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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 신화와 '미친 성장주의', 그 실패를 묻다
'시민 K, 교회를 나가다' 강좌 (2) 한국교회 성장 뿌리가 실패의 원인이 된 이유
  • 김진호 (newsnjoy@newsnjoy.or.kr)
  • 승인 2012.06.08 17:24

본 기사는 6월 5일부터 7월 24일까지 매주 화요일 진행하는 김진호 목사의 책 <시민 K, 교회를 나가다> 출판기념 강좌 중 두 번째 강의 원고를 요약·정리한 것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강좌를 통해 만나 볼 수 있습니다. - 편집자 주


한국 개신교는 단기간에 세계에서 유례없는 성공을 이룩했다. 그 성공 시대의 기간은 대략 1960~1990년이다. 하지만 그 심성적 뿌리는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이다. 이 사건은 한국 그리스도교의 신앙 속에 '성령-성공-배타성'이 서로 얽힌(codified) 심성적 기조를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1930~50년대를 거치면서 반공-친미주의가 추가로 엮이게 되어, 성공주의, 배타주의, 반공주의, 친미주의, 이 네 가지는 한국개신교 제도형성의 심성적 기반이 되었다. 그런 점에서 성공주의는 배타주의, 반공주의, 친미주의와 함께 한국개신교 형성의 초석이자 과정이며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첫 번째 강의에서 나는 배타주의와 반공주의, 친미주의를 신앙적 뿌리가 되는 체험의 형성을 중심으로 이야기했다. 두 번째 강의에서는 성공주의를 다룬다. 특히 여기서는, 성공주의가 불꽃을 일으키며 개신교를 일약 한국 사회에서 거대 종교 중 하나가 되게 했던 1960~1990년 사이의 성공 과정과 그 맥락, 의의, 문제 등을 이야기할 것이다.

우선 성공주의는 한국 기독교를 조명하는 많은 종교학자와 신학자에게서 부정적 요소로서 비판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을 주지하자. 이미 1980년대부터 여러 선각자들은 이제 '양이 아니라 질이 과제'라는 말을 해왔다. 여기에는 양적 성장에 대한 집착이 질적 성숙을 동반하고 있지 않다는 문제 제기가 담겨 있다. 아니 오히려 질적 성숙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비판도 많다.

그런데 나는 성공의 역사 초기 단계를 보면서, 성공주의는 중요한 의의가 있다는 점을 주목하게 되었다. 그것은 한국전쟁 직후 개신교 신앙 속에 성공주의가 본격적으로 자리 잡는 과정에 대한 물음과 관련이 있다. 간략히 요약하면, 재건이 가능할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거의 모든 사회적 자원이 파괴되고, 심지어는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영적·도덕적·신체적 자원까지도 산산이 부서진 상황에서 한국 개신교의 성공신화가 시작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주목거리는 대중적 신앙 운동이다.

나운몽은 1954년 경상북도 김천 용문산에서 기도원 운동을 시작했다. 한국적 기도원 운동의 효시다. 침묵과 명상 중심의 기도원이 아니라, 신비 체험이 동반된 열광적인 신앙 집회가 열리는 기도원이다. 그리고 그는 교회처럼 한곳에 고정된 장소를 제도화하기보다는 전국을 순회하며 집회를 이어갔다. 한편 그 무렵 박태선은 서울의 남산공원과 한강 백사장 등에서 거대한 신앙 집회를 이어갔다.

이 두 집회의 특성은 대중의 신비적 열광주의가 불을 뿜는 가운데, 신체와 정신의 질병을 치유하는 사건이 동반되었다는 데 있다. 사회적 보건 의료체계가 거의 붕괴된 상황이다. 전쟁으로 몸과 정신의 질병은 거의 모든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전쟁이 끝났어도 그런 상흔이 곳곳에서 사회적 폭력, 가정 폭력, 자기 자신에 대한 폭력 등 무수한 폭력이 가해성으로 나타나던 시절이다.

사회의 지도층은 그런 사람들을 진정시키고 사회 건설을 도모하도록 독려하기보다는 남은 분노를 집중시킬 적을 찾아내고, 그들에게 공권을 무자비하게 휘두르던 탈법, 무법의 장소로 사회를 충동질해댔고, 교회의 지도층은 더욱 광적으로 '악마'에 대한 전쟁에 전력을 다하던 때였다. 이 시기에 무수한 이단이 탄생했다. 그것은 한 편에서는 주류 교회와는 다른 신앙 운동이 활발했다는 것을 뜻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주류 교회가 다른 신앙에 대해 더 배타적으로 반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 전쟁의 분노를 치유의 동력으로 전환시킨 영적 천재들이 등장한 것이다. 그들은 대중의 영성을 활성화하는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들이다. 그리고 전후의 고통 속에 있던 대중은 그런 영적 천재들이 이끄는 집회에서 질병의 치유를 얻으며, 파괴된 정신적, 영적 자원이 복구되는 체험을 했다. 나는 이것을 '파괴적 분노'가 아닌 '생산적 분노'라고 명명하고자 하는데, 이 생산적 분노는 전후의 개개인과 사회를 회복할 수 있게 했던 신앙적 자원이다. 그리고 이것은 더 나아가서 성공주의의 신앙적 자원으로 구축되었다.

한국 개신교는 이 대중적 신앙 운동을 지도자들의 주장 속에 담긴 신학적 문제점에만 관심을 기울이면서 이단시했다. 한데 그러한 비판과 배격은 다분히 신학적인 냉정함이 결여되어 있었다. 하지만 더 중요한 문제는 그러한 이단화로 인해 대중적 영성의 가능성까지 묻어버렸다는 데 있다. 대중적 영성은 기성의 종교 제도가 중요하게 여기는 (교리나 제도의 위계적 요소 같은) 신앙 제도의 질서보다는 자신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더욱 밀접하게 연관된, 교리 중심보다는 다분히 현장 중심적인 영성을 추구한다.

