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시 교회 십자가 철탑 철거 소식이 연일 언론에 오르내렸다. 안양시는 안전상 문제가 있는 104개 교회의 신청을 받아, 우선 36개 교회의 십자가 철탑을 철거했다. 노후한 십자가 철탑 때문에 여름만 되면 걱정을 안고 있던 교회는 이번 안양시 조치에 "고맙다"고 했다.

지난 4월 말 십자가 철탑을 철거한 안양명성교회(황선수 목사)에는 10여 미터 높이의 철탑이 있었다. 황선수 목사는 2010년 태풍 '곤파스'가 왔을 때 철탑에 있던 철판이 떨어져 날아갔다고 했다. 철탑은 다행히 옥상에 떨어져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 황 목사는 십자가 철탑이 도로 변에 있는 6층 빌딩 옥상에 있었기 때문에 철판이 바깥으로 날아갔다면 자칫 큰 사고가 날 뻔했다고 했다.

황 목사는 "사람 살리려고 목회하는데, 사람을 다치게 할 뻔했다"며 "아찔한 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이후 태풍 소식이 있거나 바람이 심하게 불게 되면 조마조마했다고 한다. 이 교회는 이번 안양시 조치로 기존 철탑을 3.5m 십자가 철탑으로 교체했다. 황 목사는 "높이가 조금 낮다는 생각도 들지만 철탑보고 교회 찾아오는 시대는 아니다"며 "교인들이 맺는 관계에서 전도가 되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상가 교회는 철탑이 크게 필요한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 안양시가 노후한 십자가 철탑 때문에 여름만 되면 걱정이던 교회들의 고충을 덜기 위해 나섰다. 안양시는 안전상 문제가 있는 104개 교회의 신청을 받아, 우선 36개 교회의 십자가 철탑을 철거했다. 교회들은 시의 조치에 고마운 반응이다. 사진은 상가 임대 교회의 십자가 철탑 철거 모습. (사진 제공 안양시청)
오래된 십자가를 철거하지 못해 골치를 앓고 있던 유치원도 있었다. 이 유치원은 지하를 교회에 세를 주었는데, 교회가 십자가 철탑을 설치하고 이사를 갈 때 철거하지 않았다고 한다. 유치원 원장은 십자가를 철거하려고 했지만 50만 원이 넘는 금액이 부담이 돼 철거하지 못하고 있었다. 원장은 "안양시에서 먼저 실태 조사를 한 뒤 철거할 것인지 물어 왔다"며 "시 조치를 환영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태풍으로 십자가 철탑을 철거했다는 한순교회 김혁 목사는 "다시 십자가 철탑을 설치하면 좋겠지만, 들어간 비용에 비해 효과가 낮은 것 같다"며 "철탑 대신 간판에 십자가를 넣었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십자가 철탑이 다른 사람들에게 반감을 주는 경우도 많다"며 "십자가 보고 교회 오는 시대는 지났기 때문에, 시대에 맞게 절충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큰능력교회 오규원 목사는 이번 안양시 조치를 듣지 못해 철탑 철거 기회를 놓쳤다고 했다. 큰능력교회 철탑은 오 목사가 부임하기 오래 전부터 방치되어 있었다. 십자가 네온사인은 고장이 나 지금은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오 목사는 "다음 기회에 철거 신청을 해 노후한 철탑을 처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 목사는 철거를 한 후에도 다시 철탑을 세울 생각이 없다고 덧붙였다. 다른 교회와 동일한 이유 때문이다. 철탑을 보고 교회를 찾는 사람도 없고, 도시 미관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세상 사람들이 싫어하는 일을 굳이 할 필요가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뉴스앤조이>가 현장에서 만난 교회들은 현재 목회자가 사역하기 오래전부터 십자가 철탑이 있었다고 했다. 십자가 철탑이 낡아 여름만 되면 불안하지만, 철거 비용이 부담이 된다는 얘기다. 아직 자립하지 못한 작은 상가 교회의 경우는 적게는 몇십만 원에서 많게는 몇백만 원이 들어가는 철탑 철거 비용을 낼 만큼 재정에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번에 안양시와 협조하며 실무를 담당한 한관희 목사(안양시기독교연합회 부회장)는 "기존의 십자가를 철거하는 데 안양시가 재정을 부담하고, 3.5m 이하의 십자가 철탑을 다시 설치하는 것은 연합회가 부담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한 목사는 "문제가 되고 있는 십자가 철탑이 대부분 소규모 임대 교회에 있다"며 "연합회가 안전한 철탑으로 재설치를 약속해 많은 교회들이 철거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한 목사는 3.5m보다 높은 십자가 철탑을 세우려면 교회가 직접 재정을 부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뉴스앤조이>가 현장에서 만난 교회들은 현재 목회자가 사역하기 오래 전부터 십자가 철탑이 있었다고 했다. 대부분 교회들은 "십자가를 보고 교회 오는 시대는 지났다"며 굳이 새로 철탑을 세울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전현진
성공회대 이정구 교수(교회사)는 최근 <뉴스앤조이>와 인터뷰에서 "십자가 철탑이 강풍에 쓰러질 위험이 있는 것 외에도 일반 시민들이 그런 십자가를 보면서 과연 어떤 생각을 할까 생각해 본다"며 "눈만 뜨면 사방이 온통 십자가 네온으로 싸여 있을 때 혐오 설치물로 느끼지 않을까"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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