선생님은 나와 같은 창원 황씨라고 남다른 동질감도 서로 나눈 적이 있다.

종북도 인정할 수 없다. 남녀 간에 연애도 금도가 있고, 기업도 상도의가 있다. 삼성에서 근무하면서 엘지를 칭찬하면 인격을 우습게 본다. 하물며 국가는 어떻겠는가. 국가 정체성은 분명해야 한다. 정치의 요체는 조정과 통합이다. 진정한 진보라면 보수까지도 감동시킬 차원 높은 도덕성, 논리나 사상을 재창출해야 한다. 어설픈 행동이 역사적 진보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또한 진정한 보수라면 진보도 존경하고 따를 만한 정책이나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사회 경제적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

진정성이 없는 보수는 종북 진보보다 더 위험하다

북한의 좌익 독재, 남한의 극우 파시즘 구도로 '적대적 공생 관계'를 유지해 온 지난 독재 정권의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북한에도 'PH(평양, 함경북도)사단'이 국가권력을 독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아직도 지난 이론이나, 이데올로기에 경도되거나 집착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사상의 고착이나 퇴행이다. 사람이 가장 귀하다. 이데올로기, 교육, 사상, 기술로부터도 인간 소외를 극복해야 하고, 허위의식도 탈피해야 한다. 인간이 해방되고 자유로워야 한다.

앨빈 토플러는 이미 '전자프롤레타리아'의 출현을 예고했다. 지난 낡은 논리로 이 시대를 재단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철 지난 이론도, 이를 빌미삼아 좌, 우 대립 구도로 몰아가 대치 전선을 형성하고,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보수도 반성해야 한다. 그들을 애정으로 설득하는 것도 진정한 보수이다. 남과 북의 7000만 국민이 주인이어야 한다. 'People'은 특정 계급 지향적인 '민중'보다는 이 땅의 선량한 '국민'으로 이해하고 싶다.

한 가지 예를 들고 글을 정리하고자 한다. 교회에서 한 부인이 남편의 무관심과 폭언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남편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그는 '민중신학'을 좋아한다고 그랬다. 그래서 내가 '진정으로 민중을 위한다면 당신 옆에 있는 민중, 당신 부인한테나 잘해라"라고 핀잔을 준 적이 있다. 나도 수유리 한신대 도서관에 가서 안병무 전집과 민중신학을 나름대로 공부한 적이 있지만, 오직 복음주의적인 성경관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예수님도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있다"고 말씀하셨다. 이데올로기도 사람을 위해서 봉사해야 한다. 보수도 진보도 서로를 이해하고, 설득하고 포용해야 한다. 언론도 이를 확대재생산 하지 말고, 교회도 종교계도 편 가르기를 하지 말고, 양극단 세력들을 서로 용서와 화해로 이끌어야 한다. 그리고 공동체적 선을 위해서 확고한 국가 공동체의 정체성을 지키고 변증법적 통합, 무지개의 스펙트럼과 같은 다양성과 일치를 선도하고 다함께 헌신해야 한다.

사랑만이 희망이다. 제국의 평화는 전쟁과 폭력의 악순환이었지만 예수님의 평화와 사랑은 십자가의 자기희생이었다. 가슴에 사랑이 없는 자는 '입'을 다물라. 가슴에 사랑이 없는 자는 '펜'을 꺾어라. 사랑과 진실이 가장 위대한 웅변이다.

황준배 / 목사·<카리스마적 리더십> 저자 (http://cafe.naver.com/jun7729191.cafe)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