하여 나운몽의 집회와 박태선의 집회에서 대중은 질병의 치유에 열광했다. 물론 예수의 집회도 그랬다. 그것은 종종 기존의 교리를 뒤흔들고 교권의 권위를 모독하는 전복적 함의를 지닌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대중은 자신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서 해방되는 체험에 반응하고 있다는 점이다. 교리나 교권은 관심 밖이다. 한데 교회가 그러한 체험을 폄하하고 억압하려 할 때 대중의 영성은 질서 해체적 운동이 된다.

불행하게도 한국교회는 1950년대 중반의 이러한 대중적 신앙 운동을 접하면서 거기에서 대중의 고통을 발견하고, 교회와 신학이 어떻게 해야 고통당하는 대중에게 해방의 복음을 선포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기보다는, 그러한 신앙운동을 정죄하고 그것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는 데 몰두했다. 그 결과 대중적 신앙 운동의 가능성은 교회 속에 성찰적으로 흡수되지 못했다.

그들은 교리적으로는 논쟁의 대상이 될 만한 요소를 가지고 있었지만, 대중의 고통을 대하는 태도에서는 이념적 분노의 전선에서 여전히 광분하고 있던 기성 교회 지도자들보다 훨씬 훌륭했다. 목회자는 교리의 수호자나 이념의 투사보다는 대중의 고통을 치유하는 영적 마술사(spiritual magician)라는 점, 한국교회의 주류 집단이 주도했던 이단화 프로젝트 속에는 이러한 목회관이 결여되어 있었다.

한편 주류 기독교의 변방에서 등장한 또 다른 영적 마술사인 조용기는 대중적 영성을 조직해내고 활성화하는 데 누구보다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그런 점에서 그는 나운몽의 대중적 신앙 운동의 계승자였다. 하지만 그의 천재성은 나운몽과는 다르게 발휘되었다. 그는 대중적 신앙 운동을 교회화하는 데 성공했다. 즉 대중적 신앙 운동을 교회 속에 순치시켰다. 이것은 그가 이끈 신앙 운동이 교리적인 위험성이 선행자들보다 현저히 줄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너무나 체제수호적인 영성이 되고 말았다는 문제점이 있다. 개발 독재 시대의 인권과 시민권의 유린은 대중적 고통의 또 다른 배후인데, 조용기식 영성 운동은 고통을 너무 개인적(이기적)이고 물질적인 성공으로 해석해버린 것이다.

아무튼 한국교회의 초고속 성장과 한국사회의 초고속 성장은 시기와 담론에서 서로 겹쳐 있다. 양자는 분명 서로 연동하여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교회의 이상적 국가관은 아직도 권위주의적 독재체제의 인식 안에 머물러 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전후 한국 근대의 고도성장은 독재자가 자원 동원을 생산적으로 전환함으로써 가능했다고 해석한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서 한국 기독교는 파괴적 분노가 아닌 생산적 분노를 통해 전후를 극복하고, 인간과 사회가 성장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초석이 되었다.

말했듯이 이 점은 1960~1990년 사이에 개신교의 성장 신화를 이끌었던 순복음 신화에서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사회적 안전장치가 전무한 가운데 버려진 도시 빈민들 사이에서 나운몽 식의 생산적 증오의 신앙이 재현된 것이다. 시골에서 떠나오면서 근대화에 의해 영적 토대까지도 압수당한 도시의 빈민들에게 세상을 살아갈, 아니 세상의 혹독함을 견뎌내고 자기와 가족의 생존을 위해 삶의 자원을 다 동원할 수 있는 가능성을 부여해준 것, 그것은 조용기식 생산적 분노의 신앙의 한 요소였다. 그리고 그것이 교회의 성공과 맞물리며, 국가의 성공과도 맞물린다. 또한 한국에서 하느님나라의 성공적 구현과도 맞물린다. 적어도 이 점에서 조용기의 성공주의는 양의 성공과 질의 성공이 서로 보완하게 하는 가능성을 내포했다.

그러나 성공주의에 대한 적극적 평가는 여기까지다. 점차로 한국교회는 성공 그 자체에 몰두하게 되었다. 초고속의 성공 가도에 있는 교회는 사회의 지배자가 되고 싶어 했고, 그것으로 비신자들의 삶을 통제하고 싶어 했다. 고통의 해결사가 아니라, 새로운 갈등을 야기함으로써 새로운 고통을 생산하는 주역이 되고자 했다. 이것은 이웃과 공존할 수 없게 하는 핵심적 요소가 된다. 나아가 적이 된 이웃, 특히 그 중의 어떤 이들을 악마화하여 그이들에게 파괴적 분노를 쏟아붓는 능력을 가진 자가 되고 싶은 욕구가 성공주의와 결합했다. 또한 독재 정부가 성공주의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유린했던 과정으로서의 사회적 정의에 대해 교회가 침묵했다는 점 또한 질을 훼손한 양적 성공의 문제다.

내가 보기에 1990년대 이후 한국 개신교의 실패 이유는 바로 이 점과 관련이 있다. 개신교의 공격적 본능, 파괴적 본능을 확대하고, 고통을 나누고 자원을 공유하는 본능은 퇴보하는 방식, 그것이 한국 개신교의 성공주의를 형성한 핵심적 문제인 것이다.

이 강의에서는 이러한 성공주의의 의의와 실패, 이 두 요소를 점검해 보는 데 목적이 있다.

김진호 /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시민 K, 교회를 나가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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